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54화 (54/150)

변종 몬스터 대책 회의 (2)

비상 대책 회의에는 각성자를 대표하는 인사들과 국가안전본부의 고위 간부 그리고 정부와 국회의 참견꾼들이 참석했다.

각성자 대표자들은 초인 셋과 길드 마스터 둘이었다.

대한민국 초인 서열 1위 서원섭과 2위 탁세훈 그리고 4위 마철진. 3위 임정명과 5위 양석현은 부상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양석현은 이번에 변종 몬스터를 상대하다가 중상을 당했다.

길드 마스터는 금강길드의 최금강과 태광길드의 권준성이었다. 원래대로라면 3대 길드 마스터가 참석해야 했지만, 신화길드가 해체된 탓에 두 명의 길드 마스터가 전부였다.

어떤 의미에선 유지훈이 빈자리를 채운 셈이었다.

“내가 말했었지? 유지훈 이 친구 재미있는 녀석이오. 말로는 부족해. 직접 겪어보시면 확실히 아실 거요.”

마철진이 초인들과 길드 마스터들에게 유지훈을 소개했다. 유지훈에게도 인사를 권했다.

유지훈이 꾸벅 인사했다. 다들 옅은 미소로 인사를 받았다. 분위기가 가볍지 않았다. 변종 몬스터의 출몰로 인한 위기감 때문일 터였다.

최금강 정도만이 유쾌한 웃음으로 유지훈을 반겼다.

“지훈이에 대해선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단순히 재미있는 친구가 아니야. 경이로운 친구지.”

참견꾼들로는 국방부 장관 윤동훈과 외교통상부 장관 정태성이 정부 측 인사, 정도균과 하병우가 국회 측 인사로 참석했다.

국방부 장관이야 회의에 어울린다 해도, 외교통상부 장관은 뜬금없는 참석이었다. 국회의원 둘은 낄끼빠빠를 모르는 불청객들이었고.

“다들 참석하셨으니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국가안전본부 본부장 신영환이 회의 시작을 알렸다.

양옆으로 국가안전본부 간부들이 자리했다. 맨 끝에 강은영도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국장급으로 승진한 강은영도 국가안전본부의 고위 간부로 인정받게 됐다. 이런 자리는 처음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지훈은 강은영을 향해 슬쩍 눈을 흘겼다.

‘영훈길드 마스터가 왜 거기 앉아 있는 거야? 각성자 대표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해야지.’

국가안전본부 전략기획실장 문대현의 브리핑을 시작으로 비상 대책 회의의 막이 올랐다.

최근 출현한 몬스터 퇴치 실패에 관한 보고였다.

최금강의 금강길드는 어렵사리 특급 몬스터 퇴치에 성공했지만, 길드 헌터들의 희생이 적지 않았다.

양석현은 유원길드와 협력 작전을 펼쳐 초특급 몬스터 거대악어를 상대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양석현은 중상을 입었고, 작전에 참여한 유원길드 헌터 전원이 몰살당했다.

거대악어는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성공 사례는 유지훈의 영훈길드와 마철진의 협력 작전이 전부였다. 그나마 초인 마철진이 아닌, 유지훈이 해낸 결과였다.

“이번에 출현한 몬스터들은 국내에선 처음 발견된 개체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외국에서 기록된 개체들과도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에 변종 몬스터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대현이 운을 띄운 뒤 시선을 유지훈에게 향했다.

“이번에 마철진 초인과 협력 작전을 진행한 영훈길드 유지훈 오너께서 관련해 의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말씀 청해 듣고자 모셨습니다.”

유지훈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유지훈은 한 차례 헛기침 후 말문을 열었다.

“맞아요. 변종 몬스터. 전에 임정명 초인한테 중상 입힌 놈도 변종 몬스터였고요. 은밀한 실험을 통해 독을 갖게 된···.”

그때 국회의원 정도균이 딴지를 걸어왔다.

앞서 망신을 당해 앙심을 품었다가 반격에 나서는 양상이었다.

“그런 건 진즉에 말했어야지! 그랬으면 불필요한 희생도 없었을 것 아닌가.”

유지훈이 정도균을 향해 눈을 흘겼다가 무시하듯 말했다.

“말했어요. 제대로 전달이 안 돼서 문제였지. 앞으로는 그럴 일 없겠네요. 뭉개던 작자들 싹 사라졌으니.”

국가안전본부 내에서 신화그룹과 내통하던 간부들이 퇴출된 사건을 빗대 말한 것이었다.

정도균은 물러서지 않았다.

