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40화 (40/150)

야마가토산업

일본 도쿄 신주쿠 중심부 야마가토산업 본사. 빌딩 최상층 회의실에 야마구치 가문과 가토 가문의 핵심 인사들이 모였다.

야마구치 가문의 수장 야마구치 신타로와 가토 가문의 수장 가토 마사오를 필두로 각 가문의 이사진 다섯씩 참석한 자리였다.

특이한 점은 말석에 자리한 두 중년인이었다.

관방장관 기시다 시게노부와 외무대신 이노우에 후미오. 내각부의 2인자와 외교를 책임지는 인사였다.

두 정부 거물이 가장 끝자리에서 공손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야마가토산업의 일본 내 위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관방장관과 외무대신 두 분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드리오.”

야마구치 신타로가 두 고위 관료에게 인사를 건네며 서두를 열었다.

“다들 이렇게 회합을 소집한 이유를 모르지 않을 거요. 우리 야마가토산업이, 아니 대일본제국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소.”

참석자 모두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마구치 신타로가 좌중을 둘러본 뒤 야마구치 가문 참석자들 쪽을 향해 손짓했다. 가장 젊은 사내가 절도있는 모습으로 일어섰다.

야마구치 가문 이사진 중 최연소자 야마구치 구니오였다. 좌중을 향해 허리를 굽히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본사를 대표해 한국으로 갔던 본가 가신 그룹의 신예 각성자 둘이 한국의 초인에게 공격당한 비극이 있었습니다.”

야마구치 구니오가 빔 프로젝터를 사용해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나카무라 히로 군과 나카무라 카이토 군입니다. 히로 군은 목숨을 잃었고, 카이토 군은 불구가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야마구치 구니오가 새로운 사진을 띄우고는 발언을 이어갔다.

“한국의 초인 마철진입니다. 불상의 이유로 나카무라 형제와 시비가 붙은 끝에 심하게 손을 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질문하겠다며 손을 들었지만, 야마구치 구니오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질문은 브리핑을 마친 뒤 받도록 하겠습니다.”

야마구치 구니오가 마철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마철진은 6년 전 초인에 등극한 각성자로 토네이도를 특성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히로군 역시 토네이도에 의해 난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어 새로운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나카무라 형제의 한국 방문은 신화그룹과 진행하는 비밀 프로젝트의 막바지 점검을 위해서였습니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예정된 귀국 시기를 넘겼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상태에서 변을 당했습니다.”

야마구치 구니오가 화면을 끄고는 브리핑을 마무리했다.

“귀국 시기를 넘긴 이유는 흥미로운 존재를 발견했다는 보고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운 임무는 그 인물의 신병을 확보해 본국으로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질문받겠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온화한 인상의 노인이 손을 들었다.

가토 가문의 노부유키였다. 야마가토산업의 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야마가토전공의 대표이사이기도 했다.

“나카무라 형제의 임무가 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샘플을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임상 전 테스트도 참관했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럼 본사에서 샘플은 확보한 것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샘플은 직접 가지고 들어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 아닌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참관한 테스트 결과 보고만으로 성과는 충분합니다. 샘플은 시제품 전단계라 할 수 있어서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시 요청하면 확보할 수도 있고요.”

“임무는 절반의 성공 정도로 보면 되겠군.”

기골이 장대한 중년 사내가 손을 들었다.

야마구치 가문의 히토시였다. 야마가토산업의 각성자 그룹을 총괄하는 인물로, 레벨 7의 각성자이기도 했다.

“새로운 임무, 그 인물이 누구길래 귀국 시기를 늦춘 건가? 샘플을 가져오는 임무를 미를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었나?”

“비각성자라고 했습니다. 나카무라 형제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녔다는 보고였습니다. 카이토 군에게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더군요.”

“비각성자가? 그럼 혹시···?”

야마구치 구니오가 빙긋 웃었다.

“역시 총괄님께선 각성의 개념에서 접근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귀환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병 확보 임무를 전했습니다.”

