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징을 다짐하다
“으하하하. 미꾸라지 같은 새끼. 이제 끝장이다.”
주필운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유지훈은 서서히 확대되는 머리 크기에 무심한 시선을 보냈다.
“네가 스톤 헤드면, 나는 뉴클리어 피스트다.”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과 함께 표홀히 주먹을 내질렀다.
스톤 헤드와 뉴클리어 피스트가 맞부딪친 순간.
퍼석!
충돌을 알리는 소리가 사뭇 괴이했다.
특히 유지훈의 다리와 허리를 붙잡고 있던 사내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충돌음이었다.
‘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지?’
정말로 터졌다. 머리가 터졌다.
맹렬히 덮쳐온 탄력 때문인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리는 사라지고 피 섞인 뇌수만 남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머리를 잃은 주필운의 육신은 그저 부르르 떨 뿐이었다. 경련조차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 이게 무슨···.”
유지훈의 오른쪽 다리를 붙잡고 있던 사내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머리에도 유지훈의 수도가 작렬했다.
콰직! 쪼개지듯 머리가 부서졌다.
유지훈은 왼쪽 다리를 붙잡고 있는 사내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우두둑! 180도로 목을 비틀어 돌렸다.
이어 힘차게 도약한 뒤 그대로 뒤로 누워 버렸다.
쾅! 허리를 부여안고 있던 사내가 납작하게 눌려 절명했다.
순식간이었다. 스톤 헤드 일당의 핵심 넷이 피떡이 돼 저승길로 향하기까지.
“머리가 단단하긴 하네. 미리 만져놓지 않았으면 낭패 볼 뻔했어.”
유지훈이 주먹을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앞서 주필운의 공격을 피하면서 몇 차례 몸에 손을 대고 밀쳐냈다. 짧은 순간의 접촉이었지만 소멸기를 발동시킬 수 있었다.
주필운은 막 레벨 4에 접어든 각성자였다. 특성을 개화하긴 했지만, 수준은 낮았다. 짧은 접촉으로 소멸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아이언 헤드를 만났을 땐 조심해야겠군. 잠깐 만져주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겠어.”
유지훈이 중늙은이와 중년남을 향해 걸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자 그럼 금고로···.”
말을 끝맺지 못하고 멈춰섰다. 욕설을 쏟아냈다.
“이런 제길! 병신 같으니. 머리는 뒀다가 어디에 쓰냐!”
중늙은이와 중년남이 잔뜩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 분노에 몸서리치는 유지훈의 모습에서 저승사자라도 발견한 듯했다.
“선생님. 저희가 무슨 잘못이라도···.”
“그런 게 아니라요. 금고 번호를 안 물어봤잖아요. 번호 아는 놈 하나는 죽고, 하나는 병신 됐으니 이제 어쩐다···.”
유지훈이 떡대를 불렀다.
“야! 너 이리 와봐.”
“넵!”
“여기 도끼나 곡괭이 같은 거 없냐?”
여차하면 금고를 부수기라도 할 참이었다.
“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떡대가 쪼르르 어딘가로 가더니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왔다. 그런데 아담한 손도끼였다. 양아치들이 장식으로 들고 다닐 법한.
“이걸로 맞아 볼래?”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금고 대신 확 부숴 버릴까 보다.”
아쉬운 대로 손도끼를 들고 금고로 향했다.
금고가 몹시 우람했다. 손도끼로는 도무지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금고째 옮기려면 포클레인이라도 동원해야 할 것 같았다.
“영감님들. 그림의 떡이네요. 돈은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기대에 부풀었던 중늙은이와 중년남이 다시금 나라 잃은 비통에 빠져들었다.
그때 떡대가 금고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조몰락조몰락하는 듯싶더니. 스르륵 금고가 열렸다.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열 줄 모른다며!”
“그냥 열리는데요? 아까 이사님이 돈 넣으면서 안 잠그셨나 봐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경사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돈을 챙길 시간이었다.
“영감님 얼마라 그러셨죠?”
“2000만 원입니다.”
“그럼 마음고생 하신 것까지 해서 3000 가져가세요.”
“영감님은요?”
“저는 2300입니다.”
“그럼 영감님은 3300.”
“아이고~. 고맙습니다.”
유지훈은 일단 3000만 원을 주워 담은 다음 2000만 원을 더 챙겼다. 수고비 명목이었다.
그래도 금고 안엔 현금이 수북했다. 장부도 있었다. 차량 판매 내역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영감님들. 이게 피해자 리스트인 모양인데요. 연락해서 피해 금액들 돌려드려 주실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좀 챙겨서 부족할 거예요. 적당히 계산해서 나눠주세요.”
