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4)
“장난이라뇨. 고객님. 말씀 참 서운하게 하시네.”
사내가 짐짓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는 사이 떡대들이 유지훈을 에워쌌다. 서넛은 야구 방망이와 쇠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형님들. 험악하게 그런 건 왜 들고 오셨어. 고객님 무서우시겠다.”
사내가 떡대들을 둘러보며 비실비실 웃더니 유지훈에게 말했다.
“우리 형님들이 험악해 보이긴 해도 마음씨는 비단결 같은 분들이에요. 이제라도 고객님이 좋게좋게 계약만 하시면 아무 문제 없어요.”
유지훈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어이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사내는 겁먹은 것으로 파악한 듯했다.
“뭘 쫄고 그러세요. 계약만 잘 하시면 된다니까.”
사내가 계약서를 꺼내더니 공터에 세워진 차들을 둘러봤다.
“우리 고객님한테 어떤 매물이 어울리려나? 그렇지. 저놈이 좋겠구나. 딱 고객님을 위해 준비된 녀석이네.”
사내가 검은색 차를 가리켰다. 국산 K사 중형 세단으로 연식이 제법 돼 보였다. 속된 말로 똥차였다.
사내는 유지훈의 반응도 기다리지 않았다.
“가격은 원래 2500인데요. 고객님 인상이 좋아서 특별히 2200에 모실게요. 거기에 잘 모신 제 수수료 별도고, 주차비에 여기 형님들 인건비까지···. 딱 3000. 가져오신 현금 놓고 가시면 되겠습니다.”
사내가 느물느물 웃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유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재미있네. 기적의 셈법이야. 나도 이런 거 좋아해. 해보고 싶었어. 그럼 제대로 거래 한 번 해볼까?”
유지훈이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떡대들 사이를 파고들며 권격을 쏟아냈다. 원 샷, 원 킬. 한 주먹에 한 명씩이었다. 무림에서 배운 인체의 급소, 꽂히면 최소 혼절이었다. 떡대들이 의식을 잃은 채 고목처럼 쓰러졌다.
“허우대만 멀쩡했지. 한주먹감도 아니었잖아. 일단 이걸로 형님들 인건비는 해결됐고.”
사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유지훈은 사내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트레이드 마크, 싸다구 갈기기 신공을 작렬시킬 순간이었다.
“이제 그쪽 수수료 정리할 차례.”
사내가 사색이 돼 소리쳤다.
“각성자가 힘없는 서민 핍박해도 되는 거야! 이거 엄연한 불법이야!”
“아니라고 했잖아. 검사했는데 안 나왔다니까.”
뺨을 후려쳤다.
쫘악! 쫘악! 쫘악!
찰진 타격음이 공터에 울려 퍼졌다.
세 대만에 볼이 터졌다. 폼만 그럴싸했지 생양아치였다.
최선을 다하진 않았다. 거래를 계속하려면 정신은 붙잡아 둬야 했다.
“이걸로 그쪽 수수료는 해결됐지?”
“으으으···.”
“그럼 내 문제로 들어가 볼까?”
유지훈이 백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하더니 안타까운 탄성을 토해냈다.
“아뿔싸! 이게 이렇게 돼 버렸네.”
사내의 머리통을 툭툭 쳤다.
“내가 차 사는 대로 집을 계약할 예정이었거든. 그쪽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봐둔 집 가격이 12억이었는데, 그새 3000이 올랐네. 어떻게 해야 할까? 그쪽에서 해결해줘야겠지?”
“으으.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내가 누군지 알면···.”
“몰라 임마.”
유지훈이 사내의 코를 콱 쥐어박았다.
“아악!”
비명과 함께 콧대가 주저앉았다.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명함도 안 줬는데, 네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냐?”
“후회할 거다.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알면···.”
“아. 그놈 참 말 많네. 맞아서는 정신 못 차리냐?”
유지훈이 사내의 발목을 지그시 밟았다.
우지끈. 기분 나쁜 소음과 함께 발목이 부러졌다.
“으악! 개새끼야! 내 뒤에 철두파가···.”
“안 궁금하다고!”
팔목까지 부러뜨린 다음에야 사내가 조용해졌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이런! 거래 계속해야 하는데. 정신줄은 챙겨야지.”
무림에서 의식을 되찾게 하는 법도 익혔다. 가볍게 어루만져주자 사내가 번쩍 눈을 떴다. 몹시 고분고분해졌다.
“이제 거래 계속할 준비 됐냐?”
“네! 말씀만 하십시오.”
“일단 내놔.”
“뭘 말씀이십니까?”
“말했잖아. 3000만 원. 집값 오른 거.”
“그, 그게···. 저희한테 지금 그만한 현금은···.”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저기 선생님.”
