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51화 (51/150)

첫 번째 미션 (2)

티타노 보아의 위용은 무시무시했다.

직경 2m 굵기에 길이 20m에 달하는 몸집은 그렇다 치더라도,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사방을 휘젓고 다녔다.

동방길드 헌터들의 대응이 마땅치 않았다.

동방길드엔 레벨 7 각성자가 없었다. 고레벨은 조대현 마스터 포함해서 레벨 6 각성자 여섯이 전부였다. 100명 가까운 헌터들이 동원됐지만, 공격다운 공격은 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티타노 보아의 인근 민가로 이동만 저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10여 명의 사상자를 내기까지 했다.

“흐음. 초특급이 저 정도라고? 레벨 8에 근접한 놈 같은데···.”

마철진이 침음을 흘렸다.

그는 몬스터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놈은 적어도 레벨 7은 아니었다. 레벨 8에 근접하는 놈이었다. 재앙급이라 할 만했다.

“뭐 하세요? 영감님. 빨리 해치우자고요. 죽고 다치는 사람들 계속 나오잖아요.”

유지훈이 보채자, 조대현이 나서 제지했다.

“경거망동은 삼가십시오. 비각성자가 함부로 나설 상황이 아닙니다. 초인님 앞에서 얼쩡대면 방해만 되니 멀찍이 비켜나세요.”

“얼쩡댈 만하니까 얼쩡대는 겁니다.”

그러는 사이 마철진이 몸을 날렸다. 티타노 보아의 주둥이 아래쪽에 자리 잡더니 양손을 힘차게 뻗었다. 특성 토네이도를 발동했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더니 서서히 티타노 보아를 들어 올렸다. 거대한 티타노 보아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캬악! 캬악!”

티타노 보아가 기괴한 소음과 함께 몸부림쳤다.

악착같이 버티려 했지만, 마철진의 토네이도를 감당하지 못하는 양상이었다. 어느덧 5m 높이까지 떠올랐다.

마철진의 토네이도엔 마나로 형성된 칼날들이 머금어져 있었다. 회오리치는 가운데 칼날이 몬스터의 육신을 난자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마나 칼날은 티타노 보아의 몸뚱이를 파고들었다. 핏방울이 분수처럼 사방으로 산개했다.

“와! 역시 마철님 초인님이야.”

“초인님의 토네이도는 명불허전이구나!”

티타노 보아의 격렬한 몸부림에도 마철진의 토네이도는 굳건했다. 좀처럼 회오리의 영역에서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메다꽂을 차례였다. 그런 다음에 동방길드 헌터들이 가세해 총공격을 퍼부으면 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터였다.

동방길드 헌터들이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티타노 보아가 추락할 장소로 공간을 좁혀 들어갔다.

마철진 초인이 한껏 들어 올린 양손을 내리치려는 찰나.

“캬악!”

티타노 보아가 괴성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정확하게는 뿜어냈다. 적확히 마철진을 겨냥하고.

굵직한 핏줄기가 마철진을 향해 날아왔다.

“혈독이에요! 피하세요!”

유지훈의 다급한 외침에 마철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임정명을 병문안했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검치호가 독을 뿜었다는. 혈독에 당해 중상을 입었다는 이야기였다.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가까스로 혈독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문제는 티타노 보아 또한 토네이도로부터 자유로워진 점이었다.

“캬악! 캬악! 캬악!”

괴성을 토해내며 사방으로 혈독을 뿜어댔다. 총공세를 준비 중이던 동방길드 헌터들에게로.

“아악!”

“으악!”

“티타노 보아한테 왜 독이 있는 거지?”

“아악!”

혈독에 맞아 녹아내리는 헌터들.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착지한 티타노 보아가 주위를 살피더니 시선을 고정했다. 마철진이 있는 방향이었다.

가장 강한 상대부터 제거하겠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마철진이 긴장한 눈빛으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놈이 움직이면 토네이도로 맞서겠다는 태세였다.

혈독의 두려움 때문에 선뜻 공격에 나서진 못했다. 티타노 보아 역시 토네이도의 위력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팽팽한 대치 국면이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단 한 사람 빼고.

“그럼 경거망동 들어갑니다!”

유지훈이 몸을 날렸다.

날렵하게 티타노 보아 뒤쪽으로 이동했다.

“미, 미친···. 죽고 싶습니까? 당장 돌아오지 못해요!”

조대현이 소리쳤지만, 마철진은 가만히 손을 들어 만류했다.

유지훈이 티타노 보아의 몸뚱이에 올라탔다. 납작 달라붙었다. 놈이 성가신 듯 몸뚱이를 흔들어댔지만, 유지훈은 요지부동이었다.

