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공권력 (1)
클럽은 역시 유지훈의 취향이 아니었다.
박형식의 친구가 직접 달려와 좋은 자리를 잡아주는 등 정성을 쏟았지만, 유지훈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거야 원. 어두컴컴한 곳에서 헐벗은 처자들이랑 족제비 같은 사내들이 부비부비하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역시 순댓국을 먹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모둠 순대 두 접시 시켜놓고 소주 마시면서 길드의 앞날을 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 생각했다.
“형님도 그렇게 가만히 계시지만 말고 좀 나와서 흔드세요. 저처럼요. 리듬에 맞춰 둠칫둠칫.”
엄덕대와 박형식은 제 딴에는 열심히 둠칫둠칫하며 헐벗은 여우들 사이로 파고들려고 했다.
연신 헛발질이었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다가가면 멀어지고···.
옆에서 도와주려 애쓰던 박형식의 친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애썼다. 나 같으면 진즉에 포기했다.”
친구가 사라진 뒤에도 엄덕대와 박형식의 눈물겨운 몸부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둠칫둠칫으로 잘 안 되니 어울렁더울렁으로 둔갑해가며 헐벗은 처자들을 넘봤지만, 더욱 멀어질 뿐이었다.
그럴수록 두 늑대의 눈빛은 뜨거웠다. 기필코 여우들과 짝을 이루고 말겠다는 집념으로 불타올랐다.
“저런 각오로 몬스터를 사냥했으면 열 마리는 더 잡았겠네. 다음에 사냥 나갈 때 눈빛 한 번 보겠어.”
다음은 다음이고, 당장 눈앞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참담한 실패만이 이어졌다. 문제는 두 녀석 모두 실패를 모르고 있다는 점. 더더욱 안쓰럽고 애처로웠다.
“여기 이름이 버닝 스타였던가? 그래서 저놈들 눈빛이 불타는 거야? 차라리 크라잉 스타라고 하지···.”
안타까운 장면만 보다 보니 뱃속이 허전해졌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라면이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가시게요? 형님.”
“왠지 모르게 속이 허하다. 편의점 가서 뭐 좀 먹고 올게. 열심히 흔들고들 있어라.”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하나 집어 들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3분. 칼같이 지켰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없었다.
특히 조금이라도 설익으면 뒷맛이 영 텁텁했다. 유지훈은 설익은 컵라면의 텁텁함을 혐오했다.
적당히 익은 컵라면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편의점에서 컵라면은 오랜만이었다.
과거 호광길드에서 온갖 잡무에 시달리던 시절. 밥때를 놓쳐 편의점으로 달려와 허겁지겁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물론 그때도 3분 법칙은 반드시 준수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먹으니 맛있네. 하나 더 먹을까?”
불쌍한 두 놈 탓에 속이 허해서인지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았다. 이번엔 푸라면 말고 다른 놈으로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진열대를 훑어보는데, 놀라운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즉석 순댓국이 다 나왔네! 이걸 안 먹어볼 수 없지.”
전자레인지에 4분이었다. 숫자가 조금 기분 나빴지만, 즉석밥까지 데우는 시간을 계산하면 총 6분 30초. 기꺼이 투자하기로 했다.
전자레인지를 돌리며 창가에 매달렸다. 창밖을 구경했다. 사람 구경, 현란한 네온사인 구경···. 클럽 간판이 유난히 화려했다.
버닝 스타. 불타는 별빛이 사뭇 장엄하기까지 했다.
“간판에까지 어지간히 돈 처발랐네. 처자들 헐벗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돈까지 엄청 뜯어간 모양이구나.”
입맛을 다시면서 바라보는데, 클럽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건장한 사내들이 청년 하나를 끌고 나와 손찌검을 하고 있었다. 사내들의 통일된 복장은 검은 양복. 딱 봐도 기도들이었다.
청년은 뭐가 억울한지 맞으면서도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술 먹다가 사고라도 친 모양이군. 그러게 어둠의 세계에선 얌전하게 마셔야지.”
굳이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순댓국이 데워지고 있었다. 이제 1분 남았다.
그런데 맞는 녀석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집중해서 보니 박형식의 친구였다. 클럽에 빠삭하다는.
잠시 고민했다. 순댓국이냐, 도와주느냐.
전자레인지는 27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와주고 오면 순댓국이 식을 텐데. 식으면 기름만 둥둥 맛없는데.
그래도 길드 발기인의 친구가 맞고 있는데, 구경만 할 수도 없고···.
갈등이 깊어지는 찰나, 경광등을 울리며 경찰차가 나타났다.
“고맙다. 경찰. 복 받을 거야.”
