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공권력 (3)
의외로 VIP룸 앞엔 경호원이 없었다.
조금 전 문제의 현장에 전원 투입됐거나, 룸 안에 배치해 뒀거나, 아니면 경호원이 필요치 않은 놈들이거나. 셋 중 하나일 터였다.
뭐든 유지훈에겐 상관없었다. 일단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
룸 내부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지훈 일행을 쳐다봤다. 이내 무심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아주 짧은 놀라움에 이어 무관심으로, 어쩌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경멸의 눈초리일 수도 있었다.
VIP룸은 넓었다. 앞선 룸의 세 배 크기는 됨직했다. 안쪽에 커다란 테이블. 세 사내가 앉아 있었다.
딱 떨어지는 정장에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의 30대 사내와 무술 도복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의상을 입은 20대 청년 둘이었다.
30대 사내는 사업가 분위기였다. 앞선 방에서 사장님이라 칭한 인물인 듯했다. 20대 청년 둘은 귀한 손님인 모양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에 예리한 기세를 감춘 인상이었다. 예사롭지 않았다.
여인 둘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상의가 완전히 벗겨진 채 두 청년의 품에 안겨 있었다.
테이블에 가려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파에 치마 같은 옷이 널려 있는 것으로 봐서 하의 또한 벗겨진 듯했다.
강민정이 소리쳤다.
“제 친구 은화예요. 최은화.”
“저도 밖에서 본 분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형식이 친구도 만취해 끌려간 여인이 맞다고 확인했다.
30대 사내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당신들 누굽니까?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럭저럭 예의를 갖췄지만, 가득 벤 짜증을 감추진 못했다.
유지훈이 툭 내뱉듯 대답했다.
“나? 오늘 여기 손님. 순댓국 먹다 말고 불의를 목격해 여기까지 오게 된 모범 시민이기도 하고.”
“아~. 손님이셨구나. 그런데 왜 순댓국은 드시다 마셨을까? 가서 마저 드시지 그러십니까?”
“얘가 마저 먹었어.”
유지훈이 형식이 친구를 가리켰다.
사내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가서 마저 노세요. 왜? 술이 부족하세요? 테이블로 좋은 걸로 한 병 보내드리라고 할까?”
“용무가 있어서 오지 않았을까? 술은 고맙게 받겠는데, 일단 용무부터 마치고 나서.”
뭐든 주는 건 마다하지 않는 유지훈이었다.
사내가 눈살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그래. 용무란 게 뭡니까? 지금 중요한 비즈니스 때문에 귀한 손님들 접대 중이니 빨리 말씀해보세요.”
“우선 일행을 데려가야겠고.”
유지훈이 두 여인을 가리켰다.
사내가 코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청년은 무심한 표정으로 여인을 어루만지며 술잔만 기울였다. 유지훈 일행에겐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 분은 제 손님들의 손님들이라 비즈니스가 끝난 다음에나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고. 또 있습니까?”
유지훈이 눈을 부릅뜬 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음. 적. 처. 단.”
“네?”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대답에 앞서 유지훈이 달려들었다.
“너희같이 여인들 유인해서 몹쓸 짓이나 일삼는 개쓰레기들 때려잡는 일 말이다!”
수도를 들어 사내의 목을 내리쳤다.
벼락같은 공격에 사내가 몸을 움츠렸다. 팔을 교차해 막으려 했지만, 방향을 튼 수도는 사내의 정수리를 향했다.
아이언 헤드 주필호의 머리를 수박 가르듯 쪼개버린 유지훈의 수도가 사내의 머리에 작렬하려는 순간이었다.
무심하게 앉아 있던 청년이 유령처럼 움직여 유지훈의 손을 밀어냈다. 회오리치듯 원을 그린 양손의 움직임이 사뭇 유려했다.
한 걸음 물러선 유지훈이 놀란 눈으로 청년을 바라봤다. 청년은 어느 틈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 여인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런! 귀한 손님께 못난 모습 보여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내가 일어나 구겨진 옷을 정돈하고는 청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청년은 무심한 눈빛 그대로였다. 인사를 받지도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당장 여기서 나가 주십시오. 나가지 않으시면 부득이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내의 경고에도 유지훈은 청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제대로 된 무예를 익힌 양상이었다. 21세기로 돌아온 뒤 처음으로 무공을 사용하는 상대를 접하게 된 상황이었다.
청년들을 유심히 살폈다. 기감까지 끌어올렸다.
조금 전 유령 같은 움직임의 청년은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은 헤어스타일. 스크래치를 넣은 버즈컷의 전사형 이미지였다.
