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24화 (24/150)

대환장 활극 (2)

아이언 헤드 주필호는 대한민국 최강의 빌런이라는 평가에 손색이 없는 전투력을 과시했다.

그저 대가리로 들이박는 무식한 공격 방식이라 언뜻 보기엔 우스꽝스러웠지만, 위력 앞에선 입을 다물어야 했다.

반면 구경하던 유지훈은 입을 떡 벌렸다.

“와! 쇠대가리라 그러더니 강철 대가리였네.”

진짜 강철 대가리였다. 대가리뿐만 아니었다. 주필호가 특성을 개방하면 머리뿐만 아니라 목과 어깨도 강철로 변했다.

또 하나 주필호의 무서운 점은 도움닫기의 추진력이었다. 땅을 박찬 뒤 그 기세로 달려들어 들이받는 방식. 단순무식한 공격에 당한 상대는 육편이 돼 저승길에 들어섰다.

“으하하하. 역시 대형 길드 놈들은 때려잡는 맛이 남다르다니까.”

주필호의 머리가 싸늘한 강철의 기운을 번득일 때마다, 신화길드 정예 요원들이 납작 으깨져 내동댕이쳐졌다.

속수무책이었다.

“퇴각이다!”

예닐곱쯤 남았을 때 결국 도주를 택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 대한민국 3대 길드의 정예라는 자부심 따윈 개나 줘버려야 했다. 빌런에게 쫓겨 달아나는 망신살도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절대적인 힘이었다.

“퇴각? 지랄하고 자빠졌네. 누가 보내준대?”

문제는 아이언 헤드가 곱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기어코 쫓아가 한 놈, 한 놈 아작을 냈다.

마지막 신화길드 요원의 머리를 으깨버린 뒤 주필호는 손수건을 꺼내 강철 대가리를 어루만졌다. 피를 닦아내자 빛나던 강철 대가리가 원래 머리로 돌아왔다. 특성을 닫은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대형 길드 소속이라고 어깨에 힘이나 주고 다니고···. 어차피 피떡이 돼 찌그러질 놈들이···.”

신화길드 요원들의 처참한 시신에 조소를 보내던 주필호의 시선이 유지훈 일행을 향했다.

“너희들은 뭐야! 신화길드 놈들이야?”

“아닌데요.”

“그럼 우리 애들이야?”

훑어보던 주필호의 시선이 엄덕대에 멈췄다.

“그러고 보니 낯이 익은데? 장 이사 밑에 있는 놈이냐?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원래 여기 있었는데요.”

그때 철두파 조직원이 소리쳤다.

“회장님! 그놈이 덕대입니다. 엄덕대요.”

“뭐야!”

주필호의 눈빛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내리칠 기세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신화길드에 붙어먹은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아, 아닌데요. 제가 신화길드에 언제···.”

분기탱천한 주필호의 기세에 엄덕대는 사색이 됐다.

유지훈이 나서야 할 순간이었다. 둘 사이로 끼어들어 주필호와 마주 섰다. 덥석 주필호의 팔을 잡았다.

“잠깐!”

“넌 또 뭐야?”

“원래 여기 있던 사람.”

“뭐? 미친 새끼 아냐! 이거 안 놔!”

주필호의 경멸 어린 언사에도 유지훈은 주필호의 팔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나직한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나는 신화길드를 혐오한다.”

“얘 뭐라는 거니?”

주필호의 경멸이 한층 짙어졌지만, 유지훈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다만 잡은 손은 놓았다.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드리운 채.

“이만 가보겠다. 우리가 중요한 사업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 덕대야. 형식아. 어디 가서 순댓국이나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하자.”

“가긴 어딜 가! 누가 순댓국 처먹게 둔대?”

“그쪽도 먹고 싶으면 따라오든지. 대신 합석은 사절이야.”

“이 자식이!”

주필호의 노기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마나를 끌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대가리가 으깨지고도 순댓국 처먹을 수 있는지 보자.”

특성, 아이언 헤드를 개방하는 순간이었다.

유지훈이 몸을 돌렸다. 무심한 시선으로 주필호를 바라봤다.

“뭐하냐?”

“이, 이게 왜 이러지?”

주필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온몸의 핏기가 온통 얼굴로 모여든 양상이었다.

유지훈이 그런 주필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 새끼가! 죽여버리겠다!”

주필호가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히더니 그대로 유지훈의 이마를 들이받으려 했다.

유지훈은 침착하게 수도로 맞받아쳤다.

콰직!

