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색출 작전 (1)
길드 사무실을 구했다. 가정집을 개조한 2층 건물이었다. 잡일에 능한 엄덕대가 발품을 팔아 좋은 가격에 구매했다.
길드 구성원도 하나둘 채워 넣었다. 1호는 엄덕대가 직접 스카우트한 베이글녀 강민정. 첫 사냥에서 팔을 잃은 각성자도 고민 끝에 합류를 결정했다. 36세의 레벨 2 각성자 이상목.
“나보다 여섯 살 위이긴 한데, 형 대접은 안 할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사람마다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기대도 안 했습니다. 쓸모없는 사람 불러준 것만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 와서 놀게 할 생각은 없어. 쓸모 있게 만들 거니까 걱정 말고, 각오나 단단히 하라고.”
박형식이 추천한 각성자 셋 중 하나는 채용이 확정됐다. 레벨 1 던전에서 제법 쏠쏠한 활약을 펼친 결과였다. 나머지 둘은 일단 보류.
“조정훈 씨는 레벨 2라고? 실력은 레벨 3이라 해도 되겠던데?”
“험하게 구른 덕분입니다. 먹고 살려다 보니···.”
“형식이랑 갑이네? 덕대까지 셋이 친구 먹어. 나는 형이라 부르고.”
새로 합류한 인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휴지와 세제를 주렁주렁 달고 나타난 강은영이었다.
“레벨 4 각성자도 없이 머릿수부터 채우는 거예요? 사무실은 그럴싸하군요. 어쨌거나 축하드려요.”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최금강 마스터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최금강은 사무실을 구하자마자 다녀갔다. 사무실을 둘러보고는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지원도 약속했다.
“영감님은 길드 출범하면 바로 합동 작전 진행하자고 하시더군.”
“그거 좋네요. 태광길드랑 같이 사냥 나가면 좋은 견학이 될 거예요. 고레벨 던전도 경험할 수 있고요.”
강은영이 주렁주렁 달고 온 짐들을 불쑥 내밀었다.
“이것부터 좀 받아요. 무거워 죽겠네.”
“뭐 이런 걸 다···. 뭐야. 먹을 건 하나도 없네? 간식이나 좀 사 오지.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니까.”
“뭐예요! 기껏 힘들게 들고 왔더니.”
“됐고. 왜 왔어? 국가안전본부 되게 한가한 곳인가 봐? 국민의 피땀이 깃든 세금을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거야?”
“일 때문에 왔다고요!”
강은영이 발끈하더니 냉장고로 가서 비타민 음료 한 병을 꺼냈다. 한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 앉았다.
“성냈더니 목마르네.”
“얼씨구! 완전 자기 집이네?”
“이거 하나 꺼내 먹었다고 짜게 굴지 좀 마요. 남자가 좀스럽게.”
“그래. 미리 익숙해지는 것도 나쁠 건 없지.”
유지훈이 피식 웃고는 물었다.
“그래. 아직 문도 안 연 길드엔 무슨 일이야? 혈세로 운영되는 국가안전본부의 팀장님께서?”
“본부에 난리가 났어요.”
“난리?”
“외국의 고레벨 각성자가 입국했는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요. 발칵 뒤집혔어요. 그거 수습하는 중이에요.”
“그걸 왜 여기 와서 수습해?”
유지훈이 짐짓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런 일이라면 각성자관리국 소관 아닌가? 던전관리국 팀장님이 왜 수습한다고 이러실까?”
“말했잖아요! 잡다한 일은 다 나라고. 곤란한 일 생기면 나는 일단 무조건 투입이라고요.”
“국민 혈세를 허투루 쓰진 않는군. 그래서 여긴 왜?”
“몰라서 물어요? 유지훈 씨도 관련돼 있잖아요.”
“아···.”
유지훈이 콧잔등을 긁적였다.
“그걸 국가안전본부에서 안단 말이야?”
“알면 내가 왔겠어요? 대규모 인력 동원해서 신병 확보부터 하겠죠. 최금강 마스터님한테 듣고 왔어요. 버닝 스타인지 뭔지에서···.”
때마침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버닝 스타 사건이었다. 범죄 조직 간 난투극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강남서 간부 포함 경찰 여섯이 희생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와중에 고위층 자제들이 마약 난교 파티를 벌이다가 적발됐다는 소식도 조그맣게 다뤄졌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가 포함된 점에 포커스가 맞춰진 보도였다.