중늙은이와 중년남이 돈을 싸 짊어지고 떠났다.
유지훈은 차가 필요했다. 조금 전에 봐둔 L사 SUV를 몰고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냥 가져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건 강탈이니.
떡대를 불렀다.
“야. 이 차는 얼마쯤 하냐?”
“제가 금액은 잘 모르는데···. 삼사백 정도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300.”
300만 원을 꺼내 금고에 던져 넣었다.
마침내 떠날 시간이었다. 서서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오늘 집 구하긴 텄네. 내일 아침 일찍 시작해야겠다.”
적당한 호텔을 잡고 쉬기로 했다.
차를 몰고 그곳을 나섰다. 50년 만의 운전이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서서히 익숙해졌다.
“운전이 상당히 서투르시네요. 장롱면허이신가 봐요.”
조수석엔 떡대가 타고 있었다.
“근데 너는 왜 따라오는 거냐?”
“딱히 있을 데가 없어서요.”
“원래 있던 데 있을 거 아냐?”
“다들 죽거나 병신 됐는데, 저만 멀쩡하잖아요. 조직에서 저를 가만히 두겠어요?”
“너도 병신 만들어줄 걸 그랬냐?”
“저 잡다한 일 잘 해요. 차량 등록도 해드린다니까요.”
“혹시 운전도 잘 하냐?”
“그건 기본이죠.”
“그런데 네가 왜 거기 앉아 있냐?”
“네? 아 네.”
운전자가 바뀌었다.
유지훈은 완전히 뒤로 젖힌 조수석 의자에 파묻혔다. 무림에서 돌아온 이후를 반추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지내고 싶었는데···.”
어째 무림에서보다 더 다이내믹했다.
무림에선 마음만 먹으면 숨어 지낼 수라도 있었는데, 여긴 그나마도 마땅치 않을 듯했다.
“그런 것도 대륙의 클래스라고 할 수 있으려나···.”
조용히 지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무림으로 가게 된 사건의 배후 때문이었다. 신화길드. 어쩌면 신화그룹과 국가안전본부 내 끄나풀까지.
우선적인 원흉인 호광길드 문제는 보상으로 해결했다 치더라도, 신화길드 관련해선 이제 시작이었다.
“조용히 지내려는 나를 먼저 건드렸단 말이지.”
어글러 썬더 김창용을 보낸 데 이어, 김연학을 비롯한 길드 타격대까지. 제대로 도발을 해왔다.
무림에서 지낸 50년 동안 유지훈은 누군가를 먼저 건드리거나 도발한 적은 없었다. 대신 도발해온 상대는 확실하게 응징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절하게.
무림에선 화공대법이라 불렸던 소멸기는 상대를 절망에 몰아넣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무림인들이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내공을 소멸시키는, 무공을 박탈하는 비기였으니,
“여기서도 공공의 적이 돼야 하나? 하긴 50년을 무림 공적으로 살았으니 그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네.”
일단 응징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들이닥치는 건 유지훈의 방식이 아니었다.
무림에서도 그는 치밀했다. 철저하게 상대를 분석하고, 최적의 방법을 찾아낸 다음에야 손을 쓰곤 했다.
내공이 전무한 그가 소멸기와 박투만으로 중원 무림 최강자 중 하나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잘근잘근 씹어줄게. 무림 공적 투귀의 21세기 재림. 네놈들이 자초한 거야.”
유지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떡대가 곁눈질하며 물었다.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세요?”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그러고 보니 잡다한 일 처리를 도와줄 졸개가 하나 필요하긴 했다.
“너 어디 갈 데 없다고 했지? 한동안 내 밑에서 심부름이나 할래? 수고비는 섭섭지 않게 챙겨줄게.”
“그러려고 운전대 잡고 있는 건데요?”
떡대, 생각보다 빠릿한 놈이었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냐?”
“덕대요. 엄덕대.”
이름도 마음에 쏙 들었다.
한편, 철두파 보스 아이언 헤드 주필호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참상의 현장에 도착했다.
처참한 동생의 시신을 확인하고 절규했다.
“어떤 개새끼야!”
오른팔 강태규가 현장을 면밀히 살핀 뒤 보고했다.
“기습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놈들일 듯합니다.”
“무슨 근거로?”
강태규가 스톤 헤드의 시신을 가리켰다.
“괴력에 으깨진 양상입니다. 흔적을 보면 주먹일 가능성이 큽니다.”
“말이 돼? 대한민국에 주먹으로 저놈 머리를 저렇게 만들 놈이 몇이나 된다고. 그런 놈들이 여기 중고차 거래하는 데를 왜 와?”
“누군가 회장님께 경고 메시지를 남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놈이! 요즘 다른 조직들이랑 관계 좋잖아.”
