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공권력 (2)
문제의 룸 주위로 정복 경호원 여섯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190cm는 족히 넘을 듯한 체구들.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느낄 법했다. 물론 유지훈에겐 해당 사항 없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대들다가 처맞기까지 했던 형식이 친구는 막상 룸 진입을 앞두니 긴장된 듯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애들 찾아서 데리고 올까요?”
“애들?”
그러고 보니 엄덕대와 박형식을 잊고 있었다.
헐벗은 처자들 곁으로 조금은 다가섰을까? 아니면 더 멀어졌을까?
“뭐하러. 걔들 와봤자 짐밖에 안 돼.”
“아, 네···.”
생각해 보니 놀게 두는 게 더 짐일 수도 있을 법했다. 괜히 붙들려서 인질 노릇이나 하면 귀찮아질 테니.
물론 신경 쓸 유지훈이 아니었지만, 훗날 원망이 피곤할 것 같았다.
“아니다. 데려와라. 망이나 보게 하자.”
“넵.”
형식이 친구가 쪼르르 달려갔다.
그 사이 유지훈은 룸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우선 경호원들. 거대한 체구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가 제법 탄탄해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기도는 평범했다. 각성자는 아닌 듯했다.
출입구의 형태와 비밀 통로가 있는지도 둘러봤다. 다수와의 싸움에선 지형지물의 활용이 필수. 면밀한 사전 파악이 선행해야 했다.
“본다고 뭐 아냐. 여차하면 썰자.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댔으니 알아서 정리해주겠지.”
작전 수립은 끝났다.
때마침 형식이 친구가 엄덕대와 박형식을 데리고 왔다.
역시 표정이 시무룩한 게 다가서면 멀어지는 상황의 반복이었던···.
어? 엄덕대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 그리고 떡대 뒤에 가려 졸랑졸랑 따라오는 적당히 헐벗은 여성분.
“뭐냐? 성공한 거냐?”
엄덕대가 은근한 눈빛으로 여성분을 돌아봤다.
단발머리에 통통한 볼살이 귀염상인 여인. 아담한 체구였지만, 남다른 발육 덕분에 볼륨이 돋보이는 베이글녀였다.
“민정아. 인사드려. 유지훈 형님이셔.”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강민정입니다.”
싹싹한 인사와 함께 넙죽 고개 숙이는 귀여운 여인. 출렁이는 볼륨에 유지훈은 시선 둘 곳을 잃어버렸다.
“험험. 반가워요. 짧은 시간 동안 내 이야기는 뭘 그리 많이 들었다고···. 본인들 이야기하기도 부족했을 텐데.”
“아닙니다. 형님 이야기밖에 안 했습니다.”
엄덕대가 강민정을 향해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스카우트한 거거든요. 우리 길드에.”
“뭐? 뭘 했다고?”
“스카우트요. 민정이 각성자예요. 레벨 2요.”
허허. 놀라운 놈이었다. 엄덕대. 클럽에서 스카우트라니. 아니 길드를 빙자해 여성분을 유혹한 것일까.
강민정이 다시금 넙죽 고개를 숙였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드에 입사하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누구 마음대로! 호통이 턱밑까지 치솟았지만, 한층 강렬하게 출렁이는 볼륨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헙! 흠흠. 아직 최종 합격은 아닌데···. 그나저나 길드 입사가 소원이면 단련을 열심히 해야지. 클럽에서 뭐 하는 거요? 그렇게 헐벗고.”
“사실···.”
돌연 강민정이 울먹였다.
“화양길드 헌터 공채에 지원했는데, 오늘 불합격 통보를 받았거든요. 서류 전형에서요. 벌써 스물두 번째예요.”
“서류 전형에서만?”
“네···.”
“저런···.”
금세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했다.
덕대 녀석, 유혹한 게 아니라 유혹을 당했구나.
“그래서 친구들이 위로해준다고 해서 클럽에 오게 된 건데···.”
“뭐 하러 따라왔어요? 위험할 텐데. 그냥 친구들이랑 있지.”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친구들이 안 보여서요. 혹시나 해서 따라와 봤어요. 덕대 오빠도 같이 가보자고 했고요.”
엄덕대를 쏘아봤다.
본인도 짐인 주제에 짐 하나를 더 달고 왔다.
그래도 강민정은 증인이 될 수도 있으니, 데리고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 내 뒤에 잘 붙어 있어요. 안에 친구 있는지 잘 살펴보면서요.”
“네!”
상냥하게 당부한 뒤 엄덕대와 박형식에게 노한 시선을 보냈다.
“너희들은 내가 안에 들어가면 입구 잘 지켜. 누가 오면 싸우려 들지 말고 바로 나한테 알려.”
“넵!”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입구를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권장지각을 쏟아냈다. 소란을 방비해야 했다. 최대한 간결한 동작으로 효율적인 제압을 노렸다.