수박 쪼개지는 소리였다. 주필호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반으로 쪼개졌다. 피 섞인 뇌수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게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지. 왜 욕을 하고 그래? 그건 순댓국에게 모욕감을 주는 거잖아.”

유지훈이 씁쓸히 고개를 가로젓더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쪽이 쟤네 본부장보단 낫다. 4초나 걸렸으니.”

소멸기가 완전히 작동하기까지 걸린 시간 4초. 주필호는 돌아와 대적한 놈들 중 가장 강했다. 무림으로 치면 초절정의 중반, 구대 문파의 장로에 버금가는 무력이었다.

“덕대랑 노닥거리지 않았으면 애 좀 먹을 뻔했네. 적절한 때 미리 손 쓰길 잘했어.”

한편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아이언 헤드가 쪼개지는 장면을 내려다보던 초인 마철진은 기함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야? 아이언 헤드가 어떻게 쪼개질 수 있지? 그것도 맨주먹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정신 계열의 능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주필호는 분명 마나를 끌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정신을 지배당하는 모습은 결단코 아니었다.

“저놈···. 진정 위험한 놈이군. 어떻게든 해야겠어.”

나서야 할 때였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마나를 움직였다.

순간 유지훈에게 다가가는 인물이 보였다. 단정하게 묶은 은발이 낯익은 노인이었다.

“저 영감탱이가 난데없이 여긴 왜···?”

나서려던 생각을 접어야 했다.

초인은 추앙받는 존재였다. 대신 고결함을 지켜야 했다. 누군가를 핍박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당분간 계속 지켜봐야겠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마철진이 반대편 건물로 몸을 날렸다. 날아가듯 옥상에 안착한 뒤 다시 몸을 날렸고, 이내 점이 돼 사라졌다.

***

강은영과 최금강은 유지훈에게 오는 동안 몇몇 사안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들이대지 말고 은근하게 지원하면서 환심부터 사라는 거죠? 이를테면 잘 구워삶으라는.”

귀환자 유지훈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는 방식에 관해서였다.

직설적으로 협력을 요청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의미였다.

“그렇습니다. 유지훈 씨가 마음에서 우러나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귀환에 관한 열쇠는 유지훈 씨가 쥐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이 취할 스탠스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마스터님은 뒤에서 은근하게 지원하시겠다는 거네요? 굳이 나서서 설득 같은 건 하지 않으시고요.”

“그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직접 뭔가 하게 되면 강압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예 누군지도 밝히지 않을까 합니다. 알아보면 할 수 없지만요.”

“그게 괜찮겠네요. 왠지 제가 덤터기 쓰는 기분이긴 하지만요.”

“허허허. 표 안 나게 돕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팀장님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내친김에 호칭도 정리했다.

“마스터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한테 아버지 뻘이신데요.”

“그래도 공직에 계신 분과 공적으로 함께하는 건데···.”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누가 보면 욕해요. 새파랗게 젊은 년이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랑 맞먹는다고요.”

“새파랗게 젊진 않은데···. 정 그러시면 그렇게 하지요. 부득이 결례를 범하겠습니다.”

“아 제발! 결례 좀 그만 범하시라고요!”

“허허허. 그리 하겠네. 이게 입에 붙으니 영 떼기 힘들어서···.”

강은영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유지훈의 미스터리한 능력, 화공대법인지 뭔지 하는 능력을 알려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귀환과 관련된 능력일 수 있으니 알릴 필요가 있다 싶었지만, 자칫 유지훈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됐다.

갈등 끝에 결정했다.

‘그래. 그 부분은 그 인간한테 맡기자. 귀환에 대해 협력하게 되면 알아서 밝히겠지. 밝히기 싫다면? 그것 역시 그 인간 몫이지.’

그러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광경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백전노장 최금강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저게 대체 뭐야···.”

“헉! 저, 저건 아이언 헤드···.”

서둘러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최금강이 잠시 멈칫하더니 주위를 살폈다.

“마스터님, 왜 그러세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돼서···. 착각한 것 같네. 너무 놀라서 예민해진 모양이야. 어서 가세.”

아이언 헤드 주필호가 머리가 쪼개진 채 나뒹굴고, 오십을 훌쩍 넘는 시체가 널브러진 참혹한 현장.

강은영은 도착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아!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네요.”

놀라긴 했지만,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된 강은영이었다.

어글리 썬더부터 호광길드 박찬수를 거쳐 신화길드 김연학까지. 유지훈의 괴랄한 무력을 진즉에 목격한 경험 덕분이었다.