“굳히기 한판 들어갑니다!”

소멸기를 발동할 시간이었다.

유지훈에게 티타노 보아 같은 몬스터는 상대하기 쉬운 유형이었다. 팔다리가 없어 공격 방식이 단조롭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접촉할 공간도 넓었다. 적당한 기회에 올라타 밀착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달라붙어 있으면 주둥이로 공격할 수도 없으니.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느낌. 7초. 소멸이 완성됐다.

7초면 레벨 7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재앙급이라 할 만했다.

어쨌거나 능력을 잃은 티타노 보아는 덩치만 큰 파충류에 불과했다.

“이제 썰어볼까.”

유지훈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티타노 보아의 몸뚱이에 꽂아 넣고 썰어대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걱!

놈의 몸부림이 거칠어졌다. 필사적으로 유지훈을 떨쳐 내려 했다. 유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썰어댔다.

열심히 썰어댔지만, 가죽이 두꺼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역시 뱃가죽을 썰어야겠지.”

빙글 회전해 뱃가죽 쪽에 매달렸다.

단검을 꽂아 넣었다. 기세를 몰아 죽 타고 내려왔다.

좌악! 티타노 보아의 뱃가죽이 길게 갈라졌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유지훈은 놈의 뱃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시금 썰어대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걱! 가죽을 완전히 뚫고 내장까지 썰었다.

티타노 보아의 몸부림이 극렬해졌다. 마지막 몸부림일 터였다.

유지훈이 마지못한 척 튕겨 내려왔다. 얼굴을 덮은 피를 스윽 닦았다. 마철진에게 손짓을 보냈다.

“영감님이 마무리하시죠.”

마철진의 끝내기 토네이도가 작렬한 시간이었다.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 티타노 보아를 덮쳤다.

능력을 잃은 티타노 보아는 마철진의 토네이도에 머금어진 마나 칼날을 감당할 수 없었다.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채 공중으로 붕 떠오른 놈의 몸뚱이가 쉴 새 없이 난자당했다. 쿵! 바닥에 내리꽂힌 뒤 잠깐의 꿈틀거림이 반응의 전부였다. 이내 축 처져 생명을 다했다.

유지훈이 다가가 목을 좌악 가르고는 시뻘건 덩어리 하나를 꺼냈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이놈한테도 여지없이 독낭이 있군.”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챙겨 넣은 뒤 마철진에게 향했다.

“8대 2?”

“7대 3!”

“제가 7입니다.”

“콜!”

처치한 몬스터의 부산물도 공정하게 나눠야 했다.

물론 유지훈이 거의 다했으니, 유지훈의 몫이 큰 게 당연했다. 마철진도 그 정도는 인정하는 대인배였다.

어쨌거나 첫 번째 임무에서 70억 원에 가까운 수입을 영훈길드에 가져다준 유지훈이었다.

당황한 건 동방길드 헌터들이었다. 특히 마스터 조대현.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강은영에게 물었다.

“저 사람 대체 누굽니까?”

“아까 들었잖아요. 영훈길드 오너 유지훈이라고.”

“비각성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순간포착 우째 이런 일이에 제보하세요.”

조대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강은영에게 굽신거렸다.

“어떻게 동방길드도 분배 좀 받을 수 없겠습니까? 제법 많은 인원이 동원됐는데요.”

“출동비는 본부 대외협력팀에 요청하세요. 그쪽 경비로 처리하게 돼 있으니까요.”

“그게···. 저희 쪽에 사상자가 많이 발생해서요. 강 팀장님께서 영훈길드 쪽에 말씀 좀 잘해주시면···.”

“저 영훈길드 마스터예요. 그리고 팀장 아니라 국장이라고요.”

마침내 마스터직을 수락하기로 한 강은영이었다.

***

재앙급에 준하는 몬스터를 처치했지만, 마철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잔뜩 찌푸린 채 티타노 보아의 사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넌 뭔가 아는 눈치던데.”

“변종 몬스터예요.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지난번에 임 영감님 다치게 한 검치호랑 비슷한 케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험이라고? 대체 어떤 놈이!”

“신화 썩을 놈들이요.”

마철진이 눈을 부릅떴다.

그는 신화길드와 협력 관계였다. 변종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놈들이랑 함께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미는 듯했다.

유지훈이 한 마디 더 보탰다.

“그리고 쪽발이 개새끼들.”

“뭐! 쪽발이 새끼들까지? 신화 놈들이 쪽발이랑 손잡고 변종 몬스터를 만들었다는 말이냐?”

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종 몬스터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같고요.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약을 만든 것 같습니다.”

“약이라고?”

마철진이 눈을 깜빡였다. 뭔가 생각해내려는 모습이었다.

