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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4화 (4/150)

귀환하다 (3)

강은영은 천억 원 가치에 달하는 몬스터 부산물 횡령을 확신하다시피 하며 의료센터로 달려갔다.

결정적인 증인이 될 수 있는 유지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보호의 목적도 있었다. 만일 국가안전본부의 윗선이 결탁돼 있다면, 유지훈을 처리하려들 테니 말이었다.

유지훈은 병실에 없었다.

“309호실 환자 어디 갔나요?”

“글쎄요. 저도 조금 전에 가보니까 없던데요? 던전관리국에서 퇴원시킨 줄 알았는데···.”

간호사의 대답에 강은영은 덜컥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윗선에서 손을 쓴 건 아닌지.

“혹시 누군가 병실을 찾은 사람 있었나요?”

“제가 아는 바로는 없는데요. 기록 한 번 찾아볼게요.”

간호사가 출입 기록을 검색해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록상으로는 없네요. 그런데 그쪽 분들 기록 안 남기고 들락날락하시잖아요. 지금 팀장님처럼요.”

“아. 네···.”

강은영은 머쓱해졌다.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

간호사가 빙긋 웃더니 옆 책상 PC 자판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바쁘신데 사소한 일에 일일이 기록 남기는 건 너무 번거롭죠. 기다려 보세요. CCTV 한 번 돌려볼게요.”

잠시 뒤 간호사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환자분 혼자 나가셨네요. 그런데 이분 뭐가 이렇게 빠르대요? 어기적어기적 걷는 것 같은데 카메라에도 안 잡힐 정도예요. 순간 이동이라도 하시는 건가···.”

강은영은 한숨을 돌린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혼자 나갔으면 어디로 갔을까?’

답은 하나였다. 집이었다.

다시 PC를 켜서 주소지를 확인했다. 가족이 이사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동거인에 관한 부분까지 파악했다.

“오호! 이건 좀 재미있네.”

서둘러 과거 주소지로 향했다. 왠지 윗선의 결탁 예감이 짙어졌다. 최대한 빨리 유지훈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도착해서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방금 당신이 피떡으로 만든 놈이 누군지 알기나 해요?”

“몰라. 오늘 처음 만난 놈인데?”

“하아. 어글리 썬더예요. 1급 수배 약탈자 김창용. 레벨 6의 각성자라고요.”

어글리 썬더 김창용. 뇌기를 특성으로 하는 각성자.

헌터는 물론이고 비각성자 민간인들도 살인 약탈한 혐의로 국가안전본부 각성자관리국에서 1급 수배범으로 분류한 인물이었다.

레벨 6이라는 높은 능력치 때문에 체포가 쉽지 않은 범죄자이기도 했다. 각성자관리국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각성자가 레벨 6인 국장과 체포팀장 단둘에 그칠 정도로 고위험 수배자였다.

당장 강은영도 레벨 5에 불과했다. 김창용 일당이 유지훈을 납치하려는 것을 보고도 선뜻 뛰어들지 못한 이유였다.

“약탈자 아니고 빌런이라던데?”

“그 말이 그 말이에요! 어감 좋다고 약탈자 놈들 스스로 빌런이라 부르는 거라고요.”

“하긴 빌런이 좀 더 있어 보이긴 하네.”

강은영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토해낸 뒤 캐묻듯 질문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각성자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건 그쪽에서 그랬지. 검사해보더니. 그건 그렇고.”

유지훈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이놈들이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불과 두세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망자였잖아.”

“그, 그건···.”

“그쪽에서 이놈들한테 찔러준 거야? 국가기관이 범죄자 놈들이랑 손잡고 힘없는 시민 약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몰라? 발뺌하겠다는 거네?”

“그런 건 아니에요. 짐작 가는 데는 있는데, 확인되지 않은 거라 말할 수 없을 뿐이에요.”

“그럼 빨리 확인해. 난 반드시 알아야겠으니까.”

“그전에 먼저 유지훈 씨한테 확인할 게 있어요.”

강은영이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5년 전 사고에 관해서예요. 17호 던전의 폭발 사고.”

“5년 전···. 폭발 사고···.”

“그래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17호 던전에서의 뜻하지 않은 사건. 유지훈으로서는 50년 전 일이었다. 가깝지 않은 과거였기에, 긴 세월 무림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했던 그의 뇌리엔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힘 있는 사람들이 유지훈 씨를 쫓고 있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어째서?”