“대형 길드 중 하나가 아닐까요? 요즘 우리 철두파가 길드들 상대로 짭짤하게 약탈해서.”
“그렇다고 내 동생을 죽여서 경고한다고? 이건 아니잖아! 철저하게 조사해. 여차하면 전면전이라도 불사할 테니까.”
씩씩대던 주필호는 금고를 확인한 뒤 다시금 욕설을 쏟아냈다.
“이건 또 뭐야! 3억이 홀랑 털렸잖아! 개새끼들. 약탈자야? 300 남겨둔 건 또 뭐야? 개평이야? 개평이면 1%가 뭐야? 5%가 국룰 아냐!”
레벨 7의 빌런 아이언 헤드 주필호가 전면전을 다짐하는 계기였다.
***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임무를 마쳐도 몇 번은 마쳤을 텐데. 김 본부장 아직도 연락 안 돼?”
“전화기가 꺼져 있는 상태입니다.”
“장 이사랑 유 팀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비서에게 짜증을 내던 신화길드 마스터 이자웅이 전략이사와 인력관리팀장을 호출했다.
전략이사 장중호와 인력관리팀장 유형석이 단걸음에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호광길드엔 가봤어?”
“가봤는데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장중호가 대답했다.
“비워져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건물 자체가 텅. 마치 호광길드가 없었던 것처럼요.”
“김 본부장은? 우리 타격대 애들은?”
“그것까지는 잘···. 현재 파악 중입니다.”
이자웅의 시선이 유형석을 향했다.
“유 팀장은 뭐 아는 거 없어? 같이 갔잖아?”
“저는 지시하신 대로 보상 절차만 마무리하고 호광길드를 빠져나왔습니다. 철저하게 별개로 움직이라고 하셔서···.”
“그래도 나오면서 뭔가 본 게 있을 거 아냐! 분위기라든가.”
이자웅이 버럭 하자, 유형석이 움찔하며 말했다.
“못 본 척하긴 했습니다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대원들이 호광길드 직원들은 말끔히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안전본부 놈들은? 여럿 와 있던가?”
“그렇진 않은 것 같았습니다. 탐사 3팀장 하나밖에 못 봤습니다.”
“으음···.”
침음을 흘리던 이자웅이 다시 장중호를 쳐다봤다.
“국가안전본부에서 대거 인원 투입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는 김 본부장이 어떻게···. 같이 간 애들도 우리 주력이라며? 두더지 쪽은 알아봤어?”
“두더지 쪽에서 알아본 바로는 호광길드로 간 건 강은영 팀장 하나라고 합니다. 강은영 팀장은 멀쩡히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럼 유지훈인가 하는 새끼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외협력팀에서 호광길드로 가본 모양인데, 우리랑 같은 결과만 확인했다고 합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신화길드 능력이 이거밖에 안 돼?”
이자웅의 언성이 높아졌다.
장중호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빌런 조직 쪽을 의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빌런 놈들이 우리를 왜? 그럭저럭 적당한 선에서 지내왔잖아?”
“김 본부장이 몇 차례 빌런 놈들 약탈을 호되게 응징한 적이 있어서요. 대표님도 아시잖습니까. 김 본부장 약탈에는 가차 없는 거.”
“저도 김 본부장님 너무 단호한 부분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적당히 봐줄 건 눈감아주시라고 말씀드리곤 했는데···.”
유형석도 한마디 보태자 이자웅이 분개해 책상을 내리쳤다.
“그렇다고 우리 신화를 건드려!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이!”
이자웅이 씩씩대다가 스피커폰으로 비서에게 지시했다.
“비상이야. 부속실 요원들 소집해.”
부속실은 길드 마스터 직속으로 특수 임무 전담 조직이었다. 길드 뿐만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은밀히 처리해야 할 일들을 도맡았다.
움직이려면 그룹 차원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이자웅은 이들을 동원할 태세였다. 그룹 차원의 문제로 확대한다는 의미였다.
장중호와 유형석에게도 지시했다.
“장 이사는 전략 쪽 인원 총동원해서 관련 있을 만한 빌런 놈들 싹 추려. 유 팀장은 인력 현황 검토해서 태스크포스팀 꾸릴 준비하고.”
이자웅의 눈빛에 흉성이 깃들기 시작했다.
“누구든 신화를 건드리면 무사할 수 없음을 똑똑히 보여주겠어. 걸리기만 해. 싸그리 쓸어버리는 거야. 전쟁이라고.”
“그럼 유지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장중호의 질문에 이자웅의 입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일단 생사부터 확인해. 만일 살아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빌런 놈들이랑 엮인 거 아니겠어? 잘 된 거지. 한꺼번에 처치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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