“혹시···?”

“맞을 거예요. 말씀하시려는 거. 지난번에 영감님 두들겨 팼던 그 쪽발이 놈 그 약에 의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두들겨 맞긴 누가 두들겨 맞아!”

“아님 말고요.”

“크흠. 그렇다면 신화 놈들이랑 손잡은 쪽발이가 야마가토산업?”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철진이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 전에 신화 둘째 놈이 씨부리던 게 뭔 말인지 알 것 같군. 야마가토산업이랑 뭔가를 도모했던 거야. 그나마 그놈이 나서서 단절한다고 하긴 했으니···.”

그때 SSG의 미중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완전한 단절은 아니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고 있습니다.”

“완전한 단절은 아니라니. 그런데 그쪽은 누구신가? 이 업계에선 처음 보는 분 같은데. 아까 영훈길드 마스터 문제도 해결해주고.”

“처음 뵙겠습니다. 마철진 초인님. 저는 그저 자그맣게 나랏일을 하는 사람 정도라고 여겨주시면 됩니다.”

유지훈이 살짝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변태 양반께선 언제 여기까지 오셨대요? 아까 보니까 길드 사무실에 남아 계실 것 같던데.”

“하하하. 영훈길드가 첫 임무에 나서는데, 제가 당연히 따라와서 응원해드려야죠. 그런데 자꾸 변태라 그러시면 곤란···.”

“그럼 아니에요?”

강은영이 매섭게 쏘아붙였다.

미중년이 난처한 눈빛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딱히 변태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요···.”

“여자가 샤워하는 거 몰래 훔쳐보는 게 변태 짓 아니면 뭐예요?”

“샤워하는 건 못 봤는데···.”

“샤워하고 나와서 알몸으로 있는 건 봤잖아요!”

이쯤 되니 더 놀란 건 유지훈이었다.

“우리 마스터 알몸을 봤다고? 나도 아직 못 봤는데···.”

“유지훈 씨가 내 알몸을 왜 봐요!”

“그러니까.”

마철진은 분노했다.

“이 양반 멀쩡하게 생겨서 못 쓰겠구먼. 내 당장···.”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강 팀장님을 보호하려고···.”

“보호하려고 여인네 알몸을 봤다고! 그게 말이야 방귀야!”

“하아···. 정말 그런 게 아닌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펄펄 뛰는 마철진 앞에 미중년이 사색이 됐다. 어찌 대응해야 할지 좀처럼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결국엔 찾아냈다.

“아! 최금강 마스터님께 여쭤보시면 될 겁니다. 최 마스터님도 같이 계셨거든요.”

“뭐! 최금강 선배도? 이 선배 안 되겠네. 근엄한 척은 혼자 다 하고 다니면서 여인네 알몸이나 훔쳐보고.”

“하아. 왜 말이 그렇게 되지···.”

변종 몬스터를 논하던 와중에 강은영의 알몸이 정작 중요한 주제를 집어삼킨 국면이 됐다.

누군가 나서서 정리해야 했다.

물론 유지훈의 몫이었다.

“자, 자. 지금 우리 마스터 알몸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변종 몬스터가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고 다닐 형편이라고요.”

“맞습니다. 대응책이 시급합니다.”

“험험. 그건 그렇지.”

미중년이 잽싸게 동조했고, 마철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스터 알몸 이야기는 따로 시간 내서 다시 하기로 하고요.”

“무슨 시간을 내서 다시 한다는 거예요!”

강은영이 발끈했다.

“아직 안 끝난 거 아니었나? 매듭은 지어야지. 변태 양반이랑.”

“시끄러워요! 변종 몬스터 이야기나 해요!”

그제야 확실히 주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지훈은 그간 파악한 사실을 들려줬고, 미중년도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풀어놓았다.

마철진이 장탄식을 쏟아냈다.

“아···. 부끄럽구나. 이런 줄도 모르고 신화 놈들이랑 협력한답시고 돌아다닌 내가. 고개도 못 들 지경이다.”

“영감님 잘못이 뭐 있나요. 이용당한 것도 아닐 텐데요.”

“그래도 내가 협력 사례비로 그놈들한테 받은 돈만 수십억이다.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 돈이었어.”

“그럼 기부하시든가요.”

“악취가 진동하는 돈이라니까···.”

교묘하게 기부를 피해가던 마철진이 벌떡 일어섰다.

“당장 가자.”

“어디로요?”

“신화 둘째 놈 이자걸이한테 가야지. 현시점에선 그놈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것 아니겠냐. 가서 확실히 끝장을 봐야지.”

마철진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한편으로 절묘하게 기부 이야기를 잠재운 수완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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