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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43화 (43/150)

척결의 시간 (2)

“그래서 혼자 가겠다는 말이에요?”

현장에 도착해서 상황을 들은 강은영이 놀라 소리쳤다.

와서 목격한 장면부터 기함할 일이었다. 바어퍼(Viper 독사)라 불릴 정도로 극악한 빌런 조직이 일망타진 당한 현장이었다.

옆에 유지연이 있는 것을 보고 일단 그럴 만도 했구나 싶긴 했다. 유지연은 초인 등극이 유력시되는 국가적 인재였으니.

알고 보니 블루 바이퍼의 조직은 신화길드의 의뢰로 움직인 것이었다. 신화길드 재수사의 증인 유지훈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신화길드가 빌런 조직과 노골적으로 손을 잡았다니. 밝혀지면 인가가 취소될 대형 사건이었다. 당연히 신화길드는 결사적으로 대응할 터였다.

“거기 누가 있을 줄 알고 혼자 간다는 거예요?”

심지어 유지훈은 적들의 소굴로 혼자 가겠다고 고집하고 있었다. 블루 바이퍼 조직의 똘마니 여섯을 앞세운 채.

“빌런 놈들 몇 있다는데, 그냥 대고 썰어버리면 돼. 신화 윗대가리 지시라는 걸 포착해야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네. 장중호 이사라는 놈을 내세운 모양이던데···.”

“장중호 이사라면 신화길드 전략 이사예요. 이자웅 마스터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쉬운 대로 그놈이라도 잡아서 불게 해야겠네.”

“위험해요. 신화길드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어요.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어요.”

“무슨 짓을 저질러 주면 좋겠네. 현장에서 잡아버리게.”

“농담할 때가 아니라고요!”

강은영이 버럭 하더니 유지연을 바라봤다.

“유지연 씨라도 같이 가주세요.”

“저도 그럴까 싶은데, 저 인간이 한사코 거부하네요.”

“그래. 너는 남아서 가산점이나 알뜰히 챙겨.”

강은영이 주위를 둘러봤다.

각성자수사청 인력이 함께 오긴 했지만, 전투 요원들이 아니었다. 유지훈과 같이 간 들 도움이 안 될 터였다.

“그럼 덕대 씨라도 데리고 가요. 나도 같이 갈게요.”

“덕대는 가봤자 짐 밖에 안 돼. 그쪽은··· 여기서 현장 수습해야지. 그러겠다고 보고하고 나온 거잖아.”

“본부에 지원 요청이라도 할까요? 아니면 각성자수사청에라도···.”

“어림없는 소리! 아직 내통하던 양반들 안 나가고 있다며? 정보 흘리면 어쩌려고. 이번 일은 보안이 핵심이야.”

그렇게 유지훈은 떠났다. 군기 빡 든 똘마니 여섯을 거느리고.

행선지를 알리지도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강은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태연하게 가산점 승인 신청을 준비하는 유지연을 보니 다시금 한숨이 나왔다.

“유지연 씨는 걱정도 안 돼요?”

“뭐가요?”

“오빠가 지원도 없이 위험한 곳으로 가잖아요.”

“바이에른 뮌헨 걱정은 하는 게 아니랬어요.”

“네? 바이 뭐요?”

강은영이 어리둥절해 하자, 유지연이 짜증을 확 냈다.

“언니는 해외 축구도 안 봐요? 바이에른 뮌헨이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밥 먹듯이 우승하는. 초반에 좀 못해서 위기 어쩌고 해도, 잠깐 딴생각하다 보면 1위 하고 있고, 어느 틈에 압도적인 우승이라고요.”

“그게 유지훈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 인간 던전이 폭발했는데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어요. 고기도 못 썰던 인간이 5년 만에 돌아오더니 검치호를 썰어버렸다고요. 그런 인간을 왜 걱정해요? 차라리 그 인간 만날 놈들을 걱정해야지.”

“유지연 씨!”

강은영이 언성을 높였다.

“경우가 다르다고요. 유지훈 씨는 지금 엄청난 음모의 한가운데 있는 상황이에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새언니.”

유지연의 말투가 차분해졌다. 건들건들 장난스럽기만 하던 평소 어조와 확연히 달랐다.

강은영이 새삼 바짝 긴장했다.

“새언니도 봤잖아요. 그 인간이 검치호 썰어버리는 거. 임정명 초인도 당했던 놈이에요. 재앙급이라 해도 무방했어요. 신화길드가 총출동한다고 해도 재앙급 몬스터를 당할 수 있을까요?”

