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폭적인 지원 (2)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는 말에 미중년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추측이에요.”
유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나름대로 근거는 있고요.”
“들어보고 싶군요.”
유지훈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호광길드에 근무할 때 인벤토리를 담당했어요. 몬스터 부산물 중에 못 보던 것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죠. 총무부장한테 물어봤더니, 별거 아니니 그냥 모아두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미중년의 질문에 유지훈은 대답 대신 하던 말을 이어갔다.
“최근에 비슷한 걸 다시 보게 됐습니다. 던전에서 황소개구리를 사냥하다가 보게 됐죠. 그놈한테는 있어선 안 되는 건데. 독낭입니다.”
무림으로 가기 전 유지훈은 독낭에 대해 알지 못했다. 무림에서 독물을 상대한 이후 독낭의 존재를 알게 됐다.
상당한 가치를 지녔음은 물론이다. 팔아서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기도 했다.
“황소개구리한테 독이라니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다시 말도 안 되는 경우를 접하게 됐습니다. 검치호가 독을 뿜더군요. 황소개구리와 유사한 성질의 독이었습니다.”
“아. 며칠 전 동생분과 함께 해치운 검치호 말씀이시군요. 대외적으로는 동생분이 해치운 것으로 알려진.”
유지훈이 옅은 미소와 함께 양손을 들어 보였다.
“마지막 칼질은 제가 했죠. 그때 뱃가죽을 썰다가 독낭을 봤고요. 황소개구리의 독낭과 흡사한. 크기만 달랐지 생김새는 같았습니다.”
“그 말씀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겠죠. 누군가 인위적으로 몬스터에게 독을 심어 넣은 게 아닐까···.”
유지훈이 말을 멈추고 동의를 구하듯 미중년을 바라봤다.
미중년이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독을 지닌 상위 레벨 몬스터의 영향이겠지 했는데요. 레벨 7인 검치호는 위쪽에 영향을 줄 만한 독물이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인위적인 실험에 의한 결과라고 추측하게 됐습니다.”
“놀랍군요. 유지훈 씨는 기대 이상으로 대단한 분입니다. 오!”
미중년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저희 쪽 조사와 방향이 같습니다. 오히려 유지훈 씨가 한 걸음 앞서간 양상입니다.”
“과찬이시네요. 그쪽 조사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저희도 신화길드에서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은 파악했습니다. 대략 7, 8년 전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고요. 레벨 1이나 레벨 2의 하급 몬스터가 대상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미중년이 다시금 감탄사를 토해내고는 말을 이어갔다.
“검치호까지 실험 대상이 됐을 줄은 몰랐네요. 국내에 검치호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요.”
“검치호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위 레벨 몬스터만 대상으로 했을 텐데, 그놈들이 먹이가 된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번식을 하고, 상위 레벨 몬스터가 놈들을 잡아먹어 독을 얻게 되고···.”
“그렇게··· 된 거였군요. 유지훈 씨 말씀을 빨리 알려야겠습니다. 조사에 속도가 붙을 것 같습니다.”
유지훈이 짧은 탄식과 함께 눈살을 찌푸렸다.
“흐음. 어쩌면 지금 시점에선 조사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
“몬스터의 레벨이 올라가고 있거든요. 레벨 1의 황소개구리가 레벨 3에 육박하고, 레벨 7의 검치호는 재앙급에 근접하고···. 신화 이 개새끼들이 몬스터들을 진짜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아···.”
“놈들의 의도가 뭔지는 그쪽에서 밝혀내야겠죠. 그 새끼들이 괴물을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나라가 쑥대밭이 되는 건 그 새끼들한테도 좋을 리 없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몬스터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상황임은 분명하군요.”
미중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지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신화 놈들한테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것 같던데, 누굽니까?”
“근접해가고 있습니다. 권력층의 인사도 연관돼 있고, 학계 쪽에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싸그리 잡아서 조져버리면 안 됩니까?”
“그게 아직 정점이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꼬리를 잘라버리면 곤란해서···. 국내 세력이 아닐 가능성도 상정해두고 추적 중입니다.”
“국내 세력이 아닐 가능성이라···.”
중얼거리던 유지훈의 뇌리에 뭔가가 떠올랐다.
