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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각성을 압살한다-3화 (3/150)

귀환하다 (2)

1시간 남짓 머문 뒤 유지훈은 의료센터를 나섰다. 간단한 검진 몇 가지와 영양제 수액을 맞은 이후였다.

몸 상태야 스스로 잘 알기에 검진 결과는 무관심했다. 다만 각성자 측정 결과는 궁금했다.

차원 이동 전 그는 비각성자였다. 이동 후 각성했다. 어쩌면 이동 과정에서 각성했을 수도 있을 터였다. 돌아온 이후에도 각성은 유지되는 것일까? 레벨은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지만 결과는 비각성자였다.

“이상하군. 기분은 그대로인데···. 아무래도 적당한 대상을 찾아 테스트라도 해봐야겠군.”

그의 특수 능력은 상대의 능력을 사라지게 하는 소멸기였다. 무림에서 활동할 때는 내공을 소멸시켰다.

돌아와서는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도 궁금했다. 현대 각성자들에게 내공은 없을 텐데.

의료센터 내에서 대상을 찾아볼까 싶기도 했지만, 도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나가서 적당한 악당이라도 만나면 확인하기로 했다.

향한 곳은 집이었다.

구의동 주택가의 작은 빌라.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유일한 유산이었다. 세 살 터울의 여동생 유지연이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50년 전, 그러니까 여기 시간으로 5년 전 유지연은 대학생이었다.

“3학년이었으니 이제 졸업해서 취직도 했겠지?”

소심하고 어리바리했던 유지훈과 달리 유지연은 빠릿빠릿하고 똑부려졌다. 사실상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이제부터라도 오빠 노릇을 해야지 마음먹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빼꼼히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늙수그레한 아주머니였다. 불쑥 찾아온 낯선 사내를 경계하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러는 아주머니는 누구십니까?”

“네? ······.”

“집주인을 찾아왔는데요. 사실 제가 집주인이기도 하고요.”

“네? 집주인은 난데요?”

“네?”

“5년 가까이 됐어요. 여기 산지.”

“어, 어떻게···.”

낙심한 유지훈이 딱해 보였는지 아주머니가 사정을 들려줬다.

5년 전 경매에 부쳐진 집을 낙찰받았다고 했다. 전주인이 빚을 갚지 못해 집이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혹시 전에 살던 아가씨랑 아는 분이신가?”

“오빠입니다.”

“오빠면···?”

“친오빠요. 아는 오빠 말고 친오빠.”

“친오빠면 사고로 죽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용케 안 죽고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빚은 뭡니까? 저랑 동생한테 빚 같은 건 없었는데요.”

“자세한 건 나도 몰라요. 그렇다고만 들었거든.”

아주머니는 마음씨가 고왔다. 유지훈을 집안으로 들여 차도 한 잔 대접하고, 경매 기록도 보여줬다. 부동산에 연락해 동생의 소식도 수소문해주려고 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이 한 모양이네. 힘내요. 동생 꼭 만나길 바랄게.”

소득 없이 집을 나서긴 했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를 픽업해 의료센터에 던져놓은 자들을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다만 말없이 빠져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국가안전본부면 보안이 철저할 텐데 찾아간다고 쉽게 만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물어보고 움직일 걸 그랬나.”

정처 없는 발길을 옮기려는데 검은색 세단 두 대가 유지훈의 옆에 멈춰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대여섯이 다가왔다.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체구에 험상궂은 외모였다.

“유지훈 씨?”

“그런데요?”

“우리랑 같이 좀 가주셔야겠습니다.”

예의를 갖춘 듯했지만, 사실상 끌고 가겠다는 분위기였다.

유지훈은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였다. 정부 기관에 나온 사람들이거나 어둠의 자식들이거나. 지금 눈앞의 놈들은 분위기가 몹시 불량했다. 무림으로 치면 흑도의 향기가 그윽했다. 단언컨대 정부 기관은 아니었다.

“당신들 누군데?”

“가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한편으로 궁금했다.

사망자로 돼 있다고 했는데. 생존이 확인된 지 두 시간도 채 안 됐을 텐데. 어떻게 알고 데리러 왔지?

국가안전본부가 연관됐을 거라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던전관리국이든 의료센터든.

그렇다면 앞에 있는 어둠의 자식들은 국가 권력과도 연계된 놈들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울러 어떤 식으로든 집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터였다.

어떻게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은 하나였다. 가보면 알 일이었다.

“좋아. 가지. 대신 끌려가진 않겠어.”

“그럼 어쩌시겠다는 거죠?”

사내가 비웃듯 물었다.

유지훈이 빙긋 웃었다.

“앞장세워야지. 공손하게 안내하도록.”

