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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17화 (17/150)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 인간은 왜 연락이 없는 거야? 설마 죽은 거야?”

강은영은 답답했다.

업무를 보이콧 하다시피 하며 유지훈의 행적을 좇았지만, 도무지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연락도 없었고.

죽은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집도 구하고 사람답게 살려면 말소된 주민등록부터 복구해야 할 텐데, 시스템상에 뜨는 게 전혀 없었다.

비각성자 주제에 고레벨 각성자들에게 겁도 없이 들이대니 죽었을 수 있다는 의심도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진 않을 거야. 그 인간한텐 화공대법인지 뭔지가 있으니까.”

유지훈이 귀환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세워 국가안전본부 고위층을 움직이는 방법도 고민했다.

조심스러웠다. 고위층 누가 신화그룹과 결탁돼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칫 그녀는 물론이고 유지훈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였다.

어쨌거나 유지훈 먼저 접촉하는 게 최선이었다.

가능한 루트를 모두 뒤졌지만, 소득이 없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무거나 마구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이 확 뜨였다.

“이게 뭐야!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거야?”

레벨 1 던전 방문 기록에 유지훈이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었다.

던전관리국 소속인 강은영의 입장에선 코앞을 살펴보지도 않고 지나쳤던 셈이었다.

“설마 동명이인은 아니겠지?”

헌터협회를 검색했다. 유지훈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녀가 찾고 있는 유지훈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의미였다.

“이 인간 던전은 왜 드나들고 난리야? 각성자 때려잡는 것으로는 만족 못 해? 몬스터까지 때려잡겠다고? 비각성자 주제에.”

방문 기록을 상세히 확인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던전관리국에서 직접 관리하는 던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용역업체에서 관리하다 보니 기록이 부실했다.

문제의 던전에 직접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외근 나간다. 안 들어올 수도 있어.”

“국장님이 찾으시면 뭐라고 말씀드려요?”

“던전 순방 나갔다고 해.”

신호 위반까지 해가며 도착한 던전.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신분증을 제시하자 친절하게 살살거리던 용역업체 직원들이 유지훈의 이름을 말하자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왔다 간 것으로 기록돼 있던데 기억 안 나세요?”

“열댓 명이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나가서요. 하나하나 얼굴 확인까진 못 했습니다.”

“키는 180 정도 되고요. 조금 마른 체형에 서글서글하니 인상이 좋은 편인데. 제법 미남형이고요.”

“서글서글 인상이 좋다고요? 그런 사람은 전혀 못 봤습니다.”

직원이 정색하며 손사래를 치기까지 했다.

“못 봤으면 못 본 거지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러세요?”

“절대 못 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절대요.”

“으음···. 연락처도 따로 안 기록해뒀다고 하셨고···.”

강은영이 입맛을 다시며 사무실을 둘러봤다.

곳곳에 파손된 책상과 의자 등 집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친숙한 광경이라는 느낌이었다.

“집기들이 제법 많이 망가졌네요.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봐요?”

“그런 게 아니라 장만한 지 오래된 것들이라···.”

“저희가 예산이 부족해서 교체를 못 했습니다. 정말 열악한 환경···.”

어색한 우는 소리를 들으며 강은영은 관리소를 나섰다.

성과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한층 깊은 미궁에 빠진 기분이었다.

“왔다 간 기록은 있는데, 어째 목격한 사람 하나 없냐. 이 인간 투명인간 특성이라도 개화한 거야? 비각성자가.”

털레털레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맹렬한 속도로 가까워지는 상서롭지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본능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처지가 한심하긴 했지만, 강은영은 나름 레벨 5의 각성자였다. 한때 국가안전본부의 특급 인재로 손꼽히기까지 했다.

날렵한 동작으로 몸을 틀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여차하면 선제공격으로 제압할 채비까지 마쳤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는데 옆구리가 뜨끔했다. 찌릿찌릿 머리 꼭대기까지 감전되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생경한 공간이었다. 작은 방이었다. 침대와 탁자 그리고 의자 두 개만이 단조롭게 배치돼 있었다.