“아!”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야마구치 구니오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적으로 귀화를 설득할 계획이었습니다. 나카무라 형제에게도 그 점을 당부했고요. 여의치 않았나 봅니다. 한국의 초인까지 개입한 것을 보면요.”

“한국 정부에서도 그자가 귀환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그렇진 않은 듯했습니다. 경찰과 대립까지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던 점에서 유추했습니다. 귀환자의 가능성을 정부에서 알면 VIP로 받들고 보호했을 테니까요.”

회합에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 셈이었다.

귀환자의 확보. 어쩌면 원래 임무보다 중요할 수 있었다.

한국의 초인으로 인해 무산된 점은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감히 조선의 초인 따위가 야마가토의 대사를 방해했단 말인가!”

“당장 주한 대사를 통해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나!”

“대사는 무슨! 우리도 초인을 보내! 응징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진정시킨 건 가토 가문의 중년 여인이었다.

은발과 뽀얀 피부가 화사하게 조화를 이룬 여인. 야마가토산업의 문화 분야를 담당하는 야마가토흥업 대표 가토 요코였다.

“문제의 샘플은 여전히 나카무라 형제에게 있는 것 아닌가요? 한국 정부에 구금됐다면 샘플 또한 압수됐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귀환자보다 그 부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대답은 야마구치 가문의 수장 신타로의 몫이었다.

“요코 대표의 말이 옳네. 우리도 그 점을 가장 우선시했네. 비선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특이한 압수품은 없었다고 하네.”

“그럼 샘플은 어디에···?”

“어딘가 은밀한 장소에 숨겨뒀거나.”

야마구치 신타로가 좌중을 둘러봤다.

“나카무라 형제가 스스로에게 투약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일순 좌중이 조용해졌다.

샘플의 직접 투약. 임상 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샘플이었다.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은 점에서 결과도 관심이 집중될 만했다.

“그 부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겁니까?”

“다각도로 확인하고 있네만. 쉽게 파악될 것 같진 않군. 어떤 이야기가 들려올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직접 투약해서 뭔가 결과가 있었다면, 그게 더 문제인 것 아닙니까? 조선의 초인이 이상한 점을 포착하고 파고든다면, 비밀 프로젝트가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게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긴 하네.”

잠시 침묵하던 이사진들이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태스크 포스팀을 꾸려서 한국으로 보내야 합니다.”

“조선의 초인을 응징하고, 귀환자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본국의 각성자가 변을 당한 점을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게 우선입니다. 자위대를 움직이는 일이 있더라도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비밀 프로젝트의 완성이 최우선입니다.”

“프로젝트만 완성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그때까진 괜한 손찌검은 자제하는 편이 좋습니다.”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장내를 정리한 건 가토 가문의 수장 마사오였다.

“강경책으로 나가기엔 난맥상이 없지 않소. 입국 과정에 불법이 있었고, 한국 내에서 범법 행위에 연루된 정황도 있다고 했소.”

“아무리 그래도 본국의 각성자가 죽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외교적인 문제입니다.”

“외교 문제로 비화해도 우리가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소. 한국 쪽에서 불법 사안을 파고들다가 비밀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아내기라도 하면 대사 자체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말이오.”

다시금 좌중이 조용해졌다.

섣불리 방향을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외무대신 이노우에 후미오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보시지요. 외무대신.”

이노우에 후미오가 한 차례 헛기침 후 말을 시작했다.

“이 문제야말로 외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외교적 접근이라···. 외교 문제가 되면 우리가 불리할 수 있다고 이미 언급된 것 같소만.”

“외무성과 주한 대사가 판단하기로 이미 우리가 불리합니다. 나카무라 형제의 불법 행위가 한국 정부에 빌미를 제공한 상황입니다. 비밀 프로젝트에 지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교적으로 접근하면 해결책이 있다고 보시오?”

가토 마사오의 눈빛이 서늘했다.

이노우에 후미오는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발언을 이어갔다.

