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8화 (8/150)

죄와 벌 (2)

“상? 벌?”

유지훈이 어리둥절해 눈을 껌뻑였다. 강은영에게 물었다.

“설마 이게 상이라는 거야?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이? 요즘은 보상도 상이라고 하나?”

강은영의 안색은 어두웠다.

눈앞의 사내를 모르지 않았다. 아울러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유지훈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신화길드에서 가장 강한 헌터예요. 레벨 7 각성자 김연학.”

유지훈이 미간을 좁히며 김연학을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박찬수가 김연학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본부장님께서 몸소 나오셨습니까? 송구스럽게 됐습니다.”

비굴하게 웃으며 굽신거렸다.

김연학은 박찬수를 경멸의 시선으로 깔아봤다.

“쓰레기 같은 놈.”

솥뚜껑만큼 큰 손으로 박찬수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보, 본부장님···.”

박찬수가 사색이 돼 애원하려는 찰나.

퍼석!

머리가 터졌다. 뇌수와 피가 허공에 비산했다.

김연학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에 묻은 피를 박찬수의 옷에 닦았다. 무심한 눈빛으로 유지훈을 바라봤다.

밖의 상황도 정리된 모양이었다. 비명이 잦아들었고, 전투복을 입은 사내들이 하나둘 사무실로 들어섰다.

여덟 명의 사내가 김연학의 옆에 섰다. 출구를 봉쇄한 모양새였다.

“뭐 하자는 거죠?”

강은영이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김연학 신화길드 타격본부장님. 설마 나를 모르진 않을 텐데요?”

“알고 있다. 국가안전본부 던전관리국 탐사 3팀장. 한때 잘나갔지만, 한직을 떠돌다가 퇴출 직전에 몰린 천덕꾸러기.”

김연학이 피식 웃은 뒤 질문을 던졌다.

“혼자인가?”

강은영이 대답 대신 질문으로 대응했다.

“알면서도 이런 짓을 저지른 거예요? 국가안전본부 간부를 겁박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이런 짓이라···. 혼자였다니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올 필요도 없었군.”

김연학의 시선이 사무실 바깥쪽을 향했다.

“호광길드가 빌런 놈들의 습격을 당했다. 길드 마스터를 비롯해 직원 모두가 학살당했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호광길드에 와있던 국가안전본부 팀장까지 희생된 안타까운 사고였어.”

김연학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설명이 됐나?”

강은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심각하게 안 좋았다. 김연학은 레벨 7의 각성자.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30위 안에 드는 능력자였다.

주위 타격대원들도 레벨 4 안팎의 각성자들이었다. 레벨 5의 각성자인 그녀 실력으론 두세 명 정도가 한계였다.

유지훈의 격투 능력이 기이할 정도로 뛰어나긴 해도···.

“푸훗.”

유지훈은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에요. 이놈들···.”

“그럼 그렇지. 신화길드가 착한 놈들일 리가 없지. 좋게좋게 마무리하고 조용히 지내려 했는데 안 도와주네.”

유지훈이 김연학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어글리 어쩌고 하는 놈도 너희가 보낸 거냐?”

“······?”

김연학이 무슨 소리인지 눈매를 좁혔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어글리 썬더 따위랑 나는 격이 다르다.”

“맞네. 맞으면 맞다고 하지 뭘 돌려 말하고 그래.”

유지훈이 김연학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빙긋 웃었다.

박찬수를 죽인 순간 그의 능력을 파악했다. 기를 격발해 상대의 내부를 진탕, 폭발시키는 방식. 일종의 내가중수법이었다.

무림에서 숱하게 상대한 유형이었다. 그에게 내공이 없는 것을 알고 지독스러운 접근전으로 그를 공격하려 했다.

처음엔 제법 애를 먹었다.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그 과정에서 최적의 대응책을 찾아냈다. 종국엔 천하십대고수였던 권왕을 쓰러뜨리기까지 했다.

“내가 전에 그쪽 같은 놈들 여럿 만나봤거든. 제법 쓸 만은 한데, 결정적인 약점이 있더라고. 결국엔 내 손에 다 죽었어.”

“주제도 모르고 나불대는군.”

김연학이 우두둑 손을 꺾으며 유지훈에게 다가왔다.

“깔끔하게 끝내주려 했다만, 마음이 바뀌었다. 극한의 고통으로 죽고 싶다 여겨지게 해주마.”

김연학이 날렵하게 손을 뻗어왔다.

강은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잡히면 안 돼요. 저자의 특성은 침투경. 잡히는 순간 끝이에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유지훈이 기이하게 손을 움직였다. 묵직하게 잡아채려 드는 김연학의 손을 교묘하게 비껴내고 튕겨냈다.

“잡히면 끝이지만, 안 잡히면 저쪽이 끝이야.”