“하여간 가는 곳마다 대형 이슈예요. 이번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게 생겼어요.”
“그게 어디 내 탓인가. 음침한 데서 약 빨고 괘씸한 짓 하는 놈들 때문이지. 그게 내 눈에 띄었을 뿐이고.”
유지훈이 입맛을 다시더니 물었다.
“저 망나니 새끼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싸그리 잡아 가둬다가 콩밥 먹이는 거겠지?”
“모르죠. 고관대작 집 자제들인 모양인데, 적당히 힘써서 빼내겠죠. 처벌받는다 해도 기껏해야 벌금형이나 집유일 거고요.”
“으음···. 세상이 나를 가만히 있게 놔두질 않는구먼. 저 망나니 새끼를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는 대로 알려줘. 인적 사항도 조사해주고.”
“하아!”
강은영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쏟아냈다.
“그걸 왜 나한테 시켜요? 내가 유지훈 씨 비서도 아닌데.”
“정의로운 세상 만들어야 할 거 아냐. 그러라고 그쪽도 국민 혈세에서 월급 받는 거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생각 좀 해.”
“에휴~. 뭐 좋은 꼴 보겠다고 여길 왔는지. 내가 미친년이지.”
강은영이 투덜투덜하더니 물었다.
“그런데 유지훈 씨, 조용히 살고 싶다 그러지 않았어요?”
“응?”
“저번에 내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랬잖아요. 그동안 삶이 너무 피곤해서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요.”
“맞아. 조용히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어.”
“그런데 왜···?”
“조용히 살기 위해서 이러는 거야.”
유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려면 조용히 살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할 거 아냐.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놔둬?”
“그게 무슨···?”
“조용히 살려면 마음부터 평화로워야 해. 그런데 평화를 깨는 놈들이 막 나와. 그럼 어떻게 해? 치워버려야 하지 않겠어?”
“아, 네···.”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알지 모르겠지만, 나 되게 힘들게 살았어. 삶이 억울해서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을 정도였어. 너무 끔찍한 기억이야. 지옥 같았거든. 그런 상황이 다시 펼쳐지는 게 싫어.”
“······.”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억울해지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아. 그런 부조리를 치워버려야 조용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적어도 내 눈에 띄는 부조리라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강은영이 쓸쓸하게 웃었다. 왠지 가슴이 쓰라렸다.
고난, 억울함, 부조리···. 몸소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괜히 울컥했다. 목으로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누르기 위해 비타민 음료를 마셨다. 빈 병이었다.
“쩝···.”
“말 나온 김에 나도 하나 묻지.”
“뭔데요?”
“왜 그러고 사는 거야?”
“내가 뭘요.”
다시금 울컥했다.
감추려고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얻을 거 있다고 그렇게 낑낑거리며 사냔 말이야. 국가안전본부 팀장? 대단할 것도 없잖아. 수모를 견디면서 지키기엔.”
“휴우. 맞아요. 뭐 얻을 거 있다고 이러고 사는지···.”
강은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이유는 분명 있었다.
“내 능력을 보람있게 사용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능력?”
“나 레벨 5 각성자예요. 유지훈 씨에겐 대단치 않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정도는 돼요.”
“그런 의미 아니었어. 사과할게.”
강은영이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왠지 처연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예뻤다. 화장도 안 하고, 선머슴처럼 다녀서 눈에 띄진 않았지만, 강은영은 미인이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처음엔 헌터가 돼 몬스터 퇴치에 앞장서고 싶었어요. 길드에 들어가 헌터로 근무했죠.”
“그런데 지금은 왜 국가안전본부에 있는 거지? 벌이도 헌터 쪽이 훨씬 나을 텐데.”
“레벨 5는 어중간했거든요. 대단한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드를 주도할 위치도 될 수 없고. 그냥 돈이나 버는 게 전부더라고요.”
유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길드 근무 경험이 있었기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대형 길드에선 중간 간부 수준에 불과한 레벨 5. 주어진 일에 빠져 살다 보면 직업 헌터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터였다.
“헌터들을 지원하는 분야가 능력을 더욱 보람있게 사용할 영역일 것 같았어요. 각성자관리국이나 던전관리국에서 길드 헌터들이 더 쉽게 더 많은 몬스터들을 퇴치할 수 있도록 돕는 거요.”
“일리가 있는 선택이었군.”
“그랬죠. 한동안 제법 보람을 찾으며 일했는데, 그 사건 이후 꼬여버렸어요. 유지훈 씨도 관련된 던전 폭발 사고요.”
