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시작하다 (1)
강은영은 슬슬 초조해졌다.
유지훈에게서 연락이 없어서였다. 집을 구한 다음에 동생 주소지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1주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직 집을 못 구했나? 그 돈이면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는 구할 수 있을 텐데. 설마 알아내기라도 한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공권력을 활용해 유지훈의 연락처를 수배해보려고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가행정시스템에 유지훈에 관한 정보는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사망자로 남아있었다.
“공무원들 일 안 하는 거 어떡할 거야.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계속 사망자로 두고···.”
강은영에겐 유지훈이 절실했다. 망가진 커리어를 돌이키는 데 유지훈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7호 던전 폭발 사고 관련한 유일한 생존자. 유지훈의 증언이 있어야 관련 수사가 재개될 수 있고, 사건의 실체가 밝혀져야 강은영에게 씌워진 멍에가 벗겨질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당사자가 증언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었다. 신화그룹을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당사자가 나서길 거부하면 수사 기관을 앞세워 강제하는 수라도 써야 하는데, 더 힘든 일이었다. 이미 덮은 수사를 특별한 이유 없이 재개할 순 없는 노릇이니.
어쨌거나 유지훈을 설득해 움직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설득을 위해선 유지훈을 파악하는 게 최우선. 강은영은 지난 1주일 동안 유지훈에 대한 조사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아. 어떻게 된 인간이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매치가 안 될 수 있는 거지?”
생애를 철저하게 훑은 바에 따르면 유지훈은 평범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오히려 바보 호구로 분류돼야 마땅했다.
“학창 시절엔 학폭 피해자에, 나이 들어서도 보이스 피싱이나 당하고, 자해공갈단한테 당해서 돈이나 뜯기고···. 이쯤 되면 호구 종합선물세트잖아. 내가 본 유지훈은 대체 뭐야?”
강은영은 유지훈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행적과 그와 나눈 대화들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넝마로 신체의 극히 일부만 가리고 나타나 보여준 기이한 행동과 말들. 귀신처럼 본부 의료센터를 빠져나가 어글리 썬더를 가볍게 제압한 장면. 그리고 레벨 7의 각성자 김연학을 무참히 짓밟은 순간까지.
“그 무시무시한 격투 실력은 어떻게 된 거지? 화공대법인지는 또 뭐며. 지난 5년 사이 유지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불현듯 유지훈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지난 5년은 살면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는 말이었다.
“가장 평화로웠다고? 가장 치열했던 시기가 아니고?”
순간 묵직한 의미를 지닌 단어 하나가 뇌리를 강타했다.
“혹시···. 차원을 이동한 귀환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다녀온 사람이면 설명이 될 것 같았다.
만일 시간의 흐름이 다른 세계에서 귀환했다면, 설명되지 않는 의문들이 풀릴 수도 있을 듯했다. 비각성자 판명을 받았음에도 엄청난 능력을 지닌 부분까지.
차원 이동은 근래 전세계적으로 관심사로 부각되는 개념이었다.
차원 이동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으면 지구에 닥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몬스터 문제, 자원 문제, 환경 문제···. 전세계가 겪는 공통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차원 이동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만일 차원을 이동한 귀환자가 있다면 해답에 훌쩍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몇몇 국가에 귀환자가 나타나 국가 역량을 총집결해 연구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만일 유지훈이 귀환자라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어.”
강은영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대한민국엔 아직 귀환자가 없었다. 당연히 귀환자는 국가적인 VIP가 될 터였다. 차원을 넘어간 과정부터 돌아오기까지 모든 게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17호 던전 폭발 사고에 대한 조사도 새롭게 이뤄지겠지. 그렇게 되면 강은영의 멍에도 자연스럽게 벗겨질 테고.
“그래. 귀환자.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어. 그나저나 이 인간은 왜 연락을 안 하는 거야?”
연락이 안 오면 찾아 나서기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은영은 일단 귀환자에 대한 자료부터 수집했다. 각국에서 진행된 차원 이동에 관한 연구 자료와 귀환자와 관련된 설들까지. 최대한 많이 확보한 뒤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유지훈을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국가안전본부 최고위층에게 알리는 것도 고려 대상이었다. 공권력을 동원해 유지훈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는 의미였다.
“유지훈 씨 빨리 연락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도 내 눈에 먼저 띄어야 서로가 덜 피곤하게 될 테니까요.”