“그, 그건···.”

답이 쉽게 나오는 질문이었다.

초인의 지원 없이 길드 인력만으론 재앙급 몬스터를 감당할 순 없다. 신화길드 헌터 전원이 몰살당해도 이상할 게 없을 터였다.

“저 보는 눈 있어요. 오빠 강해요. 비각성자지만 저보다 강할지도 몰라요. 지난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왔어요.”

“유지훈 씨는···.”

“아니에요. 오빠 지난 이야기는 오빠한테 직접 듣고 싶어요.”

“네···.”

“신화길드 따위가 총력을 쏟아부어도 오빠를 어쩌지 못해요. 그놈들이 재앙을 만나는 결과가 될 뿐이죠. 그래서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네···.”

진지해진 유지연은 분위기를 압도했다.

강은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제가 왜 새언니죠?”

“그 인간이랑 막 끌어안고 몸서리치고 그런다면서요?”

“제가요? 언제요? 유지훈 씨가 그래요?”

“아니요.”

유지연이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새언니가 그랬잖아요.”

“제가요? 언제요?”

“아까 전화로···. 미안해요. 엿들었어요. 새언니가 몸서리치자고 하니까 그 인간이 오늘은 안 된다고 하는 거요.”

“네??? 내가 언제···.”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이는 강은영을 향해 유지연은 세상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저 새언니 마음에 들어요. 조금 덜떨어지긴 했지만, 좋은 사람 같아요. 그 인간도 그렇게 말했고요.”

“내가 덜떨어졌다고요···.”

***

인천 소래포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

과거 신화물산의 물류창고였지만, 지금은 방치된 채 동네 양아치들의 놀이터로나 활용되는 곳이었다.

신화길드 전략 이사 장중호는 누구보다 이곳에 익숙했다.

신화길드와 관련한 지저분한 일, 정확하게는 길드 마스터 이자웅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할 때마다 왔던 장소였다.

장중호는 이자웅의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처리하면서 핵심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자웅 대신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는 인물인 셈이었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길 하면서 왔거늘···. 이번에도 나는 여기 와 있군. 정말 이번이야말로 마지막이어야 할 텐데···.”

보스의 위기였다.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자웅이 무너지면, 장중호 또한 낙오자가 되는 게 당연지사. 장중호는 이번 일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빌런 조직을 둘이나 끌어들였다. 블루 바이퍼 조만길과 매드 스콜피온 고창석. 거물 빌런 둘과 손을 잡았다.

길드 입장에선 치명적이었다. 자칫 적발되면 길드 폐쇄까지 이어질 사안이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의미였다.

“독사 놈은 왜 안 오는 거지? 올 때가 지나지 않았나?”

고창석은 창고에 온 내내 못마땅한 모습이었다.

이름도 모를 비각성자 하나 잡아들이는 일에 자신까지 몸소 오게 해 언짢은 눈치였다. 빨리 해치우고 철수할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연신 불평만 쏟아내고 있었다.

“조직원들이 다쳤다고 했소. 수습하고 오느라 늦는 모양이오.”

“멍청한 자식. 각성도 못한 놈 하나 잡으러 가서 부하들이나 다치게 하고···. 그런 놈을 뭐하러 끌어들였나? 나한테 다 맡기면 될걸.”

“방심해선 곤란하오. 어글리 썬더를 해치운 놈이오.”

“그 병신 새끼는 방심하다 당했겠지. 나는 그 더러운 새끼랑은 클래스가 다르니 걱정할 것 없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블루 바이퍼인가 해서 봤더니 이자웅이었다.

급히 창고 밖으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아직 안 왔습니까?]

“네. 아직 도착 전입니다.”

[조만길이 그 자식, 왜 그렇게 느려터졌대? 나 바쁜 사람이에요. 이거 말고도 처리할 게 많단 말입니다.]

“대표님께서 꼭 오셔야겠습니까? 여기 일은 저희에게 맡기고 더 중요한 업무를 보시는 게···.”

[유지훈 그 자식 해치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장 이사 그걸 몰라? 그 새끼 바다에 처넣는 건 결단코 내 몫이라고!]

“알겠습니다.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흥분해 고함치던 이자웅이 한 차례 헛기침하더니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깜빡하고 장 이사한테 알리지 못한 게 있는데, 지금 여기 길드 병력 총집결해서 대기하고 있어.]

“네? 길드 병력이 전부 말씀입니까? 유지훈 정도는 여기 인원으로 충분할 텐데요.”