강은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조리, 억울함, 뭐 그런 상황이네요. 수모를 견디는 이유요? 모르겠어요. 견디다 보면 다시 보람을 찾을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신념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할까요?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멋지네.”
유지훈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강은영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지어 보인 따스한 미소였다.
“강은영 팀장님. 멋진 사람이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머지않아.”
예상치 못한 격려에 강은영은 다시금 울컥했다. 이번엔 울음이 북받쳐 오르기까지 했다.
물론 두고 볼 유지훈이 아니었다. 철벽으로 대응했다.
“그렇다고 울거나 그러진 마. 그런다고 안아주고 달래주는 일은 없을 거니까.”
“누굴 안아준다는 거예요! 이거 엄연한 성희롱이에요!”
“시끄럽고. 이제 일 해야지. 세금으로 월급 받는 강은영 팀장님.”
“쥐꼬리만 한 월급 가지고···.”
본격적인 용무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기록 없이 입국한 각성자들이 어쨌다는 건데?”
“아직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위에서 본부로 파악해서 조치하라고 지시가 내려온 상태예요.”
“난리 났다길래 국가안전본부가 발칵 뒤집히기라도 한 줄 알았네.”
“맞아요. 발칵 뒤집혔어요.”
강은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본부 문제예요. 그것도 심각한. 외국의 고레벨 각성자가 입국했는데, 모르고 지나갈 뻔한 거잖아요. 심지어 기록을 남기지 않는 과정에 본부 인사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고요.”
“듣고 보니 그렇군.”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각성자의 출입국은 본부 각성자관리국에서 관리하게 돼 있어요. 공항 출입국관리소에 인력을 파견해서요.”
“그런데 기록이 없다? 분명 누군가가 관여했군. 출입국관리소 쪽을 조지면 바로 알 수 있지 않나?”
강은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요. 기록 자체를 안 남겼을 수도 있지만, 기록을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거든요. 누군가 손을 써서요.”
“복잡하네. 어쨌거나 찾아내면 관련자들을 모조리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 각성자 놈들의 정체랑, 놈들을 국내로 들인 작당들까지.”
유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혹시 본부 말고 다른 쪽에서 손 썼을 가능성은 없는 거야?”
“몹시 희박해요. 각성자에 대한 관리가 국가안전본부에서 전담하게 돼 있거든요. 그래서 입사 자격이 각성자에 한정되는 거고요.”
“어쨌거나 외부의 누군가랑 결탁해서 법을 위반한 놈이 본부 내에 있다는 뜻이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닐 테고.”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강은영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국가안전본부의 치부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일 터였다.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은 어떤 놈들이야?”
“용의 선상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닌데요. 일단 각성자관리국 간부들은 전원 조사 대상이고요. 그 외에도 출입국관리소와 연관 업무가 있는 부서 간부들도 조사를 받아야 할 거예요.”
유지훈이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아니, 아니. 그런 형식적인 조사는 관심 없고. 그쪽이 의심스러워하는 놈들이 있을 거 아냐. 평소 내부 자료를 외부로 빼돌린다거나 하는. 이를테면 신화 쪽 같은 곳으로.”
“뭐, 있긴 한데···. 왜요?”
“왜긴. 그놈들 중에 있을 테니까 그러지. 그 각성자 자식들 국내로 들인 게 신화 놈들 같거든.”
“그때 그 사건 이후 나름대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신화 쪽이랑 결탁이 의심되는 인물이 몇 있긴 해요.”
“누구야? 죽 한 번 읊어봐.”
“왜요? 뭘 어쩌려고요?”
강은영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다 방법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의심되는 양반들 인적 사항이나 알려줘. 아니다. 직접 만나보는 게 낫겠다.”
“만난다고요? 어디서요?”
“어디긴. 국가안전본부지. 그 양반들이 어디로 오란다고 오겠어? 거긴 아무나 못 들어가지? 그쪽이 나 좀 에스코트해 줘.”
“만나서요? 막 썰고 난동 피우게요?”
“아니. 정부 기관에 가서 썰긴 뭘 썰어. 누굴 정신병자 칼잡이로 아나. 얌전히 만나서 인사만 드릴 거야.”
“그럼 알 수 있는 거예요? 유지훈 씨, 설마 마음을 읽는 능력도 있어요?”
강은영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유지훈은 말없이 빙긋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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