오히려 놀란 건 유지훈이었다.

“어! 그쪽이 여긴 어떻게···?”

유지훈이 시신들을 따라 움직이는 강은영의 눈길을 좇다가 양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설마 이거 다 내가 했다고 여기는 건 아니지?”

“뺄 거 없어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아니야. 나는 구경만 했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이런 거야.”

“누가 못 본 줄 알아요? 거기 손에 피 묻었네? 그건 뭘까?”

“아. 이놈 하나만 내가···.”

주필호의 시선을 가리키던 유지훈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잘 만났다. 왜 연락 안 한 거야? 기껏 좋은 집 장만해서 잘 꾸며놨는데, 왜 정작 동생은 못 만나게 하냐고!”

“누가 할 소릴? 연락하라고 명함 줬잖아요. 유지훈 씨는 손이 없어요? 왜 연락 안 한 거예요?”

“그건···. 백화점에서 옷 갈아입다가 잃어버렸어, 그쪽이 말도 없어 도망가서 그런 거 아냐!”

“나 참! 적반하장이 따로 없네.”

“공직에 몸담았다고 목에 힘 빡 주더니, 이래도 되는 거야? 이거 엄연한 직무유기야.”

“하! 알았어요. 줄게요. 주면 될 거 아니에요.”

강은영이 쪽지를 건넸다.

유지훈이 쪽지를 펼쳐보고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남해? 얘가 서울에서 방 한 칸 못 구해서 남해까지 쫓겨간 거야? 진작 말 안 하고 뭐 한 거야?”

“말하지 말라면서요!”

목청을 높이는 강은영을, 유지훈이 손을 휘저어 저지했다. 휴대폰을 꺼내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뭐야? 전원은 왜 꺼져 있어? 얘가 남해 가더니 물질하는 해녀라도 된 거야? 번호가 맞긴 해?”

강은영을 노려보는 유지훈의 시선이 사뭇 사나웠다.

강은영이 움찔해서 설명하려 했다.

“번호는 맞아요. 그리고 동생분은 잘···.”

“됐어. 아무 말도 하지 마. 그쪽한테 듣고 싶지 않으니까.”

“무슨 말을 못 하게 해.”

투덜대던 유지훈의 시선이 최금강에게 머물렀다.

“어디서 뵌 분 같은데, 영감님은 누구십니까?”

“이분은···.”

강은영이 나서 소개하려 하자, 최금강이 만류하고 직접 말했다.

“나는 강 팀장의 먼 친척 되는 사람입니다. 방향이 같아서 같이 차를 타고 오는데, 강 팀장이 걱정을 많이 해서 함께 와보게 됐습니다.”

“지은 죄를 모르진 않는 모양이네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강은영이 발끈했지만,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주저앉아야 했다. 손을 들어 주위를 조용하게 했다.

“쉿! 회사 전화예요. 강은영입니다. 네? 네! 네.”

각기 톤이 다른 세 번의 같은 대답 끝에 전화를 끊었다. 사뭇 난처한 표정이 됐다.

“저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초특급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현장으로 가라는 본부 지시가 내려왔어요.”

“초특급이면 레벨 7 아닌가? 강 팀장이 감당할 수준이 아닌데.”

최금강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강은영이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하게 찍혀서 그래요. 평소엔 일도 안 주다가, 아무도 안 하려는 일만 툭툭 던져주고···. 임정명 초인이 그쪽으로 가고 계신대요. 태광길드에서도 인원 보냈다니까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초특급 몬스터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위험했다.

최금강은 같이 가주고 싶었지만, 곤란했다.

몬스터 퇴치는 이권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초인과 길드의 협력 작전이 펼쳐지는 현장에 다른 길드가 관여하는 건 결례였다. 특히 길드 마스터인 최금강으로서는 멀리해야 할 현장이었다.

“위험한 건 괜찮은데, 움직일 차량이 없네요.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최금강은 잠시 고민했다. 마땅히 자신의 차를 내줘야 했지만, 차가 너무 고급이었다. 3억 원에 달하는 M사 세단.

이제 막 출고 2개월째였다. 초특급 몬스터가 날뛰는 현장이면 멀쩡히 돌아올 가능성은 0으로 수렴했다.

큰맘 먹고 차 키를 내밀려는 찰나, 누군가 불쑥 강은영의 어깨를 잡았다. 입꼬리가 한껏 말려 올라간 모습이었다.

“같은 방향인 것 같은데, 내가 태워다 줄까?”

유지훈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줄 알고 같은 방향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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