무신에게 배운 금나수법이었다.

내가 고수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유지훈 나름대로 발전시켜 독창적인 경지를 이뤘다. 무림에서 투귀의 수법, 투귀수라 불리기도 했다.

투귀수는 수법이었지만, 보법과의 연계가 중요했다. 내공이 없는 유지훈의 처지에선 최대한 잘 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손발이 완전히 따로 놀았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돼 움직이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일견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웃다가 당한 놈이 한둘이 아닌 건 함정이었다.

김연학도 그런 놈들 중 하나가 될 운명인 모양이었다.

“크흐흐. 죽기 싫어서 별 지랄을 다 떠는군.”

비웃긴 했지만, 유지훈을 잡을 순 없었다. 연신 헛손질만 거듭했다. 김연학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 지랄 한 번 제대로 떨어볼까?”

유지훈의 발놀림이 빨라졌다.

투귀수에서 보법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멸기를 발동시키기 위해선 유지훈 또한 상대의 몸에 손을 대야 했다.

상대 내공의 깊이에 따라 소멸기가 작동하는 시간도 길어지기 마련. 그동안 잡히지 않는 게 필수였다. 상대의 후위를 장악해야 했다.

거칠게 덮쳐오는 김연학의 손짓을 파고들 듯 피해 후면에 자리를 잡았다. 가만히 양손을 등에 가져다 댔다.

“뭐 하는 짓이냐!”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기분 좋은 느낌이 이어졌다.

1초, 2초, 3초. 제법 길었다. 레벨 7의 각성자는 무림으로 치면 초절정 고수에 비견될 듯했다. 물론 5초에 달했던 권왕엔 한참 못 미쳤다.

김연학이 격렬한 몸놀림으로 떼어내려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맹렬하게 팔을 뒤로 휘저었지만, 유지훈은 신묘하게 피해냈다.

간지러움이 끝났다. 소멸의 완성이었다.

동시에 김연학도 유지훈을 떨쳐냈다. 덥석 유지훈의 어깻죽지를 움켜쥐었다.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잡았다. 이놈.”

“이크! 잡혔네.”

유지훈이 짐짓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강은영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한숨을 토해냈다.

신화길드 타격대원들이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강은영을 제압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어?”

순간 김연학이 괴성을 토해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침투경을 발동해 기뢰를 쏟아냈지만, 상대가 너무 평온했다.

반면 일그러졌던 유지훈의 표정엔 서서히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안 잡히면 끝이랬지? 이제 네가 끝난 거야.”

유지훈의 주먹이 김연학의 턱을 강타했다. 뒤로 넘어가는 찰나 명치에 팔꿈치가 꽂혔고, 웅크린 순간 관자놀이에 니킥이 작렬했다.

그대로 쓰러져 나뒹구는 김연학 위에 올라탄 유지훈이 불꽃 파운딩이 쏟아냈다. 철저하게 안면만을 노렸다. 철저하게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유지훈만의 방식이었다.

“본부장님을 구해라!”

타격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훈련이 잘 된 듯 효과적으로 대형을 갖춘 모습이었다.

다만 상대가 잘못됐다. 훈련에서 그들의 합공 상대는 몬스터였다. 탱커와 딜러가 번갈아 치고 빠지며 몬스터의 힘을 빼놓은 뒤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유지훈은 신묘한 움직임과 소멸기가 주특기였다. 타격대원들 입장에선 한꺼번에 덮쳐서 공간을 장악하는 게 효과적일 터였다.

쓸데없이 치고 빠지는 통에 자유로운 움직임의 여지만 내줬다.

툭! 툭! 툭! 소멸기가 작렬하면서 타격대원들의 전투력이 하나둘 무용지물이 돼 갔다.

“저도 도울게요!”

강은영도 나서 타격대원들의 배후를 공격했다.

“실컷 구경만 하다가 이제사?”

“고맙다는 인사는 사양할게요.”

유지훈의 소멸기에 이은 매서운 권격과 각법, 후위를 장악한 강은영의 맹공에 타격대원들이 차례차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유지훈은 한 놈씩 머리채를 잡고 뺨을 후려쳤다. 여덟 명 모두 볼이 터져 피를 쏟으며 의식을 잃은 다음에야 손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거 꼭 해야 해요?”

“뭘?”

“싸다구 갈기기 신공이요.”

“당연히 해야지. 성명절기인데.”

“성명 뭐요?”

“성명절기. 여기선 그런 말 안 쓰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해두지.”

강은영이 어이없다는 듯 유지훈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나마 남아있던 약간의 어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볼일도 다 봤고. 난 그만 가볼게. 뒷정리는 그쪽이 좀 해줘.”

“잠깐만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휘적휘적 사무실을 나서는 유지훈을 강은영이 황급히 불러세웠다.

