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61화 (61/150)

첫 번째 타깃 (2)

주변 들쑤시기의 첫 번째 타깃은 JH엔터테인먼트였다. 한국 최대 규모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원래 JH기획이란 이름으로 5대 음반 기획사 중 하나로 꼽히는 수준이었다. 최근 2, 3년 사이 급격하게 성장했다.

배우 매니지먼트를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 제작으로 발을 넓혔고, 의류와 요식업 유흥업 등 엔터테인먼트를 활용한 사업에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이제는 어지간한 대기업에 버금가는 규모가 됐다.

세간에선 이 같은 성장의 배경으로 강재현 회장의 수완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탁월한 기획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SSG가 수집해 분석한 정보는 달랐다. 크리스털 박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였다.

크리스털 박은 JH기획에게 엔터테인먼트 관련 이권을 몰아줘서 자산 규모를 키워줬다. 알짜 제작사나 기획사를 인수하도록 손을 써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력을 동원한 압박도 서슴지 않았다.

시가 총액 1000억 원 남짓이던 JH기획이 2조 원의 시가 총액을 자랑하는 JH엔터테인먼트로 급성장한 비결은 크리스털 박이었다.

“이야. 회사 키우기 쉽네. 무슨 게임도 아니고···.”

강재현은 크리스털 박에겐 대중문화계 장악을 위한 하수인이었다.

강재현은 JH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크리스털 박이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했고, 필요로 하는 행사에 연예인들을 동원했다.

크리스털 박을 불편하게 하는 사건이 터졌을 때면 소속 연예인을 활용해 눈가림용 스캔들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열애설 조작이라든가, 마약 의혹 같은.

“그나저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니라 종합 범죄 기업이구나. 안 건드린 영역이 없네.”

강재현 회장 본인부터 다수의 소속 연예인들까지 각종 범죄에 휘말리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마약 복용, 해외 원정 도박, 폭행, 탈세, 주가 조작, 사기···. 음주 운전 정도는 약소해 보일 정도로 대단한 범죄자 집단이었다.

크리스털 박의 입김 덕분에 처벌에서 피해갔다.

범죄 사실이 명백함에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증거가 뚜렷하면 벌금형 정도의 가벼운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덕분에 JH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 중 상당수가 범죄 행위에 둔감했다. 반복적으로 저지르고도 풀려나기 일쑤였다.

“좋은 먹잇감이야. 첫 번째 타깃으로 손색이 없어.”

JH엔터테인먼트로 쳐들어갔다.

조무래기들은 건드릴 필요 없었다. 대가리, 강재현부터 조지고 시작할 참이었다.

어차피 최종적인 타깃은 크리스털 박인 만큼, 가능하면 강재현만 제대로 들쑤시는 게 효과적일 터였다.

불을 찾아 달려드는 부나방이 있으면 싹 태워버리면 되고.

JH엔터테인먼트 사옥은 초현대식 인텔리전트 빌딩이라 보완이 철저했다. 회장실까지 가는 길에 제법 걸림돌이 많았다.

문제 될 건 없었다. 입구에서 가로막는 어깨 녀석을 가볍게 만져줘 잠재운 뒤 출입증을 강탈하면 될 일이었다.

이후로는 회장실까지 프리 패스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회장실엔 함부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가로막으며 용무를 묻는 비서도, 미안하지만 잠재웠다.

이제 회장실로 들이닥칠 순간이었는데. 어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냉랭하게 타이르는 남성의 목소리, 여인의 울음소리, 주위 남성들의 비웃음 그리고 여인의 울부짖음···. 범죄 현장이었다.

옳거니! 금상첨화로구나.

적당히 시기를 봐서 덮치려는데, 여인이 입을 막은 채 뛰쳐나왔다. 구역질을 참는 모습이었다. 재빨리 비켜주려 했지만, 부딪혔다. 여인이 넘어져 나뒹굴었다.

유지훈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일으켜 세웠다.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요? 많이 놀랬죠?”

“네? 아니···. 누구···?”

유지훈이 여인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회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너 이 새끼들 딱 걸렸어. 안 그래도 동영상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또 동영상이냐?”

회장실 내부 사람들의 시선이 유지훈에게 집중됐다. 튀어나올 정도로 눈이 커진 상태였다.

유지훈을 알아보는 놈도 있었다.

“다, 당신은···?”

“또 너냐? 내가 착하게 살라고 안 했냐?”

클럽에서 고모 찾던 놈이었다.

그러니까 크리스털 박의 조카로 추정되는 놈.

“고, 고모한테 말하면 당신은 죽···.”