“하하하. 안내하러 오긴 했지만, 공손하게는 좀 힘들겠군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그래서 태도부터 좀 고쳐놓으려고. 숫자도 좀 줄이고.”

유지훈이 벼락같이 손을 뻗었다. 사내의 목을 움켜쥐었다.

사내가 날렵하게 양손을 휘둘러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강철 집게 같은 유지훈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너희들처럼 흉악하게 생긴 놈들이 여럿 몰려다니면 영 보기 안 좋잖아? 한두 놈 빼고 여기 찌그러져 있는 것으로 하자.”

유지훈이 가볍게 사내를 들어 머리부터 바닥에 메다꽂았다.

쿵!

사내가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었다.

“이 새끼가! 곱게 데려가려 했더니 안 되겠네.”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

나머지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제법 싸움 좀 해본 놈들이었는지 자세나 동작이 제법 절도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무림 고수들을 상대해왔던 유지훈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투귀라 불리며 박투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유지훈에게 어둠의 자식들은 라면 먹으면서도 해치울 수 있는 상대였다.

가벼운 손길이 관자놀이에 작렬할 때마다 한 놈씩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여섯 명 모두 피거품을 물며 나뒹굴기까지 여섯 차례의 손짓으로 충분했다.

“그래. 너희들 원하는 대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팼다.”

유지훈이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귀환 이후 처음으로 몸을 푼 순간이었다. 너무 싱거웠다. 소멸기를 확인할 여지도 없었다.

허우대는 그럴듯했지만 흔해 빠진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각성자도 아니었다. 제대로 손맛을 느끼지도 못했다.

입맛을 다시는데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기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그리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양복을 뚫고 나올 정도로 단련된 근육을 보유하고 있었다.

뿜어내는 기세가 일정 수준 이상의 각성자임을 짐작하게 했다.

보좌하듯 옆을 따르는 사내도 나뒹구는 어둠의 자식들에 비해선 강해 보였다. 역시 각성자일 듯했다.

“조용히 따라왔으면 멀쩡한 몸으로 갔을 텐데 화를 자초하는구나.”

“이제 너희 둘이 다야? 두 놈 정도 앞장세우려 했는데,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진 않네?”

“하하하. 죽었다가 살아난 모양인데, 다시 죽고 싶은 모양이지?”

“어?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 건 어떻게 알았어? 그나저나 너희 각성자야? 각성자가 일반인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각성자도 각성자 나름이지. 우린 이러려고 각성했거든.”

“아항. 너희들 약탈자구나?”

“푸훗.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 요즘 누가 약탈자라 그러냐. 빌런이란 멋진 말을 두고.”

유지훈이 피식 웃고는 손을 까닥였다.

“약탈자든 빌런이든 무슨 상관이야. 잠시 뒤면 너희들이 처맞고 질질 짜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기어코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근육 사내가 옆의 사내에게 눈짓했다.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날렸다.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유지훈 앞으로 닥쳐왔다. 순간 이동 계열의 특성을 보유한 각성자인 듯했다.

손날을 세워 유지훈의 목을 내리쳤다. 빠르고 매서운 손놀림이었지만, 유지훈의 안력을 벗어날 수준은 아니었다.

유지훈은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선 뒤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는 동작으로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이놈이!”

사내의 공세가 이어졌다. 주먹질에 이은 발차기 그리고 수도까지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공격이었다.

유지훈은 여유로운 발걸음과 몸놀림으로 피해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사내의 공격은 연신 허공만을 갈랐다.

언뜻 보기엔 유유자적 산책하는 유지훈 옆에서 사내가 물색없이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사내가 이를 악물더니 양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 속사포처럼 빠른 연환 권격이었다. 사방의 공간을 빈틈없이 장악한 양상. 몸놀림만으로 피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유지훈이 입맛을 다시더니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벌레라도 쫓는 모양새의 대수롭지 않은 동작이었지만, 사내의 두 팔목이 덜컥 유지훈의 손에 잡혔다.

“안 그래도 테스트 좀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군.”

유지훈이 양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손바닥에 짜릿한 기운이 감지됐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잠시 이어지더니 사라졌다.

소멸기가 작동한 것이었다.

사내가 화들짝 놀라 손을 뿌리쳤다. 유지훈은 굳이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억지로 붙잡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특성을 상실한 사내는 조밥에 불과할 테니까.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유지훈이 천천히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고작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이었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뭐긴 뭐야. 쫄아서 얼어붙은 모양이지.”

유지훈이 왼손으로 사내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몇 번 때리려 했지? 스무 번쯤 되려나? 일단 돌려줄게.”

뺨을 후려쳤다.

