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19화 (19/150)

훈육의 신세계 (2)

각성자 특성 개화 시험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테스트를 받을 각성자는 다섯이었다. 객석에는 가족, 친지, 길드 동료 등 시험 대상자를 응원하는 이들이 자리했다. 대략 서른 남짓.

유지훈 일행도 객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박형식과 엄덕대는 도저히 응원은 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지만, 유지훈의 준엄한 훈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들 곱게 써라. 그래야 좋은 일도 찾아온다.”

족제비 이준호는 시험장에서도 거들먹거렸다. 긴장한 채 테스트를 기다리는 대상자들을 상대로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도 테스트받으러 온 주제에 고레벨 각성자라도 된 양 훈수질을 일삼기도 했다.

“저 지랄을 보고도 응원하란 말씀이 나오십니까? 저는 야유나 실컷 퍼부으렵니다.”

“막상 보면 그런 말 안 나올 거야.”

테스트는 세 과정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는 마나 발출에 의한 레벨 확인. 특성 개화는 레벨 4부터 가능하기에 자격을 확인하는 단계라 할 수 있었다.

테스트 대상자는 두 부류가 있었다. 처음부터 레벨 4 이상으로 각성한 경우와 아래 레벨에서 레벨 4로 끌어올린 경우.

과거엔 레벨을 끌어올린 각성자가 극히 드물었지만, 최근 2~3년 사이 의약의 발달 덕분에 레벨업에 성공한 각성자가 부쩍 늘었다. 돈으로 레벨을 살 수 있는 시대. 이준호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첫 번째는 두 부류를 대상으로 한 자격 심사 단계인 셈이다.

두 번째는 신체 스캐닝을 통해 특성의 종류를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마나가 발출되는 통로와 응축된 마나의 성질 등을 파악해 각성자가 보유한 특성을 확인하는 방식. 특성 인지 단계라 할 수 있었다.

두 과정을 거친 각성자는 실제로 특성을 구사해보는 단계에 들어간다. 실전 활용이 가능한 수준인지 검사하는 과정이다.

세 번째 단계를 통과해야 최종적으로 특성을 개화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동시에 C급 헌터 자격도 부여된다.

C급 이상 헌터는 대한민국을 통틀어 500명 남짓에 불과했다. 격변의 시대에 특권층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레벨 4 이상에 특성을 보유한 각성자, C급 이상의 헌터는 특권층의 하한선인 셈이었다.

C급 헌터만 돼도 최소 연수입 3억 원이 보장됐다. 길드를 설립할 자격도 주어졌다. 수많은 저레벨 각성자들이 특성 개화 시험에 인생을 거는 이유였다.

간혹 두 번째 단계까지 거치고도 마지막 단계에서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특성은 인지했지만, 구사 능력이 미흡한 경우였다. 마나의 부족이나, 정신적인 미숙함 등의 이유로.

그런 경우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준호 저놈 한 번 탈락했었다고 들었어요.”

“역시 정신적으로 미숙해서겠지? 딱 보니까 중2병 환자던데.”

“마나 부족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놈 아버지가 약 엄청 구해다 먹였다더라고요. 모르긴 해도 수억은 저놈 뱃속에 쏟아부었을걸요.”

“모르긴 해도 다 똥으로 싸질렀을 거다.”

테스트가 시작됐다.

재수생인 족제비는 맨 마지막 순서였다.

앞선 네 명의 도전자 중 마지막 단계까지 통과한 이는 하나에 불과했다. 둘은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고, 나머지 하나는 첫 번째 단계에서 탈락했다.

족제비는 쉴새 없이 조롱을 쏟아냈다.

“이번 참가자들 영 형편없잖아. 이런 놈들이랑 도매금으로 넘어가면 곤란한데. 길드 설립 준비까지 마친 내가.”

테스트에 들어가서도 거들먹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바로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면 안 됩니까? 지난번에 두 번째 단계까지는 완벽하게 통과했는데.”

“이준호 도전자님. 규정을 준수해주시죠.”

“되게 빡빡하시네. 우리나라 공무원은 융통성이 없다니까. 국민 편의는 안중에도 없고. 이래서 공무원이 욕 처먹는 거지.”

테스트 감독관의 엄정한 진행에 이준호가 군시렁거리며 마나 발출 캡슐로 들어갔다.

“이깟 캡슐 그냥 부셔버려?”

“이준호 도전자님. 국가 재산 파손은 범죄입니다. 성실히 테스트에 응해주시기 바랍니다.”

“쳇! 그럼 제대로 마나 쏟아내지도 못하겠네. 반 정도만 써야겠다.”

이준호가 투덜대며 자세를 취했다. 마나를 모으는 듯 양손을 크게 휘감더니 힘차게 앞으로 뻗었다. 마나 발출을 시작했다.

시작했다. 계속 시작했다. 시작만 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준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금 양팔을 뻗었다.

