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의 창조
강은영이 향한 곳은 충북 제천 인근 백곡산 자락이었다. 산중턱에 이르는 위치에 숨겨지듯 지어진 고급 주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별장이야. 요새야. 하여간 있는 것들은 별짓을 다 한다니까.”
익명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된 이자웅의 은신처였다.
각성자수사청이 길드협회와 군경 협조를 통해 200여 명의 체포팀을 꾸려 출동한 상황이었다.
신화길드 간부들이 함께 숨어있다는 제보를 받았기에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야 했다. 레벨 7 각성자 셋을 포함해 레벨 5 이상 각성자가 여덟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체포팀에도 레벨 5 이상 각성자가 스물 이상 포함됐기에 이자웅 일당의 제압은 가능할 터였다. 다만 만만치 않은 저항이 예상됐기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었다.
“강은영 팀장님은 외부에서 지원해주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탈출하는 자들을 제압해주십시오.”
체포팀 책임자의 당부에 강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보겠습니다.”
강은영도 나름대로 레벨 5 각성자. 현장을 뛰지 않은 지 제법 됐지만, 단련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나락으로 몰아넣은 신화길드를 상대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럼 진입 시작하겠습니다.”
체포팀 책임자의 수신호를 시작으로 일사불란한 체포 작전이 시작됐다. 70여 명이 가옥으로 치고 들어가고, 나머지는 주위를 물샐 틈 없이 봉쇄하는 방식이었다.
이윽고 진입이 시작됐다. 가옥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체포팀 인력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제압당한 신화길드 간부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여덟 명. 알려진 간부 전원이 체포됐다.
다만 책임자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자웅은요? 이자웅은 체포했나요?”
강은영의 질문에 책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자웅 마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길드 직원들만 남겨두고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강은영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덜컥 유지훈이 걱정됐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체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왔어요. 그런데 이자웅은 없어요. 신화길드 간부들만 체포했어요. 혹시 이자웅 그쪽으로 가지 않았어요?”
[아니. 이자성이라는 작자만 왔다 갔는데?]
“이자성이면···. 신화그룹 부회장 말인가요?”
[어. 와서 거래 어쩌고 이상한 소리 하길래 혼쭐을 내서 쫓아냈어. 이자웅이 나한테 온대?]
“그런 건 아닌데요.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요.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세요. 막다른 골목에 몰린 놈이에요.”
[바이에른 뮌헨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시끄러워요!”
체포팀 책임자가 신화길드 직원들을 상대로 이자웅의 행방을 캐물었다. 다들 입을 굳게 다물었다. 모르는 눈치이기도 했다.
강은영을 비롯한 간부급 요원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이자웅의 행방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보려 했다.
여의치 않았다. 이자웅의 행방은 묘연했다.
강은영은 혹시 싶어 변태 미중년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다.
[네. 강 팀장님. 오늘은 결례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닥치시고요. 이자웅 행방에 대해 아는 것 없으세요? 제보받은 장소로 체포하러 왔는데, 이자웅만 빠져나가고 없어서요.”
[그래요? 그자의 행방에 대해 따로 파악된 건 없는데···. 신화그룹 쪽에서 이자웅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자웅을 포기한다고요?”
[확실한 건 아닌데요. 이자웅에게 법적 처벌을 받게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꼬리 자르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군요.]
강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꼬리 자르기의 대상이 된 이자웅이 향할 곳은 어딜까?
유지훈?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지만,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바이에른 뮌헨 걱정은 하는 게 아니랬으니.
그런데 찝찝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함. 왠지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느낌이었다.
***
이자웅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룹 전체 임원 회의의 결과를 전달받은 이후였다. 비밀리에 진행된 회의였지만, 이자웅의 측근 임원이 결과를 귀띔해줬다.
“나를 희생양으로 삼겠다고? 어림없는 소리지. 감히 나를! 나는 신화 가문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야. 주인이 돼야 하는 인물이라고!”
이자웅은 가문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각성자였다. 맏형 이자성과 둘째형 이자걸은 각성조차 하지 못했다. 각성이 권력인 세상에서 그는 형들보다 월등한 존재라고 자부했다.
