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의 폭주 (2)
“저놈은 영감님이 상대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왜 저렇게 됐냐고요.”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 네놈이 끌어들인 놈 아니냐. 나는 저놈이 누군지도 모른단 말이다!”
중요하지도 않은 사안으로 입씨름할 여유는 없었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해야 했다.
“영감님은 누구십니까?”
“마철진이다.”
“마철진이면···.”
유지훈도 모르지 않는 이름이었다.
길드에 근무하던 시절에도 마철진은 초인이었다.
“그래. 대한민국을 통틀어 다섯밖에 없는 초인이다.”
마철진이 으쓱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유지훈이 코웃음을 흘렸다.
“초인 맞긴 합니까? 저놈 기껏해야 레벨 7 수준이던데, 꼼짝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하시더만.”
“그러니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거 아니냐!”
“저는 영감님이 저 자식 하늘 위로 날려버리는 장면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빡빡이 제압한 뒤 다시 보니 영감님이 맞고 계셨습니다.”
“내가 언제 맞았다는 거냐!”
“저놈 손짓에 넘어지셨잖습니까.”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묻는 거다. 틀림없이 내가 토네이도로 날려버렸는데.”
“저는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압니까.”
도돌이표였다.
같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할 상황을 전환한 건 마철진이었다.
“목은 괜찮은 거냐? 놈의 특성에 당한 것 같던데.”
목의 상처는 거의 아문 상태였다.
피에 가려 아물어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지훈은 본능적으로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직 재생 능력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진 않았다.
짐짓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스친 정도입니다. 견딜 만합니다.”
“다행이구나. 그런데 왜 저놈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거냐?”
“쫓기다뇨. 다 보셨을 텐데. 제가 유인한 거였습니다.”
“끄응. 그래. 왜 유인한 거냐?”
유지훈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영감님은 혹시 저놈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지도 모르고 유인했다고?”
“누군지 알아내려고 유인한 거였습니다.”
“제길. 왜 말리는 거 같지···.”
마철진이 입술을 씰룩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나도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짐작 가는 곳이 있을 뿐이다.”
“동영, 아니 일본의 무술을 사용하던데, 일본 놈들입니까?”
마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마가토산업의 각성자 그룹에 속한 놈들 같다.”
“야마가토산업이요? 거긴 재벌 기업 같은 데 아닙니까? 우리로 치면 한양이나 신화 같은.”
“보기엔 그렇지. 실질적으로는 정재계는 물론,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과시하는 권세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마철진이 진지하게 듣는 유지훈을 보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야마가토산업은 야마구치 가문과 가토 가문, 두 가문이 손을 잡고 탄생시켰다. 가토 가문이 기업 쪽을, 야마구치 가문은 정치와 사회 쪽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럼 저놈들은 야마구치 가문에 속한 놈들이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야마구치 직계는 아닐 거다. 그랬으면 경호원을 수십은 달고 다녔겠지. 가신 그룹의 신예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유지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략 상황이 그려졌다. 신화와 연관성에 대한 심증도 굳어졌다.
마철진에게 사정을 설명할 때였다. 물론 자세한 내막까진 이야기하지 않았다. 클럽에서 놈들의 만행까지만 말했다.
“완전 쳐죽일 놈들이구나! 어딜 쪽발이 새끼들이 남의 나라에 와서.”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런데도 경찰이라는 놈들은 와서 굽신거리기나 하고···.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선 겁니다.”
“훌륭하다! 내 애제자의 오빠로 손색이 없어.”
“네?”
“아니다.”
마철진이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이제 마철진의 사정을 들을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영감님은 왜 저를 쫓아오신 겁니까?”
“그러니까 그게···.”
신화그룹 차남의 사주(?)를 받고 뒤를 밟아왔다고 털어놓을 순 없었다. 초인의 입장에서 몹시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어떻게 둘러대나 고민하다가 유지연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임정명 초인 병문안을 갔다가 네 이야기를 들었다.”
“제 이야기를요? 임정명 초인이요?”
“그래. 재미있는 녀석이라 하더구나. 알고 보니 아끼는 제자의 오빠이기도 해서 나 역시 관심을 갖게 됐다.”
“아끼는 제자면···. 아~, 영감님 아카데미에 강의 나가시는구나. 지연이 가르치신 모양이네요.”
