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시작하다 (3)
무림 생활 50년의 경험 덕분에 유지훈은 기세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내공이 없기에 내공의 깊이를 파악할 순 없었다. 순전히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감이었다.
가까워지는 묵직한 기세. 크기는 어중간했다. 어글리 썬더보다 아래였다. 스톤 헤드와 비슷한 수준, 아니 다소 미흡할 듯했다. 다만 독의 농도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독물이 있었다. 무림에서 마주한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처치에 제법 애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삼안천독섬(三眼天毒蟾). 강력한 혈독을 지닌 독두꺼비였다. 가끔 뿜어내는 피에 담긴 독기가 모든 걸 녹여내는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독 연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반갑다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좀 번거로운 놈인데···.’
한편으로 생각했다.
소멸기가 몬스터에게도 통할까?
원칙적으로 인류의 각성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지훈은 비각성자 판정을 받았지만, 소멸기는 분명 각성의 과정을 거쳐 얻은 능력이었다. 각성의 장소가 지구는 아니었지만.
무림에선 내공을 사라지게 했지만, 여기선 각성을 통해 얻은 모든 능력을 소멸시켰다. 몬스터에게도 통할지 궁금한 대목이었다.
‘레벨 4 수준의 몬스터 같은데 테스트해보기에 딱 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군. 안 돼도 조금 다치고 말 테니.’
방향이 정해지니 행동 또한 빨라졌다.
땅을 박찼다. 불쾌한 기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개의 눈을 지닌 짙은 녹색의 독두꺼비였다. 선명한 핏빛 얼룩무늬가 사뭇 공포스러웠다.
생김새는 삼안천독섬과 흡사했다. 다만 크기가 달랐다. 들개 정도였던 삼안천독섬에 비해 눈앞의 독두꺼비는 다 자란 황소 크기였다.
‘좋지. 몸집이 크면 공격할 곳도 많지 않겠냐. 혈석도 크고, 부산물도 많겠지. 짭짤하겠네.’
유지훈이 독두꺼비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허공을 향해 맹렬하게 검을 휘저었다. 독 연기를 흩어놓기 위한 동작이었다.
느릿느릿 다가오던 독두꺼비가 멈칫했다. 영악한 놈이었다. 유지훈의 기세를 읽은 것이었다. 뿜어내는 독 연기의 농도가 짙어졌다.
급기야 혈독을 쏘아내기까지 했다. 예상보다 매서운 기세였다. 독 연기에 가려져 있다가 쏘아졌기에 피하기 쉽지 않았다.
“닿으면 안 됩니다! 모든 걸 녹여버리는 놈이에요!”
숨죽인 채 지켜보던 박형식이 다급하게 외쳤다.
유지훈이 내심 쓴웃음을 흘렸다.
“그걸 누가 모르냐? 피하는 게 최선인데 그럴 수 없어 문제지.”
검을 비스듬히 들어 혈독이 오는 방향을 차단했다.
치이익. 혈독이 닿은 검면이 녹아내렸다. 사실상 두 동강 난 검을 독두까비에게 집어 던졌다.
“제길. 마련한 지 이틀 만에 못 쓰게 됐잖아. 제법 투자했는데···.”
검의 희생을 발판 삼아 훌쩍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두 바퀴 몸을 회전한 뒤 독두꺼비의 등에 착지하려 했다.
등은 독 연기가 가장 옅은 부위. 일단 올라타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셈이었다. 물론 소멸기부터 발동시킬 심산이었다.
그런데 독두꺼비의 목이 기이하게 꺾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됐다.
“어럽쇼! 무슨 두꺼비 목이 저래?”
당황한 찰나, 독두꺼비의 입에서 혈독이 뿜어져 나왔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기습 공격이었다.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어 올렸다. 혈독이 고스란히 왼 팔뚝을 강타했다.
‘빌어먹을! 팔 하나 잃는 건가? 그나마 본능 덕분에 왼팔을 잃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치이익. 인두로 지지는 듯한 느낌이 팔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졌다. 통증보다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뭐든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일단 놈의 등에 올라타야 했다. 장심을 등에 밀착시켜야 했다. 손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2초 정도 이어졌다. 소멸기가 작동한 것이었다.
‘몬스터한테도 통하는군. 그럼 뭐해. 팔을 하나 잃었는데···. 어?’
팔이 멀쩡했다. 분명 녹아내리는 느낌 때문에 몸서리쳤는데?
팔뚝 부위 옷만 녹아서 넝마가 됐고, 팔은 상처 하나 없이 멀끔했다.
