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49화 (49/150)

길드를 출범하다

“신화 쪽에선 아직 아무 소식 없는가?”

야마가토산업의 양대 주인 중 하나인 야마구치 가문의 수장 야마구치 신타로가 침중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야마구치 가문 이사회 자리였다. 가토 가문에선 가토 노부유키가 대표로 참석했고, 외무대신 이노우에 후미오가 배석했다.

“아직 공식적인 연락은 없었습니다.”

야마구치 구니오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대답했다.

구니오는 야마구치 가문의 지낭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신화그룹과의 비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기도 했다.

신화그룹 사태 둘러싼 문제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태도는 당당했다. 수습책을 가진 듯한 모습이었다.

“공식적인 연락이 없었으면 비공식적으로는 소식이 있었다는 건가?”

“이자성과 통화가 되긴 했습니다. 현재 그룹 내에서 아무 직함도 없는 인물이긴 합니다. 아. 그룹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뭐라던가?”

“스스로를 거세당한 신세라고 했습니다.”

“언사가 거친 친구로군. 함부로 써선 안 되는 표현인데.”

신타로가 혀를 끌끌 찬 뒤 구니오를 바라봤다. 계속 말하라는 손짓을 했다.

“신화의 모든 게 차남 이자걸에게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야마가토제약과 협업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이자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쓸모없어진 인사로군. 그래서 어쩌라던가?”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으니 이자걸과 대화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야마가토산업과 신화그룹의 비밀 프로젝트, 몬스터 대상 실험을 통한 약품 개발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야마가토산업은 천문학적인 연구비와 야마가토제약의 기술력을 프로젝트에 쏟아부었다. 현재로선 물거품이 될 처지였다.

연구소는 폭발로 사라졌고, 결과물의 행방은 묘연했다.

물론 이자걸의 손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자걸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신화 쪽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려는 상황이군. 그런데 어찌 자네는 그리 태연할 수 있는가?”

질문하는 신타로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어조는 차분했다. 구니오에 대한 신뢰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구니오가 여유를 담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프로젝트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물이 이자걸의 손에 있고, 그걸 빌미로 거래를 걸어오는 상황입니다. 대응하기에 따라 더 좋은 결과를 손에 넣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더 좋은 결과라?”

신타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구니오의 시선이 외무대신 이노우에 후미오를 향했다.

“지난번 회의 때 외무대신께 부탁드렸던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게 썩 순조롭진 않습니다.”

이노우에 후미오가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양국 외무 회담은 제안을 넣어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는데, 각성자 회합 부분이 난관에 부딪힌 상황입니다.”

“신화 문제, 정확하게는 이자걸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자걸이 신화와 본국 각성자의 부적절한 동행에 대해 언급한 이후 한국 내 여론이 악화됐습니다. 본국 각성자의 입국을 허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구니오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문제는 잠시 후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구니오가 가토 노부유키를 바라봤다.

“마사오 회장님께서 한국의 실력자에게 요청하신다던 부분은 어찌 됐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부유키 대표님.”

“안 그래도 가주께서 그 이야기를 꼭 전하라고 하셨네. 박 여사에게 언질을 넣었고, 긍정적인 회신이 왔다고 하셨네. 다만 시기적으로 조금 늦췄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시더군.”

“아무래도 지금은 민감하다는 의미겠군요.”

“그렇겠지. 본국 각성자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으니. 시선을 돌릴 사건을 마련해 감정을 추스른 뒤 진행하면 어떠냐는 걸세.”

야마구치 구니오가 빙긋 웃었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입가에 번지는 모습이었다.

야마구치 가문의 히토시 이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듣자 하니 난처한 상황인데, 자네는 어찌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 자네 책임 아래 벌어진 난관일세.”

“옳으신 말씀입니다. 숙부님. 하지만 난관이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짜릿한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구니오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계획을 밝혔다.

“이번 신화 사태에 대해 투트랙으로 대응할까 합니다.”

“투트랙이라고?”

“그렇습니다. 두 갈래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진작부터 준비해왔던 건데 상황에 잘 맞을 것 같습니다.”