“핑계 대지 말란 말이야! 그런 중요한 문제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렸어야지. 국회의원인 나도 모르는 게 말이나 돼!”

“당신 나 알아요?”

“뭐?”

유지훈의 공격적인 언사에 정도균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유지훈은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도 당신 몰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뭘 알리라는 거야. 그리고 그런 중요한 정보를 모르면 당신 역량이 부족한 거 아니야?”

“뭐, 뭐, 이게···.”

“자격 미달인 거 스스로 증명하지 말고 조용히 앉아서 듣기나 해. 당신이 나서서 몬스터 때려잡을 것도 아니잖아.”

정도균이 폭발했다.

“예의 갖추지 못해! 나, 국회의원이야! 어디서 함부로 반말이야!”

“당신이나 똑바로 해. 나 당신 부하 아니야. 어디서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이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거야.”

정도균이 길길이 날뛰려 하자, 옆에 있던 장관과 국회의원이 만류했다. 장관급인 신영환까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두 분 진정하시지요. 지금 중요한 건 변종 몬스터의 퇴치 방안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유지훈에게 발언권이 왔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변종 몬스터는 신화그룹과 일본 야마가토산업의 실험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아!”

“으응?”

반응이 둘로 엇갈렸다.

그럴 수도 있겠다며 수긍하는 반응과 말도 안 된다며 거부하는 반응이었다. 양측 모두 유지훈의 추가 설명을 기다렸다.

“물증은 없습니다만. 심증은 널렸습니다. 대응책을 찾는 것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화그룹의 소행이라면 지난번 폭발사고로 관련된 자료가 모두 사라진 것 아니겠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문제로군.”

“입증도 안 되겠지만, 신화가 야마가토랑 손잡고 진행했으면, 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 거요. 다 날려버렸으니 아쉽게 됐네.”

국회의원 하병우가 엉뚱한 발언으로 초점을 흐렸고, 정도균이 기다렸다는 듯 동조했다.

듣다 못한 마철진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그게 무슨 망발이요! 신화그룹이 저지른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거늘.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을 거라니. 그게 말이요. 방귀요!”

“증거가 없잖소. 게다가 야마가토산업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준 우방 기업인 줄 마 초인은 모르시오?”

“마철진 초인도 신화그룹한테 제법 받아먹은 것으로 아는데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으시오?”

다시금 주제에서 벗어난 논쟁이 불붙었다.

쓸데없는 인물들이 참석한 회의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시간만 죽이는 건 불변의 진리였다.

무의미한 논쟁이 이어지던 찰나, 외교통상부 장관 정태성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시선이 정태성에게 집중됐다.

“바쁘신 분들께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모이셨는데, 주제에서 벗어난 논쟁으로 감정만 상해서야 되겠습니까.”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말로 서두를 연 정태성이 준비했다는 듯 의견을 꺼내놓았다.

“일본에서 외무 회담을 제안해 왔습니다. 양국의 각성자 회합도 함께 진행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참에 변종 몬스터에 대한 양국 공조를 안건으로 삼으면 어떨까 여쭙고 싶습니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어울리지 않게 변종 몬스터 대책 회의에 참석한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일본 각성자의 대규모 입국 허용이라는 폭탄이 던져진 순간이기도 했다.

야마가토산업을 벼르고 있던 유지훈에겐 반가운 폭탄이었다.

반응은 확연히 둘로 나뉘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일본 각성자들이 한국과 비교해 한 수 위 아닙니까. 자연스럽게 공조로 이어가면 되겠습니다.”

“일본의 몬스터 연구가 세계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기회입니다.”

국회의원들과 국방부 장관 그리고 국가안전본부 노장파 간부들은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반면 각성자들과 국가안전본부 소장파 간부들은 극렬히 반대했다.

“말이나 될 법한 말씀입니까? 신화 사태 때문에 일본 각성자들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대규모 입국을 허용하자니요.”

“일본 각성자들이 대규모로 밀려 들어오면 자칫 점령군 행세를 할 수도 있습니다. 공조를 빌미로 한국 각성자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왈가왈부가 이어졌다.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유지훈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일본 각성자의 입국에 대한 반응들을 관찰했다.

특이한 부분은 국가안전본부 노장파와 소장파의 견해가 극명하게 엇갈린 점. 그리고 초인 탁세현의 반응이었다.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찬성 쪽이었다.

‘탁세현 초인이라···. 뭔가 있는 작자로군.’

다시금 결론 없는 논쟁으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국가안전본부 본부장 신영환이 나서 방향을 다잡았다.