“안 그래도 너네 고모 좀 만나고 싶던 참이다. 제발 좀 말해라. 지난번에도 말한다더니 안 했냐?”

1차 타깃이 강재현에서 이놈으로 변경됐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쫙! 쫙! 쫙!

놈이 처맞는 동안 강재현을 비롯한 나머지 녀석들이 슬금슬금 회장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거기 딱 멈춰. 너희들 모두 오늘 나한테 좀 맞아야 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놈은 발목을 썰어주겠어.”

유지훈이 강재현을 지목했다.

“특히 너. 너는 다른 놈들보다 열 대 더 맞아야 하니까. 수작 부리지 말고 기다려.”

고모 찾는 녀석을 마저 후려쳤다.

그러는 사이 다른 놈들은 여기저기 연락을 해댔다. 경호원을 부르고, 경찰에 신고하고···.

누가 오든 유지훈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가르침의 매질에 집중할 때였다.

“이번엔 제발 제대로 벌 받고 착하게 좀 살아라.”

각각 다섯 대만에 녀석의 양쪽 뺨이 피투성이가 됐다. 준엄한 당부와 함께 옆으로 내던졌다. 다음 타자를 정할 차례였다.

“다음은 누가 할래? 참고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눈치를 살피던 한 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려는 찰나, 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강재현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빨리빨리 안 오고 뭐 한 거야! 저 새끼 당장 제압해서 밖에 내던져 버려! 경찰들 오면 끌고 가게.”

경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너희들이 먼저 맞을래? 그것도 나쁘지 않지. 몸 좀 풀고 나서 제대로 후려 패면 더 아플 테니까.”

무림을 제패했던 박투술을 펼쳐 보일 때였다.

가볍게 날아올라 휘돌려 차기로 셋을 날려버렸고, 이어진 연환 권격으로 다섯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찍어차기에 이은 정권 지르기 그리고 팔꿈치 가격과 연계된 네 차례의 수도 필살기로 일곱을 무찔렀다.

남은 셋은 정수리 내리치기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셋이 가장 처참하게 당했다. 대가리가 깨졌으니.

“자 이제 몸은 다 풀었고. 누가 먼저 맞을래?”

“저요!”

“아닙니다. 제가 먼저.”

“아까 제가 손들려고 하는 거 보셨잖아요.”

“찬물도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회장인 저부터···.”

서로 먼저 맞겠다고 앞다퉈 달려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냥 나란히 세워놓고 한 대씩 때리기로 했다. 차례차례 한 대씩 총 열 차례. 열 대 더 맞아야 하는 강재현은 두 대씩.

세 바퀴째 접어들어 강재현 차례가 됐을 때 경찰들이 들어섰다.

“당장 멈추십시오!”

경찰 다섯이 유지현의 앞을 막아섰다.

다시금 강재현의 기세가 살아났다.

“이제 오시면 어떡합니까.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 중에 이놈이 들이닥쳐서 이 지경을 만들어놨습니다. 당장 잡아가세요.”

선임으로 보이는 경찰이 회장실 내부를 둘러보더니 유지훈에게 말했다. 사뭇 근엄한 음성이었다.

“당신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유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봐요. 현행범은 이놈들이에요. 나는 본격적인 처벌에 앞서 내 나름대로 현행범을 처단하는 임무 수행 중이었고요.”

“그런 이야기는 서에 가서 하십시오.”

“서는 내가 아닌 이놈들이 가야 한다니까. 이놈들 선량한 여인한테 몹쓸 짓 한 질 나쁜 놈들이라고.”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제가 목격한 건 당신이 여기 계신 분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현장입니다. 할 말이 있으면 서에 가서 하십시오. 거부하시거나 반항하시면 물리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기어코 임무 수행을 방해하겠다는 거구먼.”

유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이럴 때 쓰라고 받아둔 거니 써야지.”

윗옷 안 주머니에서 곱게 접어둔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쳐 보였다.

대통령 직인이 찍힌 자기면책권 증명서였다.

“한글 알지? 잘 읽어봐. 범죄 행위나 범죄자에 대해 어떠한 폭력을 행사해도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경찰들이 기함했다.

초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자기면책권을 모를 수 없었다.

빌런을 효과적으로 처단하기 위해 제공하는 특권이었지만, 일반 범죄자에게도 확대돼 적용됐다.

눈앞의 사내가 초인은 아닌 듯했지만, 초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인물임은 분명했다.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었다.

유지훈이 강재현을 비롯한 범죄자들을 죽 가리켰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놈들 아주 질 나쁜 범죄자들이라고.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범죄자들을 처단하고 있었던 거고.”