원샷 원킬. 한 방에 한 명씩 깔끔하게 때려눕혔다.
주위를 둘러봤다. 룸 안을 제압하기까지 시간을 벌려면 시선을 끌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 누구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둠칫둠칫 부비부비 어울렁더울렁에만 심취해 있었다.
‘골뱅이가 끌려 들어가도 아무도 모를 만했네.’
룸 안으로 진입했다.
강민정이 날렵하게 뒤를 따랐다. 형식이 친구는 밖에 남았다. 박형식과 나란히 서서 망을 보려는 모양이었다.
“넌 뭐해? 임마!”
“망보라고 하셔서···.”
“네가 목격자잖아. 와서 확인해야지!”
“아, 네···.”
룸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얍실하게 생긴 사내놈 여덟에 젊은 여성 셋. 여인들은 헐벗다 못해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눈이 완전히 풀린 인사불성의 양상. 이른바 골뱅이 상태였다.
사내놈 중 하나의 시선이 강민정을 향했다.
“또 데려왔어? 괜찮네! 상태가 좀 멀쩡하긴 한데,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놔두고 나가 봐.”
“놔두긴 뭘 놔둬! 쓰레기 새끼야.”
유지훈이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테이블 위를 달려 놈의 면상을 사커킥으로 후려갈겼다.
“으억!”
놈이 피를 뿜으며 나동그라졌지만, 나머지는 그저 낄낄댈 뿐이었다.
“야. 왜 반말을 하고 그래. 우리 위해 애써주셨는데, 존대해 드려야지. 팁도 안 챙겨드리고 나가라고 하니까 처맞는 거 아냐.”
개 중 점잖게 생긴 놈이 지갑에서 5만원권 몇 장을 꺼내더니 유지훈에게 건넸다.
“수고하셨어요. 앞으로 두 명 정도만 더 부탁드려요.”
“이것들이 정신 못 차리네.”
뺨을 후려쳤다.
돈은 받아 챙겼다. 주는 돈을 마다할 유지훈이 아니었다.
대신 힘 조절로 보답했다.
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지훈을 쳐다봤다.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눈치였다.
“전부 동작 그만! 대가리 탁자 위에 처박고. 양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실시!”
여전히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날렵하게 한 대씩 뺨을 올려붙인 다음에야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 당신 뭐야!”
“우,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당신 이러고 무사할 것 같아!”
“당신 우리 고모가 누군지 알면 까무러칠 거야!”
“당장 경호원들 불러!”
하는 꼴을 보니 있는 집 망나니들이었다.
박형식의 대학 동창인 사채업자 아들놈이랑 행태가 똑같았다.
그놈은 각성자이기라도 했지. 이놈들은 배경만 믿고 나대는 허접쓰레기들이었다. 하다 하다 고모 찾는 놈은 처음 봤다.
“너희들이 누군지 무슨 상관이냐. 처맞고 잘못했다고 비는 건 똑같을 텐데.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정권으로 주둥이를 한 대씩 가격했다.
입만 살아 나부대는 꼴을 보기 싫어서였다.
이빨 몇 대씩 날아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야 비로소 조용해졌다.
“으으···.”
신음만 쏟아냈다.
“우리 고모가 누군 줄 알아? 고모한테 말하면 넌 그냥 죽어.”
“몰라. 이 새끼야! 너네 부모도 모르는데, 고모를 어떻게 알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놈도 꼭 있었다.
그런 놈에겐 싸다구 갈기기 신공이 약이었다.
머리채를 움켜쥐고 뺨을 후려갈겼다.
쫙! 쫙! 쫙!
“잘못했어요. 고모한테 암말 안 할게요.”
“입 다물어. 입 벌리다 맞으면 턱 날아간다.”
왼뺨에 이어 오른뺨까지 터져 피를 뿜은 뒤에야 손을 거뒀다.
강민정과 형식이 친구를 돌아봤다. 입을 떡 벌린 채 감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확인하지 않고.”
“아, 네···.”
강민정이 호다닥 인사불성의 여인에게 달려갔다.
“여기 제 친구예요. 재연아. 정신 차려. 정신 좀 차려 봐.”
“저기 저놈입니다.”
형식이 친구가 입을 감싸 쥐고 있는 사내놈을 가리켰다. 만취한 여성분과 함께 룸으로 들어간 놈이었다
“골뱅이, 아니 여자분은 여기 없는 것 같은데요?”
“제 친구도 한 명밖에 없어요. 셋이 같이 왔는데···.”
강민정이 친구의 옷을 정리해준 뒤 룸 내부를 살폈지만, 나머지 한 친구는 발견하지 못했다.
여성분 둘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그중 한 명은 데려온 놈이 알고 있어야 마땅할 터. 놈을 조질 차례였다.
그때 밖에서 엄덕대의 외침이 들려왔다.
“몰려옵니다. 형님. 2, 30명쯤 될 것 같습니다.”
