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13화 (13/150)

사냥을 시작하다 (2)

던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유지훈은 감회가 새로웠다.

50년 만에 들어선 던전이었다. 여기 시간으론 5년이겠지만, 그에겐 50년의 세월을 거친 후였다.

당시엔 불법이었다. 호광길드의 압박과 사탕발림 때문에 들어오게 됐고 폭발 사고에 휘말렸다. 무림으로 내던져져 치열한 무림 공적의 삶을 살게 됐다.

돌아온 이후엔 인생이 바뀌었다. 더 이상 무기력한 찐따가 아니었다. 방심한 덕을 봤을 수도 있겠지만, 레벨 7의 각성자를 때려잡았다. 소멸기를 지닌 그는 어지간한 각성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능력자였다.

다만 몬스터에게도 소멸기가 먹힐지는 미지수였다. 무림의 고수들에겐 통했지만, 몬스터는 또 다른 존재이니.

“여긴 레벨 1 던전이니 최하급 몬스터만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엔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한두 마리는 처치할 수 있을 거예요.”

박형식은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던전에 관한 이야기부터 몬스터 사냥 비법까지 쉴 새 없이 입을 털어댔다. 투머치 토커였다.

“오늘 이후에도 가끔 나올 거죠?”

“응. 그래···.”

“그럼 오늘 나나 다른 분들 하는 거 보고 잘 배워둬요. 최하급 몬스터라고 해도 많이만 잡으면 수입이 나쁘지 않거든요. 운만 좋으면 길드 소속 D급 헌터 못지않은 수준은 벌 겁니다.”

유지훈도 길드에 몸담았었기에 헌터들의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D급 헌터의 월급이 평균적으로 500만 원 정도니, 이렇게 사냥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벨 1 던전이라 해도 가끔 레벨 3의 중급 몬스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땐 죽을 각오 해야 해요. 실제로 그래서 개죽음당한 사람들도 숱하게 있어요.”

“너도 그런 경험 있냐?”

“한 번 있었어요. 거대 바퀴벌레를 만난 일인데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게 같이 들어간 인원 중에 레벨 2 각성자가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셋이나 죽은 다음에야 놈을 처치할 수 있었죠.”

“십년감수 했겠군.”

“10년이 뭐예요. 50년은 감수한 기분이었습니다.”

박형식이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유지훈에게 말했다.

“덕대 바른길로 인도해주셨다고 해서 특별히 말씀드리는 건데요. 같이 하잖다고 해서 아무하고나 사냥하면 안 돼요. 목숨 걸고 한다고 생각하고 같이할 사람 철저하게 구별해야 해요.”

“덕대가 좋은 친구를 뒀군. 고맙다.”

그러는 동안 먼발치에서 그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많은 숫자인 듯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울음소리였다.

“나쁘지 않은데요. 대형 황소개구리예요. 레벨 1에서 2 왔다 갔다 하는 놈인데, 처리하기 어렵진 않아요. 부산물 값어치도 괜찮고요.”

박형식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송아지 크기에 개구리들이었다. 20마리는 족히 넘을 듯했다. 사람들을 보고는 디룩디룩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자! 들어갑시다!”

일행 중 다섯이 칼을 뽑아 들고 앞장서 달려나갔다. 나머지도 뒤를 따랐고 박형식도 동참하려 했다.

“가시죠. 덕대도 같이 가자. 첫 사냥이니까 뒤에서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만 합시다.”

“잠깐만.”

유지훈이 박형식을 잡아 세웠다.

박형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 왜요? 먼저 죽이는 게 임자예요. 앞에서 다 죽이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요.”

“예감이 좋지 않아.”

“무슨 예감요? 이러면 수고비 못 챙겨드릴 수도 있어요.”

그때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앞장서 달려간 사내들이었다.

“으악! 이게 뭐야!”

“벼, 변종이다! 독개구리였어!”

개구리들이 입에서 뿌연 연기를 뿜어냈고, 연기에 닿은 사내들의 신체가 녹아내렸다. 앞장서 달려간 사내 다섯 모두 독 연기에 당했다.

심지어 사내 둘은 팔이 녹아 떨어져 내리기까지 했다. 각성자 중 하나도 손가락을 넷이나 잃었다.

개구리들이 달려들어 떨어져 나뒹구는 팔과 손가락을 꿀꺽꿀꺽 집어삼켰다. 눈에 띄는 건 일단 삼키고 보는 황소개구리다웠다.

“어, 어떻게···?”

박형식이 놀란 눈으로 유지훈을 바라봤다.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독기가 느껴졌거든.”

말하면서도 개구리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20여 마리의 개구리가 계속해서 독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뭇 흉흉한 광경이었다.