반면 다른 청년은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의 학자 인상이었다.
분위기는 상반됐지만, 외모는 닮았다. 쌍둥이로 보일 정도였다. 나이 차가 있어 보였다. 형제인 듯했다.
기감을 통해 범상치 않은 기운도 감지됐다. 각성자였다. 그것도 상당히 상위 레벨의. 모르긴 해도 레벨 6이었던 어글리 썬더의 아래가 아닐 듯했다. 최소 레벨 6, 아니면 레벨 7.
강자들이었다. 무공까지 익힌 점에서 21세기로 돌아온 이후 가장 강한 상대를 마주한 상황이었다.
‘무림에서 상대했던 자들과는 다른 스타일의 무공이야. 특히 움직임이, 신법이 달라. 국내 각성자 중에 이런 놈들이 있었나?’
우두커니 서 있는 유지훈의 모습에 사내가 혀를 끌끌 찼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청년들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귀한 분들께 불편한 모습 보여드리게 됐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버즈컷 청년이 무심하게 손을 까딱이자 사내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동시에 룸 내부 벽에 설치된 비밀 문이 열리면서 십여 명의 사내들이 몰려나왔다.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로 무장한 채였다.
유지훈의 시선은 여전히 두 청년에게 고정돼 있었다.
“형님. 어떡합니까?”
“오빠! 어떻게 좀 해보세요.”
형식이 친구와 강민정이 사색이 돼 형, 오빠를 찾았다.
유지훈이 짧은 한숨과 함께 목을 뚝뚝 꺾었다.
“쟤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밥이지.”
“네? 뭘 막 들었는데요?”
“조밥은 뭘 막 들어도 조밥이다. 다만 문제는 저놈들인데···.”
유지훈이 청년들을 향해 턱짓한 뒤 조밥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느 틈에 단검을 꺼내 들고 무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전에 몸 좀 풀어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썰기 시작했다.
내리쳐 오는 야구방망이를 피해 팔을 썰고, 쇠파이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옆구리를 썰었다. 야구방망이를 썰어버린 여세를 몰아 어깨를 썰고, 놀라 뒷걸음질 치는 조밥을 쫓아가 허벅지를 썰었다.
닥치는 대로 썰었다.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의 파공음이 사뭇 흉흉했지만, 유지훈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유지훈은 야구방망이과 쇠파이프가 가르는 공간의 빈틈을 여지없이 차지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썰었다.
서걱! 서걱! 서걱!
급기야 팔목을 날리고, 발목도 분리시켰다.
‘에이. 불구를 만들 생각까진 없었는데···. 일이 커지겠네. 알아서 잘 정리해주겠지.’
일단 날리기 시작하니 칼질은 한층 매서워졌다. 팔목 세 개와 발목 두 개, 팔뚝과 종아리 각각 하나씩 잘라버린 다음에야 칼질을 멈췄다.
더 이상 썰 게 없었다. 열댓 명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려는 찰나, 세 갈래의 예리한 기운이 유지훈을 덮쳐왔다.
버즈컷이었다. 응축된 마나가 형태를 이룬 양상이었다.
허리를 활처럼 뒤로 젖혀 첫 번째 예기를 흘려낸 뒤, 자세 그대로 몸을 회전해 두 번째 예기까지 피했다.
미간을 향하는 세 번째 예기는 피하기 쉽지 않았다. 단검을 엑스자로 교차해 막아냈다.
쩡!
팔꿈치까지 울리는 충격이 제법 묵직했다. 높은 순도로 응축된 마나였다. 순간적으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리검! 동영(東瀛)의 무공이었구나!’
상대의 무공을 파악한 이상 주저할 겨를이 없었다.
동영의 무공은 원거리에 특장점이 뚜렷했다. 공간을 내주면 승산이 낮았다. 좁혀야 했다. 파고들어 썰든, 소멸기를 작렬시키든.
몸을 날렸다. 테이블을 타고 넘어 버즈컷을 덮쳐갔다. 상대는 마나 수리검을 연달아 세 차례 쏘아내며 맞섰다.
유지훈은 피하지 않았다. 기세 그대로 몰아붙였다.
피하기보다 공격에 주력할 때였다. 몸을 비틀었다. 완전히 피하지 못해도 급소만 비껴내면 성공이었다. 어느 정도 깊이 베어도 재생 능력으로 커버할 수 있을 테니.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어깨, 옆구리 그리고 허벅지에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피가 솟구쳐 허공에 비산했다.
버즈컷의 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으로 목을 썰고, 왼손으로 어깨를 잡는다.’
칼질과 소멸기를 연달아 전개할 태세를 갖췄다.