돌아보니 나라 잃은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던 중년남이었다.
“제가 아까 봤는데요. 이놈들 금고에 현금 많습니다. 당장 제가 뜯긴 것도 2000이고요. 저기 저 선생님도 못지않게 뜯겼습니다.”
중년남이 가리킨 곳엔 좀 더 절망한 표정의 중늙은이가 쪼그린 채 앉아 있었다. 유지훈을 바라보는 눈빛에 왠지 모를 희망이 일렁였다.
“그렇다는데?”
사내가 고자질한 중년남을 잠시 노려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저는 금고 번호를 몰라서요. 저희 사장님만 아시거든요.”
그때 중늙은이가 엉거주춤 다가왔다.
“저기 선생님. 아까 저한테 뺏어간 돈 금고에 넣는 거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여기 이 양반이었습니다.”
“뭐야?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유지훈이 사내를 죽일 듯 노려봤다.
사내가 격하게 양손을 휘저었다. 부러진 팔목이 덜렁거릴 정도였다.
“넣을 때 번호는 아는데 꺼낼 때 번호는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이런 개자식을 봤나. 내가 알로 보이냐?”
유지훈이 손망치로 사내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파삭!
아차! 분개한 탓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머리가 으스러졌다. 당연히 사내는 혀를 빼물고 혼절했다.
“죽은 거 아냐?”
다행히 미약하게나마 호흡은 있었다. 그래도 반편이가 됐을 터였다. 깨워봤자 금고 번호는 모를 게 거의 확실했다.
금고를 열기 위해 다른 놈이 필요했다. 정신을 잃고 나뒹구는 떡대들 중 비교적 말 잘 듣게 생긴 놈을 찾아 깨웠다.
“이 새끼가!”
깨어나자마자 반응은 격한 도끼눈이었다.
우선 뺨부터 몇 대 갈겼다. 이어 머리 터지고 팔다리 부러진 사내를 보여주니 순해졌다.
“말씀만 하십시오!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금고부터 열어라.”
떡대가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정말 모르는데요. 사장님이랑 이사님만 아십니다.”
반편이가 된 사내가 이사님인 모양이었다.
시간 없는데 사장까지 불러와야 하나? 이러다가 오늘 집 못 사겠네. 그것까지 계산해서 받아내야겠군.
“그럼 사장 오라 그래.”
“지시 받들겠습니다!”
떡대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뭐라 소근대더니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오신다고 합니다.”
“잘했다. 그나마 너는 좀 쓸 만하구나.”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차들을 구경했다.
아쉬운 대로 이 중에서 하나라도 골라 갈까 싶었다. 다들 상태가 형편없었지만, 그나마 괜찮은 놈도 한 대 있었다.
일본산 L사 SUV였다. 연식은 오래됐지만, 그럭저럭 관리가 잘 된 듯했다. 주행 거리도 5만km 남짓에 불과했다.
“그래 일단 이거라도 몰고 가야겠다.”
떡대에게 가격을 물어보려는데, 중년남과 중늙은이가 넙죽 엎드렸다.
“선생님!”
“왜들 이러시는지···.”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억울하게 돈을 뜯겼습니다.”
“선생님 돈 찾으실 때 저희 것도 좀 찾을 수 없겠습니까?”
나이도 지긋한 분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게 조금 낯 간지러웠다.
만류하려다가 생각해보니 무림에서 보낸 50년을 합치면 이들보다 오래 산 건 사실이었다. 선생님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했다.
“금고 열리면 찾아들 가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개를 조아리던 중늙은이가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선생님.”
“네.”
“아까 그 머리 터진 놈이 말했던 철두파가 약탈자 조직 아닐까요?”
“저는 처음 듣는데요.”
유지훈이 고개를 가로젓자 중년남이 가세했다.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습니다. 아이언 헤드라는 빌런이 이끄는 조직인데···.”
아이언 헤드가 철두잖아?
떡대에게 물었다.
“야. 너네 사장이 아이언 헤드냐?”
떡대가 싹싹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이언 헤드는 회장님이고요. 저희 사장님은 스톤 헤드입니다. 회장님 동생이세요.”
“아아···.”
“머리는 회장님이 더 단단한데요. 사장님 머리가 더 큽니다.”
갈수록 싹싹해지는 떡대였다.
철두파 회장은 철두고, 동생은 석두라···. 좋은 집안이군.
“너네 회장이랑 사장은 각성자냐?”
“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제법 높은 레벨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너네 이사 놈은 각성자한테는 차 안 판다고 그런 거냐?”
“아. 그건 각성자한테는 사장님이 직접 파시거든요. 가끔 회장님까지 나서실 때도 있고요.”
이놈들 각성자들 등도 처먹는구나. 재미있는 놈들이네.
