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색출 작전 (2)
강은영은 출근 이후 줄곧 안절부절못했다.
유지훈이 오기로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 정말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건지.
[도착했어. 내려와서 에스코트해줘.]
전화를 받고 안내 데스크로 내려갔다.
감색 정장을 멀끔하게 갖춰 입은 미남자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쪽 손엔 명품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나한테 저러나? 누구지? 오지게 잘 생겼네.’
뒤를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었다.
“저요?”
“장난치지 말고 빨리 와서 안내나 해.”
유지훈이었다.
근사한 정장 차림에 단정하게 머리까지 손질하니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못 알아봤다.
“무슨 일이에요? 선이라도 보러 가는 거예요?”
“인사드리러 온다고 했잖아. 예의는 갖춰야지.”
“쇼핑백은 또 뭐예요?”
“인사드리러 오는데 빈손으로 올 수 있나?”
강은영이 아래위로 유지훈을 훑어봤다.
“왜? 봐줄 만한가? 오랜만에 미용실도 다녀왔는데.”
“평소에도 이러고 좀 다니지 그랬어요. 사람이 달라 보이네.”
“안 어울리는 거 알면서 왜 그래?”
“하긴. 이러고 다니면서 막 썰고 그러면 한결 섬뜩하겠네요.”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차림새가 바뀌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테니.
오히려 더 불안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이야기 나눈 대로 의심 가는 인물에게 안내했다.
첫 타자는 던전관리국장 고규대였다.
“국장님. 인사드리고 싶다는 분이 있어서···.”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유지훈이 넙죽 고개부터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90도로 허리를 굽히더니 덥석 손을 잡기까지 했다.
“저는 초인양성아카데미 유지연 생도의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아, 네···. 그런데 저는 무슨 일로···?”
“지연이가 아카데미 최초로 초인이 될 수 있도록 응원 좀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는데···.”
유지훈이 쇼핑백에서 고급스럽게 포장된 선물을 하나 꺼냈다.
“약소합니다. 오는 길에 세일 중이라는 안내문을 봐서요···.”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데···. 제가 이 브랜드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시고···.”
고규대가 못 이기는 척 선물을 받아 챙겼다.
“실은 정가에 샀습니다.”
“저런! 세일 중에 정가에 사셨으면, 신상이라는 말씀인데···.”
“계산할 때 보니 세일 제외 품목이었습니다.”
“아. 동생분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신 모양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도움이 돼 드리려고 받은 건 아닌데요. 그럴 위치도 아니고···.”
“응원만.”
“아, 네 응원만···.”
유지훈이 다시금 90도로 허리를 굽힌 뒤 고규대와 작별했다.
고규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서둘러 포장지를 끌렀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뭐하자는 거예요?”
“보면 몰라? 동생을 위해 헌신하고 있잖아. 다음은 누구야?”
각성자관리국 부국장, 인사지원실장, 전략지원부장, 정보기획부장 등 평소 의심하던 간부들에게 차례차례 안내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초인양성아카데미 유지연 생도의···.”
유지훈은 넙죽넙죽 인사했고, 덥석덥석 손을 잡은 뒤, 불쑥불쑥 선물을 건넸다.
“뭐 이런 걸 다···.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오빠가 이러기 쉽지 않은데···. 하긴 동생이 초인이 되면···.”
“동생분 초인 되시면 저 좀 어떻게···.”
간부들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선물은 알뜰히 받아 챙겼다.
심지어 한술 더 뜨는 인간도 있었다.
“혹시 색깔이 마음에 안 들면 교환은 어떻게···?”
“열흘 이내에 영수증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가 끝났다.
“더 없지? 선물 준비해온 거 다 떨어졌다.”
“없어요. 대체 뭘 한 거예요? 만나면 방법이 있다더니, 되지도 않을 청탁이나 하고. 알아내긴 한 거예요?”
“청탁은 무슨. 들어줄 능력도 안 되는 양반들한테.”
“그걸 알면서 선물을 갖다 안긴 거예요? 보니까 F사 넥타이 같던데. 제법 비싼 거잖아요.”
“줄 만하니까 준 거야. 앞으로 벌어질 일도 있고 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그래서 알아냈어요? 누구예요? 각성자 입국 기록 남지 않도록 손 쓴 사람이요.”