강은영은 탁자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다.

머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고, 목이 바짝 말라 타는 기분이었다.

방문 밖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경계 태세를 취할 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낯선 외모의 중년 사내가 물병을 들고 들어왔다.

“깨어나셨군요. 갈증이 심하실 텐데 물부터 드시지요.”

사내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힌 뒤 물병을 건넸다. 맞은편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당신 뭐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부득이 불편하게 모셔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금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강은영은 다급히 몸 상태를 살폈다.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옷은 원래 입고 있던 그대로였고, 두통과 갈증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듯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부터 들이켰다.

갈증이 해소되니 두통도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반비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 누구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던전관리국 탐사 3팀 강은영 팀장님.”

“알고도 이런 거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사내가 눈매를 살짝 찡그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 미안함을 드러내는 미소가 그려진 채였다.

“누군지 알기 때문에 은밀히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례를 범하게 된 점 다시금 용서를 구합니다.”

거짓이나 가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은영은 분노를 가라앉았다. 흥분해 날뛰기보다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말투도 사내처럼 존칭을 사용하기로 했다.

“여긴 어디죠? 나를 왜 데리고 온 거죠?”

“죄송합니다.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어야 하기에 결례를 범한 것입니다. 무사히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때도 불편을 감수하셔야 하는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사내가 빙긋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모시게 된 이유는 요즘 팀장님의 관심사 때문입니다.”

“내 관심사요? 내가 뭐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뇌리에 떠오른 무언가, 정확하게는 인물이 있었다. 관련해 질문을 던지려 했다. 사내가 앞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유지훈 씨. 관련해서 의견을 구하고 싶었고, 전해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이리로 모신 것입니다.”

“내가 그 인간한테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어떻게···? 아. 이성으로서 관심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하하하. 물론입니다. 요즘 귀환자와 유지훈 씨를 연관 지어 조사하고 계신 듯하더군요.”

강은영이 눈을 크게 떴다.

“뭐예요. 나를 스토킹하기라도 한 거예요?”

“하하하. 아닙니다. 관심사가 일치한 덕분입니다. 저희 나름대로 유지훈 씨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에서 팀장님도 비슷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강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그쪽도 국가기관 소속인가요?”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대신 이거 하나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사내가 눈매를 찡긋하며 웃더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지훈 씨가 귀환자일 수 있다는 전제.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팀장님께 몇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뭐죠? 빨리 물어보시죠.”

“유지훈 씨 처음 발견했을 때와 동행 과정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뭘 어떤 식으로 말해달라는 건지···?”

강은영이 머뭇거리자 사내가 부연해 설명했다.

“저희도 귀환자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유지훈 씨를 관찰해왔습니다. 팀장님은 곁에서 지켜보셨으니 저희보다 생생한 느낌을 받으셨으리라 여겨 여쭙는 것입니다.”

“내가 왜 말해야 하죠? 나도 뭔가 얻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정보는 교류입니다. 가능한 선에서 도움도 드릴 생각입니다.”

강은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거적때기만 두른 유지훈을 만난 순간부터 의료센터 검진, 옛집 앞 격투, 호광길드 난투극, 5년 전 사고 등을 정연하게 들려줬다.

사내는 태블릿 PC에 메모하며 경청했다.

“저희도 차원 에너지 변동을 감지해서 유지훈 씨에게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지금껏 파악됐던 것과 다른 성격의 차원 에너지였거든요. 어쩌면 새로운 차원으로 연결되는 포털이 생성됐을 수도 있는.”

“그럼 유지훈 씨가 귀환자가 맞는 건가요?”

“확인은 못 했습니다. 감지된 시간이 너무 짧았거든요. 답은 유지훈 씨에게 있다고 생각해 관찰을 시작한 겁니다.”

“직접 물어보시지 않고요?”

