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44화 (44/150)

척결의 시간 (3)

오는 동안 유지훈은 블루 바이퍼의 똘마니들과 몹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적진의 상세한 파악이었다.

족치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이미 군기가 빡 잡힌 똘마니들은 운만 띄우면 알아서 척척 풀어 놓았다.

“신화길드 쪽은 다섯 명이 다입니다.”

“장 이사라는 놈 위로는 없었냐? 나중에라도 안 온대?”

“그런 말은 못 들었습니다. 저희 보스께서 신화길드 마스터 얼굴 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장 이사가 꿈도 꾸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도 보고 싶었는데···.”

“매드 스콜피온 조직원은 오십 명 정도입니다.”

“거기서 제일 센 놈이 누구냐?”

“원래 저희 보스인데, 안 계시니 매드 스콜피온일 겁니다. 레벨 7 각성자로 특성은 강화 계열···.”

“그런데 빌런 조직은 하나같이 두목만 레벨이 높은 거냐?”

이참에 평소 궁금하던 것도 물었다.

그동안 접한 빌런 조직들은 대개 고레벨 두목과 아이들이었다. 두목은 레벨 6, 7에 달했지만, 나머지 조직원들은 대부분 보잘것없었다.

“그분들이 기존 폭력배 조직을 차지해서입니다. 기초부터 조직을 다진 게 아니라, 원래 보스를 처치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각성자들이 조폭 세계를 장악한 셈이구나?”

“바로 그겁니다. 조폭 중에도 각성자가 있긴 하지만, 높은 레벨은 드물어서요. 나쁜 마음 먹은 고레벨 각성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죠.”

“길드 헌터 출신 중에도 빌런 조직 보스 여럿 있습니다. 매드 스콜피온도 화양길드인가에서 간부로 계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왜 그놈은 빌런이 된 거야?”

“연봉이 짰던 모양이죠. 빌런 조직 보스 돼서 약탈 다니면 수입은 괜찮습니다. 위험하게 몬스터 잡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유익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입력해뒀다.

이를 바탕으로 계획도 세웠다. 사실 계획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가장 센 놈부터 조지고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장중호와 매드 스콜피온을 확인한 뒤, 매드 스콜피온부터 제압. 이후 조무래기들을 적당히 손봐주고 나서 장중호를 손에 넣으면 끝이었다.

계획대로 매드 스콜피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오른손엔 단검, 왼손엔 소멸기를 장착한 채였다.

매드 스콜피온 고창석이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네가 어글리 썬더를 보냈다는 놈이냐? 좋다. 마음껏 들어와라.”

고창석의 전신이 금속성을 띠기 시작했다.

강화 계열 특성의 발동이었다. 온몸이 바위처럼 단단해지는, 무림으로 치면 금강불괴였다.

쩡! 쩡! 쩡!

당연히 썰리지 않았다.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심지어 세 번째 칼질 만에 단검이 부러지기까지 했다.

“제법 비싼 녀석인데···.”

고창석은 유지훈의 칼질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오는 족족 맞아주겠다는 자세였다. 역시나 단검은 부러졌다.

유지훈이 멈칫하는 순간, 고창석이 유지훈을 덥석 끌어안았다. 베어 허그 기술로 허리를 꺾으려 들었다.

“멍청한 놈. 이렇게 쉽게 붙들려주다니. 허리를 분질러주마.”

고창석의 강철 같은 양팔에 힘이 빡 들어갔다.

유지훈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4, 5초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붙잡아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지.’

유지훈은 고창석의 특성과 전투 방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신 강화 특성을 활용한 육박전. 공격을 당해주면서 그대로 맞받아치는 맞불 작전이 고창석의 전매특허였다.

무림으로 치면 절세의 외공 고수가 박투로 승부를 보는 케이스였다. 근접전에선 최강자라 할 만한.

다만 이번엔 상대를 잘못 만났다. 심지어 소멸기를 작렬할 기회까지 고스란히 안겨준 격이니.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느낌 4초. 소멸이 완성됐다.

‘레벨 7 치곤 약소하군.’

고창석의 입가엔 여전히 비릿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팔에 쏟아붓는 힘도 점점 거칠어졌다.

소용없는 헛심이었다. 이미 강화 특성이 사라진 다음이니. 마나 또한 소멸해 근력이 일반인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했다.

일단 머리부터 한 대 가볍게 내리쳤다.

빠악!

고창석이 휘청했다. 자연스럽게 팔의 힘도 풀렸다.

유지훈은 가뿐하게 밀쳐 빠져나온 뒤 슬쩍 허리를 돌렸다.

“미련하게 힘만 세 가지고···. 미친 전갈이 아니라 미친 곰이냐?”