또 뻗었다. 계속 뻗었다. 뻗기만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벌겋다 못해 시꺼멓게 죽어갔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안 나오는 거야?”

얼굴이 터질 듯 시뻘겋게 부풀어 오르는 와중에도 맹렬한 팔놀림은 멈출 줄 몰랐다.

피식.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이준호 도전자님. 장난하십니까? 성실하게 테스트에 응하세요!”

“시끄러워! 지금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이준호는 필사적인 헛손질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급기야 감독관들이 나서 이준호를 캡슐에서 끌어냈다.

끌려 나오는 와중에도 이준호는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이건 사기야! 나는 레벨 4 각성자라고! 기계가 잘못된 거야!”

“각성자를 사칭하는 건 범죄입니다. 계속 이러시면 수사기관에 넘기겠습니다.”

난동이 이어졌지만, 감독관들은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저레벨이긴 해도 각성자인 감독관들에게 힘없는 시민에 불과한 이준호의 깽판은 장난이었다.

“푸하하하. 아이고 배야.”

캡슐 주변 못지않게 객석도 요란했다. 포복절도로 넘실댔다. 물론 유지훈 일행이 주도했다.

유지훈은 연신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쳤고, 엄덕대는 배꼽을 잡고 숨넘어갈 듯 웃어댔다.

박형식은 여전히 눈치가 보이는지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큭큭 새어 나오는 웃음까진 어쩔 수 없었다.

감독관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이준호의 독기 어린 시선이 이들을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너 이 새끼들 죽고 싶어!”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다른 도전자들의 지인들까지 가세한 웃음꽃이 한층 화려하게 피어오를 뿐이었다.

파이팅! 불끈 쥔 주먹이 이번엔 주먹 감자를 만들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형님. 정말 응원할 맛 나던데요.”

“그러게 내가 좋은 구경 할 거라 했잖아.”

“형님께서 어떻게 하신 겁니까?”

“훈육의 신세계라고나 할까?”

“그게 뭔데요?”

“저놈 뱃속에 처넣은 약들 다 똥으로 싸질렀다는 의미다.”

“저 새끼 똥 진짜 굵겠네요. 푸하하.”

엄덕대가 연신 낄낄대며 앞장섰다.

“이제 정말 순댓국 드시러 가시죠.”

“순댓국 좋은데, 명동엔 아는 집 없냐?”

“네? 명동은 왜요?”

“그쪽에 가서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그때 스포츠카가 일행을 지나쳐 앞을 막아섰고, 뒤이어 시커먼 승합차가 이들 옆에 멈춰섰다. 사내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유지훈 일행을 잡아 던지듯 차에 태웠다.

스포츠카의 족재비 이준호가 성마른 음성으로 지시했다.

“채무자들 작업하는 데 알지? 거기로 끌고 와!”

스포츠카가 앞장섰고, 승합차가 뒤를 따랐다.

이준호는 시험장에서 수모의 분풀이라도 하듯 액셀을 밟아댔다.

부와왕! 굉음과 함께 스포츠카가 속도를 높였다. 어느새 승합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벌레만도 못한 새끼들이 나를 비웃어? 어디 죽도록 맞고 파묻힌 다음에도 비웃을 수 있는지 보자.”

이준호가 향하는 곳은 서울 외곽 야산이었다. 아버지의 대부업체에서 채무자를 협박할 때 끌고 가는 곳이었다.

법을 들먹이며 대들다가도 몇 대 맞고 목만 내놓은 채 땅에 묻히면 고분고분해지곤 했다.

이준호는 세 놈을 파묻은 뒤 빼꼼히 내놓은 머리통을 사커킥으로 가격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렸다. 기분이 좋아져 낄낄거렸다. 왜 시험을 망쳤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약 좀 더 먹으면 돼. 이번엔 좀 더 비싼 놈으로 사달라고 해야지.”

먼저 목적지에 도착했다.

담배 두 대를 필 때까지 승합차는 오지 않았다.

“새끼들 뭐 이렇게 굼떠? 일 마치면 정신 교육 좀 시켜야겠네.”

이윽고 승합차가 도착했다.

이준호는 손을 뚝뚝 꺾으며 다가갔다.

“빨리 끌어내려!”

승합차 문이 열렸다.

그런데. 기지개를 켜며 내리는 이들은 그가 데리고 다니는 놈들이 아니었다. 손 봐주려고 끌고 온 세 명. 그들이 전부였다.

“어! 우리 애들은 어디 가고 너희들만···?”

유지훈이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대답했다.

“오다가 버렸다.”

“뭐?”

“야. 7인승에 아홉을 태우면 어떡하냐? 답답하게. 다섯 놈쯤 던지고 나니까 한결 낫더라.”

“그, 그게 무슨 소리···?”

“한 놈은 남겨뒀어. 운전할 놈은 필요해서.”

“미친 새끼가! 죽여버리겠다!”