그런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그룹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용납할 수 없었다. 몸소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정 문제가 되면 하와이에서 몇 년 쉬다 오도록 해주마. 너도 알지 않니. 개돼지들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란 걸. 몇 년 머리 식히고 들어오면 조용해져 있을 거다.”
조용해질 때까지 은거해 있으라는 이자성의 당부를 무시했다.
이자웅에겐 나름의 해결책이 있었다.
“나는 희생양일 수 없지. 더 좋은 희생양이 있는데.”
은거지를 빠져나와 더 좋은 희생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충남 태안반도 끝자락 외진 곳에 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원래 학교였지만, 격변의 시대 이후 학생들이 떠나 폐교가 된 곳이었다.
겉보기엔 폐건물이었지만, 내부는 달랐다. 현대식으로 개조돼 있었고, 지하엔 벙커까지 마련돼 있었다.
벙커는 비밀 연구소이기도 했다. 야마가토산업의 지원을 받아 실험 및 약품 개발이 진행되는. 신화그룹 차남 이자걸에 의해.
“이자걸 약쟁이 새끼 연구소를 잘도 꾸며놨군. 성과도 없이 돈만 축내면서. 이래놓고 나를 희생양으로 삼겠다고?”
건물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흠칫 놀라 이자웅을 쳐다봤다. 그들 또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진 않았다.
이자웅에 의해 신화그룹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앞을 막아설 순 없었다. 어쨌거나 이자웅은 가문의 직계인 데다가, 높은 레벨의 각성자이기까지 했다.
“너희들한텐 볼일 없으니 비키기나 해라. 머지않아 너희들은 내 밑에서 일하게 될 거야. 미리 잘 보여두란 말이다.”
이자웅은 익숙하게 지하 벙커 연구소로 향했다.
철저하게 통제돼야 할 연구소였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이자웅은 여차하면 박살 낼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
“쓸데없이 힘 안 써도 되는 상황이군. 문도 나를 돕는 건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 내에선 이자걸이 연구원들과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이! 이자걸. 나 왔다.”
호방한 외침에 이자걸의 시선이 이자웅을 향했다.
“왔냐? 예상보다 늦었구나.”
빙긋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연구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업무는 여기까지 해야겠군요. 다들 퇴근하세요. 나가는 길에 직원들에게도 모두 퇴근하라고 말씀해 주시고요.”
“괜찮겠습니까? 대표님.”
연구원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형제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자걸은 편안한 미소와 함께 연구원들에게 손짓했다.
“괜찮습니다. 모처럼 동생이 와서 회포를 푸는 자리인데요. 걱정하지 마시고 가서들 쉬세요.”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나섰다.
이자웅은 한 차례 콧방귀를 뀐 뒤 연구소 문을 걸어 잠갔다.
“회포? 지랄하고 있네. 우리가 회포나 풀 정도로 다정한 사이냐?”
코웃음 섞인 이자웅의 목소리는 사뭇 오만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형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이자걸은 은은한 미소로 아우를 대했다.
“자웅아. 여긴 얼마 만이지? 2년쯤 됐나? 오랜만에 와서 왜 이렇게 뿔따구가 나 있는 거냐?”
평소 이자걸의 태도와 확연히 달랐다. 이자웅을 좀처럼 하대하지 않던 이자걸이었다. 공석에선 깍듯이 존댓말을 썼다.
오히려 이자웅이 이자걸을 함부로 대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자웅을 형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자웅은 평소와 다른 형의 태도를 인지하지 못했다.
“뿔따구? 그걸 말이라고 해?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거 아니야. 약쟁이 새끼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나. 그래도 형한테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 않겠니?”
“흥! 각성도 못 한 주제에 형은 무슨.”
이자웅이 냉소를 날렸다.
“하긴 뭐, 네가 나를 대신해 줘야 하니 그 정도는 봐줄게.”
“뭐를 대신해 줘야 한다는 거지?”
“뭐긴 뭐야. 나 대신 오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거지. 따지고 보면 모든 문제는 이 연구소에서 비롯된 거잖아?”
이자걸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탁자 위에 놓인 병에서 물 한 잔을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모든 문제라···.”
