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33화 (33/150)

전폭적인 지원 (1)

중년남 일행이 들이닥친 순간부터 유지훈은 예상했다. 짜여진 각본에 의해 상황이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경찰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을 듣고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유지훈은 입을 닫았다.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면서 재생 능력의 완성을 기다렸다.

조 사장의 개수작에 이은 강민정과 형식이 친구의 항변 그리고 중년남의 현행범 체포 지시···.

재생이 완성됐다. 이제 활개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몸을 날렸다. 먹이를 쫓는 독수리처럼. 사냥감은 조 사장이었다.

서걱!

단검의 싸늘한 빛과 함께 사냥감의 목을 썰었다.

“조 사장!”

중년남이 조 사장에게 달려들었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를 필사적으로 눌러 지혈하려 했다.

하긴. 지갑을 두둑하게 해주는 돈주머니를 이대로 보낼 순 없겠지.

중년남을 내려다보며 조소를 던진 유지훈이 준엄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말 똑똑히 듣도록.”

중년남은 여전히 조 사장의 지혈에 부질없이 매달려 있었다. 중년남의 일행은 갑작스러운 유지훈의 폭주를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희들 경찰이겠지?”

“그렇다. 강남···.”

일행 중 한 명이 대답하려 하자, 유지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아. 대답할 거 없어. 지금 이 순간 너희들은 경찰이 아니거든. 양아치 놈한테 빌붙어서 경찰이길 포기한 놈들이 경찰은 무슨,”

“뭐! 이 자식이···.”

순간 유지훈이 벼락같이 내달렸다.

쫙!

욕하려던 사내의 뺨을 올려붙였다.

이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말 안 끝났다.”

유지훈이 경찰들을 둘러봤다.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모습. 허리춤의 권총으로 손이 향하는 자도 있었다. 물론 당장 뽑지는 못할 터였다.

“나는 빌런을 혐오한다. 너희들은 빌런보다 못한 양아치에게 빌붙은 기생충들이다. 그것도 공권력의 탈을 쓴 기생충들. 따라서 나는 너희 같은 놈들을 극혐한다.”

그때 중년남이 몸을 일으켰다.

사력을 다한 지혈에도 조 사장이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살인자 새끼.”

중년남의 노한 시선에 유지훈은 피식 웃음으로 대응했다.

“나는 빌런을 처단한다. 고로 빌런보다 못한 양아치의 기생충인 너희들에게도 처벌을 내려야겠다.”

“당장 살인자 새끼 체포해! 권총 뒀다 뭐해! 쏘란 말이야!”

중년남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경찰들의 손이 일제히 허리춤의 권총으로 향했다.

유지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총을 드는 순간 너희들은 죽는다. 나는 먼저 나를 도발해온 놈들은 살려두지 않는다.”

말을 끝맺기 무섭게 유지훈이 몸을 날렸다.

동시에 경찰들도 권총을 뽑아 들었다.

첫발은 공포탄. 그 정도면 유지훈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탕! 탕! 탕! 탕! 탕!

공포탄 소리가 VIP룸 내부를 가득 메우는 사이.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유지훈은 썰었다.

경찰들에게 실탄을 격발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공포탄에 이어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목 주위가 뜨거워졌고, 시야엔 짙은 안개가 드리워졌다. 몰려드는 한기를 느끼며 주저앉아야 했다.

더 이상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잘린 목이 쏟아낸 피가 질펀하게 흐를 뿐이었다.

“너, 너 이 새끼···.”

중년남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유지훈은 무심한 표정으로 중년남에게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던 중년남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색이 됐다.

“사, 살려주시오. 지금 여기 일은 못 본 것으로 하겠소.”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유지훈이 흐트러진 중년남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줬다.

“내가 여기로 돌아온 이후에 믿지 않기로 한 족속이 둘 있어. 하나는 빌런, 나머지 하나는 기생충.”

“나 기생충 아니오. 강남서 형사과장이오. 자리를 걸고 맹세하겠소.”

그때 벌컥 문이 열렸다. 사내들 넷이 들어왔다.

세련된 외모의 미중년을 맨 앞으로, 예사롭지 않은 기세의 청년 셋이 따라 들어왔다. 수사기관 요원 분위기였다.

