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기다렸다는 듯 앞을 가로막는 험상궂은 사내들로 인해 일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물론 유지훈 빼고. 엄덕대도 별다른 동요는 없었고.
“당신들이 어떻게 여기에···?”
표면적으로 사냥팀을 이끄는 박형식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혀로 단검을 핥던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여기 나오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형식 씨 우리 처음 만난 것도 아니잖아.”
사내가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웃었다. 뱀눈에 매부리코, 뺨을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몹시 기분 나쁜 외모였다.
“지난번에 충분히 줬잖아. 석 달은 놔두기로 약속한 거 아니었어?”
“그랬나? 기억이 없네. 돈이 떨어져서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해.”
뱀눈 사내가 뒤쪽의 빡빡머리에게 물었다.
“넌 기억나냐? 충분하게 줬다는데?”
“저놈 오늘 처음 만난 거 아니었습니까? 킬킬킬.”
“그렇다는데?”
뱀눈이 비릿하게 웃더니 손을 까닥였다.
“다들 카드 꺼내시지. 더도 말고 오늘 챙긴 돈만 받아갈게. 우리도 양심은 있거든.”
뱀눈의 손짓에 옆에 있던 사내가 단말기를 꺼내 들고 앞으로 나섰다. 개중 용모가 단정해 보이는 게 돈을 만지는 놈인 모양이었다.
박형식이 난감한 표정으로 엄덕대를 바라봤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었다. 엄덕대가 나서려 할 때 유지훈이 툭 내뱉듯 말했다.
“뭐야? 배고프다고 했잖아. 고기 먹으러 가자니까.”
뱀눈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크크크. 오늘 십장은 따로 있었던 건가? 형식 씨 아니었어?”
“십장은 또 뭐냐? 우리가 노가다냐?”
유지훈이 뱀눈에게 같잖다는 시선을 던진 뒤 무리를 죽 훑어봤다.
험악한 놈들 중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눈이 마주쳤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가 싹수가 노래 보였지만, 왠지 인상은 더욱 재수 없는 놈이었다.
‘누구였더라. 분명 아는 놈인데···.’
노란 머리가 먼저 유지훈을 알아봤다.
“너 이 새끼 유지훈이 아니냐? 졸라 반갑네.”
“유지훈 맞는데 넌 누구···?”
노란 머리가 득의양양하게 웃더니 뱀눈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형님. 이 새끼 제 밥이었습니다. 제가 좀 손봐줘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그래도 손님인데 너무 심하게는 말고.”
노란 머리가 유지훈에게 다가왔다.
“야 이 존만아. 오랜만에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옛날엔 발바닥도 핥던 놈이 뭐 이렇게 뻣뻣해졌냐.”
“누군지 알아야 인사를 하든지···.”
“병신 새끼야. 나 준철이야. 기억 안 나? 좀 맞아야 기억날래?”
노란 머리가 오른손을 들어 뺨을 때리려 했다.
유지훈이 덥석 팔을 붙잡았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은 가물가물하네.”
“어쭈! 막아? 얼마나 처맞으려고. 기억날 때까지 패줘야 하냐?”
“기억나는 거 좋지. 대신 방법은 내가 정하고.”
유지훈이 노란 머리의 팔목을 쥔 손에 힘을 쏟아부었다.
우두둑! 가볍게 팔목이 부러졌다.
“으아악! 너 이 새끼. 뭐 하는 짓이야!”
“뭐하긴. 기억해내려고 몸부림치는 거지. 슬슬 기억날 것 같아. 조금만 더 때리면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 너 좀 맞자.”
유지훈이 노란 머리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싸다구 갈기기 신공을 전개하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그럼 시작할게. 조금만 참아라. 기껏 기억했는데 정신줄 놓아버리면 곤란하지 않겠냐.”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쫘악! 쫘악! 쫘악! 찰진 타격음과 함께 노란 머리의 볼이 뭉개졌고, 이내 터져 피를 뿜어댔다.
“한쪽만 때리니까 기억이 잘 안 나네. 반대쪽도 마저 대.”
손을 바꿔 반대쪽 뺨도 올려붙였다.
석 대만에 뺨이 터졌다. 코뼈까지 부러졌는지 코피가 줄줄 흘렀다.
“으으으. 그, 그만···. 기억 안 해도 돼.”
“그럴 수야 있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기억해야지.”
사실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했다.
박준철. 중학생 시절 지독스럽게 유지훈을 괴롭혔던 일진이었다. 너무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끝에 유지훈은 1년 휴학하기까지 했다.
잊을 수 없는 이름이고 얼굴이었지만, 무림에서 보낸 50년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처음 봤을 땐 바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일단 기억나니 어제 일처럼 선명해졌다.
치 떨리는 나날들. 고스란히 돌려줄 시간이기도 했다.
“준철이라고 했지? 기억날 것 같아. 말하는 게 재수 없었는데.”