“그렇지. 훌륭한 제자지. 아카데미에서 단연 돋보이는 녀석이다.”
“그런데요?”
“그런데 뭐?”
마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아끼는 제자의 오빠라고 몰래 뒤를 쫓을 이유는 없잖아요.”
“그렇지. 그게 이유는 될 수 없지.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마철진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유를 설명했다. 제자를 구실삼긴 했지만, 사실이기도 한 이유였다.
“네 녀석에 대해 관심을 두고 알아봤는데, 길드를 만들려 하더구나. 각성자도 아닌 녀석이 길드라···. 마스터도 될 수 없는데 무슨 길드일까 궁금했다.”
“제가 꼭 마스터일 필요는 없죠. 어차피 주인인데요.”
“그래도 아무나 마스터 자리에 앉힐 순 없을 텐데, 생각하다가 지연이를 떠올리게 됐다. 이놈 지연이를 마스터로 하려는 거구나라고.”
유지훈이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았다.
지연이를 마스터로? 그 잔소리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어림없지.
그런데 최금강에 이어 마철진까지 왜 다들 지연이를 마스터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걸까? 내정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잘하면 재미있는 상황을 맞이할 것 같았다. 잠자코 들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지훈의 모습에서 마철진은 인정한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절대 안 된다! 지연이가 길드 마스터라니!”
“왜요? 남매가 손잡고 몬스터도 때려잡고, 빌런 놈들도 처단하고.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안 된다니까! 지연이는 초인이 돼야 할 국가적인 인재다. 길드 소속이 돼선 안 된단 말이다!”
“어휴~.”
유지훈이 짐짓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국가가 있기 전에 가족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지연이는 누구보다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길드 만든다고 하면 당장에···.”
“안 된다고! 지연이 앞에선 길드라는 단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마라. 그 녀석은 반드시 초인이 돼야 해.”
“아니 지연이가 초인이 될지 어떨지 어떻게 아시고···.”
“된다. 안 되면 내가 되게 만들 거다.”
유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영감님이 초인이라고 해도 남의 가족 문제에 이렇게 개입하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부탁한다! 나 그거 부탁하려고 너를 쫓아온 거다.”
“아휴. 이거 참···. 간판도 세우기 전에 스텝부터 제대로 꼬이네.”
유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마철진은 연신 유지훈의 눈치만 살폈다.
“좋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제가 양보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그래. 고맙다.”
“그런데 공짜로는 안 되겠습니다.”
“뭐?”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출범과 동시에 대한민국 최고 길드가 될 기회가 날아가 버린 셈인데요. 상응하는 대가는 있어야죠.”
“그, 그럼 뭘 원하냐?”
초인 마철진이 넘어왔다. 이제 지를 순간이었다. 마구마구.
“영감님이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뭘 어떻게···.”
“일단···.”
유지훈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카무라 히로의 시체를 가리켰다.
“저놈, 영감님이 해치운 것으로 해주시죠.”
“뭐! 저놈은 네가 칼로 난자해서 죽이지 않았느냐.”
“곤란하세요? 그럼 지연이랑 통화해야죠. 뭐.”
유지훈이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냈다.
마철진은 격렬하게 손을 휘저으며 만류했다.
“아니다. 내가 죽인 것으로 하겠다. 그런데 목격자가 있지 않으냐. 저놈이 딴소리를 하면···.”
마철진이 양손이 뒤로 묶인 채 엎드린 모습으로 제압당한 나카무라 카이토를 가리켰다. 필사적으로 회피할 구실을 찾는 양상이었다.
유지훈이 빙긋 웃음으로 제압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진작에 떡실신 시켜뒀으니까요.”
카이토는 혼절한 상태였다. 유지훈이 제압하면서 머리를 내리쳐 의식을 잃게 했다.
“주도면밀한 자식···.”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자주 그리고 많이요.”
“또?”
“이걸로 퉁 치려 하셨습니까? 그럼 지연이한테 전화해야죠. 뭐.”
“개자식···.”
“감사합니다.”
마철진이 투덜거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국가안전본부였다.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한 뒤 수습을 요청했다.
초인은 장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존재. 장관급인 국가안전본부장과 동급이었다. 마철진의 요청은 지시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외국 각성자의 입국 기록이 남지 않은 문제로 곤란을 겪던 국가안전본부였기에, 마철진의 연락은 단비나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서둘러 현장 수습 인원을 보내겠다고 했다.