강은영이 다그치듯 물었지만, 유지훈은 손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 몰라. 오랜만에 양복 입었더니 불편하네. 가서 좀 쉬어야겠어.”
“이러고 그냥 가겠다고요?”
“그럼 계속 있을까? 뭐할까? 우리 강은영 팀장님이랑.”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유지훈이 휘적휘적 국가안전본부 청사를 나섰다.
“그래서 이걸로 끝난 거예요?”
“응. 끝이야. 이따가 한잠 자고 일어나서 전화할게.”
강은영은 온종일 유지훈의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벨은 끝내 울리지 않았다. 퇴근 시간을 지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이번 유지훈의 한잠은 이튿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강은영은 밤새 전화를 기다리느라 뒤척였다. 출근길에 오를 무렵이 돼서야 전화벨이 울렸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침 인사가 격하네.]
“한잠 자고 전화한다면서요! 다음날 전화할 거면 말을 했어야죠.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요!”
[진짜 한잠 자고 전화한 건데?]
“무슨 한잠이···.”
[요 며칠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 모처럼 깨지도 않고 푹 잘 잤어.]
“그래서 누구예요?”
[뭐가?]
“신화든지 어디든지 결탁해서 각성자 기록 가지고 장난친 인사가 누구냐고요.”
[몰라.]
“모른다고요?”
[응. 몰라.]
“알아내겠다고 만난 거 아니었어요?”
[내가 언제? 방법이 있다고만 했던 것 같은데···.]
“장난해요! 그게 그 말이잖아요!”
강은영이 기어코 버럭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신경이 예민해진 상황에, 유지훈은 말장난으로 일관하니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의도하는 대로 다 됐구먼.]
“뭐가 의도하는 대로 됐다는 거예요? 모른다면서요?”
피식 웃음이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응. 몰라. 그래도 문제는 다 해결됐어.]
“모르는데 해결은 무슨 해결···.”
[그 양반들 다 내보내. 그럼 해결된 거 아냐?]
“네? 그게 무슨···?”
[국가안전본부에는 각성자만 있을 수 있다며? 그 양반들 이제 각성자 아니니까 내보내라고.]
“네??? 대체 무슨 짓을···.”
강은영은 소스라치게 놀라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유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 양반들 다 나가면 외부랑 내통하는 인사도 없을 거 아냐. 그럼 문제는 해결된 거 맞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강은영이 폭발했다.
“그중에 외부랑 내통한 적 없는 사람 있으면 어쩌려고요? 애먼 사람 잡는 거잖아요!”
[그러게 확실히 의심되는 양반들만 추리랬잖아. 억울한 양반 있으면 그건 전적으로 그쪽 탓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리고 딱 보니까 다들 냉큼냉큼 잘 받아 챙기더만. 어떤 식으로든 해 먹고 있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들 연식이 오래되기도 했고. 배에 기름만 줄줄 흐르고, 눈엔 욕심만 이글이글한 게 슬슬 물러날 때도 된 양반들이던데.]
듣다 보니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강은영 나름대로 결탁의 의심이 확실하던 인사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각성자들 입국 문제는···.”
[그건 이제부터 그쪽이 알아서 해야지. 밥상 차려줬으면 됐지, 떠먹여 주기까지 해야 해?]
“하아. 대책 없이 사고 쳐놓고 나한테 수습하라는 거네요.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한숨을 내쉬던 강은영의 뇌리에 뭔가 떠올랐다.
“혹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지 않을까요?”
꼬리 자르기. 신화그룹이든 어디든 쓸모없어진 내통자에 대한 처리에 나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외국의 각성자들을 몰래 입국시켜 문제가 될 수 있는 시점에는. 화근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바보는 아니었군.]
“그런 시도를 추적하면 누구와 결탁했는지 알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나랑 다니더니 머리도 제법 잘 돌아가네.]
“머리는 원래부터 잘 돌아갔어요! 유지훈 씨 때문에 바보가 돼 가고 있었다고요.”
[아닌 것 같은데···.]
유지훈이 너털웃음을 짓더니 계획을 추가했다.
[그 양반들 내보낼 때 선물 하나씩 안겨 줘.]
“무슨 선물이요? 퇴직 선물은 이미 유지훈 씨가 준 거 아니었어요? F사 넥타이로.”
[그건 내 선물이고, 그쪽도 하나 줘야지.]