이준호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퍽! 유지훈의 경쾌한 발길질이 이준호의 복부에 꽂혔다.

“크억!”

이준호가 배를 부여잡고 새우처럼 몸을 말았다.

“꼴값 떨고 있네. 레벨 4 어쩌고 하더니 사기 친 거였냐?”

“이 새끼! 가만 안 두겠어!”

이준호가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유지훈이 같잖다는 듯 피식 웃더니 엄덕대에게 턱짓했다.

“귀찮다. 덕대야. 네가 알아서 좀 해라.”

“제가요? 레벨 4 각성자를요?”

“사기 친 거잖아. 여태 뭘 봤어?”

“아. 네···.”

엄덕대가 자세를 잡고 이준호 앞에 섰다.

나름 한 떡대 하는 녀석이었다. 비각성자이긴 해도 싸움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레벨 1 각성자 정도는 쉽게 제압할 실력이었다.

“흥! 하다 하다 비각성자 놈까지 나대냐? 좋아. 잘근잘근 밟아주마.”

이준호가 매서운 돌려차기로 선제공격을 가해왔다.

엄덕대는 주춤했지만, 이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준호의 발차기가 모양만 그럴듯할 뿐 위력은 형편없음을 감지한 것이었다.

“이 새끼 사기 친 거 맞네!”

엄덕대가 날아오는 이준호의 다리를 덥석 잡고는 땅에 메다꽂았다.

쾅! 뽀얗게 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이준호가 대짜로 뻗었다.

엄덕대가 날렵하게 올라타서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이준호도 가만히 맞고 있진 않았다.

양팔을 교차해 안면을 보호한 뒤 두 다리로 엄덕대의 허리를 감쌌다.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하고는 그대로 팔을 감싸 안았다.

암바 기술로 반격하려는 양상. 주짓수를 익힌 듯했다. 제법 능숙한 동작이었다.

“어쭈! UFC 좀 본 모양인데? 그래도 그런 장난은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너랑 나랑은 체급이 다르잖냐.”

엄덕대가 몸을 일으키며 잡힌 팔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버둥거리는 이준호의 몸을 다시금 땅에 내리꽂았다.

쾅! 쾅! 쾅! 세 차례나.

거듭된 충격에 이준호의 몸이 축 처졌다.

위에 올라탄 엄덕대가 불꽃 파운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준호가 다급하게 땅을 쳤다.

“탭! 탭!”

“병신. 여기가 옥타곤인 줄 아나.”

엄덕대의 활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유지훈이 박형식을 돌아봤다.

“뭐하냐? 멍하니 구경만 하지 말고 땅이나 파라.”

“네? 땅을요? 왜요?”

“왜긴. 묻으려고 파는 거지.”

“뭘로··· 팔까요?”

“저기 연장들 널렸잖아.”

유지훈이 가리킨 곳엔 서너 자루의 삽과 곡괭이가 있었다.

대부업체 놈들이 작업용으로 비치해 둔 장비인 듯했다.

“저쪽을 파. 팠다가 덮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으니까.”

“네!”

박형식이 삽질을 시작했다.

“정말 잘 파지는데요! 삽질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엄덕대가 파운딩을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이준호는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졌다. 족제비를 연상시키던 눈은 퉁퉁 부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박형식도 땅을 다 팠다.

“얘 묻을까요?”

“그래···. 아니다! 이놈 데리고 갈 데가 있다.”

“진작 말씀하시지. 넉넉하게 팠는데···.”

“그래? 그럼 조금 더 파 봐.”

“네?”

“얘 말고 딴 거 묻어버리게.”

유지훈이 가리킨 방향엔 이준호가 타고 온 고급 스포츠카가 있었다.

“놔두면 뭐하냐. 위협 운전이나 할 텐데.”

“그거 우리나라에 두 대밖에 없는 비싼 차인데···.”

스포츠카를 묻는다는 말에 정신을 잃었던 이준호가 눈을 번쩍 떴다.

유지훈은 가볍게 무시했다.

“앞으로 운전할 일도 없을 거야.”

이제 하산할 시간이었다.

승합차 운전석에 앉은 사내가 공손하게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너네 업장으로.”

유지훈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사내는 무슨 말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한 눈치였다.

“업장이라시면···?”

“업장 몰라? 저기 퉁퉁 부은 놈 아버지가 돈놀이하는 데?”

사내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뭔가 큰 사건을 예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거긴 왜 가시려는지요···?”

“돈놀이하는 데 왜 가겠냐? 돈 갚거나, 아니면 돈 빌리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어?”

“아 네···. 편히 모시겠습니다.”

사내가 정성스럽게 운전을 시작했다.

유지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무 겁먹을 거 없다. 빚 갚으러 가는 거니까. 고이율 시대에 빚 있으면 부담스럽지 않겠냐. 그리고.”

유지훈이 입꼬리를 싸늘하게 말아 올렸다.

“내가 빚지고는 못 사는 성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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