“뭐지? 왜 멀쩡한 거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단 독두꺼비부터 해치우고 봐야 했다. 그런데 보아하니 해치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독두꺼비는 필사적으로 목을 잡아 빼고 몸을 흔들어댔지만, 부질없는 율동에 불과했다. 혈독과 독 연기를 쏟아내려는 몸부림이었지만, 깔끔히 소멸한 마당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지훈은 천천히 등에서 내려와 독두꺼비를 마주 봤다.
“그냥 조용히 가자. 고통 없이 보내줄게.”
알아듣기라도 한 듯 독두꺼비의 눈이 슬퍼졌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졌지만, 살려줄 순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 게다가 이놈의 부속물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돈이 될 테니.
단검을 꺼내 목과 몸통 사이 붉은 반점을 찔렀다. 삼안천독섬의 옥문, 약점이었다. 독두꺼비가 축 처졌다. 숨을 거뒀다. 고통 없이 죽여주겠다는 약속은 지켰다.
“와! 이게 대체···.”
엄덕대와 박형식이 기함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각성자와 나머지 둘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놈 레벨 4 몬스터 중에도 별종이에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혈독 때문에 근접전으로는 상대하기 힘들거든요. 레벨 5 이상의 각성자들도 조심스러워하는 놈인데···. 형님 사기캐 아닙니까?”
“시끄럽고. 다니면서 부산물이나 채집해. 배고프다. 빨리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황소개구리 사체만 50여 구에 달했다. 혈석에 각종 부산물까지 꼼꼼히 챙기려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유지훈은 독두꺼비 배부터 갈랐다. 원래대로라면 독기가 남아있어 조심해야 했지만, 소멸한 상태라 아무 거리낌 없었다.
“그런데 형님 괜찮으십니까?”
“왜? 안 좋았으면 좋겠냐?”
“그게 아니라 혈독에 맞으신 것 같아서요.”
유지훈이 왼팔을 흔들어 보였다.
“멀쩡한데? 옷에 스친 모양이야.”
“아닌데요. 팔뚝에 맞은 거 분명히 봤는데요.”
“헛소리 그만하고 혈석이나 챙겨. 여기서 밤샐 거야?”
유지훈에게 나머지 인원들에게도 손짓했다.
“당신들도 멍하니 구경만 하지 말고 서둘러 움직여.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빼돌릴 생각은 꿈에서도 곤란해.”
“아. 네···.”
사람들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유지훈만 느릿느릿 독두꺼비의 배를 갈라 부산물을 골라냈다.
한편으로 생각했다. 혈독을 맞은 순간에 대해서였다.
‘분명 맞았고 뼈까지 녹는 기분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멀쩡해졌지?’
생각은 돌아온 이후 몇몇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글리 썬더와 겨뤘던 때, 호광길드 마스터의 기습 공격을 허용했을 때, 신화길드 본부장을 제압했을 때···.
‘그러고 보니 강은영이라는 여자는 내가 뇌기를 정통으로 맞았다고 했었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냐며 어이없어했지.’
돌이켜 보니 호광길드 마스터의 공격이 등에 작렬했을 때도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을 느꼈지만 이내 멀쩡해졌다. 신화길드 본부장과 대결에서도 몇 차례 타격을 허용했고.
하나의 추정에 다가갈 수 있었다. 또 한 차례의 각성이었다.
당초에 그는 각성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뒀었다. 무림에 당도한 뒤 각성했거나, 차원 이동 과정에서였거나.
21세기로 돌아온 지금 무림에선 없던 능력이 생겼다. 회복 또는 재생 능력이었다. 그 이야기는 곧.
‘차원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각성이 이뤄진 것이구나.’
소멸기에 이어 재생 능력까지 두 가지 특성을 보유하게 된 셈이었다. 각성 검사에는 나오지 않을 테지만.
좋고 나쁘고를 구분하긴 힘들었다. 각성자로 판명됐을 때 혜택도 있겠지만, 비각성자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특히 지금처럼 뭔가 은밀히 도모해야 할 때는. 신화그룹에 빅엿을 먹이는 것 같은.
‘일단 조용히 내실부터 다지자. 당장 신화 놈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래도 내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긴 하네.’
흐뭇한 결론에 도달했을 무렵, 나머지 인원들의 몬스터 부산물 채집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엄덕대가 빙글빙글 웃으며 다가왔다.
“형님. 일단 혈석과 부산물은 전부 한데 모으기로 했습니다.”
“전부? 각자 죽인 건 챙겨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요. 어차피 형님 아니었으면 죽일 수도 없었을 거잖아요. 형님 덕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고요.”
때마침 채집을 마친 박형식도 다가왔다.