“아까 그 클럽에 있던 귀한 손님이란 놈들! 놈들이 신화의 손님이면 배후 세력과 관련 있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염두에 두겠습니다.”
유지훈을 바라보는 미중년의 표정에 경이감이 깃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더 놀라운 분이군요. 유지훈 씨. 이제 서른인 걸로 알고 있는데, 오십을 바라보는 저보다 연륜이 깊은 것 같습니다.”
“꼰대 같다는 말씀이신가?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하하. 물론 칭찬입니다. 그런데 혹시···.”
미중년이 잠시 주저하더니 질문을 이어갔다.
“귀환 덕분은 아닐까 여쭙고 싶은데요?”
“귀환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꺼낼 때가 아닌 듯하군요. 좀 더 우호적인 관계가 된 이후에. 물론 전폭적인 지원은 계속돼야 하고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귀환에 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말씀하시겠죠. 기다리겠습니다.”
“좋네요. 힘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많지 않은데.”
무림에 가기 전에도, 무림에서도 유지훈은 대체로 외톨이였다.
무림에선 무신이라는 거물 친구가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대의명분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유지훈을 배척해야 했다.
물론 무신은 은근히 많은 도움을 줬다. 주위 시선을 피하며 도와야 했기에 그 나름대로 적잖은 고충을 겪었을 터였다.
21세기로 돌아온 지금, 전폭적인 지원이라니. 격세지감이었다.
“그럼 유지훈 씨가 저희와 뜻을 함께한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전폭적인 지원이 계속된다면요.”
“하하하. 좋습니다.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유지훈이 그럼 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이내 뭔가 생각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러고 보니 부탁할 게 하나 있었네요.”
“말씀하시죠.”
“저한테 원칙이 하나 있거든요. 먼저 도발하지 않는다. 다만 도발해오면 확실히 끝을 본다. 그러다 보니 좀 죽더라고요. 다 나쁜 놈들이긴 한데···. 뒷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오늘처럼 말씀입니까?”
“그렇긴 한데, 케이스가 다를 수도 있고···.”
“안 그래도 유지훈 씨 뒷정리를 해왔습니다. 설마 몰랐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그런 것 같긴 하더라고요. 계속 좀 잘···.”
미중년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정 수준에선 가능합니다. 다만 오늘 수준을 넘어서는···. 사실 오늘 경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운이 좋아 정리할 순 있었지만요.”
“빌런이나, 빌런에 준하는 놈들에 해당하게 될 겁니다. 제 나름의 기준에서 선은 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유지훈 씨의 기준을 믿어야겠군요. 적당히 부탁드립니다.”
적정선에서 요구가 수용됐다.
그럭저럭 우호적인 관계에 다가섰다.
“한 가지 더. 이번엔 궁금한 겁니다.”
“질문하시죠.”
“그쪽 정체가 뭐죠? 누구랑 손을 잡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미중년이 짧은 한마디를 꺼내놓았다.
“SSG.”
“쓱?”
“하하하. 그게 그렇게도 되는군요. 시크릿 스트래티지 그룹(Secret Strategy Group). 비밀전략국 정도로 해석되는 조직입니다.”
“정부 기관인가요?”
“국가 기관이라고 할 수 있긴 한데, 정부 조직은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말 그대로 비밀 조직이라.”
“복잡하군요. 뭐, 신비롭고 좋네요.”
“신비로움 유지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빙긋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용무가 끝났다. 시계는 오전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정말 징그럽게 긴 하루였다.
카페를 나서기 전 불현듯 궁금한 게 또 하나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든 물어보시죠.”
“그쪽 어쩌다가 변태가 된 거예요?”
“네? 제가 변태? 변태 짓을 하고 다닌 기억은 없는데···.”
***
“그자들이 사라졌다고?”
신화그룹 회장의 장남 이자성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삼남이자 신화길드 마스터 이자웅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을 탓하는 듯한 이자성의 분위기가 언짢은 눈치였다.
