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되찾다 (2)
강은영은 자책했다.
넋을 놓고 보느라 호광길드 마스터가 나타난 걸 눈치채지 못했다.
유지훈이 김석진을 제압하는 과정이 너무 괴랄했다.
김석진의 빙공은 비각성자에겐 버거운 특성이었다. 일단 잡히면 끝이었다. 상대하려면 마나를 일으켜 빙기의 침투에 맞서야 하는데, 비각성자에겐 마나가 없으니 속절없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손을 피하면서 가격해야 하는데.’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순간, 강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달려들어 뜯어놓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지훈의 안색이 기이하리만치 편안했다. 얼어붙기는커녕 훈풍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서려다 멈춰섰다. 본능이 좀 더 지켜보라고 붙잡았다.
‘어? 저게 어떻게 된 거지?’
김석진의 빙공이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지훈이 손을 떨쳐낸 뒤, 김석진이 재차 붙잡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무자비한 구타를 불렀다.
그때라도 나섰어야 했는데. 장부 시스템 확인으로 호광길드의 비리를 파헤칠 단초를 찾았는데. 제압 과정을 곰곰이 돌아보느라 박찬수의 등장을 감지하지 못했다.
레벨 5의 각성자인 박찬수는 블레스터 스피어라는 특성을 보유했다. 마나를 응축시켜 창처럼 발출하는 능력이었다.
위력만 놓고 보면 레벨 7에 버금갔다. 한 번 구사하면 다시 마나를 응축시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 때문에 레벨 5에 그쳤다. 적절히 팀을 이뤘을 때 박찬수는 레벨 7에 준하는 강자로 여겨졌다.
그런 박찬수의 공격이 완벽하게 유지훈의 등에 꽂혔다.
인식하지도 못한 순간에 당한 공격이었으니 충격이 더 클 것이었다. 등뼈가 완전히 으스러졌을 테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대체 내가 뭘 한 거야. 그걸 놓치다니···.’
스스로를 책망하며 뒤늦게나마 박찬수의 앞을 가로막으려는데, 기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흐흐흐. 이게 뭐야. 이상하잖아.”
유지훈이었다.
박살 난 집기 더미 사이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비실비실 웃는 모습이 즐거워하는 양상이었다.
“너, 너 대체···.”
가장 놀란 건 박찬수였다.
혼신의 힘을 쏟은 일격이었다. 그것도 비각성자를 상대로 한 기습이기까지 했다. 죽지 않아도 이상할 판국인데,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요란하기만 했지. 위력은 전혀 없네? 레벨 5라 그러지 않았어? 레벨 5가 원래 이 정도인 건가?”
박찬수가 눈을 부릅뜨고 유지훈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지훈은 빙글빙글 웃으며 박찬수에게 다가왔다. 손을 내밀기까지 했다.
“5년 만에 만났는데 악수라도 해요. 마스터님.”
박찬수는 말없이 노려보기만 할 뿐 손을 잡지 않았다.
유지훈은 혀를 끌끌 차며 쓰다듬듯 박찬수의 팔을 잡았다.
“악수 하나 가지고 비싸게 구시긴. 그나저나 내가 왜 온 줄은 아시겠죠? 빨리 마무리합시다. 오래 대화 나누고 싶지도 않은 듯한데.”
박찬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분을 삼키려는지 눈을 감고 짧게 신음을 토했다.
“설마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나한테 횡령 뒤집어씌워서 집 빼앗아 갔잖아. 돌려줘야지. 그리고 업무 중 상해를 당하게 했으니 보상금도 내놓아야 할 테고.”
유지훈이 비아냥거리듯 말하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아. 퇴직금 정산도 빼먹으면 안 되지. 기왕이면 지난 5년 부분도 근무 기간에 포함해줘요. 업무상 상해 기간으로 간주해서.”
박찬수의 눈매가 일그러졌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뭔가 기다리듯 노려볼 뿐이었다.
강은영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조심해요! 마나를 응축시키는 거예요.”
“이런! 깜빡 속을 뻔했네. 빨리 피해야지.”
유지훈이 잡고 있던 박찬수의 팔을 놓고는 후다닥 뛰었다.
“거리를 벌리면 더 위험해요!”
강은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블레스터 스피어는 몸을 날려 어깨로 들이받는 형식의 공격이기에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을 때 더 위력적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선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유지훈은 마나를 응축한 시간을 벌어준 데다가 유효 공격 거리까지 만들어주는 실수를 범하는 모습이었다.