구니오가 신타로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주님께는 말씀드린 적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말해보게.”

“실험 대상이었던 몬스터들 가운데 유체 단계의 몬스터들을 폐기하지 않고 별도로 보호하기로 한 점 말입니다.”

“기억나는군. 성장 과정을 추적해 새로운 실험에 활용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새로운 실험 외에 또 한가지 용도로 보호해왔습니다.”

신타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구니오는 가문 이사진을 둘러본 뒤 설명을 계속했다.

“몬스터 자체의 가치에 주목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의미는?”

“몬스터를 인공으로 양육해 활용 가치를 파악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를테면 한국 영토에 풀어놓아 혼란을 초래한다든지 하는···.”

“호오···.”

이사진들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가토 노부유키가 손을 들더니 질문했다.

“신화 쪽은 함께 진행하지 않은 건가? 함께했다면 이자걸이라는 놈이 성과를 독차지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신화와는 철저하게 별개의 사안입니다. 야마가토제약의 파견 인력 중 극히 일부에게만 공유돼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몇 마리 정도 되는가?”

“서해안 인근 무인도 하나를 확보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초기 단계엔 서른 개체였는데, 현재 살아남아 성체가 된 건 열두 개체입니다.”

구니오가 잠시 뭔가를 계산하더니 부연해 설명했다.

“레벨 5가 다섯 개체, 레벨 6이 세 개체, 레벨 7이 네 개체입니다. 레벨 5 이하의 개체들은 대다수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됐습니다.”

“기껏해야 레벨 7이면 큰 혼란까지 초래하긴 무리 아닌가? 한국 헌터들은 역량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네.”

구니오가 오른손 검지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실험으로 탄생한 변종 몬스터들입니다. 기존 레벨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독을 지닌 놈들이니까요.”

“혹시···?”

외무대신 이노우에 후미오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얼마 전 한국에 검치호가 출현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실험체입니다. 레벨 7로 분류됐지만,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초인이 퇴치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 그 검치호를 한국 땅에 풀어놓은 게 우리 야마가토···?”

“그렇지 않습니다. 놈은 보호 구역을 탈출했습니다. 강철로 된 우리를 혈독으로 녹인 뒤 바다를 헤엄쳐 건너가기까지 했습니다.”

“허허. 이것 참···.”

이사진들이 혀를 내둘렀다.

황당무계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인류의 적인 몬스터를 직접 길러 이웃 국가를 공략하는 데 활용한다니.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효과는 기대됐다.

야마구치 구니오의 계획이 이어졌다.

“이번에 몇 마리 풀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종 몬스터의 등장으로 엄청난 혼란이 빚어지겠군.”

“자연스럽게 외무 회담이 성사될 것입니다. 화해와 공조를 기치로 내건 각성자 회합은 물론이고요.”

“각성자 회합은 한국에서 먼저 요청해올 수도 있겠군.”

이사진들 사이에서 너털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구니오 또한 웃으면서 계획을 매듭지었다.

“외무대신께선 계속 외무 회담을 추진해주십시오. 각성자 회합의 포함도 강조하시면서요. 저자세로 나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각성자 회합도 하나의 안건이라고 알리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노부유키 대표님도 박 여사 쪽으로 계속 압력을 넣어주십시오. 마찬가지입니다. 부탁이 아니라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알겠네. 그리 하겠네.”

야마구치 가문의 수장 신타로가 정리 발언을 했다.

“우리 야마구치 가문은 한국으로 보낼 각성자 선발에 힘을 쏟으면 되겠군. 이자걸을 처단해 결과물을 확보하고, 한국의 귀환자도 손에 넣고, 야마가토산업을 건드린 놈들을 처절하게 응징하기 위해서 말이야.”

유쾌하게 웃던 신타로가 구니오를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구니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물론입니다.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이 말했습니다. 계획은 성공의 아버지라고요.”

“실패는 성공의 아버지 아니던가?”

“하하하.”

“어머니였던가?”

“하하하.”

구니오를 향한 찬사와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 야마구치 이사회였지만, 이들은 중대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었다.

한국에 이들의 계략을 진작에 꿰뚫어 본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을.