유지훈과 마철진은 히로의 시신을 살폈다.
마철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사정이 어찌 됐든 외국의 각성자가 죽은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외교 문제로 비화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영감님이 처치한 것으로 하자는 거 아닙니까.”
유지훈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초인은 전 세계를 통틀어 200 남짓에 불과했다. 몬스터가 지구를 휩쓴 대격변의 시대에 구원자로 추앙받는 존재였다.
초인이 연루된 문제는 어느 정도 양해되곤 했다. 히로의 죽음도 형제들의 책임으로 귀결지을 수 있을 터였다. 잡음은 있겠지만.
“그나저나 이놈 어떻게 된 겁니까? 폭주할 때 보니까 레벨이 확 올라가는 것 같던데요?”
“그러게. 나한테도 벅찼다. 레벨 8을 넘어섰다는 의미지.”
“외양도 괴상해졌어요. 덩치도 커지고, 눈도 시뻘게지고···. 아예 눈동자가 없던데요. 몬스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마철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식을 잃었겠거니 여기고 너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그렇게 돼 있었다. 입 주변의 피를 쓱 닦더니 몸을 일으키는 것 같긴 했는데···.”
“입 주변의 피를 닦았다고요?”
유지훈의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굳이 말하진 않았다. 마철진에게 말할 사안은 아니었다. SSG의 변태와 상의해야겠다 여기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변신 계열의 특성이라고 보기도 무리가 있는데···.”
“그건 왜죠?”
“변신 계열의 특성이 각성의 레벨을 올리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이놈은 다른 특성을 보유했고. 특성을 둘 이상 지닌 경우는 없으니.”
“그렇군요.”
특성을 둘 이상 지닌 경우가 있다. 비각성자 유지훈.
유지훈 또한 히로의 폭주가 특성과 관련 없다고 여겼다. 이 부분은 좀 더 세심하게 파고들어야 할 대목이었다.
그러는 사이 국가안전본부 직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밤 10시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는데도 서른 명 가까이 동원됐다.
유지훈에겐 낯익은 인사도 두엇 눈에 띄었다. 며칠 전 본부에서 인사드린(?) 간부들이었다. 곧 국가안전본부를 떠날 운명의.
“아이고~. 마철진 초인님. 안 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본부가 발칵 뒤집혔는데. 초인님께서 몸소 해결해주셨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사내가 마철진에게 달려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연신 굽신굽신 인사를 건넸다.
“국장이 직접 왔는가? 늦은 시간인데 괜한 수고를 끼친 것 같군.”
“아닙니다. 각성자관리국의 중대 이슈였는데요. 당연히 와야죠. 부국장을 비롯한 간부 전원이 총출동했습니다.”
“외교 문제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네.”
마철진이 각성자관리국장에게 저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유지훈에게 들은 클럽 사건까지 곁들였다.
“아이고. 아주 질이 나쁜 놈들이었네요. 초인님께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큰일 하셨습니다. 일본 애들 지랄하면 오히려 저희가 외교 문제 삼겠다고 큰소리쳐야겠습니다.”
“그럼 국장에게 믿고 맡기겠네.”
현장에는 강은영도 왔다.
강은영은 나카무라 형제 처리 과정을 함께하면서 유지훈에게 눈짓했다. 휴대폰을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따로 이야기하죠. 여긴 보는 눈이 많으니.]
현장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카이토의 신병은 각성자관리국에서 맡기로 했고, 히로의 시신은 의료센터 영안실로 보낸 뒤 정보기획부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마철진이 떠나려 하자, 국가안전본부 간부들이 우르르 배웅하러 달려들었다.
그 틈에 유지훈은 냉큼 강은영의 차에 올라탔다.
“방향 같으니까 좀 태워줘.”
“내가 어디로 갈 줄 알고 방향이 같대요?”
“그대가 가는 곳이 곧 내가 가는 곳이야.”
“지랄···.”
한참을 달린 다음에야 강은영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마철진 초인님이 왜 유지훈 씨랑···?”
“그 전에 나랑 이야기된 것들은 어떻게 돼가? 보니까 나갔어야 할 인사들이 보이던데?”
급박하게 흘러간 며칠 사이 사건들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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