강은영이 의아한 듯 묻자,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지훈 씨를 노리는 자들이 있어서요. 섣불리 나서면 유지훈 씨가 위험해질 수 있어 일단 접근은 배제하고 관찰만 하고 있습니다.”

“혹시 신화길드 쪽인가요?”

사내는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강은영이 뭔가 떠오른 듯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호광길드를 싹 청소한 것도 그쪽 작품인가요?”

“굳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동안 의문스러웠던 점들이 한꺼번에 풀리네요. 유지훈 씨 정보가 행정시스템에 뜨지 않는 것도 그쪽 작품이겠어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강은영이 살며시 코웃음을 쳤다. 이내 진지한 표정이 됐다.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시죠. 가능한 선에서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공조를 요청하고 싶어요.”

“공조라 하시면···?”

“유지훈 씨와 나는 신화길드로부터 받아낼 빚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 때문에 내가 유지훈 씨와 함께 움직이려는 거고요.”

사내가 눈매를 살짝 찡그렸다.

“말씀하는 빚은 던전 폭발 사고를 가장한 횡령을 의미하겠군요. 팀장님의 명예 회복과 직결된 문제가 될 테고요.”

“맞아요. 폭발 사고는 유지훈 씨와도 연계된 문제예요.”

“그 부분이라면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없을 듯합니다.”

“어째서죠?”

“저희는 횡령은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거든요. 대신 다른 부분에 혐의점을 두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죄송합니다. 아직은 심증에 불과한 단계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대신 윤곽이 드러나면 공유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팀장님 명예도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내가 당부 하나를 추가했다.

“당분간 유지훈 씨와 거리를 둬주십사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이유에서요?”

“신화가 팀장님을 이용해 유지훈 씨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거든요. 최근 들어 팀장님에 대한 감시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부득이 팀장님을 이리로 모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은영이 눈매를 좁혔다.

“나를 감시해서 뭘 어쩌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지훈 씨를 제어하려는 거죠. 여차하면 제거까지···. 부속실까지 투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부속실이면 그룹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의미인데···. 신화 놈들 미쳤네요.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래요?”

사내는 대답 대신 당부를 반복했다.

“당분간만이라도 유지훈 씨에 대한 접촉을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유지훈 씨를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라 여깁니다. 그분의 신상에 어떤 일도 생겨선 곤란합니다.”

“일단 신상부터 확보하시지 그러세요? 나를 여기 데려온 것처럼.”

강은영이 냉랭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희가 유지훈 씨의 도움이 절실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강제할 순 없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모시려 하고 있습니다. 팀장님께 범한 결례는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하아! 뭐 어쨌든 알겠어요.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도 신화 놈들 관련해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건 아시잖아요.”

“당분간은 모든 상황에 대해 모른 척해주셨으면 합니다. 본부에 보고한다거나 하지 마시고. 오늘 만남에 대해서도요.”

“자꾸 당분간 당분간 하는데 언제까지요?”

“저희 쪽 준비가 끝나는 대로 팀장님께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는 원하시는 공조도 진행하는 것으로 약속드리겠습니다.”

사내가 그윽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온화한 눈빛이었지만 뿜어내는 기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강은영은 눈앞의 사내가 상당한 수준의 각성자임을 감지했다. 레벨 5의 자신을 능가하는.

사내가 한 마디 추가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늘한 어조였다.

“노파심에서 한 말씀 덧붙이자면, 신화에서 초인을 움직이려 한다는 첩보도 입수됐습니다.”

“뭐라고요! 일개 비각성자에게 초인을···. 미친놈들 아니에요!”

“조심하셔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불편하시더라도 여기서 조금만 더 계십시오. 적당한 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사내가 방을 나섰다.

강은영은 따라 일어섰다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

거대한 음모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편으로 몸속 세포들에 스미는 긴장감은 사뭇 짜릿했다. 잊고 지냈던 활력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그래. 강은영. 죽지 않았구나. 살아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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