개운한 마음으로 전자레인지를 열고 순댓국을 꺼냈다. 미리 데워둔 즉석밥을 뜯어 순댓국에 쏟아붓고 꾹꾹 말았다.
구수한 향취를 즐기며 한 숟갈 가득 입에 욱여넣었다.
“아! 세상 좋아졌구나. 즉석 순댓국이 이 정도라니···.”
한 숟갈 더 퍼먹으려는 순간 눈앞에 광경이 괴이했다.
경찰이 진압봉으로 박형식의 친구를 구타하고 있었다.
“내가 피해자란 말입니다. 내가 경찰에 신고한 거라고요.”
친구가 항의했지만, 경찰들의 구타는 한층 거세졌다. 팔을 뒤로 꺾어 제압한 뒤 바닥에 엎드리게 해 짓누르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순댓국을 한 숟갈 가득 퍼서 입에 넣은 뒤 편의점 점원에게 당부했다.
“이거 다 안 먹은 거예요. 치우지 마세요.”
박형식의 친구에게로 황급히 달려갔다.
억눌린 상태로 몸부림치는 형식이 친구를 내리치려는 경찰의 진압봉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준엄하게.
“뭐 하는 짓입니까! 선량한 시민 상대로.”
경찰이 유지훈에게 도끼눈을 뜨려다가, 심상치 않은 기세에 흠칫하더니 헛기침과 함께 설명했다.
“험험. 공무집행 중입니다. 방해하시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키십시오.”
“공무집행? 선량한 시민 때려눕히는 게 공무집행입니까?”
평소 같으면 쥐어박고 시작했을 유지훈이지만 경찰이니만큼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영업 방해 신고를 받고 온 것입니다. 이분이 내부에서 난동을 부려 영업에 심대한 피해를 끼쳤다고 했습니다.”
제압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형식이 친구가 몸을 일으켰다.
“신고는 내가 했다고요! 영업 방해는 무슨. 몹쓸 짓 하려는 거 막은 것도 영업 방해입니까?”
“자꾸 이러시면 수갑을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이 수갑을 꺼내려는 찰나 형식이 친구가 유지훈을 알아봤다.
“형님!”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를 어둠의 세계 사람으로 알겠다.”
“그래도 형식이 형님이신데···.”
“됐고. 무슨 일이냐? 왜 이놈 저놈한테 처맞고 있었던 거야?”
경찰차에서 경찰 둘이 더 내렸다. 총 네 명의 경찰이 형식이 친구를 에워쌌다. 클럽 기도들도 다가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유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눈빛으로 이들을 둘러봤다. 가벼운 코웃음 한 차례 뱉어주고 형식이 친구에게 턱짓했다. 말해보라고.
형식이 친구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요. 수상한 놈들이 골뱅이를 끌고 룸으로 들어가려고 하잖아요.”
“뭐? 골뱅이? 골뱅이를 왜 끌고 가?”
“골뱅이를 끌고 가서 뭐 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못 가게 막으면서 직원들을 불렀는데···.”
“야! 알아듣게 좀 말을 해. 골뱅이 가지고 방에 들어가는데, 왜 못하게 막아? 계산 안 했을까 봐?”
“그, 그게 아니고···.”
형식이 친구가 눈이 살짝 커지더니 말을 더듬었다. 짧은 헛웃음과 함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만취한 여성분을 룸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걸···.”
그제야 유지훈도 무슨 의미인지 파악했다.
어둠의 세계에선 만취한 여성분을 골뱅이라고 하는구나···.
“분위기가 약을 먹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막고 직원을 불렀는데, 오히려 저를 끌어냈거든요. 바로 경찰에 신고했더니 기도들이 몰려와서···.”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신고받고 충돌한 경찰은 왜 애먼 시민을 구타한 걸까?
경찰들을 향해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그렇다는데?”
일단 말부터 짧아졌다.
경찰이 머뭇거렸다.
“저희는 신고 내용은 모릅니다. 일단 출동 지시를 받고 왔는데, 저분이 난동을 부리셔서···.”
“내용을 모르면 알아봐야 할 거 아냐. 골뱅이 상대로 몹쓸 짓 하려던 놈들 막은 정의로운 시민 상대로 뭐 하는 짓이야?”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서 일단 서로 모셔가서 조사하려고···.”
그때 기도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나섰다.
“경찰총장님이랑 얘기 다 끝났다고 했잖아.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저놈이나 끌고 가요. 미친놈 하나가 술 처먹고 난동 부려서 영업에 지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었지만, 경찰들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굽신굽신하는 태도로 형식이 친구를 제압하려 했다.