“조 사장 그놈이 사고를 친 거요. 확실하게 책임진다더니 칼 맞아 뒈지기나 하고···.”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이번에 그자들 관리하는 건 너한테 맡겨진 거였다. 원래 나연이 역할을 네가 가져간 거라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가져간 거요? 자걸이 견제하느라 형님이 떠맡긴 거지. 나도 그 꼬맹이들 앞에서 굽신거리기 싫었다고요.”
“휴우.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이자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이냐.”
“클럽에서 조직 간에 싸움이 붙은 모양이요. 철부지 새끼들 약 처먹고 지랄하다가 시비라도 붙었나 봐. 와중에 강남서 형사과장 놈도 총 맞아 뒈지고. 하필 그날···.”
“윤 과장 일은 아쉽게 됐구나. 그룹 차원에서 관리한 경찰 쪽 인사인데···. 그나저나 철부지들 가운데 박 여사 조카가 있었던 모양이다.”
“왜? 그년이 형한테 전화해서 지랄해요?”
이자웅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조카 관리나 똑바로 할 일이지.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또 돈 달래? 미친년이 신화가 우습게 보이나. 성질 같아선 확 쓸어버리고 싶네.”
“놔둬라. 곧 제풀에 넘어갈 테니. 그때까지 우리는 박 여사를 활용하면 된다. 그깟 돈 몇 푼, 얻어낼 걸 생각하면 사소한 푼돈에 불과하다. 그건 그렇고.”
이자성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거기에 유지훈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게 그 새끼도 그날 거기 갔었다더라고요. 같잖은 놈이 주제도 모르고 지가 거길 왜 와.”
“혹시 사건과 관계있는 건 아니냐?”
“관계는 무슨. 여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다가 갔겠지. 그나저나 그 새끼만 나타나면 일이 꼬인단 말이야. 어떻게든 아작을 내야 하는데.”
이자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네가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안 건드려도 될 자를···.”
“뭐요? 신화를 우습게 본 놈을 가만히 놔뒀어야 한다고?”
“결과가 그렇지 않냐. 자걸이도 위험한 인물이라고 경고했다.”
“흥! 위험하긴. 지 같은 샌님한테나 위험하지.”
이자웅이 코웃음을 쳤다.
“뒤를 봐주는 놈들이 있어서 그래요. 그놈들만 작살 내면 그 새끼도 바로 끝장이요.”
“배후 세력은 알아냈느냐?”
“그건 아직···. 정부 쪽은 아닌 것 같던데···. 아! 형님이 박 여사 쪽에 알아봐 달라고 해봐요. 내 생각에 박 여사 쪽을 노리는 놈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흐음. 결국엔 아쉬운 소리를 하게 하는구나.”
이자성이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웅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꼬맹이들은 사람 풀어놨으니 곧 찾을 수 있을 거요.”
“이야기한 물건은 잘 건넸느냐?”
“그건 내가 직접 줬으니.”
이자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자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걸로 됐다. 이제 그자들은 그냥 두거라. 굳이 찾지 말고.”
“왜요? 출국할 때까지 잘 모셔야 하는 거 아니었어?”
“고레벨 각성자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입국했다. 우리가 관련된 게 알려지면 난처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꼬맹이들 나가다가 걸리면 우리한테 지랄할 텐데?”
“뭔가 방법이 있으니 독자적으로 행동하겠지. 만일 걸려도 우리를 걸고넘어지진 못할 거다. 뿌리치고 간 건 그자들이니.”
이자웅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나야 뭐, 귀찮은 꼬맹이들 신경 안 써도 되고. 좋지 뭐. 그나저나 그 물건 대체 뭐요? 자걸이 쪽에서 만든 거요?”
이자성이 안색을 굳혔다.
“아직은 알려줄 수 없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야. 그때까진 굳이 관심 두지 말도록 하거라.”
“비싸게 구시긴.”
이자웅이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형님. 노선 정리 확실하게 하시는 게 좋을 거요. 나연이는 자걸이 미는 눈치야. 형님은 나를 꽉 잡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나까지 삐딱선 타면 형님 좋을 거 하나 없어요.”
이자웅이 비실비실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자성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이내 비소로 바뀌었다.
“어리석은 놈. 나도, 자걸이도 너는 안중에도 없다는 걸 모르는구나. 그저 네가 가진 것만 가져오면 될 뿐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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