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만남 (1)
강은영은 유지훈과 함께 초특급 몬스터 출현 현장으로 향했다.
같은 방향이라 태워주겠다는 유지훈의 제안을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이상한 건 운전대는 강은영이 잡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 거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게 그쪽이니까.”
“같은 방향이라 태워준다면서요?”
“내릴래?”
말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유지훈이었다.
“동생분 어떻게 지내는지 안 궁금해요?”
“궁금해도 그쪽한텐 듣고 싶지 않아. 생각만 해도 화나니까.”
“화까지 날 건 또 뭐예요?”
“그쪽 때문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됐다. 말을 말자. 연락처 받았으니까 그걸로 끝.”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강은영은 임무 아닌 임무를 떠맡은 상황이었다. 어찌 됐든 유지훈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했다.
“초특급 몬스터는 근처에 가기만 해도 위험해요. 왜 굳이 같이 가겠다는 거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앞으로 때려잡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미리 봐두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아! 초특급 몬스터가 무슨 옆집 강아지라도 되는 줄 아나···.”
“그런데 초특급 몬스터는 또 뭐야? 레벨로 구분하는 거 아니었어?”
유지훈은 길드에 몸담았었기에 몬스터 구분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레벨 1부터 7까지, 각성자와 같은 방식이었다.
“최근에 본부에서 분류 방식을 바꿨어요. 사람과 몬스터를 동일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요. 몬스터는 등급으로 분류하기로 했어요.”
“아하! 고기 구분하듯이?”
“거기서 고기가 왜 나와요? 하긴 헌터들 중에 몬스터 고기 좋다고 먹는 양반들도 있긴 하더군요.”
강은영이 피식 웃더니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전의 레벨 1이 최하급, 그 위로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특급, 초특급으로 분류하기로 했어요. 오늘 만나는 놈은 초특급, 그러니까 예전으로 치면 레벨 7이에요.”
“레벨 7위로는 없나? 레벨 8 각성자는 있잖아?”
“국내에선 아직 발견된 적 없어요. 분류는 재앙급으로 돼 있긴 해요. 나타나면 그 자체로 재앙일 테니까요.”
상위 레벨에 관한 대화에서 유지훈이 뭔가 떠오른 듯했다.
“아까 그 영감님 정도면 재앙급 몬스터랑 어떨까?”
“그분 알아요?”
“어떻게 몰라. 나도 길드에 근무했었다니까. 금강길드 마스터잖아.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헌터.”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거예요?”
“무슨 소리 하려나 궁금해서. 뻔히 드러날 정체까지 감추면서.”
강은영의 안색에 난감함이 스쳤다. 초장부터 스텝이 꼬였다.
표정 변화를 놓칠 유지훈이 아니었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하하. 그쪽도 같이 뭘 꾸민 모양이지?”
“꾸미긴 뭘 꾸몄다는 거예요?”
“괜찮아. 그 영감님 좋은 분인 거 알아. 헌신적인 헌터잖아.”
“맞아요. 마스터님 정말 좋은 분이에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유지훈 씨한테 접근한 건 아니에요.”
“의도가 있긴 있었네.”
유지훈은 다시금 털털하게 웃었고, 강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무슨 의도를 갖고 나한테 접근한 거야?”
“의도는 무슨 의도가 있다고, 그냥 해본 소리 가지고···.”
“나 수십 년 동안 험하게 굴렀어. 누군가 접근했을 때 목적의식이 있고 없고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고.”
“이제 서른이면서 수십 년은 무슨···.”
“흐음. 나쁜 의도는 아닌 듯해서 적당히 들어주려 했더니 안 되겠네. 동생 연락처도 받았겠다, 그쪽이랑은 여기서 끝내야겠어.”
유지훈이 철벽 모드로 진입하자, 강은영은 다급해졌다.
“아니에요. 말할게요. 유지훈 씨랑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는 자들이 있어요. 최금강 마스터도 그들 중 하나예요.”
“우호적인 관계? 왜? 내가 귀환자라서?”
“네? 알고 있었어요?”
강은영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유지훈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바보야? 그걸 내가 어떻게 몰라? 몸소 귀환했는데.”
“그게 아니라. 저쪽에서 유지훈 씨가 귀환자인 걸 아는지 어떻게 알았냐는 뜻이에요.”
“진짜 바보구나? 귀환자인 줄 모르면 뭐하러 나한테 접근했겠어? 금강길드 마스터쯤 되는 분을 앞잡이로 세워서.”
“무슨 말만 하면 바보래···.”
강은영이 입을 비쭉 내밀었다.
유지훈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래?”
“귀환과 관련해서 유지훈 씨 도움을 구하길 원해요. 다녀오신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고요. 새로운 차원 에너지에 관한 연구도 진행하려는 거죠. 유지훈 씨 협조하에요.”
“다녀온 세계에 관한 정보라···. 별로 도움 안 될 텐데···.”