유지훈이 가볍게 손을 휘젓는 동작으로 경찰 둘을 밀어냈다.
“하아! 경찰이 양아치 지시를 다 받고. 지랄이 풍년이구나. 이러니 짭새 소리나 듣는 거지.”
경찰들에게 쏘아붙인 뒤 기도들을 향해 조롱의 시선을 보냈다.
“너희들은 어느 나라 양아치들이냐?”
“뭐!”
“대한민국에 경찰총장이 어디 있냐?”
“이 새끼가! 경찰총장님이 어제도 여기 다녀가셨다.”
“야 이 병신아. 대한민국에 검찰총장이랑 경찰청장은 있어도 경찰총장은 없어.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그러자 욱한 기도 서넛이 유지훈에게 덤벼들었다.
불을 향해 달려든 부나방들이었다. 유지훈의 우아한 손짓에 뺨을 맞고 멀찍이 날아가 나뒹굴었다.
기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우두머리가 경찰들에게 가세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당신들은 뭐해? 저 새끼 제압하지 않고.”
“그러고 보니 경찰총장은 없는데···.”
기도들과 경찰들이 뒤엉켜 달려들었다.
정의로운 시민을 상대하는 경찰들이 진압봉을 휘두르는 망동을 일삼기까지 했다.
“이것들을 썰어버릴 수도 없고···.”
성질 같아선 닥치는 대로 썰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경찰이었다. 적당히 타이르는 수준으로 손봐주기로 했다. 대신 기도들은 좀 더 거칠게 후려 패기로.
방향이 정해진 이상 행동은 일사천리였다.
원샷, 원킬. 한 주먹에 한 놈씩. 절도 있는 동작으로 급소를 가격해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공권력의 탈을 쓰고 그러면 쓰나.”
경찰들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날린 뒤 편의점으로 향했다.
남은 순댓국을 마저 먹을 시간이었다.
“에잇! 다 식었네. 다시 데워도 괜찮으려나.”
형식이 친구가 따라 들어왔다.
“형님 괜찮을까요?”
“뭐가?”
“저놈들이요.”
널브러진 채 신음하는 기도들을 가리켰다.
“저놈들 뒤에 잘나가는 빌런 조직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빌런 놈들은 언제든 환영이야. 나는 빌런을 혐오하거든.”
“양아치들이야 그렇다 쳐도 경찰까지 저 지경을 만드셔서···.”
“그건 좀 신경 쓰이는군. 에이~. 입맛 다 떨어졌다.”
유지훈이 플라스틱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형식이 친구에게 말했다.
“카운터 가서 숟가락 하나 더 달라고 해.”
“숟가락은 왜요?”
“갖고 와서 이거 먹어.”
“네? 그걸 왜 제가···.”
“버릴 순 없잖아. 국민 소울 푸드를.”
“아, 네···.”
형식이 친구가 숟가락을 얻으러 간 사이 유지훈이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영감님 접니다.”
[오. 자네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인가?]
금강길드 마스터 최금강이 반색하며 전화를 받았다.
“영감님. 급히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급히 전폭적인 지원···?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가?]
“제가 애들 데리고 클럽에 놀러 왔는데, 골뱅이가 어쩌고···. 그러니까 골뱅이는 만취한 여성분인데 저쩌고···. 경찰이 출동했는데, 기도 놈들이랑 주저리주저리···. 그래서 좀 때려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보게. 내 바로 전화하겠네.]
최금강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유지훈은 순댓국을 흡입하는 형식이 친구를 바라봤다. 몹시 힘겹게 우물거리고 있었다.
“먹을 만하냐? 미지근해서 별로지?”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그럼 맛있게 팍팍 좀 퍼먹어. 오만상을 찌푸리지 말고. 그건 순댓국에게 모욕감을 주는 거야.”
“아, 네···.”
그러는 사이 최금강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야기 잘 됐네. 버닝 스타라고 했나? 그쪽으로 사람들이 갈 걸세.]
“우호적인 관계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허허허.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마시게. 적당히. 죽이지는 말고.]
유지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 먹었으면 가자.”
“아직 남았는데요?”
“얼마나 된다고 아직도 깨작거리냐. 훌훌 들이마셔.”
“네. 그런데 어디로···? 후루룩.”
“어디긴. 골뱅이 끌고 들어갔다는 방이지.”
“거긴 왜···요?”
“왜긴. 현장에서 때려잡아야 짭새 놈들 개수작까지 응징할 거 아냐.”
유지훈이 형식이 친구의 등을 떠밀었다.
“시간 없다. 골뱅이 사라지기 전에 가야 한다. 앞장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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