“왜 또? 나한테 볼일이 남았어?”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알잖아. 유지훈. 사망자였다가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던전 폭발사고 피해자. 방금 보상 절차 마쳤고. 아. 보상받을 게 또 생겼구나.”

“하아!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요!”

강은영이 한숨부터 토해냈다.

“방금 유지훈 씨가 때려눕힌 사람 대한민국에서 30위에 안에 드는 강자예요. 한때 18위에 랭크 되기도 했다고요.”

“응. 제법 강한 것 같더군. 요령부득이라 문제였지.”

“유지훈 씨 지난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지난 5년이라···.”

유지훈이 콧잔등을 긁적이며 과거를 돌아봤다.

“조용히 살았던 것 같은데. 싸우자고 찾아오는 놈도 별로 없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였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보낸 50년 중 마지막 5년은 한가로웠다.

화공대법에 절세의 체술까지. 박투의 제왕 투귀로 군림한 유지훈에게 도전하는 무림인은 많지 않았다.

초반 10년은 수련에 몰두했고, 이후 10년은 실전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25년 동안 무림공적으로 몰려 숱한 혈투를 벌였고, 마지막 5년은 은거하다시피 하며 지냈다.

은거를 깨고 나선 게 정마대전에서 무신을 도와 천마를 쓰러뜨렸을 때였다. 그리고 돌아왔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예요?”

강은영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지훈은 길드의 비각성자 잡무 담당 직원이었다. 사고로 행방불명됐다가 돌아오더니 고레벨 각성자들을 손바닥 뒤집듯 때려눕히고 있었다. 뭔가 계기가 있어야 했다.

“사실을 말해줘도 못 믿으면 할 수 없지.”

유지훈이 손을 휘휘 저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럼 뒤처리 좀 부탁해.”

“어디로 가는 거죠? 설마 신화길드로 가려는 거예요?”

“신화길드? 누굴 싸움닭으로 아나. 당분간 조용히 고향의 정취를 즐기면서 지낼 거야.”

“뭐라는 거야···.”

강은영이 호광길드의 난장판과 멀어지는 유지훈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나예요. 강은영. 여기 호광길드인데요. 수습이 필요해요. 대외협력팀 인원 좀 보내주세요. 설명할 시간 없어요. 오면 알 거예요. 상황 보고 저한테 연락하라고 하세요.”

강은영이 다급하게 유지훈의 뒤를 쫓았다.

“같이 가요!”

“또 방향이 같은 거야? 내가 어디 갈 줄 알고?”

“아니에요. 이번엔 따라붙을 참이에요.”

“왜?”

“유지훈 씨는 던전 폭발사고 피해자니까요. 저한테는 공직자로서 유지훈 씨를 보살필 책임이 있어요.”

“보살핌을 받겠다는 거 아니고?”

유지훈이 피식 웃었다. 거절하진 않았다.

“잘됐네. 힘 좀 썼다니 피곤해서 걸어 다니기 싫었는데 기사 노릇이나 해. 우선 은행부터 가자고.”

“은행이요?”

“돈이 많으면 뭐해. 수중에 한 푼도 없는데. 현금 좀 찾고. 카드도 만들어야겠어. 서둘러. 장만할 게 많아.”

꼼짝없이 강은영은 유지훈의 일일 수행비서가 돼야 했다.

우선 은행으로 모신 뒤 현금 인출과 카드 발급을 도왔다.

“신용카드는 나오려면 열흘쯤 걸리잖아. 직불카드로 신청해줘.”

“그렇게 잘 알면 직접 하세요. 옆에서 툴툴거리지 말고.”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이어 휴대폰을 개설했고, 태블릿 PC도 한 대 구매했다.

다음은 백화점에 가서 의복과 신발, 가방 등을 장만할 차례였다.

“옷 좀 좋은 걸 주지 구질구질하게 이게 뭐야? 신발도 어떤 놈이 신던 건지 냄새가···.”

“그냥 홀딱 벗겨서 데리고 다닐 걸 그랬나···.”

“꾸물거릴 시간 없어. 차도 한 대 뽑은 다음에 부동산도 가야 해.”

정신없이 백화점을 누빌 때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렸다.

액정에 대외협력팀장이라고 송신자가 명기돼 있었다. 호광길드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강은영입니다.”

[야! 강은영!]

목소리 톤이 심상치 않았다.

“도착했어요? 상황이 심상치 않죠?”

[그래. 기분 아주 엿 같다. 바쁜 사람 똥개 훈련 시키냐?]

“네?”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하더니 아무 일도 없잖아!]

“아무 일도 없다고요?”

[아무 일도 없는 정도가 아니고 호광길드 자체가 없다. 얘들 폐업했냐? 아니면 이사 갔나? 그런 이야기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강은영은 다급하게 호광길드로 달려야 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