“그때 그 폭발 사고가 천억 원에 달하는 몬스터 부산물 횡령을 은폐하기 위해 꾸며진 사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그래서였던 건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유지훈이 미간을 좁혔다. 멍한 눈빛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그날 나는 헌터들이 레이드를 마친 뒤 뒷정리를 하러 갔었어.”

“유지훈 씨는 비각성자인데 어떻게요? 던전엔 각성자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데.”

“그날따라 수거반에 결원이 생겼거든. 나 말고도 총무팀 소속 비각성자 둘이 땜빵으로 투입됐지.”

어렴풋한 기억이 조금씩 뚜렷해졌다.

중소 길드인 호광길드. 유지훈은 총무팀 직원이었다. 말이 좋아 직원이지 일용직 잡역부나 마찬가지였다. 사무부터 잡다한 일들까지 모조리 도맡아야 했으니.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는 각성자들이 중시되는 길드에서 비각성자인 유지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가까스로 구한 자리였기에 잘리지 않으려고 시키는 건 군소리 없이 다했다.

“그러고 보니 석연찮은 일이 있긴 했군.”

“그게 뭔데요?”

“수시로 재고가 맞지 않았거든. 장부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는데, 실물을 점검해 보면 조금씩 오류가 있었어. 총무팀장한테 보고했더니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군. 그리고는 수거 업무에 투입됐지.”

규정상 곤란하지 않냐고 했더니 두둑한 추가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주급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서너 시간 일하고 1주일치 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 환영할 일이었다.

“수거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죽었나?”

“비각성자들만요. 각성자들은 빠져나왔어요. 총무팀 직원 셋만 죽은 것으로 확인됐어요. 유지훈 씨는 살아 있으니 둘이네요.”

“천억 원이라고? 빼돌린 몬스터 부산물의 가치가?”

“추정이에요. 적게는 백억 원에서 많게는 천억 원. 확인된 건 없어요.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폭발로 사라졌다는 말도 있고···.”

“앞뒤가 맞지 않아.”

유지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광길드는 연 매출 50억도 안 되는 작은 길드야. 천억, 백억은커녕 십억 어치를 빼돌릴 깜냥도 안 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에요.”

“어째서지?”

“배후에 신화길드가 있다면요.”

신화길드.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다. 재벌 서열 5위 신화그룹의 계열사로 자금력과 영향력은 대한민국 길드 중 첫손가락에 꼽혔다.

“신화길드가?”

“그래요. 사고 이후 조사에서 신화길드가 호광길드의 지분 70%를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어요. 유령 투자사를 통해서였기에 드러나지 않았었죠. 호광길드 외에도 소규모 길드 10여 군데가 그런 식으로 신화길드의 관계사인 게 추가로 밝혀지기도 했고요.”

“신화길드가 군소 길드를 끌어들여 횡령에 이용했다는 말이군.”

“합리적인 의심이에요. 증거가 없으니 수사는 유야무야됐고요. 물론 신화그룹이 힘을 쓴 부분도 없지 않았죠.”

유지훈이 뭔가 생각난 듯 눈빛을 반짝였다.

“난데없이 나한테 빚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일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빚 때문에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고 하거든.”

“아마 그럴 거예요. 호광길드에서 그렇게 처리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의 몬스터 부산물 횡령이 있었는데, 일부 직원의 일탈로 밝혀졌다고요. 추적해서 회수하겠다고 했던 것 같네요.”

“이것들이 피해자한테 뒤집어씌웠잖아. 보상금은 못 줄망정 집까지 뺏어가? 당장 가서 따져야겠네.”

“역시 그래야겠죠?”

“당연하지. 바로잡고 집도 찾아야지.”

“그럼 나를 도와주세요.”

강은영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지훈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도와? 뭘? 어떻게?”

“17호 던전 폭발 사고 관련해서 증인이 돼 달라고요. 수사를 재개할 수 있게요. 그러면 유지훈 씨 결백도 자연스럽게 밝혀질 거예요.”

“수사 재개? 뭐 하러? 난 집만 찾으면 되는데? 거기에 보상금도 좀 챙기고. 아. 퇴직금도 받아야겠구나. 3년 넘게 근무했으니.”

“그, 그게 무슨···.”

“쳇!”

유지훈이 코웃음을 쳤다.