유지훈은 변종 몬스터의 출현과 이를 악용하려는 야마가토산업의 음모를 예견했다. ‘쪽발이 개새끼’라고 부르짖으며 대비에 들어갔다.

야마구치 가문의 누구도 이를 알지 못했다. 개새끼가 된 줄도 모른 채 그저 좋다고 웃어댈 뿐이었다.

***

마침내 유지훈이 길드를 설립하는 날이 찾아왔다.

엄덕대와 박형식을 비롯한 길드 구성원들을 아침부터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와중에 궁금한 건 못 참는 구성원도 있었다. 볼륨의 발육이 남다른 강민정이었다.

왠지 유지훈은 강민정의 볼륨을 부담스러워했다.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럴수록 강민정은 들이댔다.

“오빠. 우리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뭘?”

“우리 아직 길드 자격 요건도 못 갖췄잖아요. 마스터 될 분도···.”

“다 계획이 있으니까 허튼소리 말고 준비나 해. 그런데 너는 왜 자꾸 오빠라고 그러냐?”

“오빠가 마스터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무한테나 오빠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저씨?”

“내가 아저씨라 불리긴 좀···. 차라리 형이라 해라.”

“네. 형.”

엄덕대에 의해 스카우트되더니 하는 짓도 딱 엄덕대였다.

길드 구성원은 유지훈까지 총 아홉 명이었다. 곧 합류할 길드 마스터 포함하면 열 명. 차츰차츰 늘려갈 계획이었다.

마스터를 제외한 구성원들 모두 레벨 2 이하 저레벨 각성자들이었다. 유지훈은 이들의 역량을 지옥 훈련으로 끌어올릴 복안이었다.

레벨 2 각성자가 레벨 5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가능하냐고? 당장 비각성자 유지훈이 레벨 7을 제압하는 능력자다. 소멸기와 재생 능력을 보유한 점이 함정이라면 함정이지만.

“내빈들 입장하십니다.”

강은영을 시작으로 최금강 마철진 임정명 등 기라성 같은 각성자들이 유지훈의 길드 출범을 축하하러 찾아왔다.

물론 마철진은 감시하러 온 것이었다. 혹시 유지연이 마스터가 되진 않을지. 임정명은 친구 따라 강남 왔다.

최금강은 금강길드 정예 요원들과 함께 왔다. 임정명이 뜨니 협력 관계인 태광길드의 마스터와 간부들도 동행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설립하는 길드에 초인 둘에 양대 길드 마스터까지 집결하니, 놀란 건 매스컴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취재 카메라가 열 대나 몰려들었다.

그럭저럭 널찍한 정원이 내빈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성황리에 길드 출범식이 거행됐다.

유지훈이 단상에 섰다.

“작은 길드에서 잡무 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던 제가 길드를 설립하게 돼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내빈 여러분께도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꾸벅 인사한 뒤 길드 이름부터 소개했다.

“이번에 출범하게 된 길드의 이름은 영훈길드입니다.”

맨 앞줄 두 초인과 최금강, 각성자계 거인들 사이에 감격스러워하며 앉아있던 강은영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왜 영훈길드인가요?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잠시 후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 길드 마스터를 공개할 시간이었다.

“제가 영훈길드의 오너지만, 각성자는 아닙니다. 길드 마스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모시게 됐습니다. 영훈길드를 대한민국 최고 길드로 이끌어갈 훌륭한 분입니다.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지훈이 잠시 뜸을 들였다.

내빈들이 술렁였다. 그러는 와중에 길드 구성원 대다수와 내빈 상당수의 시선이 집중된 곳이 있었다. 한 인물이었다.

그 인물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목을 쑥 내밀었다.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봤다.

“왜 다들 나를 보고 그래요? 나 아니에요!”

유지훈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왜 영훈길드겠어. 강은영의 영, 유지훈의 훈. 그래서 영.훈.길드! 빨리 나와. 강은영 마스터님.”

“네? 아닌데···.”

“와~! 빨리 나갑시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플래시 세례도 몰려들었다.

강은영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놔. 미쳐버리겠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