“으으으. 그래. 나 준철이···. 우리 제법 잘 지냈잖···.”
“변함없이 재수 없구나. 그 입부터 어떻게 좀 해야겠다.”
주먹을 쥐고 입을 쥐어박기 시작했다.
콰득! 콰득! 콰득! 이빨이 모두 으깨진 다음에야 주먹질을 멈췄다.
“아. 이제 다 기억나네. 박준철. 오랜만이다. 15년쯤 됐나? 실은 나한테는 65년쯤 되긴 했지.”
“어으으어으···.”
“그래. 너도 반갑구나. 그런데 너는 너보다 어려 보이는 놈한테 형님이라 그러냐? 줏대는 어디다 상실한 거야?”
유지훈이 뱀눈을 흘깃 쳐다봤다.
뱀눈 무리는 굳어진 모습으로 참혹한 구타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달려들었을 텐데, 유지훈의 기세가 원체 무시무시했다. 덤벼들지 못한 채 눈치만 보는 양상이었다.
유지훈이 뱀눈 사내를 향해 턱을 까닥했다.
“그쪽은 나이가 어떻게 돼?”
“나? 나는···. 95년생. 빠른.”
뱀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
“허! 얘 서른이야. 그쪽보다 두 살이나 많은 놈한테 형님 소리 들으니까 기분 좋냐?”
“빠른이라고 했다!”
“지랄하고 있네. 너 같은 놈 때문에 족보 다 꼬이는 거야.”
그때 빡빡머리가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나섰다.
“어디서 굴러먹던 새끼가 건방지게!”
“너한테 한 말 아니거든. 낄끼빠빠다. 이 대머리 새끼야!”
유지훈이 벼락같이 수도로 빡빡머리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콰직! 수박 터지는 타격음과 함께 머리가 쪼개졌다. 피를 쏟으며 빡빡머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대머리 아닌데···.”
그제야 뱀눈의 기세가 흉험해지기 시작했다. 빡빡머리가 심복인 모양이었다. 분기탱천한 눈빛으로 유지훈을 노려봤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제법 놀았나 본데, 사람 잘못 건드렸어.”
뱀눈이 손을 들어 올리자 무리의 사내들이 일제히 연장을 꺼내 들었다. 일본도, 도끼, 쇠사슬, 곡괭이 등 각양각색이었다.
유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혀를 끌끌 찼다.
“가지가지 한다. 너희들 빌런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냐?”
대답은 바로 뒤 박형식에게서 들려왔다.
“형님. 빌런은 저놈 하나고요. 나머지는 그냥 양아치입니다.”
“그게 뭐가 달라?”
“각성자만 빌런이라고 하거든요. 저놈은 레벨 4의 각성자입니다. 잔혹하기로 유명한 놈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현상금 같은 건 없나?”
“현상금은 레벨 5 이상부터 걸리는 거라···.”
유지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막 던전에서 몬스터 사냥하고 나왔는데, 던전 밖에선 빌런 사냥을 하게 생겼네. 현상금도 없다니 돈도 안 되는 일이잖아.”
“건방진 놈! 쳐라! 죽여버려!”
유지훈이 잠시 사내들을 바라봤다.
“칼에는 칼인데, 독두꺼비 놈 때문에 긴 놈은 망가졌으니, 짧은 놈으로 해야겠군. 한결 잔인해지겠어.”
무림에서 유지훈은 근접전의 절대 강자였다. 박투는 신의 경지라는 평가를 받았고, 짧은 병기도 손에 꼽을 정도로 능수능란했다.
짧은 병기를 쥐었을 때 그는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내공이 없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확실하게 끝장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무림을 공포에 떨게 한 잔인함이 발동할 순간이었다.
유지훈이 자세를 낮춰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게 휘두르는 연장들 사이로 파고들어 단검을 그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닥치는 대로 썰었다.
발목도 썰고, 허벅지도 썰고, 옆구리도 썰고, 복부도 썰고, 손목도 썰고, 팔뚝도 썰고···. 걸리는 건 모조리 썰었다.
“으악!” “아악!” “커헉!”
아비규환이 펼쳐지기까지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어디 한 군데씩 잘려나간 스물 가까운 사내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나뒹굴었다.
“형님! 저희도 돕겠습니다!”
엄덕대와 박형식이 지원에 나서려 했지만 헛짓이었다.
뱀눈을 제외한 모두가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으니. 어차피 레벨 4의 빌런인 뱀눈은 엄덕대나 박형식의 상대는 아니었고.
“여태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 끝나니까 돕겠다는 거냐?”
“그, 그게···. 잘 못 봐서요. 언제 이렇게···.”
순간 뱀눈이 벼락같이 양손을 뻗었다.
싸늘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운이 유지훈에게 쇄도했다.
박형식이 다급하게 외쳤다.