유지훈이 돌아본 틈을 타 형사과장이 후다닥 사내들에게 달려갔다.

“어디서 나온 분들입니까? 나 강남서 형사과장 윤근호라 합니다. 저놈 살인 현행범입니다. 당장 체포해야 합니다.”

미중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룸 내부를 둘러봤다.

“아! 이거 상황이 좀 심각하네요.”

“맞습니다.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닙니다. 경찰이 여섯이나 죽었습니다. 저도 죽을 뻔했습니다.”

윤근호가 미중년에게 달라붙어 장황하게 사정을 늘어놓았다.

미중년은 미간을 좁힌 채 룸 곳곳을 살필 뿐이었다. 윤근호가 살인자라 지목한 유지훈에게는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유지훈은 삐딱하게 서서 미중년의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물론 언제든 제압에 나설 채비는 갖춘 상태였다.

“아이구야. 총기까지 사용된 모양이네.”

미중년이 바닥에 나뒹구는 권총을 집어 들고 유심히 살폈다.

“실탄은 격발되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미처 실탄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무서운 놈입니다. 저 살인자 놈.”

윤근호가 유지훈을 노려봤다.

미중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미중년의 시선이 윤근호를 향했다. 지금껏 윤근호를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이제야 존재를 인식한 듯한 모습이었다.

“클럽에서 조직 간에 싸움이 붙었군요. 그 과정에서 사람도 여럿 죽었고요. 강남서 병력이 출동했지만, 싸움에 휘말린 모양입니다.”

“네? 그게 무슨···?”

“싸움에 휘말린 끝에··· 경찰분들도 여럿 희생되고, 총기까지 빼앗긴 것으로 보이는군요.”

“그게 아닌···.”

윤근호가 다급히 상황을 설명하려는 순간, 미중년이 권총을 윤근호의 머리에 겨누더니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탕!

윤근호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쓰러졌다.

윤근호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미중년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총에 맞아 과장님도 희생되셨군요. 애도를 표합니다.”

미중년이 손수건을 꺼내 권총을 닦더니 조 사장의 손에 쥐여줬다.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유지훈에게 다가왔다.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고요?”

유지훈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목을 쑥 내밀었다.

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었다.

“혹시···. 변태?”

“네?”

***

미중년은 수하들에게 뒷정리를 맡겼다. VIP룸에는 셋만 동행했지만, 클럽 밖으로 많은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유지훈에게 둘만의 대화를 위한 장소로 이동을 청했다.

유지훈 또한 일행을 돌려보냈다.

“너희들은 가까운 데서 순댓국이나 먹고 집으로 가. 쓸데없이 어디 가서 뻘짓 하지 말고.”

“저는 설렁탕 먹으면 안 될까요?”

“저도 오늘은 순댓국보다 설렁탕이 당기는데요.”

강민정이 반기를 들었고, 엄덕대도 동참했다.

“이 자식들이 벌써부터 눈이 맞아서···. 마음대로 해. 대신 깍두기 국물은 붓지 마.”

“네! 저도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 붓는 거 극혐해요.”

미중년이 향한 곳은 클럽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의 작은 카페였다.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기에 카페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미중년은 익숙하게 셔터를 올리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제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입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찾아오는 곳입니다.”

“진짜 이모 맞아요?”

“애매하면 보통 이모라고 부르곤 하죠.”

항상 궁금했다. 왜 고모가 아니고 이모일까?

물어볼까 고민하는 찰나, 미중년이 질문을 던져왔다.

“뭐 드시겠습니까? 위스키 한 잔 하시겠습니까?”

“술은 됐고요. 커피나 한 잔 주세요. 다방 커피로요.”

미중년이 익숙한 솜씨로 커피를 내리더니 크림까지 부어 내왔다. 앙증맞은 하트가 그려진 커피였다.

“봉지 커피 달라는 말이었는데···.”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서요. 뒀다 어디에 쓰겠습니까.”

미중년은 온더락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잠깐의 침묵 이후 유지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폭적인 지원이 이런 거였군요?”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영감님이 가급적 죽이진 말라고 하셨는데, 상황이 어쩔 수 없었어요. 안 그러면 내가 죽게 생겨서요.”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처음 보고는 어떻게 정리하나 막막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미중년이 잔을 빙빙 돌리며 미소지었다.

