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39화 (39/150)

결정적인 단서

“유지훈 씨 덕분에 요즘 본부는 완전 카오스 상태예요.”

“그건 또 뭔 소리야?”

“대혼돈의 시기라고요. 각성자 입국 문제로 발칵 뒤집혔는데, 고위 간부 여럿이 비각성자라 물러나야 하는 상황까지 겹치니···.”

“나한테 고마워해야겠네. 뭐.”

강은영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긴 해요. 본부가 놓친 걸 잡아줬고, 말썽의 소지까지 없애준 셈이니까요. 그래도 너무 어수선하니까 일이 안 돌아가요. 다들 힘들어하는 상황이에요.”

“그쪽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거야?”

“잡음이 없진 않지만, 순조롭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강은영이 입맛을 다시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유지훈 씨가 인사드린 간부들은 물러나게 될 것 같아요.”

“순순히 물러난대?”

“그럴 리야 있겠어요. 반발이 말이 아니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규정은 규정이니.”

“아까 보니 두어 명 현장에 왔던데?”

각성자관리국 부국장과 정보전략부장, 전략지원부장이 현장에 나왔다. 마철진 곁을 지키며 필사적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마나 재측정을 요구했어요. 일시적인 오류 가능성이 인정돼서 1주일 후 재측정하기로 했어요. 그때까진 직무 유지예요.”

“시한부 인생이군. 속이 썩어들어가겠어.”

“오늘도 안 나와도 될 양반들이 기를 쓰고 나온 이유가 뭐겠어요. 마철진 초인한테 잘 보여서 어떻게든 자리보전하려는 거죠.”

유지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화 재조사 문제는 잘 흘렸나?”

“그거야 너무 완벽하게 흘려서 탈이라면 탈이죠.”

“완벽하게 흘렸으면 됐지. 탈은 무슨···.”

“그런 게 있어요.”

“또 뭔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마철진 초인이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

“아, 그거···.”

유지훈이 과정을 들려줬다.

유지연의 길드 합류 문제로 마철진이 쫓아온 끝에 싸움에까지 휘말린 사연이었다.

강은영이 깔깔대며 웃었다.

“마철진 초인이 제대로 말렸네요. 그나저나 유지연 씨를 길드 마스터로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의외예요. 당연히 유지연 씨라 생각했는데.”

“있어. 진작에 내정된 사람이.”

“누군데요? 나도 좀 알려줘요.”

“곧 알게 될 거야.”

“비싸게 굴긴. 보나 마나 대단할 거 없는 인물이겠네요.”

“대단할 게 없긴 한데···.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야.”

“기대도 하지 마요. 하나도 안 놀랄 거니까.”

강은영이 토라진 표정으로 입을 비쭉였다. 한편으로 다행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쨌거나 마철진 초인이 해치운 것으로 정리돼서 일이 순조롭겠어요. 어떻게 떠넘겼는지 궁금했는데.”

“떠넘긴 걸 알았다고? 그쪽은 내가 그놈 해치운 걸 안 거야?”

“어떻게 모르겠어요. 유지훈 씨 행태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마철진 초인이 함부로 사람 죽이는 분도 아닌데요.”

“흐음···.”

유지훈이 짐짓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람 함부로 죽이는 살인광이라는 말처럼 들리네.”

“아닌가요? 유지훈 씨 닥치는 대로 잘 죽이잖아요. 물론 먼저 도발해온 놈들에 한하긴 하지만요.”

“그건 인정. 나한테는 생존의 법칙이기도 하지.”

“사실 좀 놀랐어요. 빡빡머리를 살려둬서. 그놈도 분명 먼저 도발했을 텐데.”

“사실 그 새끼가 가장 먼저 도발했지. 확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어쩌겠어. 알아봐야 할 것들이 있으니. 조사 확실히 해. 안 그러면 확!”

“안 그래도 조사 확실히 할 거예요. 외교 문제 안 되려면 놈들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밝혀야 하니까요.”

그때 강은영의 휴대폰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강은영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유지훈에게 건넸다.

“그놈들 신원이 밝혀졌네요. 예상대로 일본의 각성자들이에요.”

휴대폰 화면에 이름과 나이, 각성 레벨 등이 떠 있었다.

[나카무라 히로. 25세. 레벨 6/ 나카무라 카이토, 21세. 레벨 6]

유지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벨 6이라···. 그런데 마 영감님을 압도했다면 문제겠지?”