“조심하세요! 그놈 특성이 바늘을 무더기로 쏘아대는 겁니다.”
“진작 말했어야지. 어째 넌 꼭 한 발씩 늦는다.”
유지훈이 피식 웃으며 눈을 흘기고는 훌쩍 뛰어올랐다.
뱀눈이 쏘아낸 수십 개의 바늘이 유지훈의 발밑으로 지나갔다. 실제 바늘은 아니었다. 마나를 응축해 바늘 형상으로 만든 것이었다.
니들 머신건. 뱀눈의 특성이었다. 한꺼번에 70~80개의 바늘을 생성해 쏘아낼 수 있었고, 세 번까지 연속 공격도 가능했다.
일격에 목숨을 끊는 위력까진 아니었지만, 심각한 상처를 입혀 무력화시킬 순 있었다. 암습에 효용이 뛰어난 특성이었다.
“어쭈! 피해? 제법이구나. 이것도 피해 봐라.”
뱀눈이 양손을 상하좌우로 휘저으며 뻗었다.
투명한 바늘이 사방으로 비산해 소용돌이를 그리며 덮쳐왔다. 100개가 훌쩍 넘는 바늘이 유지훈의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양상이었다.
병장기로 튕겨내야 했다. 장검이면 수월할 텐데, 지금 유지훈의 손엔 단검만 쥐어져 있었다.
유지훈이 몸을 던졌다. 바늘의 소용돌이 속으로. 회전은 반대 방향이었다. 단검으론 그 반대 방향으로 소용돌이를 그렸다.
파바바바팟!
“크윽!”
나직한 신음과 함께 유지훈이 한 바퀴 앞구르기를 거쳐 착지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절뚝이더니 주저앉았다.
끄응 하며 일어섰을 때 그의 오른 무릎엔 검붉은 피가 번지고 있었다. 허벅지와 옆구리에도 옅은 핏기가 얼룩지기 시작했다.
뱀눈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기술이다. 연속 공격으로 소용돌이를 만드는 방식이지. 네놈이 좋은 시험 대상이 돼줬구나.”
유지훈이 걸음을 내디디려 했지만, 눈살을 찌푸리며 멈춰섰다.
박형식이 안타까운 탄식을 토해냈다.
“아! 지금 반격하셔야 하는데. 저놈이 다시 공격하려면 적어도 30초는 걸리는데···.”
“반격이라고 했냐? 하하하.”
뱀눈이 미친 듯이 웃었다. 피에 젖은 유지훈의 무릎을 가리켰다.
“무릎뼈가 으스러져서 걷기도 힘들 텐데 반격이라고? 좋지. 그럼 들어와. 어디 들어와 봐.”
뱀눈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손을 까닥였다.
유지훈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나직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만천화우(滿天花雨).”
걸음을 내디뎠다.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였다.
“오래됐나 봐. 어떻게 대응했는지 잠시 잊었어. 다행히 기억났네.”
벼락같이 뱀눈을 향해 몸을 던졌다.
뱀눈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기억나면 뭐하냐. 때마침 나도 준비가 끝났다.”
뱀눈이 다시금 바늘을 발출했다. 수십 개의 바늘이 쏘아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유지훈의 몸이 바닥을 향하더니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어! 하는 사이에 뱀눈 밑에 도달했고, 서걱! 발목을 썰어버렸다.
“어딘가에선 나려타곤이라고 부르며 멸시하는데, 만천화우를 상대하는 데 이만한 게 없더라고. 물론 어설픈 만천화우이긴 했지만.”
“아악! 이 새끼가!”
뱀눈이 발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유지훈은 뱀눈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잡고는 몸을 일으켰다. 무심한 눈빛으로 뱀눈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에 회오리를 활용한 공격은 제법 창의적이었어. 당가 놈들도 감탄했을 거야.”
“무슨 개소리냐!”
뱀눈이 욕설과 함께 양손을 힘차게 올려 뻗었다.
그런데.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으잉?”
연달아 손을 뻗었지만, 이제는 바람 빠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뭐하냐? 아직 준비 안 끝난 거냐? 기다려줘? 에잇. 배고프다. 빨리 끝내고 고기 먹으러 가야지.”
쾅!
뱀눈의 면상에 사커킥이 작렬했다.
멀찍이 날아가 나뒹구는 뱀눈을 유지훈은 기어이 쫓아갔다.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시원하게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
“이건 여기 와서 배운 신공인데, 가슴이 웅장해지더라고. 저쪽에선 왜 안 했나 모르겠어.”
왼쪽 뺨부터 후려치기 시작했다. 피떡을 만든 후엔 오른쪽 뺨도.
양쪽 뺨 모두 공평하게 피떡을 만들어야 신공의 완성이었다.
“정신줄은 놓지 마. 우리 아직 할 일이 남았거든.”
응징은 끝났고, 계산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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