피식 웃는데 중늙은이와 중년남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아이언 헤드는 악독하기로 유명한 빌런입니다.”
“철두 말고 석두가 온다던데요? 쇠대가리 말고 돌대가리요.”
“돌대가리도 단단하지 않겠습니까? 오기 전에 도망가시지요.”
“뜯긴 돈 안 찾으시려고요?”
“돈도 좋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지···.”
“정 겁나시면 그냥 가시든지요. 저는 기어코 금고 열어보려니까요.”
“아이언 헤드는 레벨 7쯤 되는 빌런이라 들었는데···.”
중늙은이와 중년남이 머뭇거렸다.
돈이냐 목숨이냐 사이에서 격한 갈등에 휩싸인 듯했다.
“쇠대가리든 돌대가리든 걱정 없어요. 제 주먹은 핵주먹이거든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사이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열댓 명쯤 돼 보였다. 맨 앞에 머리가 유난히 큰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척 보니 알겠네. 저놈이 스톤 헤드구나.
흘깃 떡대를 쳐다봤다. 우쭐해서 웃는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우리 구역에서 난동이냐!”
머리 큰 사내, 스톤 헤드 주필운이 소리쳤다.
“저놈들을 짓이겨서 내 앞에 무릎 꿇려라.”
“네!”
우렁찬 대답과 함께 사내들이 몰려들었다.
“우와!”
“죽여라!”
천지가 떠나갈 정도로 함성도 질러댔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 요란하긴.
유지훈이 사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일단 한 놈의 관자놀이에 권격을 꽂아 넣었다. 나뒹구는 놈에게서 쇠파이프를 빼앗아 들었다.
이번엔 격투의 양상을 달리하고 싶었다. 쇠파이프를 보니 무림에서 익힌 검법이 떠올라서였다.
그가 익힌 건 삼재검법이 전부였다. 검이나 도에는 소질이 없었다.
물론 소멸기를 활용하려면 맨손이 유리하긴 했다. 그래도 내공을 소멸시킨 뒤 병장기를 활용하면 제압이 수월하기에 몇 종류 익히려 했다. 박투에 능해서인지 단검이나 비수 같은 짧은 병장기가 편했다.
‘검법이 멋있긴 하지. 그러고 보니 검의 고수들이 부러웠는데. 이놈들 상대로 오랜만에 삼재검이나 연습해봐야겠다.’
유지훈의 손에 쥐어진 쇠파이프가 예기를 번득이기 시작했다.
한 번 번쩍일 때마다 서너 놈씩이었다. 수확철 벼 넘어가듯 우수수 쓰러졌다. 확실히 다수를 상대하기엔 박투보다 병기가 효과적이었다.
서너 차례 초식을 전개하자 열댓 명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
“쓸 만한데! 검도 한 자루 장만해야겠어.”
그때 둔중한 기운이 닥쳐왔다. 사뿐히 한 걸음 물러서 피했다.
쐐액! 묵직한 파공음에 이어 콰앙! 우지끈! 뒤쪽의 아름드리나무가 거센 충격에 으깨지듯 부러졌다.
스톤 헤드 주필운이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비소를 그렸다.
“제법 날렵하구나.”
힘차게 달리더니 머리로 들이받는 자세로 몸을 날렸다. 머리가 희끄무레하게 빛났다. 화강암의 느낌이었다.
스톤 헤드. 강화 계열의 특성인 듯했다. 발동하면 실제로 머리가 돌이 되는 모양이었다.
제법 위협적이었지만, 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요령부득의, 몸을 날려 들이받기 일변도의 공격이었으니.
“뇌까지 돌이 되는 거냐?”
대여섯 차례 피하고 나니 석두가 향하는 공격의 길이 훤히 보였다. 슬쩍슬쩍 밀치고 비켜내면서 쇠파이프로 삼재검의 초식도 전개했다. 여지없이 주필운의 몸 곳곳에 작렬했다.
10여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이후 주필운은 머리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됐다.
“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금고나 열어. 그러다가 다리라도 부러지면 대가리가 돌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도 소용없잖아.”
유지훈이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친 채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주필운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벼락같이 몸을 내던졌다.
“이번에도 피하면 네놈을 아버지로 모시겠다!”
“그쪽처럼 대가리 큰 아들 필요 없는데···.”
사뿐히 피하려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내려다보니 사내 둘이 다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뒤쪽에 또 한 녀석은 허리를 감싸 안은 양상이었다.
함께 온 놈들이 아니었다.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 식이었구나. 조력자들을 숨겨뒀다가 결정적일 때 움직임을 제어하도록 하는 방식.’
돌대가리가 가까워졌다. 세 녀석을 떨쳐내긴 시간이 부족했다.
쇠파이프를 집어던졌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진짜 핵주먹을 보여줄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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