유지훈이 다녀온 세계는 무림. 딱히 도움이 될 게 없을 듯했다. 무림을 배경으로 테마파크를 조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고 보니 미드에서 유사한 유형의 테마파크를 본 것 같기도 하네. <웨스트 월드>였던가. 그런데 그러다 다 죽었지 아마.
“차원 에너지에 관한 연구는 한국이 뒤처져 있어요. 몇몇 국가에선 귀환자 덕분에 빠르게 치고 나가는 상황이에요.”
“차원 에너지라···.”
그 부분에선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차원 이동을 통한 각성으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얻게 됐으니.
그렇다고 공개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영업 비밀이라.
“유지훈 씨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또 있어요.”
“또 뭔데?”
“신화그룹이 꾸미는 음모에 관한 거예요.”
“신화 놈들의 음모? 천억인가 하는 횡령 그거? 그거라면 내가 도움 될 게 없는데. 그때 말한 게 다거든.”
“횡령이 아니래요. 횡령이랑 폭발 사고는 진짜 음모를 가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대요.”
“진짜 음모가 따로 있다고? 그건 또 뭔데?”
“거기까진 저도 몰라요. 신화 배후에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세력이 있대요. 정부 고위층일 수도 있는. 그래서 은밀히 추적 중이래요.”
“실체를 모르는 세력이라···. 그건 좀 재미있겠네.”
유지훈의 눈빛에 이채가 번지기 시작했다.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강은영이 여세를 몰아 설득에 박차를 가했다.
“저쪽에선 여러모로 유지훈 씨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여기고 있어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해요. 최금강 마스터도 유지훈 씨를 지원하기 위해 뭐든 하신다고 했어요.”
“전폭적인 지원 좋지! 그런데 이 일에 왜 그쪽이 앞장서게 된 거지? 그 영감님이 직접 나서는 게 효과적일 텐데.”
강은영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몰라요. 유지훈 씨 귀환한 다음에 처음 만난 사람이 나여서라나···. 도움 준 것도 있고 해서 관계 맺기 좋을 거라면서···.”
“하하하. 저쪽에서 사람 완전히 잘못 봤네. 첫인상부터 제대로 꼬인 관계인데. 그래서 그쪽이 얻는 건 뭐야?”
“내가 얻는 거요?”
돌연 강은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글쎄요. 그런 이야기는 따로 없었는데···. 내가 뭘 얻기에 이러고 있는 거지? 바보 취급이나 당하면서···.”
“하하하. 누나 진짜 바보구나.”
“난데없이 누나는 무슨 누나예요!”
“나보다 두 살 많다며? 그럼 누나지.”
“그런데 왜 반말이에요? 누나한테.”
“기분 나쁘면 그쪽도 반말하시든가. 따지고 보면 반말은 그쪽이 먼저 시작했잖아.”
강은영이 잠시 고민했다. 반말할까 말까.
고민 끝에 계속 존대하기로 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이었다. 자칫 능력을 깡그리 잃을 수도 있다는.
“그 화공대법인지 뭔지 하는 거요.”
“화공대법? 알아낸 거야? 사실 화공대법은 아닌데···.”
“뭐가 됐든 그 이야기는 저쪽에 안 했어요. 유지훈 씨 곤란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건 잘했네. 그것 때문에 저쪽 동네에선 애 좀 먹었거든. 공공의 적으로 몰려서.”
“여기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더할 수도 있겠네요. 각성이 권력이 된 세상이니까.”
“나도 여기선 공공의 적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안 쓸 건 아닌데, 탈 안 나도록 쓰려고.”
“어떻게요?”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손을 쓰는 일은 없을 거야. 대신 누군가 먼저 나를 도발하면.”
유지훈이 손날로 머리를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아이언 헤드 주필호의 머리를 쪼갤 때처럼.
“물론 그전에 부드럽게 어루만져 줘야겠지. 한 1~2초, 길면 4~5초.”
접근 의도의 전달은 마무리됐다. 이제 정리할 시간이었다.
“전폭적인 지원 환영해.”
“그럼 협조하기로 했다고 전하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며?”
“그렇긴 한데···.”
“우선 우호적인 관계부터 다져야지. 탄탄하게 다져진 다음에 협조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뭐예요! 장난하는 거예요?”
“장난이라니. 하자는 대로 하는 건데. 대신.”
유지훈이 강조하듯 말을 끊었다.
능글능글 웃던 표정도 진지해졌다.
“신화길드를 분쇄하는 건은 협조하겠어.”
유지훈이 손날을 들어 머리를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그놈들이 나를 먼저 도발했거든. 아주 오래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유지훈의 안광이 섬찟한 정도로 번뜩였다.
레벨 5 각성자인 강은영이 선뜻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유지훈은 이내 능글능글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뭔가 쿵쿵 울리는 것 같지 않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진동이 예사롭지 않을 걸 보니 대결이 시작된 모양이에요. 서둘러야겠어요.”