“독두꺼비도 아니고 황소개구리가 어떻게 독을···.”

박형식의 눈빛에 난감함이 번졌다.

레벨 1~2 수준의 하급 몬스터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레벨 2는 거뜬히 넘어 레벨 3에 육박할 수도 있었다.

일행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독에 당한 다섯 중 둘은 전투 불능 상태였다. 손가락을 잃은 각성자도 실력 발휘가 불가능했다.

시선이 박형식에게 집중됐다. 유일한 믿을 구석이란 의미였다.

“저도 독을 뿜는 황소개구리는 처음 봐서···.”

박형식이 우물쭈물했다.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유지훈이 박형식의 어깨를 툭 치더니 천천히 걸어나갔다.

“생각보다 단순한 놈들이군.”

“형님! 조심하셔야 해요. 섣불리 가까이 가시면···.”

박형식의 말투가 급 공손해졌다. 주의 당부가 끝나기도 전에 유지훈이 몸을 날렸다. 이틀 전 장만한 장검을 내려뜨린 자세였다.

일행의 안타까운 탄식이 쏟아져 나오려는 찰나, 쐐액! 하는 파공음과 함께 장검이 번뜩이는 빛을 쏟아냈다.

동시에 그르륵 울음소리가 꾸웩 하는 비명으로 바뀌어 갔다. 대가리와 몸이 분리된 황소개구리들이 사방에 널브러졌다. 탄식이 경악으로 바뀌기까지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오연한 눈빛으로 황소개구리의 사체들을 둘러보던 유지훈이 엄덕대를 향해 손짓했다.

“덕대야 와서 혈석 좀 채집해라. 봐서 부산물 중에 쓸 만한 거 있으면 챙기고.”

엄덕대가 주춤주춤 다가갔다. 박형식도 뒤를 따랐다.

“독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독은 입으로 뿜잖냐. 대가리 다 잘랐으니까 걱정 말고 배나 잘 갈라. 간이랑 쓸개도 돈 될 거야.”

엄석대에게 지시하면서 유지훈은 단검을 꺼내 황소개구리의 배를 갈랐다. 익숙한 솜씨로 혈석을 꺼냈고, 부속물도 챙겼다.

“아. 목 아래쪽에 시뻘건 덩어리는 조심해라. 독낭 같다. 그건 건드리지 말고 놔둬. 내가 처리할 테니까.”

박형식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유지훈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겁니까? 형님. 사냥 처음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 사냥은 처음이야. 그런데 부산물은 숱하게 채취해봤어.”

“그걸 여쭙는 게 아니라, 독 연기를 뿜는 황소개구리를 어떻게 그리 쉽게 처치하셨는지···.”

“단순한 놈들이라고 했잖아.”

유지훈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눈은 개구리에 고정한 채였다. 손 역시 바쁘게 개구리 뱃속을 헤집는 모습으로.

“독을 뿜는 방향이 한정돼 있었어. 좁고 짧았지. 그것만 파악하면 공격 루트는 명쾌해지지. 독을 뿜을 때가 놈이 가장 취약한 순간이기도 하고.”

무림에서 유지훈은 제법 많은 영물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다양한 제압 방법이 머릿속에 있었다.

맹독을 품은 두꺼비도 숱하게 접했다. 영물답게 영악하기까지 한 놈이었다. 미련한 황소개구리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너도 도와. 수고비라도 챙기고 싶으면.”

“아. 네.”

박형식도 황소개구리 사체에 달라붙어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사내들 두엇이 엉거주춤 다가와 우물쭈물 말을 건넸다.

“저희도 도우면 안 되겠습니까?”

“마다할 이유는 없지. 대신 빼돌리는 건 용납 안 해.”

넋을 잃고 쳐다보던 사내들도 황소개구리 해부에 동참했다.

심하게 다친 이들만 주저앉아 한숨을 쏟아낼 뿐, 모두가 황소개구리에 매달려 구슬땀을 쏟았다.

“누가 변종이라 했던 것 같은데?”

여덟 마리째 손질을 마친 유지훈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손에 붕대를 두르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황소개구리의 독 연기에 손가락을 잃은 각성자였다.

30대 중반은 돼 보였다. 액면은 유지훈보다 위로 보였지만, 반말에 개의치 않았다. 공손하게 답했다.

“이놈들이 황소개구리인 건 분명합니다. 독이 없어야 정상인데 독을 뿜는다는 의미는···.”

“변이를 거쳤다는 추측이로군.”

“그렇습니다.”

“흐음···.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는데?”

유지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박형식이 다급하게 물었다.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형님.”

어느새 형님이라는 호칭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엄덕대보다 더 친숙하게 들릴 정도였다.

“아무 이유 없이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어.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야.”