“여기서 결정할 사안도 아니지 않습니까. 여기선 그저 그런 일이 있다 정도로 놔두고, 본래 주제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건 변종 몬스터에 대한 대처였다.

“일본 각성자들과 공조는 이뤄지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 아니겠습니까. 그게 어떻게 되든, 변종 몬스터는 상대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 부분만 논의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시금 마이크가 유지훈에게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유지훈 씨께서 두 차례나 변종 몬스터를 퇴치한 경험이 있으시니 대처 방안이나 노하우를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하우라···.”

유지훈이 미간을 좁혔다. 잠시 생각하더니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요···.”

“그래도 뭐든 말씀해주시면 향후 변종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그냥 썰었거든요.”

“네? 어떻게···.”

신영환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미 경험한 마철진 정도만이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마철진 역시도 방법에 대해선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몬스터 놈의 위치를 파악한 뒤 기회를 엿보다가 파고들어 자리 잡고 썰었습니다.”

물론 소멸기로 몬스터의 이능을 제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소멸기를 언급할 순 없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가능하던데요.”

초인 서열 1위 서원섭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초특급 몬스터의 가죽은 어지간한 병장기로는 상처도 입힐 수 없네. 상처를 입힌다 한들 죽음으로 몰고 가긴 더더욱 힘들지.”

“계속 썰다 보니까 죽던데요? 죽을 때까지 썰었다고 해야 하나···.”

“장난해!”

국회의원 정도균이 다시금 폭발했다. 유지훈에게 연달아 망신을 당하던 끝에 구실을 잡은 듯한 태도였다.

“저런 헛소리 따위 들을 가치도 없어요. 변종 몬스터인지 나타나면 여기 계신 초인들께서 처치하시면 돼요.”

정도균의 시선이 최금강과 권준성을 향했다.

“금강길드나 태광길드 같은 대형길드들은 핵심 자원을 국회나 정부 기관으로 보내는 것으로 합시다. 나랏일을 하는 중요한 인력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지 않겠소.”

정도균이 두 장관과 동료 의원을 보며 동의를 구했고,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유지훈이 아니었다.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래?”

“뭐! 지금 말 다 했어!”

급기야 정도균이 탁자를 내리쳤다.

순간 유지훈이 탁자 위를 달리더니 정도균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탁자는 그렇게 내리치는 게 아니야.”

싸늘한 일성을 던진 뒤 정도균의 머리를 탁자에 내리꽂았다.

쾅! 쾅! 쾅! 세 차례나.

정도균의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나왔다.

“이 정도는 내리쳐야지. 말 다 했냐고? 아니. 이제 할 거야. 당신 지역구가 어디야? 지역구 주민들이 당신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으으으···.”

“핵심 자원을 어디로 보내? 당신같이 고깃덩어리보다 못한 작자 몬스터 먹이로 던져줘야 할 판에 길드 핵심 자원을 어쩌자고?”

쾅!

유지훈이 다시금 정도균의 머리로 탁자를 찧었다.

“몬스터 싹 몰아다가 당신 지역구에 보내줄까? 당신이 보냈다고 하면서? 그래도 그딴 개소리 할 수 있겠어?”

국회의원 하병우와 국방부 장관 윤동훈이 뜯어말리려 했다.

“유지훈 씨 공무 중인 국회의원을 폭행한 건 중범죄입니다.”

유지훈이 피식 웃으며 탁자에서 내려왔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잡아가요. 잘 됐네. 누군 몬스터 상대하는 게 좋은 줄 아나. 조용한 데 들어가서 푹 쉬다 나오지. 뭐.”

“그, 그게 무슨···.”

“네 대 쥐어박았는데 며칠이나 있으려나? 어쨌든 나오면 바로 망명이나 신청해야겠어. 정치 권력의 희생양이니까 망명 되잖아.”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입니까? 각성자는 몬스터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윤동훈의 준엄한 훈계에 유지훈은 코웃음으로 반응했다.

“나 비각성자인데요? 그런 법적 의무 해당 사항 없어요.”

“그, 그게 무슨···?”

윤동훈이 머뭇거리자, 외교통상부 장관 정태성이 가세했다.

“국회의원을 폭행한 비각성자의 망명 신청을 어느 나라에서 받아준단 말입니까?”

장시간 활약상이 없던 강은영이 나설 차례였다.

“유지훈 씨가 원하는 나라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겁니다. 유지훈 씨는 단순한 비각성자가 아니라 귀환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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