역시나 박찬수가 음험하게 웃었다.
“크흐흐. 멍청한 놈. 기어이 죽겠다고 용을 쓰는구나.”
박찬수가 발을 구르더니 위풍당당하게 몸을 날렸다.
강은영이 손을 쓰기엔 늦었다. 가까이 갔다고 해도 막을 순 없었다. 박찬수의 블레스터 스피어는 강은영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 먼저 제압부터 해놓고 봤어야죠!”
책망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상황이었다. 요행이든 어쨌든 이번에도 잘 받아내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기세 좋게 날아가던 박찬수가 피식 아래로 고꾸라졌다. 볼썽사납게 앞구르기 하더니 유지훈 앞에 멈춰섰다.
“뭐야? 갖은 폼은 다 잡더니 때려달라고 대가리 들이미는 거였어? 그럼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어리둥절해 눈을 껌뻑이는 박찬수의 머리통에 유지훈은 경쾌한 사커킥을 날렸다.
“크억!”
박찬수가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피와 함께 이빨도 대여섯 대 허공을 수놓았다.
거기서 끝낼 유지훈이 아니었다. 다가가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저 인간은 싸대기 날리기 특성으로 각성한 건가?”
이미 두어 차례 목격한 잔혹한 장면이기에 강은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찰진 타격음이 몸서리를 일으키는 듯했다.
다행히 이번엔 세 차례 가격 이후 타격음이 멈췄다.
“좀 더 때리고 싶은데 해결할 문제가 있었네. 관리이사처럼 졸도해 버리면 대화를 나눌 수 없잖아.”
집 문제와 보상금 그리고 퇴직금이 박찬수를 살렸다.
박찬수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대화로 하자고. 지성인답게 대화로.”
“지성인인 얼어 죽을···. 건조해서 피부가 다 튼 양반이.”
썰렁한 아재 개그에도 박찬수는 웃어야 했다. 웃지 않으면 다시금 구타가 시작될 거란 공포 때문이었다.
호광길드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 협상 테이블이 열렸다.
김석진을 비롯한 10여 명의 헌터들은 여전히 의식을 잃고 널브러진 형편. 멀쩡한 헌터들이 부랴부랴 다과를 준비하는 등 귀한 손님맞이에 정성을 쏟았다.
“그래. 어떻게 하시려나? 마스터님.”
유지훈은 일단 공을 박찬수에게 넘겼다.
박찬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파, 팔천만 원. 그때 경매 거쳐서 길드로 입금된 금액이다.”
“뭐!”
“1억 원에 낙찰됐는데, 제반 경비랑 수수료 제외하니까 그거 들어왔다. 모두 돌려주겠다.”
“장난해?”
유지훈이 어이를 상실했다는 표정으로 박찬수를 흘겨봤다.
“경매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집을 돌려달라고.”
“그럼 경비랑 수수료는 길드에서 처리한 것으로···.”
“이게 덜 맞았나. 어디서 약을 팔아.”
유지훈이 인상을 구기며 손을 치켜들었다.
박찬수가 찔끔해 몸을 움츠렸다.
“너 정박아야? 말 못 알아들어? 집을 돌려달라고.”
“그래서 1억 원 다···.”
“안 되겠다. 너 좀 더 맞자.”
“아니, 아니. 원하는 걸 말해라.”
박찬수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애원하듯 말했다.
유지훈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강은영에게 물었다.
“어이! 거기서 구경만 하지 말고 조사나 좀 해주지?”
“뭘 말이죠?”
“뭐긴 내가 살던 집 현재 거래가지.”
강은영이 태블릿 PC를 꺼내 검색했다.
“5년 새 제법 많이 올랐네요. 3억3000만 원에서 3억7000만 원 사이로 형성돼 있어요.”
“그럼 일단 3억 7000만 원.”
유지훈이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박찬수를 쳐다봤다.
사색이 된 박찬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거기에.”
유지훈의 셈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5년 동안 집에서 쫓겨나서 떠도는 과정에 불필요하게 소요된 비용도 계산해야지. 인심 써서 월세 200 정도만 잡고. 5년이면 60개월이니 1억2000만 원.”
“그 집 월세가 어떻게 200이나···.”
“시끄럽고! 집 없어서 쓰게 된 돈이 1년에 1000만 원 쳐서 5000만 원. 집값이랑 다 합치니까 5억4000만 원이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죽도록 맞으면 말이 될까?”
박찬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지만, 계산은 이제 시작이었다.