“뭐라고요? 두 레벨이나 차이 나는데 어떻게···.”

유지훈이 간략하게 상황을 들려줬다.

히로 나카무라의 갑작스러운 폭주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신화 놈들의 음모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변태 양반이랑 상의 좀 해야겠어.”

“결정적인 단서라도 찾아낸 거예요? 나도 알려줘요.”

“그럼 같이 만나든가.”

“나더러 그 변태 자식을 다시 만나라고요?”

“변태는 계산하는 게 아니야. 극복하는 거지.”

“뭐라는 거야···.”

그러는 사이 유지훈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유지훈을 향해 강은영이 서늘한 끝인사를 남겼다.

“며칠 안에 유지훈 씨한테 출석 통보 갈 거예요. 시간 맞춰 와요.”

“뭐? 무슨 통보?”

“무슨 통보는요. 신화길드 관련해서 재조사 들어가잖아요. 유지훈 씨가 증인으로 나서준 덕분에요. 증인 조사받으러 출석해야죠.”

“그게 무슨 엿 같은···.”

유지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강은영은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유지훈 씨가 증인으로 나선다는 정보를 흘리라면서요. 확실히 하려면 실제로 재수사가 이뤄져야죠. 각성자수사청에 정식으로 재수사 의뢰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있지도 않은 재수사로 정보를 흘리면 그 능구렁이들이 옳다구나 하고 믿겠어요? 그 양반들이 바본 줄 아나···.”

“그렇다고 나를 팔아!”

유지훈이 펄펄 뛰며 집으로 향했다.

유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은영이 야무지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아싸! 드디어 한 방 먹였다.”

***

신화그룹 장남 이자성 부회장이 삼남 이자웅 신화길드 마스터를 호출했다. 분위기가 사뭇 심각했다.

“일본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차분한 어조였다.

이자성은 분노가 극으로 치솟았을 때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자웅도 모르지 않았다. 긴장했다. 껄렁껄렁하던 평소 태도와 달리 진중하게 맏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나카무라 형제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한다.”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면···.”

“히로는 죽고, 카이토는 국가안전본부에 구금돼 있다고 했다.”

“네? 어쩌다가···.”

이자웅이 사색이 됐다.

나카무라 형제는 신화그룹의 귀빈이었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접객은 이자웅이 관리하게 돼 있었다.

하나가 죽고, 나머지 하나가 구금된 건 이자웅의 책임이었다. 물론 그들이 신화길드의 지원을 뿌리친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자웅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야마가토 쪽에선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까?”

“없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그 녀석들이 우리 쪽 지원에서 벗어나지만 않았어도···. 어떤 놈입니까? 당장 잡아서 야마가토 쪽으로 넘겨야···.”

“그렇다고 우리가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뭐라도 해서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자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 대사관에선 내막을 알려주지 않았다.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눈치였다. 사정은 국가안전본부의 두더지를 통해 파악했다.”

“어떻게 된···?”

“마철진 초인이다. 히로를 죽이고, 카이토는 불구로 만들었다고 했다. 사람 구실을 하기 힘들 정도로.”

“마철진 초인이 왜···.”

마철진은 신화길드와 협력 관계였다. 몬스터 퇴치 등에 있어서 신화길드와 연합 작전을 펼쳤다.

신화길드는 마철진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매년 엄청난 금액의 고문료를 지급하고 있었다.

“마철진 초인 또한 신화길드에서 관리하는 인사다. 네가 담당하는 자들 사이에서 사고가 벌어진 셈이지. 그것도 수습 불가 지경의.”

“죄송합니다.”

이자웅이 허리부터 깊이 숙였다.

평소 같으면 거들먹거리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제가 길드 역량을 총동원해서 수습하겠습니다.”

“그럴 상황이 아니다.”

이자웅의 공손한 태도에도 이자성은 싸늘하기만 했다.

“두더지의 전언에 따르면 5년 전 사고 관련해서 재수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각성자수사청에 의뢰가 들어갔고, 조만간 소환 조사가 시작될 예정이라지. 아마 너는 피의자로 소환되지 싶다.”

“그 사건이라면 이미 마무리됐는데, 난데없이 왜···?”

“새로운 증인이 나섰다고 한다. 너도 아는 인물이다. 폭발 사고에서 살아남은 녀석···.”

“유지훈!”

이자웅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기어코 흥분해 괴성을 질렀다.