“그럼 적당한 데 세워놓고 걸어가자.”
“걸어가자고요? 4~5km는 될 텐데요?”
“그럼 몬스터 있는 데까지 가자고? 차 망가지면 어떡할 건데? 그쪽이 물어주기라도 할 건가?”
L사 SUV. 가격대가 결코 낮지 않았다.
강은영은 군소리 없이 적당한 공간을 찾아 차를 세웠다.
유지훈이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금 300만 원이나 들였어. 조심해서 타야 한다고.”
“300만 원이라고요? 엄청 싸게 사셨네요.”
“그래? 후하게 쳐줬다고 생각했는데. 스톤 헤드한테 미안해지네.”
강은영은 마음이 급했다. 국가안전본부의 지원 인력으로 투입되면서 현장에 늦게 도착하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었다.
허겁지겁 목에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
도착한 현장은 폐허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와! 살벌하구먼.”
2층집 크기의 거대 호랑이였다. 주둥이 아래까지 드리워진 송곳니가 사뭇 흉흉했다.
상대하는 이는 근육질의 중년 사내, 초인 임정명이었다. 굵직한 철봉을 맹렬히 휘두르며 공방을 거듭하고 있었다.
태광길드 헌터들도 이미 도착해 진용을 갖추고 있었다.
40~50명의 헌터들이 반경 200m 주위를 둘러싼 형태. 몬스터의 퇴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인근 민가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방어막을 구축한 모양새였다.
“검치호네요. 임정명 초인과 상성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에요.”
임정명의 특성은 어스퀘이커였다. 타격 부위의 내부를 짓이겨서 찢어발기는 능력이었다. 마치 신체 내부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사용하는 병기는 길이 3m에 지름 10cm 굵기의 철봉이었다. 공간 장악 능력과 타격 기술이 두루 빼어난 인파이터형 전사였다.
임정명은 긴 철봉의 이점을 잘 활용하며 대결에 임하고 있었다.
제법 여러 차례 타격에 성공했고, 그럴 때마다 검치호는 고통에 몸서리쳤다. 어스퀘이커가 작렬해 내부가 진탕 된 탓이었다.
“역시 철봉의 반경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네요. 초특급 몬스터한테도 어스퀘이커는 두려운 특성이에요.”
“국내에 검치호가 출몰한 적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요. 북한엔 출몰한 기록이 있긴 해요.”
“그런데 너무 크지 않아? 기껏해야 1톤 트럭 크기가 정상일 텐데.”
“그렇긴 한데요. 임정명 초인이 무리 없이 제압할 것 같으니 당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네요.”
두어 차례 더 어스퀘이커가 작렬했다.
검치호가 구슬픈 비명과 함께 몸부림쳤다. 어스퀘이커에 당한 뒷다리의 부상이 심한 듯 움직임도 둔해졌다.
임정명이 기세를 올렸다. 한층 거세게 몰아붙였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철봉의 범위 안에 검치호를 가두는 국면에 이르렀다.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군. 준비들 하시게.”
임정명이 철봉을 역수로 바꿔 쥐었다. 철봉에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더니 기이한 각도로 검치호를 후려쳤다.
태광길드 헌터들이 날렵하게 검치호 주위로 모여들었다.
순간 검치호의 목이 괴기하게 움츠러들더니 불쑥 튀어나왔다. 동시에 입에서 희멀건 액체를 뿜어냈다.
임정명이 철봉을 휘둘러 액체를 떨쳐내려 했다.
치이익. 액체에 닿은 철봉이 녹아내렸다.
“독이다!”
임정명이 움찔하는 사이 검치호가 다시 액체를 쏘아냈다. 이번엔 임정명의 전신을 덮쳐왔다.
주춤하던 임정명이 훌쩍 뛰어오른 뒤 공중제비로 피하려 했다.
“으윽!”
완전히 피하진 못했다. 상당량의 독액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뼘 크기의 옆구리 살이 녹아내렸다.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임정명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휘청하더니 주저앉았다. 작지 않은 상처 부위가 검붉게 변해갔다. 독액의 영향인 듯했다.
“초인님을 보호해라!”
헌터들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크허엉!”
검치호의 발길질 한 번에 대여섯이 튕겨 날아갔다.
검치호가 한껏 발톱을 세운 채 임정명에게 다가갔다.
임정명은 주저앉아 쓴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쐐액!
그때 은빛 광채가 검치호와 임정명 사이로 날아들었다.
스걱!
싸늘한 날붙이의 기운이 검치호의 어깻죽지를 가르고 지나갔다.
“캬악!”
검치호가 물러났다.
은빛 광채의 주인이 임정명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은빛 전투복에 은빛 투구, 투구 사이로 긴 머리를 흩날리는 여인이었다. 찬란한 광휘를 뿜어내는 검을 사선으로 드리우고 있었다.
“와!”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그 와중에 유지훈은 미간을 좁혔다.
“왠지 뒤태가 낯이 익은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