“그래서 뭘 줄까요?”
[5년 전 던전 폭발 사고 관련해서 신화그룹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고 흘려. 증인이 나서기로 했다고.]
“증인이라면···?”
[나지. 누구긴 누구겠어.]
유지훈이 이번 계획의 핵심으로 염두에 둔 부분이었다.
각성을 소멸당해 국가안전본부에서 물러나게 된 고위 인사. 신화그룹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당연히 꼬리 자르기에 들어갈 상황.
이를 면할 카드가 필요한 해당 인사 처지에선 증인에 관한 정보로 신화그룹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할 터. 신화그룹이 본격적으로 유지훈을 상대로 손을 쓰도록 유도하는 계획이었다.
[내가 먼저 상대를 도발하진 않는다고 했잖아. 그러니 도발해 들어오도록 해야지. 지금까지처럼 어설프게 말고 제대로. 그래야 나도 확실하게 응징할 수 있을 테니.]
“위험해요. 안 그래도 각성자들 행적이 파악되지 않고 있어요. 유지훈 씨를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주면 고맙고. 그놈들 어떻게 찾아야 하나 싶은 참이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쪽은 그쪽 일이나 잘 마무리하셔. 그 양반들부터 잘 내보내고. 그때그때 진행 과정 알려주고.]
길었던 통화가 마무리됐다.
강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양반들을 다 내보내라니···.”
마음에 걸렸다. 심증은 확실했지만, 물증은 없었다.
유지훈을 괜히 끌어들인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편으로 가슴 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상쾌한 기분.
“아싸! 고 국장 새끼 쫓겨난다! 고복절이 멀지 않았구나.”
***
나카무라 히로와 나카무라 카이토. 일명 나카무라 형제는 닷새째 한 인물을 추적 중이었다. 예정된 행보에서 벗어난 행위였다.
일본 정재계 최대 세력 야마가토산업. 나카무라 형제는 야마가토산업의 주인 야마구치 가문 가신 그룹의 엘리트들이었다.
형제는 야마가토산업과 신화그룹의 밀약과 관련한 임무를 받고 내한했다. 임무는 완수했다. 예정대로라면 이틀 전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한국에 남아 있었다.
클럽에서 마주했던 사내 때문이었다.
“비각성자 아니었나?”
“중원의 무공을 사용하기까지 하더군.”
흥미로웠다. 지시를 어겨가며 예정에 없던 행보에 들어갈 정도로.
나카무라 형제는 레벨 6 각성자였지만, 야마구치 가문의 가전 무예를 익힌 덕분에 어지간한 레벨 7 각성자를 능가하는 전투력을 지녔다. 스스로는 초인에 버금간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클럽에서 마주한 비각성자가 그들의 아래가 아니었다.
몸놀림만으론 그들을 압도했다. 특성을 구사한 카이토의 어깨에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다.
“재미있는 놀잇감을 두고 그냥 갈 순 없지.”
귀국을 늦추는 건 위험했다. 신화그룹의 지원을 받아 각성자 정체를 숨긴 상태였다. 드러나면 외교 문제로 비화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카이토의 어깨 부상이 가볍지 않았다. 병원 치료가 시급했지만, 응급조치로 대신했다.
“본사에서 허락은 떨어졌나?”
“가급적 생포해서 데려오라더군.”
“가능할까? 만만치 않은 녀석이던데.”
“최악의 경우 팔다리 하나씩은 날려야겠지.”
야마가토산업에서도 흥미를 느꼈다. 문제의 사내에 대한 신병 확보를 지시했다. 주한 일본 대사에게 지원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나카무라 형제에게 새로운 임무가 하달된 셈이었다. 사내, 유지훈을 일본으로 잡아 오라는.
형제는 클럽에서 나온 이후 줄곧 유지훈을 추적했다.
출발점은 유지훈의 일행이었다. 설렁탕집부터 시작해 뒤를 밟았고, 본거지를 알아냈다. 은신과 추적은 형제의 전공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클럽에서 유지훈을 도와준 의문의 세력이 걸림돌이었다. 조심스럽게 은신과 추적을 반복해야 했다.
유지훈 주위에서 어떠한 세력의 흔적도 감지할 수 없게 된 이후에도 조심스러운 추적을 이어갔다.
마침내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다. 은신을 풀고 덮칠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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