[에헤이~. 장 이사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아. 빌런 놈들이랑 손잡은 흔적은 없애야 할 거 아냐. 유지훈 그 새끼 바다에 처넣은 다음에 놈들까지 싹 쓸어버려야지.]

“대표님···.”

[지금 신화길드가 사정이 썩 좋지 않아요. 이럴 때 거물 빌런 조직을 둘씩이나 소탕했다고 하면 상황이 급반전되지 않겠어? 증인으로 나선다는 놈이 사라지고, 여론은 신화길드의 손을 들어줄 테고.]

“······.”

[재수사고 뭐고 끝이지. 어때요? 일석이조의 책략이. 내가 생각해낸 거야. 장 이사 같으면 생각도 못 했겠지.]

“네. 꿈에도···.”

[그럼 그 새끼 도착하는 대로 문자 보내요. 그때 봅시다.]

전화를 끊은 뒤 장중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자웅이라는 인간. 무모했다.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다.

빌런 조직 둘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을 하다니. 성공하면 좋지만, 만에 하나 실패하면 신화그룹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장중호가 한숨을 머금은 채 상황을 가늠했다.

‘지금 창고에 매드 스콜피온 일당 마흔다섯. 오고 있는 블루 바이퍼 놈들이 서른둘. 합치면 넉넉잡아 여든 명.’

신화길드 헌터를 총동원했다고 했으니 적어도 150명은 될 터였다. 계산상으로 쓸어버리는 데 어려움은 없을 듯했다.

레벨 7의 거물 조만길과 고창석이 문제일 수 있겠지만, 신화길드에 레벨 7 셋에 레벨 6도 여덟이나 있으니 제압은 가능할 터였다.

작정하고 도주하려 할 때가 문제라면 문제일 텐데···.

‘그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겠지. 기습을 해도 두 놈을 우선으로 할 테니, 나머지만 잘 처치하면 될 듯하군.’

정황상 이자웅의 무모한 계획은 통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90%의 확률은 넘을 듯했다.

그래도 장중호는 불안했다. 뭔가 계산에서 빠진 변수가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어렴풋이 승합차의 형태로 보였다.

“드디어 오는 모양이군.”

이자웅에게 문자를 보낸 뒤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이상했다. 뒷덜미가 섬찟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왜 승합차 한 대뿐이지? 그리고 조만길 차는 독일제 B사 세단인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준비부터 해야 했다.

고창석에게 도착을 알리며 채비를 갖추라고 일렀다.

“자. 얘들아. 손님 맞을 준비 해라. 서둘러라. 후딱 처리하고 술 퍼마시러 가야지. 피 냄새는 술로 지워야 한다.”

매드 스콜피온 조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드럼통을 굴리고, 시멘트를 날라와 물을 들이붓고, 만에 하나 도망칠 경우를 대비해 출구를 봉쇄하고···.

이윽고 승합차가 창고 앞에 도착했다.

하나둘 사람들이 내렸다. 하나, 둘, 셋···. 블루 바이퍼의 조직원은 여섯이 다였다. 사진으로 확인해둔 유지훈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두목은 어쩌고 너희들만 왔냐?”

고창석의 퉁명스러운 질문에 맨 앞에 선 조직원이 절도있게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네! 보스께서 좀 다치셔서 병원에 들렀다 오신다고 했습니다!”

“병신같이 각성자도 아닌 놈한테 처맞기나 하고···. 그나저나 뭘 그렇게 군기가 빡 들었냐? 독사 놈이 엄청 갈구나 봐?”

“아닙니다! 보스께선 잘 해주십니다!”

장중호는 뭔가 어색함을 감지했다.

조직원의 수가 너무 적었다. 나머지는 다 어디 가고···?

게다가 전에 마주했던 조직원들의 태도가 아니었다. 껄렁껄렁했던 조직원들이 각이 딱 잡힌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맨 뒤에서 들어오는 유지훈의 모습도 이상했다.

붙잡혀 끌려오는 양상이 아니었다. 거느린 수하들을 앞장세우고 오는 분위기였다.

창고에 들어선 유지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 장중호가 누구냐?”

“나, 난데···?”

머뭇머뭇 대답하면서 장중호는 뭔가 확실히 잘못됐음을 느꼈다.

‘대표님한테 알려야 하나? 거의 다 왔을 텐데···.’

장중호가 주저하는 사이, 유지훈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매드 스콜피온은 또 누구냐?”

“나, 난데···. 너 뭐냐?”

“그럼 너부터 시작해야겠구나.”

유지훈이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오른손에 쥔 단검이 싸늘한 광휘를 번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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