때마침 피해자 정예린도 회장실에 들어와 있었다. 경찰을 보고 따라 들어온 듯했다. 피해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였을 터였다.

강재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나, 나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없긴 뭐가 없어! 피해자 회유하고 협박했잖아!”

“아닙니다. 비즈니스적인 대화만 나눴을 뿐입니다.”

그때 이를 악물고 바라보던 정예린이 나섰다.

“아니에요. 분명히 저를 협박했어요. 연예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고요. 제가 다 녹음했어요.”

“녹음까지 했다잖아! 너는 오늘 제대로 좀 맞자.”

유지훈이 강재현의 복부를 걷어찼다. 고꾸라지는 놈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쫘악! 쫘악! 쫘악!

살이 터지고 피가 튀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욱 가열차게 내리쳤다. 살기 등등한 광경이었다.

경찰들은 어쩔 줄 모른 채 지켜보기만 했다. 유지훈의 기세가 워낙 무시무시해 몸이 굳어진 탓이었다.

양쪽 뺨이 다 터져 피투성이가 된 강재현이 의식을 잃을 무렵에야 경찰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렸다.

“그러다 죽겠습니다. 선생님 말씀 충분히 잘 알아들었습니다. 나머지는 저희 경찰에게 맡겨주십시오.”

안 그래도 다 때렸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유지훈이 손을 털고 일어섰다.

“맡겨 달라고?”

“저희 마포서 관할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저희가 엄정하게 처리할 테니 선생님은 여기까지만···.”

뻔한 수작임을 모르지 않을 유지훈이었다.

JH엔터테인먼트와 마포서는 권력이 개입된 결탁 관계일 터. 어떤 식으로든 무마해서 적당히 매듭지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엄정하게? 어떻게?”

“그러니까 법규를 엄정하게 적용해서···.”

“그놈의 엄정하게 때문에 이놈들이 범죄 종합선물세트가 된 거야.”

훈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엄정하게? 그래. 엄정하게 증거 인멸해주고, 피해자 회유해주고, 진술 조작해주고···. 그러니까 저놈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처벌을 안 받잖아. 마약을 빨아도 벌금도 안 내더라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법규에 따라···.”

“닥쳐. 범죄자 비호로 엮여서 쥐어 터지기 싫으면.”

선임 경찰이 입을 다물었다.

훈계는 계속됐다.

“저놈들 범죄 행위에 재미 들렸어. 범죄를 창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니까. 그런데도 너희한테 맡겨 달라고?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말지.”

“그럼 선생님께선 어쩌실 생각이신지···?”

“한글 안다며? 눈 있으니까 읽어봐.”

유지훈이 다시금 자기면책권 증명서를 들어 보였다.

검찰, 경찰, 각성자수사청 등 수사기관의 인력을 동원할 권한이 있다고 적힌 부분을 가리켰다.

“맡길 분들 진작에 불러뒀으니까 기다려 봐.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말고. 임무 수행 방해로 덩달아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복 형사들이 몰려왔다.

“광수대에서 나왔습니다. 유지훈 요원님이 누구십니까?”

“나예요.”

유지훈이 손을 들고 나서 강재현 무리를 죽 가리켰다.

“이놈들이 범죄 가해자들이에요. 저기 여성분이 피해자고요. 녹음해둔 거 있다니까 증거로 활용하시면 될 거예요.”

정예린이 다가와서 말했다.

“저 새끼들 휴대폰도 다 압수해야 해요. 휴대폰에 제 동영상 있을 거예요. 저 말고도 많을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바로 확보하겠습니다.”

“혹시 삭제했으면 어쩌죠?”

“삭제했어도 포렌식으로 살려낼 수 있습니다.”

“꼭 좀 부탁드려요.”

그때 유지훈이 뭔가 생각난 듯 끼어들었다.

“포렌식으로 영상 살려내면 나한테도 하나 복사해 주세요.”

“네?”

광수대 형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정예린의 표정도 심상치 않게 변했다.

유지훈도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아. 생각하시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나중에 누군가 증거 인멸을 시도할 때에 대비해서···.”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정예린이 울먹였다.

“남자는 다 똑같아!”

급기야 오열하며 뛰쳐나갔다.

광수대 형사가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힘들겠는데요.”

“아. 정말 그런 게 아니라. 증거 인멸에 대비해서 복사본 하나 확보해두는 개념이에요.”

“저는 요원님 믿습니다.”

“정말이에요.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네. 믿어요. 믿는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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