순간 버즈컷이 휘청하더니 유령처럼 몸을 움직였다. 매섭게 쫓아 단검을 휘둘렀다.
써억!
피륙을 가르는 짜릿한 느낌이 손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왔다. 뼈를 써는 느낌이 없어 아쉬웠지만, 충분하다고 여겼다.
왼손으로 낚아채 소멸기를 작렬시키면 한 놈은 끝장낼 수 있으니.
하지만 왼손의 감촉은 허망했다. 잡히는 듯 놓쳤다.
버즈컷은 훌쩍 뛰어올라 천장을 튕긴 뒤 테이블 너머로 착지했다. 어깻죽지를 감싸 쥔 모습.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이 아닌 어깻죽지를 썬 모양이었다. 중상이 분명해 보이지만, 치명상은 아닐 터였다.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아쉬워할 때가 아니지. 기껏 공간을 좁혔으니 나머지 한 놈을···.’
옆자리의 긴 머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테이블 너머 버즈컷 옆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무심한 눈빛 그대로. 동생의 부상은 신경 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꼬리 말고 도망가는 꼴 하고는···.”
일단 호기를 부렸다. 부상이 가볍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곧 회복되겠지만, 당장은 움직임이 여의치 않았다. 허벅지 부상 탓에 민첩한 몸놀림에 지장이 불가피했다. 청년들이 반격에 나서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역시나 청년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버즈컷의 어깨 부상 역시 가볍지 않았다. 긴 머리가 공격을 주도하고, 버즈컷은 후위에서 지원하는 합격을 전개하려는 눈치였다.
‘서둘러라. 재생 능력아. 제발 좀.’
여전히 회복은 미흡한 상태. 긴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채 청년들을 노려봤다. 조소를 머금은 채. 여유를 가장하기 위해.
유심히 유지훈을 살피던 긴 머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에 나서려는 모습이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건장한 사내들이 몰려 들어왔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사방에 널브러진 어깨들과 핏자국을 둘러봤다.
긴 머리는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섰다. 입가에 언뜻 묘한 미소가 스쳤다. 의미는 아쉬움인 듯했다.
“아이고~ 과장님. 이제 오시면 어떡합니까? 저희 장사 영영 접을 뻔했습니다.”
조용히 찌그러져 있던 30대 사내가 앞장서 들어오는 중년남을 반겼다. 굽신거리며 내미는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야? 조 사장. 이거 완전 개판이네.”
“귀한 손님들 모셔 놓고 이게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습니다.”
“귀한 손님들이면 신···?”
“쉿!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자초지종은 손님들 편안한 장소로 모셔다드리고 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 사장이 청년들을 룸 밖으로 안내했다.
나가면서 긴 머리는 유지훈을 향해 조소의 눈웃음을 보냈다. 버즈컷은 눈을 부릅뜨고는 손날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룸을 나섰다.
유지훈은 잡지 못했다. 재생의 마지막 단계였다. 당장은 움직임이 여의치 않았다.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몹쓸 짓을 당한 여인들도 현장에 있고, 옆방엔 몹쓸 짓을 한 현행범 망나니들도 있으니.
“경찰이십니까?”
상황을 설명하려는 유지훈을 중년남은 단호하게 손을 들어 막았다.
“자초지종은 조 사장이 돌아오면 듣겠소. 피해자 진술이 우선이니.”
“피해자는 우리라고요! 저기 제 친구 안 보이세요?”
강민정이 옷이 벗겨진 채 인사불성으로 널브러진 친구를 가리켰지만, 중년남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술이 과했던 모양이군. 여자가 돼서 처신을 똑바로 해야지.”
이윽고 조 사장이 룸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과장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 하면요. 저 자식이···.”
개수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유지훈을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호색한으로, 여자 내놓으라고 VIP룸으로 들이닥쳐 난동을 피운 난봉꾼으로, 만류하는 직원들을 난도질한 악당으로 몰아갔다.
강민정과 형식이 친구가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하며 항변했지만, 중년남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현행범으로 체포해.”
“현행범이라뇨. 우리가 피해자라니까요. 옆방에 증거도 있어요.”
“이 사람들도 공범으로 체포해.”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중년남을 따르는 사내들이 수갑을 꺼내 다가오는 순간, 유지훈이 몸을 날렸다.
오른손의 단검이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
서걱!
조 사장의 목부터 썰었다.
“입만 열면 개수작인 놈은 머리를 달고 다닐 필요도 없고.”
유지훈의 준엄한 시선이 중년남 일행을 향했다.
“지금부터 내 말 똑똑히 듣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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