“잠시 자세를 낮추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사과할 부분은 먼저 사과하고, 요구할 부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조선 놈들한테 몸을 낮추다니요.”

“엄연히 피해는 본국, 야마가토산업이 입었습니다. 피해자가 먼저 사과하자니, 외무대신은 어느 나라 외교 책임잡니까!”

격한 반발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노우에 후미오는 굽히지 않았다.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자는 뜻입니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밀 프로젝트 아니겠습니까.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명분의 손해는 감수하자는 의미입니다.”

다시금 이사진의 반발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 야마구치 가문의 수장 신타로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외무대신의 말씀이 일리가 있네. 그래 외무대신께선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소?”

“구체적인 방안까지는 아직···. 바로 강구해내겠습니다.”

그때 야마구치 가문 이사진의 최연소자 구니오가 나섰다.

“외무대신의 말씀을 듣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말씀드려봐도 되겠습니까?”

야마구치 구니오가 허락을 구했고, 신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교적인 접근, 화해의 제스처, 좋은 방향입니다. 다만 야마가토의 이름에 걸맞은 명분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피해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야마구치 구니오가 좌중을 둘러봤다.

“둘 모두를 충족시킬 방안으로 이건 어떨까 싶습니다.”

“뭔가?”

“한국에 외무 회담을 제안하는 겁니다. 아울러 양국을 대표하는 각성자 회합도 추진하고요.”

“외무 회담?”

“각성자 회합까지?”

이사진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자존심까지 굽히고 한국으로 가자는 말인가?”

“그건 완전히 잘못을 인정하는 격 아닌가? 있을 수 없네.”

야마구치 구니오가 빙긋 웃었다.

“화해의 제스처를 가장한 공세가 될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각성자 회합을 빌미로 외무대신 수행단에 고레벨 각성자를 합류시킬 수 있습니다. 그중에 비밀 임무가 주어진 요원이 포함된다면, 원했던 일들이 처리되지 않겠습니까?”

“······.”

“한국의 초인에게 복수하는 문제, 귀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문제, 샘플 문제···. 화해 무드 속에서 말끔히 정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하하.”

야마구치 신타로가 유쾌하게 웃었다.

“트로이의 목마로군. 좋은 생각이야. 외무대신께선 바로 추진해주실 수 있겠소?”

“외무 회담은 가능하겠지만, 각성자 회합은 다소···.”

이노우에 후미오가 난색을 표했다.

관방장관 기시다 시게노부가 거들었다.

“양국이 각성자 관련 문제로 민감한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에서 본국의 각성자들의 입국을 수용할지 모르겠습니다. 수행단에 초인도 여럿 포함돼야 할 텐데요.”

“그거라면 내게 방법이 있을 것 같소.”

가토 마사오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박 여사를 통해 한국 외교부에 압력을 넣으면 되지 싶소. 대통령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니 그 정도는 해결해줄 거요.”

“남은 문제는 한국 내에 조성될 수 있는 부정적인 여론인데···.”

야마구치 구니오가 잠시 생각하더니 가토 요코를 바라봤다.

“그 부분은 요코 대표님께서 맡아주시면 어떨까 싶군요.”

“내가?”

“야마가토흥업의 예술인들을 활용해주십사는 겁니다. 각성자 회합을 대결 구도가 아닌 문화 축제로 포장하자는 의미입니다.”

“괜찮은 생각이군요. 해보도록 하죠.”

방향이 정해졌다.

세부적인 사안은 실무진에게 넘겨질 터였다.

야마가토산업은 물론, 일본 정부까지 동원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야마구치 구니오는 주도면밀했다. 세심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외무대신님. 나카무라 형제의 신병을 넘겨받도록 힘 좀 써주시겠습니까? 비밀 프로젝트의 성패가 걸린 문제일 수 있습니다.”

“히로의 시신을 넘겨받는 건 가능하겠지만, 카이토의 신병은 조사가 끝날 때까진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럼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군요. 어차피 야마가토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잃은 상황이니 편안히 보내주는 것도 카이토 군에게 좋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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