***
유지훈은 연신 입맛을 다셨다.
집 계약을 잘 끝내 등기 이전까지 마쳤고, 순조롭게 집에 들어와 살게 됐는데 정작 동생의 연락처를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였다.
“옷 갈아입을 때 명함 챙겨뒀어야 했는데···.”
백화점에서 옷을 구매할 때 갈아입으면서 원래 입던 옷을 버렸다. 주머니에 있던 강은영의 명함까지 함께 버린 셈이었다.
“그나저나 그 인간은 내 휴대폰 개통해주면서 번호 적어뒀을 거 아냐. 도와달라 그러더니 필요가 없어진 거야?”
동생 연락처만 빼면 모든 게 순조로웠다.
임시 수행 비서로 고용한 엄덕대의 빠릿빠릿한 일 처리 덕분이었다.
일단 집 계약부터 등기까지 깔끔히 정리했다. 험악한 인상 덕택인지 누구도 엄덕대에게 사기 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테리어도 제법 그럴듯하게 마쳤고, 가전제품과 가구 등 살림살이도 저렴한 가격에 장만해 집안에 채워 넣었다.
칼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도검상을 수배해 안내했다. 무림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쓸 만한 장검과 비수 등을 구할 수 있었다.
“너 철두파에서 집사였냐?”
“잡다한 일에 두루두루 능하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만족하시도록 정리하겠습니다.”
정말 뭐든 만족스럽게 처리했다.
말소된 유지훈의 주민등록도 되살렸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번거로운 각종 행정 문제도 말끔히 정리했다.
엄덕대 덕분에 유지훈은 50년, 아니 5년 만에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유지훈은 집을 둘러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넓은 거실과 세 개의 방 그리고 아일랜드 탁자가 놓인 세련된 주방. 꿈에 그리던 40평대 아파트의 주인이 됐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두 개였다. 동생과 살면서 벌였던 치열한 배변 전쟁과도 작별이었다.
엄덕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제법 쓸 만하구나. 임시자 떼도 되겠어.”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너 여기서 계속 살 거냐?”
“곁에서 보필하고 싶습니다! 실은 딱히 갈 데가 없어서···.”
“그래. 방도 하나 남겠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라.”
숙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동생 유지연의 연락처 수배였다.
만능 수행 비서 엄덕대도 이 부분에선 난색을 드러냈다.
“그건 불법의 수단을 동원해야 해서요···.”
“여태껏 불법의 영역에서 살아왔잖아?”
“선생님 모시게 된 이후부터 개과천선했습니다.”
“그래. 착하게 살기로 한 놈 나쁜 짓 시킬 순 없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그쪽이 더 아쉬울 것 같았다.
혹시 휴대폰 번호를 모르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알려면 방법이 있다고 여겨졌다. 주민등록을 복구했으니 조사하면 다 나오겠지.
“그나저나 돈이 다 떨어져 가네. 좀 벌 방법 없을까?”
20억 원이 넘는 돈이었지만, 아파트 계약하고 세간살이까지 장만하고 나니 1억 원도 채 남지 않았다.
앞으로 고정적인 지출도 있을 텐데, 돈을 벌어야 했다.
유지훈의 질문에 엄덕대가 묘하게 웃었다. 시선이 거실 벽에 걸린 장검에 고정된 채였다.
“어렵지 않습니다.”
“너 뭘 보냐? 개과천선했다며? 불법적인 거 말고 합법적인 거.”
“아!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방법 있습니다. 합법적인.”
“뭔데?”
“몬스터 사냥하시면 됩니다. 선생님 실력이면 짭짤할 겁니다.”
유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몬스터 사냥이 돈벌이 수단으론 훌륭했다. 다만 제약이 있었다. 각성자에게만 허용됐다.
과거 길드에서 근무했던 유지훈이 모를 수 없는 제약이었다. 유지훈에겐 해당 사항 없는 돈벌이 수단인 셈이었다.
“야. 그건 각성자들만 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비각성자야.”