“이 자식이!”

“미련하게 몸뚱이만 단단하니까 내 칼만 망가졌잖아! 10만 원이나 준 건데···. 물론 여분을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유지훈이 허리춤에서 새 단검을 꺼냈다.

고창석이 인상을 구겼다가 피식 웃었다.

“하나 망가진 것으로 부족한 모양이구나. 어디 와서 마음껏 찔러 봐라. 그깟 칼 100자루를 들고 와도 기스 하나 못 낼 거다.”

고창석이 양팔을 활짝 벌렸다. 상반신을 훤히 드러냈다. 양손을 까닥까닥 들어오라는 시늉까지 했다.

이번엔 유지훈이 피식 웃을 차례였다.

“난 찌르지 않아. 썰지.”

그대로 파고들었다.

서걱! 썰었다.

서걱! 서걱! 연달아 썰었다.

가슴을 썰고, 복부를 썰고, 목까지···.

고창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목을 감싸 쥘 뿐이었다. 쿵! 무릎을 꿇었다가, 털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보스를 구해라!”

똘마니들이 달려들었다.

한낱 조폭 따위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과 다를 게 없었다. 유지훈의 유려한 칼질에 서걱! 서걱! 서걱! 썰렸다.

다섯이 난자당한 채 나뒹굴자 나머지 졸개들이 주춤했다. 감히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유지훈의 시선이 장중호를 향했다.

“장중호 이사라고 했나?”

“그, 그렇소.”

떨리는 음성이었지만, 차분했다.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눈빛에선 은근한 여유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랑 같이 좀 갔으면 좋겠는데? 가서 있는 그대로 말하면 어느 정도 참작은 될 거야.”

“뭘 말하라는 겁니까?”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사실. 신화길드가 빌런 조직이랑 손잡고 증인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장중호가 눈매를 살짝 일그러뜨렸다.

갈등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무시하는 인상이었다.

유지훈의 말이 이어졌다.

“장 이사 당신이 주도한 게 아니라 신화길드 마스터의 지시로 이뤄진 거라는 사실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말투가 바뀌었다. 입가에 언뜻 비소가 깃들기까지 했다.

유지훈이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여기 이놈들 다 썰어버린 다음에 끌고 갈 수밖에. 강제로라도 털어놓게 해야지. 그럼 참작 같은 건 없을 거야.”

“과연 그게 뜻대로 될까?”

“궁금하면 보여줘야지.”

다시금 유지훈이 땅을 박차려는 찰나, 창고 안으로 전투복 차림의 사내들이 몰려 들어왔다.

“장 이사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구명한 본부장님 오셨습니까? 일이 계획대로 잘 안 풀렸습니다.”

“저, 저기는···. 매드 스콜피온입니까?”

구명한 본부장이라 불린 사내가 가리킨 곳엔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는 고창석의 시신이 있었다.

장중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글리 썬더를 해치운 게 운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구명한이 눈매를 좁히며 유지훈을 노려봤다.

주위로 20여 명의 길드 요원들이 그를 보좌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대표님께선 같이 안 오셨습니까?”

“오시는 중입니다. 상황 정리를 위해 타격대원들과 먼저 오게 됐습니다. 정리 마치는 대로 마스터님께 연락드리기로 했는데···.”

“잘 하셨군요. 이런 꼴을 대표님께 보여드릴 순 없으니···.”

대원들이 진용을 갖췄다.

구명한은 유심히 유지훈을 살폈다. 공격을 시작하기 전 상대를 파악하려는 눈초리였다.

유지훈이 털털하게 웃었다.

“신화길드에서 직접 증인을 처리하겠다? 이제 현장은 제대로 갖춰졌네. 밥상은 차려진 셈인데, 어떻게 먹을지가 문제겠구나.”

“흥! 좀 있으면 바닷속에서 몸부림칠 놈이 허세는···.”

구명한이 지시를 내리려는 찰나, 유지훈이 먼저 몸을 날렸다. 단검을 비스듬히 쥐고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구명한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레벨 7의 각성자. 일렉트릭 쇼크를 특성으로 보유했다. 10만 볼트에 달하는 전기를 일으켜 접촉한 상대를 태워버리는 능력이었다.

그에게 덮쳐오는 유지훈은 벌린 아가리로 뛰어드는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였다. 특성을 끌어올린 채 가만히 유지훈을 기다렸다.

죽일 순 없으니 강도를 낮출 수밖에 없어 아쉬울 따름이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려는 순간, 유지훈이 펄쩍 뛰어올랐다. 구명한을 뛰어넘으면서 단검을 내리꽂았다.