“그냥 형님한테 다 넘기고 수고비 받는 게 적절하다는 생각들입니다. 형님도 섭섭지 않게 챙겨주신다고 했으니까요.”
“너희들 협박이나 장난질 친 건 아니지?”
“설마요! 저희가 무슨 빌런도 아닌데요.”
“덕대는 얼마 전까지 빌런 조직에 몸담지 않았었나?”
유지훈이 나머지 인원을 둘러봤다. 떨떠름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박형식이 분배의 방식을 설득한 모양이었다. 나머지도 납득했고.
“그럼 그렇게 하자. 오늘 수확이 대략 얼마나 되냐?”
“황소개구리가 변종이라 검증은 해봐야 하는데요. 얼추 3억은 될 것 같습니다. 혈석이랑 부산물들 다 해서요.”
“오! 제법 많네?”
“형님이 처치하신 독두꺼비 혈석만 1억 정도 해요. 부산물들도 2천은 거뜬히 넘을 거고요. 사실 저도 이런 금액은 처음입니다.”
박형식은 감격에 젖은 표정이었다.
하긴 레벨 4 몬스터를 만나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할 일이었다. 거기에 두둑한 수고비도 기대되는 상황이었니.
“그럼 내 몫은 두꺼비 한 놈으로 하고. 나머지는 형식이 네가 알아서 잘 나눠줘.”
“정말요? 황소개구리도 형님이 대부분 처치하셨는데요? 90% 가져가셔도 뭐라 할 사람 없어요.”
“나누면서 살아야지. 다들 고생했잖아. 그리고 저쪽에 숨어 있는 양반들도 적당히 챙겨줘라. 특히 다친 양반들은 좀 더.”
“그 양반들이 한 게 뭐 있다고요? 수고비도 마다했는데요.”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니까. 먹여 살릴 가족도 있다잖냐.”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들 죽다 살아난 기분이기도 했거니와, 평소 사냥에 참가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아쥘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고비 조로 받게 되긴 했지만, 평소 버는 돈의 열 배는 족히 될 테니.
“형님. 정산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 관리소에서 할까요. 아니면 사설 정산소로 갈까요?”
“어떤 차이가 있는데?”
“일장일단이 있는데요. 사설 정산소가 10% 정도 많이 쳐주기는 하는데, 가끔 사기 치는 경우도 있어서요.”
“여기서 하자. 고작 10% 더 받겠다고 이 많은 걸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도 번거롭다.”
박형식과 엄덕대가 혈석과 부산물들을 짊어지고 던전관리소로 향했다. 유지훈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나 뒤에 따라붙었다.
관리소 직원의 놀란 표정이 가관이었다.
“헉! 이, 이건 레벨 4 몬스터의 혈석 아닙니까? 나머지도 레벨 2 몬스터의 혈석 같고. 여기 레벨 1 던전인데···.”
“그러게 관리 좀 제대로 하세요. 운 좋았으니 망정이지···.”
“알겠습니다. 던전관리국에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혈석과 부산물의 값어치를 측정했다.
유지훈이 슬그머니 다가가 물었다.
“던전관리국에서 나왔으면, 탐사팀 직원이랑도 연락됩니까? 탐사 3팀장인지랑 통화할 일이 있는데.”
“저희는 용역업체에서 나와서 본부 직원 쪽은 잘 모릅니다. 팀장쯤 되는 간부는 연락처도 몰라요.”
“아. 네···.”
동생 연락처 수배가 쉽지 않았다.
강은영에게 연락을 취하는 건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측정 끝났습니다. 다 해서 3억3270만 원이네요. 어떻게 드릴까요?”
“잠시만요. 계산해서 계좌번호랑 적어드릴게요. 각각 입금해주세요.”
박형식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분배할 금액을 정해 건넸다.
유지훈에겐 1억5000만 원이 입금됐다. 나머지도 적게는 1000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씩 받아쥘 수 있었다.
유지훈 일행이 관리소를 나서자마자 직원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손님 나갑니다. 짭짤하게 챙겨갔으니 준비들 하세요.”
짧은 한마디만으로 전화를 끊자, 옆의 직원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괜찮을까? 레벨 4 몬스터를 해치운 놈들이잖아.”
“운 좋게 다 죽어가는 놈이 걸렸나 보지. 신경 쓸 거 없어.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
유지훈 일행이 주차장에 도착했을 무렵, 입구를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다. 험상궂은 외모의 사내들. 스물 남짓이었다.
맨 앞의 사내가 혓바닥으로 단검을 핥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벌이들이 좋으셨다면서? 좀 나눠가며 삽시다. 그럼 살려는 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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