“집은 내가 많이 양보했으니까 나머지는 좀 더 철저하게···.”
“무슨 양보···. 또 뭐가···?”
“이 양반 봐라? 사고 보상금이 남았잖아. 퇴직금도 정산해야 하고.”
“끄응···.”
사고 보상금은 유지훈만의 공정한 셈법으로 10억 원으로 책정됐다.
“왜? 금액이 이상해? 너무 적나? 그럼 12억 원.”
“말도 안 돼···.”
“그럼 법원에서 가려보든가. 그쪽은 관속에서 결과를 알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에 박찬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이의를 제기한 건 강은영이었다.
“그런데 왜 2억 원이 추가되는 거죠?”
“원래 추가할 땐 짝수로 하는 거야. 술집에서 술 안 시켜봤어? 강호에서도 그러던데?”
퇴직금에 관해서는 유지훈이 백번 양보했다. 법에서 정한 정산법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다만 사고 이후 5년도 근무 기간에 포함했다.
“따지고 보면 부당해고잖아. 당연히 포함해야지.”
“······.”
“아! 그러고 보니 5년 동안 급여도 챙겨 받아야겠구나.”
“근무도 안 해놓고···.”
“맞을래? 5년 치 때려줄까?”
퇴직금 2530만 원에 5년간 급여 1억8000만 원. 도합 2억530만 원이 최종적인 퇴직 급여였다.
총합 19억4530만 원. 유지훈이 받아낼 금액이었다.
“아! 5년 동안 급여가 인상되는 걸 빼먹었네. 에잇. 내가 도둑놈도 아니고. 그건 봐줬다.”
너그러운 아량이었다.
감동한 강은영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국가안전본부 팀장님도 인정하시네. 그럼 이제 정산만 남았지?”
유지훈이 까딱 손을 내밀었다.
박찬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금액이 이상해? 다시 계산할까?”
“그, 그건 아니고. 우리 길드가 신화길드 산하로 편제돼 있어서 자금 집행이 5억 원을 초과할 때는 신화길드 승인을 받아야 하거든.”
“그럼 승인받아. 일단 5억 원은 내놓고.”
“끄응···. 예전에 급여 지급하던 계좌로 보내면 될까?”
박찬수가 침음을 흘리며 물었다.
유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살아있으려나? 내가 죽은 것으로 돼 있으면···.”
유지훈의 시선이 강은영을 향했다.
이럴 땐 공직에 몸담은 사람이 절실했다.
강은영이 투덜대면서 태블릿 PC를 작동했다.
“쫓아오지 말라더니···. 계좌는 그대로 있네요. 휴면 계좌이긴 한데, 살릴 수 있을 거예요.”
강은영은 은행으로 연락해 계좌 복구까지 진행해줬다.
입금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확인까지 마쳤다. 남은 건 14억4530만 원에 대한 신화길드의 승인이었다.
박찬수가 직접 신화길드로 연락을 취했다.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도록 했다.
“무슨 일입니까? 긴급한 사안 아니면 이 번호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긴급한 일입니다. 이사님. 그리고 지금 스피커폰입니다.”
“······.”
신화길드 인사의 음성이 조심스러워졌다.
“말씀하세요.”
“5년 전 17호 길드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던 직원이 살아있었습니다. 보상 문제 때문에 찾아왔는데···.”
“적당히 협의해서 보상해주도록 해요. 그런 일로 연락하지 말고.”
“승인이 필요한 금액이라···.”
“시스템으로 승인 요청하면 되잖습니까? 검토해보겠습니다.”
“그게 당장 집행해야 할 상황이라···.”
“으음···.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통화가 끝났고, 유지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또 처맞을 놈들 잔뜩 보내는 건 아니겠지? 신화길드 놈들은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은데···.”
유지훈의 시선이 강은영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그쪽도 여기 볼일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요? 아 맞다. 볼일이 있었지.”
강은영이 박찬수에게 다가갔다.
“길드 마스터님. 5년 전 17호 던전 폭발 사고 당시 길드 직원 유지훈 씨가 사망한 것에 대해 알아보러 왔습니다.”
“저기 멀쩡히 살아있지 않습니까. 다 보셔놓고···.”
“그렇군요.”
강은영이 유지훈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볼일 다 봤네요.”
“안 가냐?”
“신화길드한테도 볼일이 있어서요.”
“그럼 신화길드로 가든지.”
“굳이 번거롭게 안 가도 될 것 같아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