빠지직!

어깨에 꽂힌 단검을 타고 유지훈의 팔뚝까지 전기가 흘렀다. 단검에 이어 유지훈의 팔뚝까지 까맣게 타버렸다.

쓰라린 통증이 심장까지 밀려왔지만, 참을 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생될 테니.

유지훈은 기세를 몰아 대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또 한 자루 여분의 단검을 꺼내 들고 맹렬히 휘둘렀다.

서걱! 서걱! 깡! 깡!

기습에 당한 대원들은 단검에 썰려 쓰러졌고, 늦게나마 대비한 대원들은 병기를 휘둘러 막아냈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유지훈은 원래 자리로 돌아와 무심한 눈빛으로 장중호를 바라봤다.

“그러게 장 이사 당신만 같이 가면 된다고 했잖아. 괜히 길드 요원들만 다치고 이게 뭐야.”

“한꺼번에 덮쳐!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어깨에 꽂힌 단검을 뽑아낸 구명한이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는 찰나.

“잠깐! 다들 무기 버리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일련의 사내들이 창고로 들어섰다.

SSG의 미중년 그리고 그의 부하 요원들이었다. 클럽에도 동행했던 세 청년이 미중년을 바짝 뒤따르고 있었다.

곁으로 권총을 든 요원 일곱이 함께했다. 절도있는 자세로 신화길드 대원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언제든 격발할 채비를 갖춘 양상이었다.

“제가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에요. 너무 빨리 오셨어요. 한참 재미있어지려던 참인데.”

“유지훈 씨 오른손이···?”

“조금 감전된 거예요. 대단할 건 없어요.”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짓는 미중년을 향해 유지훈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연락받고 바로 오느라 인원을 많이 모으진 못했습니다.”

“그러게요. 부족할 것 같긴 하네요. 저게 다가 아닌 모양이던데.”

유지훈은 오는 길에 미중년에게 연락을 취했다.

혼자 해결할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절차를 갖추는 편이 깔끔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다음날 증인 출두가 예정된 만큼, 공권력을 활용해 현장을 정리하려는 의도였다. 장중호라는 새로운 피의자 겸 증인도 확보하고.

“또 있답니까? 전화로는 신화길드 인원은 몇 안 된다고···. 그러고 보니 말씀하신 것보단 많군요. 오히려 빌런은 안 보이고···.”

“오시기 전에 제가 처리했어요. 문제 될 건 없겠죠?”

유지훈이 고창석의 시신을 가리켰다.

미중년이 눈매를 좁히며 보더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매드 스콜피온이군요. 잘 하셨습니다. 빌런은 얼마든지···.”

그때 창고 밖이 술렁였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전투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창고로 밀려 들어왔다. 이번엔 좀 많았다. 100명은 족히 넘을 듯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앞장서 들어왔다.

“정리되는 대로 연락하랬잖아! 뭐 하고 있는 거야! 장 이사, 구 본부장 이것밖에 안 돼? 당장 옷 벗고 싶어?”

신화그룹 삼남이자 신화길드 마스터 이자웅이었다.

장중호 이사를 비롯한 신화길드 대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코웃음 치며 창고를 둘러보던 이자웅의 시선이 유지훈에게 멈췄다.

“니가 유지훈이라는 새끼냐?”

이어 미중년을 쳐다봤다.

“당신은 또 뭐야? 오호라. 너희들이 쥐새끼 놈 뒤를 봐주던 자식들이구나. 잘됐네. 다 모여있고.”

미중년이 빙긋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신화길드 이자웅 마스터님. 국가 기관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저희 지시를 따라주셔야겠습니다.”

“내가 왜?”

“저희는 지금 신화길드가 빌런 조직과 결탁한 현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건의 증인을 해치려는 시도로 보이는군요. 마스터님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고요.”

“그런가? 그래서?”

“길드 대원들은 당장 무장 해제한 뒤 해산하고, 마스터님을 비롯한 간부들은 저희와 동행해서 조사에 응해주셔야겠습니다.”

“하하하. 병신 같은 자식”

이자웅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런 이야기 하려면 일개 사단은 데리고 왔어야지. 고작 열 명이 와서 뭐가 어째? 그리고 국가 기관? 어딘데?”

“그건 같이 가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필요 없어. 같이 갈 일도 없는데 뭐. 빌런이랑 결탁? 증인? 그걸 누가 알아? 여기서 너희들만 없애버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잖아.”

유지훈이 헛웃음과 함께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많이 좀 모아오시지.”

“연락을 일찍 주셨어야···.”

“그쪽도 싸움 좀 해요?”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았습니다.”

백척간두의 상황. 유유자적 만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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