“내 이야기 다 들었잖아. 그것으로 증언이 되겠어? 그리고 대한민국의 힘 있는 놈들이라며? 신화그룹도 끼어있고. 싸워볼 수나 있을까?”

“해봐야죠. 유지훈 씨가 나서주기만 하면 국가안전본부도 움직일 거고, 차근차근 파고들면 밝혀질 거예요.”

“안 해. 집만 찾고 보상금이랑 퇴직금만 챙긴 다음에 조용히 살고 싶어. 그동안 내 삶이 너무 고달팠거든.”

유지훈이 뭔가 말하려다가 피식 웃었다.

“말해야 뭐하겠냐. 어쨌든 당분간은 집구석에 처박혀서 빈둥거릴래.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아.”

“그래도···.”

“강은영 팀장이라고 했던가? 강 팀장도 쓸데없이 계란으로 바위 치는 짓 하지 말고 조용히 살아. 국가안전본부 팀장이면 그럭저럭 출세한 거잖아? 바락바락 싸워서 이겨봤자 남는 거 없어.”

50년 무림 생활을 통해 얻은 지혜에서 비롯된 충고였다.

유지훈이 강은영의 어깨를 다독이다가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아. 혹시 내 동생 어디 사는지 알아봐 줄 수 있어?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이사 갔다는데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네.”

“동생분 유지연 씨 거주지는 이미 파악했어요.”

강은영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유지연의 현재 거주지가 적힌 쪽지였다.

유지훈이 받으려다가 돌연 손을 휘저었다.

“아니다. 집부터 되찾은 다음에 알려줘. 나 때문에 집 날렸다고 생각할 텐데. 만나자마자 때려죽이려 할 거야. 성깔이 보통이 아니거든.”

“동생분은 잘···.”

“아니야. 말하지 마. 어떻게 사는지는 직접 만나서 확인할래. 그래야 쪼는 맛도 있고, 감격도 크지 않겠어?”

유지훈이 동생과 재회 순간을 상상하듯 빙긋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일단 주소는 됐고, 명함이나 줘봐. 집 되찾은 다음에 연락하게.”

강은영이 명함을 건네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왜 반말이죠?”

“반말은 그쪽에서 먼저 했잖아.”

“지금은 존대하고 있잖아요.”

“안 그래도 왜 이러나 싶었어. 헷갈리게. 왜? 기분 나빠?”

“내가 두 살이나 많은데.”

“알고 보면 내가 훨씬 많이 살았어.”

“무슨 말도 안 되는···.”

“더 할 말 없으면 난 이만 간다.”

유지훈이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은영이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어디 가는 거예요?”

“어디긴. 호광길드 간다고 이미 말했잖아.”

“혼자서 괜찮겠어요? 호광길드가 규모는 작아도 각성자만 20명에 달해요. 길드 마스터는 레벨 5의 실력자고요. 만만치 않을 거예요.”

유지훈의 대수롭지 않은 시선이 피떡이 된 김창용을 향했다.

“어글리 뭐라고 했더라. 뭐든 레벨 6도 때려잡았는데 뭐. 어떻게든 엮어보고 싶은 모양인데, 포기해. 난 그쪽이랑 함께 할 일 없어.”

강은영이 입을 비쭉였다. 호광길드에 동행해 돕는 과정에 친분도 쌓고 설득하려고 했는데, 유지훈은 철벽이었다.

심지어 괜히 불러서 짐까지 떠맡았다.

“거기 빌런 놈들 뒤처리나 좀 해줘. 둘은 죽었을 텐데, 나머지는 의식만 잃었을 거야.”

“이건 각성자관리국 소관이에요. 난 던전관리국 소속이라고요.”

투덜대면서 전화를 걸려는 찰나 의문점 하나가 떠올랐다.

멀찍이 걸어가고 있는 유지훈에게 소리쳐 물었다.

“그런데 괜찮은 거예요?”

“뭐가?”

“김창용의 뇌기에 여러 차례 가격당했잖아요.”

“아. 그거? 스쳐 지나간 정도인데 뭐. 조금 따끔하고 말았어.”

대수롭지 않다는 유지훈의 반응에 강은영이 미간을 좁혔다.

“스쳤다고? 아닌데. 분명 정통으로 맞았는데. 그것도 세 차례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었다.

레벨 6 각성자의 뇌기면 어지간한 중상급 몬스터를 태워죽일 수 있는 위력을 지녔는데, 조금 따끔한 정도라니. 그것도 비각성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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