“이 개자식만 연루되면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역시 네 책임이 가볍다 할 수 없다. 자걸이 의견대로 잘 달래서 눌러 앉힐 수 있었는데, 네가 굳이 건드려서 일을 키웠다.”

“그놈만큼은 제가 끝장을 보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형님.”

“공식적인 자리다. 지금 너와 나는 형과 동생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이자성의 눈빛과 말투는 갈수록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자웅이 다급하게 정정했다.

“부회장님. 부탁드립니다. 유지훈 그 자식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증언대에 서지 못하도록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느냐?”

“믿어주십시오. 길드 마스터 자리도 걸겠습니다. 대신 국가안전본부 내 두더지들이랑 긴밀히 연락할 수 있도록 지원···.”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이자성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더지들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반드시 자리를 지키겠다고 장담하고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두더지들이요? 몇 명이나···?”

“일단 넷. 모두 간부들이다. 둘이 남긴 하겠지만, 하위 직급들이라 보내오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자웅이 입술을 깨물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치가 떨렸다.

유지훈이란 존재. 갈아 마셔도 부족할 것 같았다.

“소용없어진 두더지들도 폐기해야겠군요. 그 부분도 길드에 맡겨주십시오.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그 부분도 길드에? 바람직한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이자성의 어조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이자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길드와 끈이 닿아있는 빌런들을 활용하면 됩니다. 신화의 이름에 절대 누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자성이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유지훈과 두더지에 관해서는 네게 맡기겠다. 대신 그 외에는 당분간 모든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해라. 길드 관련 업무도 마찬가지다.”

“길드 관련 업무까지요?”

“그래. 그룹 법무실이랑 협력해서 소환 조사 준비도 철저히 하려면 그게 나을 거다.”

“알겠습니다.”

이자웅이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이자성이 씁쓸한 눈빛으로 이자웅의 어깨를 다독였다. 맏형의 모습으로 돌아온 분위기였다.

“다 너를 위해서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야마가토 쪽은 나와 나연이가 어떻게든 수습할 테니, 각자 잘 마무리하자꾸나.”

“네. 부회장님.”

“이번엔 형제간의 대화였다.”

“네. 형님.”

자상한 큰형의 모습으로 이자웅을 바라보던 이자성이 뭔가 생각난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두더지가 이상한 말을 하더구나.”

“무슨 말입니까? 형님.”

“마철진 초인이 나카무라 형제를 처치한 현장에서 유지훈을 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유지훈 그 자식이 마철진 초인이랑요? 둘이 무슨 관계길래요? 잘못 본 거 아니랍니까?”

이자웅이 뭔가 떠오른 듯 언성을 높였다.

“그게 다 자걸이 그 자식 때문입니다. 그 자식이 마철진 초인을 만났다고 했거든요. 아마 유지훈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자걸이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해라. 지금 자걸이는 그룹의 미래가 걸린 사안에 몰두하고 있다. 야마가토산업과 관계도 자걸이한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자웅의 불평을 이자성이 단호하게 잘랐다.

“두더지의 추측으로는 유지훈이 마철진 초인이 아끼는 제자의 오빠인 듯하다고 했다. 아마 그런 인연으로···.”

“네? 설마 유지훈 그 새끼가 그 아카데미 생도의 오빠라고요?”

이자웅이 괴성을 쏟아냈다.

신화길드에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유지연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유지훈, 유지연. 그러고 보니 이름도 남매 같았다.

초인이 되는 걸 방해해서까지 자신의 밑으로 데리고 오려 공작을 펼치고 있었는데. 다시금 유지훈과 복잡하게 얽히게 된 셈이었다.

한편 이자성은 이상하리만치 놀라는 이자웅이 의아했다.

“왜? 아카데미 생도라는 자, 아는 사람이냐?”

“아닙니다. TV에서 언뜻 본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초특급 몬스터 퇴치 뉴스에서요.”

“우리한테는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그런 자가 유지훈이랑 가족 관계였다니.”

이자성이 혀를 끌끌 찼다.

이자웅은 모르는 척 쓴웃음으로 형에게 동조했다.

한편으로 내심 이를 바드득 갈았다.

‘유지훈, 그 개자식이 유지연의 오빠였다고? 내 그 자식만큼은 결단코 부숴버리고 말 테다. 유지연, 그 년도 초인 꿈도 못 꾸게 만들어 주지. 내 밑에 두고 말겠어. 생각만 해도 통쾌하군. 크하하.’

이쯤 되면 기어코 죽을 곳을 찾아가는 이자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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