“그 말씀은···.”

“개구리 놈들한테 독을 품게 해준 독물이 있다는 말이겠지. 훨씬 강한 독을 지닌, 높은 레벨의 몬스터라는 의미도 될 테고.”

사람들의 표정이 공포로 인해 사색이 돼 갔다. 겁에 질려 구역질을 하는 사내도 있을 정도였다.

“여기 레벨 1 던전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레벨 2 몬스터들이 몰려온 것도 기함할 일인데, 더한 놈들이라뇨.”

항의를 쏟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사냥팀을 꾸린 박형식과 또 하나의 각성자를 향한 항의였다.

“던전관리국에서 그렇게 지정했는데 저더러 어쩌라고···.”

“철저하게 확인을 했어야지. 우리 다 형식 씨만 믿고 온 건데.”

“맞아. 어쩔 겁니까? 나 먹여 살릴 가족이 넷이나 돼요. 나 죽으면 형식 씨가 책임질 겁니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더니, 공포에 젖은 사람들이 되지도 않는 소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지훈이 버럭 했다.

“누가 끌고 왔어? 다들 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제 발로 걸어들어온 거 아냐.”

유지훈이 확인하듯 박형식을 흘깃 본 뒤 말을 이었다.

“몬스터 레벨이 높아지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잖아. 불평할 힘 있으면 아껴뒀다가 몬스터나 한 마리 더 때려잡으라고.”

불평하던 사람들이 일순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 뒤 들려온 질문이 이어질 항의의 도화선이 됐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럽니까? 능력이 안 되는 걸 어쩌라는 겁니까?”

“맞습니다. 우린 저런 개구리 놈 한 마리도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선동열이 왜 감독으로 실패했는지 몰라요? 선수들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그걸 왜 못해 다그치기만 하다가 망한 거라고요.”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거기서 선동열이 왜 나오냐?

“됐고. 쫄리면 관둬. 쫓아다니면서 혈석 채집해서 수고비라도 챙기고 싶으면 따라오고. 그것도 싫으면 어디 숨어 있다가 문 열리면 나가.”

유지훈이 엄덕대와 박형식을 쳐다봤다.

“너흰 갈 거지? 강요하는 건 아니다.”

“그럼요! 가야죠. 형님 혼자 혈석까지 언제 챙깁니까.”

“괜찮···겠죠? 형님?”

“네가 알아서 판단해. 멱살 잡고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일행이 정리됐다.

유지훈과 엄덕대 박형식 그리고 손가락을 잃은 각성자와 비각성자 둘, 총 여섯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빼돌리는 건 용납 안 해.”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던진 유지훈이 휘적휘적 앞장서 갔다. 검을 턱 하니 어깨에 걸친 모습이 사뭇 여유로웠다.

이윽고 독을 품은 대형 황소개구리들이 몰려들었다.

“잘 봐두라고. 이놈들 독이 미치는 범위를. 그것만 벗어나면 이놈들은 조밥 축에도 못 낄 거야.”

유지훈이 사뿐한 몸놀림으로 독 연기를 피해 황소개구리들의 목을 날렸다. 워낙 빠른 동작이라 포착이 쉽진 않았지만, 다섯 마리쯤 목이 날아갈 무렵 박형식과 엄덕대가 어느 정도 파악했다.

“덕대야. 네가 왼쪽을 맡아.”

박형식과 엄덕대가 조를 이뤄 한 마리를 해치웠다.

그제야 또 다른 각성자도 움직임을 읽었다. 나머지 둘과 합심해 한 마리의 목을 베는 데 성공했다.

“해냈다!”

희열에 찬 눈빛이 유지훈에게 닿는 순간 바로 시무룩해졌다.

유지훈은 이미 열댓 마리의 목을 날리고 여전한 기세로 검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자랑할 때가 아니구나···.”

사실상 유지훈이 머리채 잡고 끌고 간 덕분에 황소개구리들은 전멸 지경에 가까워졌다.

세 마리쯤 남았을 때 유지훈은 검을 거뒀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뒤 옷소매로 검날을 닦았다.

“나머지는 굳이 내가 손 안 써도 되겠지? 슬슬 진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거든.”

멀찍이서 묵직한 기세와 함께 구웩 하는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다가오는 것만으로 구역질을 유발할 정도로 기분 나쁜 기운이었다.

“짱짱한데? 좋아 좋아. 돈이 제법 되겠어.”

유지훈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성큼성큼 기세가 짙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박형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형님 어떻게 된 거냐? 비각성자라 그러지 않았어?”

“나 개과천선했다니까. 괜히 했겠냐?”

“나도 개과천선할 방법 좀 없겠냐?”

“넌 착하게 살았잖아. 그냥 계속 착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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