팅! 팅!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했다.

유지훈에겐 왠지 총소리처럼 들렸다.

“짭새 새끼들 그 정도로 썩었을 줄은 몰랐네요.”

“극히 일부일 겁니다. 대다수는 헌신적으로 일하죠. 일부 썩은 자들 때문에 전체가 매도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죠. 고름은 짜내야 하고요.”

“맞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오늘 유지훈 씨 행동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유지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썰어대긴 했지만, 그 역시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낸 점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안정됐다.

“저와 상의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고요?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중년이 본론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유지훈에겐 아직 클럽에서의 사건 관련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그 전에 클럽에 들어오시면서 도복 비슷한 옷 입은 녀석들 못 보셨습니까? 거기 클럽 사장 놈의 귀한 손님이라고 했는데···.”

유지훈이 두 청년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미중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못 봤는데요. 왜 그러시죠?”

“심상치 않은 놈들이었거든요. 제법 높은 레벨의 각성자들 같았는데, 동영의 무공을 구사했고요. 분위기가 빌런 같진 않았는데···.”

“동영의 무공···이라고요?”

미중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목을 길게 뺐다.

유지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건 무림에서나 쓰는 용어지.”

“네?”

“아니에요. 일본의 무술이요. 이를테면··· 닌자들이 사용하는.”

“닌자 무술을 구사하는 각성자라···. 국내에 그런 자들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요.”

“그럼 일본에서 넘어온 놈들일 수도 있겠네요. 말하는 걸 못 들어봐서 확실하진 않은데···.”

미중년의 미간이 좁아졌다.

“각성자의 출입국은 철저하게 관리됩니다. 특히 상위 레벨의 경우엔 입국과 출국 즉시 관계 기관에 알려지게 돼 있습니다. 일본에서 각성자가 들어왔다면···.”

“레벨이 상당히 높을 듯했습니다. 제가 상대해본 각성자들이랑 비교해볼 때···. 어글리 썬더보다는 확실히 위였고요. 신화길드 본부장과 비교해도 아래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레벨 6 이상이란 말인데···.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미중년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딘가에 접속했다. 연신 클릭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의 각성자가 국내에 들어온 기록은 없습니다. 그 외에 해외 각성자 중에도 고레벨의 입국 기록은 없는데요. 그렇다면 관리망을 뚫고 들어왔다는 의미인데···.”

미중년이 눈매를 찡그린 채 잠시 생각하더니 유지훈에게 물었다.

“그자들이 클럽 사장의 손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긴 한데, 제가 사장 놈 목을 썰어버려서···. 아! 사장 놈이 형사과장이랑 얘기할 때 신어쩌고 하는 것 같았어요.”

“신어쩌고면 신화와 연관 있는 자들일 수도 있겠군요.”

미중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화길드 마스터가 유흥업 쪽으로도 발이 넓다고 들었습니다. 클럽에서 접대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룹에서 힘을 써서 기록에 남지 않게 들어오도록 해서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클럽에 있던 망나니들은 어떻게 될까요? 있는 집 자식새끼들 같던데.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까요?”

약으로 여인들을 유인해 몹쓸 짓을 한 놈들이었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자들에 대해선 수사기관에 넘기도록 조치했습니다. 법의 심판을 받게 되겠죠. 응분의 대가라···. 거기까진 뭐라 말씀드리기 힘들군요. 제법 힘 있는 집안 자제도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고모한테 걸리면 끝장날 거라던 놈도 있더군요. 하다 하다 고모 들먹이는 새끼가 다 있네.”

미중년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자가 가장 문제일 겁니다.”

“고모라는 여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대체 누구길래요?”

“드러나지 않은 권력자라고 할까요. 그 여자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으니 머지않아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전에 그놈들에 대한 심판은 확실히 이뤄져야 할 겁니다.”

유지훈이 눈을 부릅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처단할 거니까요.”

“하하하. 말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이 나라의 부패한 권력자들 만만치 않습니다.”

“전폭적인 지원 약속하셨습니다.”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유지훈이 긴히 하고 싶다던 상의. 그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다.

유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두를 열었다.

“혹시 신화의 음모라는 게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실험과 관련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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