“그래. 모든 문제. 약쟁이 네가 약이나 주물럭거리면서 만든 문제들. 그룹에선 나한테 뒤집어씌울 생각인가 본데, 그렇게는 안 되겠거든.”
“그렇게는 안 되겠다···?”
“그래. 안 돼. 책임을 져도 네가 져야지. 그러니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간다는 유서 한 장 남겨주고. 아니지. 굳이 남길 필요 없지. 내가 쓰면 되니까.”
이자웅이 탁자 위에 놓인 노트북 PC를 가리켰다.
이자걸은 난처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는 나 또한 곤란하겠는데.”
“하하하. 곤란하다고? 내가 죽는다면 너는 그냥 죽는 거야. 여기 너 도와줄 사람도 없어.”
“네가 직접 나를 죽이겠다고? 우린 형제 아니냐. 어떻게 그런···.”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자는 거야. 모든 문제는 여기 연구소에서, 너로 인해 비롯된 것이니까.”
“흐음···.”
이자걸이 씁쓸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형제를 죽이겠다니 천륜을 저버리겠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천륜? 엉뚱한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는 건 뭐라고 설명할래?”
“엉뚱한 사람? 다 너 스스로 한 행위들을 책임지는 것 아니겠니?”
“시끄럽고. 죽을 준비나 해. 각성이 권력인 세상이야. 신화를 위해서라도 네가 나를 대신해서 다 떠안고 가는 게 맞아.”
이자웅이 목을 우두둑 꺾더니 양손을 들어 올렸다. 손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화염을 만들어냈다.
“고통이 그리 길진 않을 거야. 내 특성인 파이어볼은 일격에 태워버리는 효능을 지녔거든.”
이자웅이 천천히 이자걸에게 다가갔다.
이자걸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사뭇 슬픈 눈빛이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은 바뀌어 있었다. 눈동자가 사라진 핏빛이었다. 몸도 서서히 부풀어 오르더니 두 배 가까이 커졌다.
“뭐, 뭐야!”
이자웅이 움찔하는 사이, 이자걸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불그죽죽하게 변한 손으로 이자웅의 목을 움켜쥐었다.
“아우야. 각성이 권력이라고 했니? 그런 권력은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란다.”
지옥에서나 들려올 법한 소름 끼치는 음성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자걸의 손에 기괴한 힘줄이 돋아나 꿈틀거렸다. 꿈틀거림은 고스란히 이자웅의 목을 향했다.
콰드득! 콰직!
이자웅의 목이 그대로 뽑혀 몸에서 분리됐다.
불신이 사라지지 않은 눈빛. 목 없는 육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이내 움직임은 사그라들었다. 이자웅의 영혼이 소멸한 순간이었다.
이자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자웅의 목을 내팽개쳤다.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했니? 그래도 우린 형제인데.”
쇠를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음성의 탄식. 한층 소름 끼쳤다.
괴생명체 모습의 이자걸이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곳곳을 살폈다. 뭔가를 점검하는 모습이었다.
한 바퀴 돌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의자에 앉았다. 평소엔 파묻힐 정도로 큰 의자였지만, 지금은 엉덩이만 겨우 걸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의자가 돼 있었다.
이윽고 이자걸이 의자에 파묻혔다. 원래 눈빛을 되찾았고, 몸 크기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약효는 10분 남짓이군. 30분 정도까지 늘릴 수 있어야겠어.”
이자걸이 느릿한 걸음으로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처참한 이자웅의 시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하 벙커를 벗어나 건물 내부를 간단히 둘러본 뒤 빠른 걸음으로 폐교를 벗어났다. 50m쯤 떨어진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뒤를 돌아봤다.
“자웅아. 네가 다 안고 가라. 야마가토산업이든, 박 여사든, 그동안 신화가 저지른 모든 악행도. 그리고 지옥에 가거든 꼭 지켜봐라. 네 덕분에 우리 신화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콰콰쾅!
이자웅을 향한 작별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들렸다. 휘청할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불길이 치솟았다.
비밀 연구소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신화 이름으로 자행되던 위험한 실험과 연구가 자취를 감추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자웅과 함께.
이자걸의 손에 쥐어진 USB 메모리 하나만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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