전혀 다급하게 들리지 않았다. 여유롭다 못해 흥미로워하는 느낌까지 드는 음성이었다.
“너희는 옆으로 비켜 있어라. 적당히 정리되면 거들든지 해라.”
유지훈은 입구에서 대기했다.
외부에서 실내 공간으로 진입하는 상대를 제압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출입문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경호원들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지훈에겐 차례대로 때려달라고 면상을 들이대는 격이었다.
사뿐한 권격으로 관자놀이를 가격한 뒤 룸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길 다섯 차례, 경호원들이 멈춰섰다. 진입을 중단한 채 상황을 파악하려 들었다.
그러자 엄덕대와 박형식이 움직였다. 경호원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기억을 되살린 것이었다. 공간을 장악한 유지훈을 위한 효과적으로 지원이었다.
“제법인데! 데리고 다닐 만해.”
열댓 명이 룸 내부에 나뒹구는 가운데, 경호원들의 진입이 중단됐다. 이제 유지훈이 나갈 차례였다.
대치 상황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곧바로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주먹과 팔꿈치, 무릎과 발차기 등 박투의 진수를 쏟아냈다.
경호원들이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유지훈은 들개 무리 속으로 뛰어든 호랑이였다.
널브러져 신음하는 경호원들을 가리키며 엄덕대에게 지시했다.
“움직이는 놈 있으면 그냥 밟아버려.”
“넵!”
박형식에겐 다른 지시를 내렸다.
“형식이 너는 밖으로 나가서 누가 오는지 지켜봐.”
“또 누가 옵니까?”
“얘네 뒤를 봐주는 빌런 조직이 있대. 짭새가 올 수도 있고.”
“경찰이 오면···.”
“짭새라니까! 이놈들이랑 한통속이야. 전화로 알려줘.”
다시 룸 안으로 들어갔다.
널브러진 경호원들과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는 얍실이들. 강민정이 통제하고 있었다. 딴에 각성자라고 기세가 제법 매서웠다.
문제의 발단이 된 얍실이를 불렀다.
“야. 네가 데려온 골뱅이, 아니 만취한 여성분 어디 있냐?”
고개만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개 중 점잖은 놈이 대신 앞으로 나섰다.
“당신들 이러면 곤란해요. 누굴 건드린 건지 알기나 하세요?”
“그딴 건 안 궁금해. 여성분들 어디 있는지만 궁금할 뿐이야.”
“하아···. 여기서 끝내고 조용히 가세요. 그럼 없었던 일로 할게요. 그게 그쪽을 위해서도 더 좋을 겁니다.”
거짓은 없어 보였다. 나름대로 최선의 타협 카드를 꺼낸 듯했다.
다만 받아들일 유지훈이 아니었다.
“이걸 없던 일로 하자고? 약 빨고 지랄하는 꼴을 뻔히 봤는데? 아직 어디서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지 모를 사람이 둘이나 더 있고?”
유지훈이 여전히 인사불성인 여인들을 가리켰다.
강민정이 뺨을 때리고 물을 끼얹는 등 깨워보려고 갖은 수단을 써봤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약에 당한 게 확실했다.
“당신들이 감당할 상황이 아니란 말입니다.”
“감당할지 말지는 내가 정해. 너 따위가 이러쿵저러쿵할 게 아니야.”
유지훈이 문제 당사자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여차하면 머리를 터트릴 기세로 악력을 쏟아냈다.
“아! 아! 아! 말할게요. 여기 사장님 VIP룸에 있어요. 왼쪽으로 죽 들어가면 가장 안쪽 방이에요.”
“거긴 왜?”
“오늘 중요한 손님 오셨다고 에이스는 그 방으로 보내라고 해서···.”
“마약에, 유인 납치에, 강간에, 상납까지 하냐? 개새끼야.”
유지훈이 놈의 머리통을 내리친 뒤 옆으로 치워버렸다.
VIP룸으로 향할 차례였다.
“어! 저기···.”
얍실이 중 하나를 보던 강민정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왜? 아는 놈이에요?”
“진승 같은데요?”
“그게 뭔데?”
“진승 모르세요?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요. 위대란 진츠비란 별명도 있는데···.”
무림에서 구르던 유지훈으로서는 당최 알 도리가 없었다.
“에구구. 얼굴 많이 상했네. 다음 주에 콘서트 있는데, 할 수 있으려나. 예매한 표 환불해야겠네.”
“아니. 길드 입사가 소원이라면서 단련은 언제 해요? 클럽 다니고, 콘서트 다녀가면서.”
“아. 그게요. 제가 화양길드 공채에 낙방해서 친구들이 위로해준다고···. 아 맞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저 방에 있는데! 빨리 가죠.”
강민정이 서둘러 앞장섰다.
유지훈은 진승이라 불렸던 놈을 흘겨본 뒤 강민정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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