“선생님께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레벨 1 던전의 경우 각성자 하나만 있으면 비각성자들도 몬스터 사냥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한 2년 됐는데요? 레벨 1 던전은 가성비가 낮아서 중소형 길드들도 맡지 않으려 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던전관리국에서 직접 관리하면서 비각성자들에게도 문호를 열었습니다. 각성자와 함께하는 조건으로요.”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던전관리국이 직접 관리한다니 간 김에 강은영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레벨 1 던전이 길드들한테야 마땅치 않은 게 당연하겠죠. 길드 운영에 들어간 비용 감안하면 클리어하고 나와도 마이너스인 경우가 허다할 테니까요. 그래도 비각성자들한테는···.”
“너 각성자였냐?”
“아닌데요.”
“그럼 말짱 도루묵 아냐! 각성자랑 동행해야 한다며?”
“안 그래도 제 친구 중에 레벨 1 던전만 도는 놈이 있습니다. 레벨 2 각성자라 길드에서 잘 안 받아줬거든요. 비슷한 사람들 모아서 레벨 1 던전 찾아다니는데 그럭저럭 벌이가 나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허허허. 너 정말 쓸 만한 녀석이구나.”
유지훈이 대견한 눈빛으로 엄덕대를 바라봤다.
엄덕대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아라.”
“그럼 뭐라고···?”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넵! 형님!”
“형님 하니까 어둠의 자식 냄새가 나는데···.”
***
일사천리로 약속이 잡혔다.
엄덕대의 친구 박형식은 때마침 몬스터 사냥에 필요한 인원이 부족하다고 여기던 찰나였다.
엄덕대의 연락에 얼씨구나 하며 바로 오라고 했다.
“웬일이냐? 철두파에서 약탈이나 일삼던 놈이.”
“착하게 살기로 했다. 앞으로 자주 보면서 살자.”
“네가 착하게 산다고? 어쩌다가? 마포대교가 무너지기라도 했냐?”
“무슨 썰렁한 농담을···. 귀인을 만난 덕분이다.”
엄덕대가 유지훈을 돌아봤다. 박형식을 소개했다.
“형님. 말씀드린 친구입니다. 박형식이라고. 형식이 너도 인사드려라. 나를 어둠의 세계에서 꺼내주신 형님이시다.”
박형식이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형식입니다.”
“돈 벌 기회를 줘서 고맙다. 유지훈이다.”
다소 고압적인 유지훈의 태도에 박형식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귓속말로 엄덕대에게 물었다.
“너 철두파 나와서 다른 어둠의 세계에 들어간 거냐? 나 불법적인 일은 안 해. 빌런이랑은 같이 일 안 한다고.”
소곤소곤 물었지만, 유지훈의 예민한 청력을 피할 수 없었다. 엄덕대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유지훈이 먼저 말을 던졌다.
“나는 빌런을 혐오한다.”
“아 네···.”
박형식이 머쓱해져서 목을 쑥 내밀더니 사냥에 관해 설명했다.
“오늘 함께하는 인원은 두 분 포함해서 총 열 명입니다. 각성자는 저 말고 한 분 더 있습니다. 알고 오셨겠지만 레벨 1 던전이라 각성자들 지휘만 잘 따르면 별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수입 배분은 어떻게 하지?”
“기본적으로 본인이 사냥한 몬스터 부산물을 챙기면 됩니다. 비각성자의 경우 몬스터 사냥에 실패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경우 사냥에 성공한 사람들이 일정액을 갹출해서 수고비 조로 드리게 됩니다.”
박형식이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혹시 각성자세요?”
“검사는 받아봤는데 아니라고 하더군.”
“그럼 사냥에 참가해본 적은 있으시고요?”
“아니. 처음이다.”
“아. 네···. 그럼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덕대랑 같이 내 뒤만 잘 따라 다녀요. 수고비 정도는 넉넉하게 챙겨드릴게요.”
비각성자에 사냥 초보라는 말에 박형식의 말투가 경시로 바뀌었다.
엄덕대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유지훈이 만류했다.
“초심자는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중요한 법이지. 수고비도 넉넉하게 챙겨준다는 데 고맙게 받도록 하겠다.”
유지훈이 엄덕대를 향해 그리고 박형식을 향해 빙긋 웃었다.
같은 웃음이었지만 두 사람이 받아들이는 의미는 달랐다. 박형식은 왠지 짐을 떠맡은 기분이라 한심하게 받아들였다.
반면 엄덕대의 머릿속엔 박형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앞장서 가면서 안내자 노릇이나 할 박형식의 모습이 훤히 보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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