짝! 짝! 짝! 짝! 짝!

다섯 번 후려쳤을 때 왼쪽 뺨이 터져 피가 쏟아져 나왔다.

“각성자라더니 뭐가 이렇게 약해. 아직 반도 안 왔어.”

유지훈이 손을 바꿨다.

오른손으로 머리채를 움켜쥐고, 왼손으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이번엔 세 번 만에 뺨이 터졌다.

“그, 그만···.”

“뭐가 그만이야. 반은 돌려줘야 할 거 아냐.”

그때 뭔가 예리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유지훈은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 기운이 오는 방향으로 가져다 댔다.

콰지직!

“크악!”

뇌기였다.

근육 사내의 특성은 뇌기를 쏘아내는 능력이었다.

자기 편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사내가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꺾었다. 전신이 거무죽죽하게 타버린 모습이었다.

“근육이 예사롭지 않길래 탱커인 줄 알았는데, 뇌기를 다루는 각성자였어? 속을 뻔했네.”

“뇌기가 체내로 침투하는 걸 막기 위해 근육을 키웠지. 덕분에 탱커 못지않은 맷집도 얻게 됐다.”

유지훈이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

뇌기에 관해서 무림에서의 짜증스러웠던 기억 때문이었다.

혁련세가의 고수를 상대할 때였다. 뇌검이란 별호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검에서 뿜어내는 뇌기 때문에 애 좀 먹었다.

물론 상대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뇌기와 접할 순간의 기분 나쁜 느낌이 싫었다. 잠시나마 심장이 멎는 기분일 테니.

접근전이 용이하지 않은 점도 거북스러웠다. 소멸기를 작렬시키려면 일단 신체를 움켜쥐어야 하는데.

“가죽장갑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뇌검 늙은이를 상대할 때는 가죽으로 된 권갑을 착용했다. 뇌기를 비껴내면서 접근해 소멸기를 성공시켰다.

아쉬운 대로 신발을 벗었다. 던전관리국 직원에게 얻어 신은 운동화였다. 가죽 재질에 밑창이 고무니 그럭저럭 절연체로 쓸 만할 터였다.

운동화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냄새가 사뭇 고약했다.

‘차라리 뇌기를 직접 맞을 걸 그랬나? 그나저나 가죽이 아니라 레자네. 이걸로도 절연이 되려나?’

근육 사내가 기함해 소리쳤다.

“뭐, 뭐 하는 짓이냐! 더럽게.”

“조용히 해. 너보다 내가 더 기분 더러우니까.”

유지훈이 운동화를 착용한 손을 휘저으며 몸을 날렸다.

“내가 기분이 많이 잣 같거든. 너는 좀 심하게 거칠게 다뤄야겠다.”

“미친 새끼!”

사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뇌기를 쏘아댔다.

연달아 닥쳐오는 뇌기를 운동화로 비껴냈다. 별다른 느낌이 없는 것으로 봐서 레자도 절연체인 모양이었다.

사내가 한층 맹렬하게 뇌기를 쏘아냈다. 사방에서 번개가 덮쳐오는 양상이었다.

운동화를 휘젓는 유지훈의 손놀림도 한층 빨라졌다.

다만 운동화가 덜렁거리는 탓에 뇌기를 완전히 비껴내진 못했다. 몇 차례 허용을 피할 수 없었다.

‘응? 조금 따끔하고 말 뿐이네? 뇌검 늙은이랑 비교하면 어린애 장난인데.’

내친김에 운동화를 사내의 면상에 집어 던졌다.

사내가 움찔하는 찰나 코앞에까지 다가갔다. 와중에 두어 차례 뇌기를 허용했지만, 바늘에 찔리는 정도의 통증이 전부였다.

양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는 데 성공했다.

“잡았다.”

소멸기가 작동했다.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간질간질한 기분이 사라질 무렵 사내가 유지훈을 밀쳐냈다.

“뭐 하는 짓이냐!”

유지훈이 피식 웃으며 운동화를 주워 신었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뇌기를 쏟아내려 했지만, 속절없어 허공만 가리킬 뿐이었다.

“뭐 하냐? 디스코 추냐?”

유지훈의 주먹이 사내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쾅!

“으윽!”

사내는 공언한 대로 맷집이 강했다.

잠시 휘청하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반격에 나섰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손맛을 느끼지.”

사내의 근력은 제법 뛰어났지만, 박투의 제왕에게 비할 순 없었다.

관자놀이에 이어 턱, 명치 그리고 하복부 아래 소중이를 몇 차례 가격당한 뒤 고목 나무 넘어가듯 쓰러졌다. 내친김에 유지훈은 사내 위에 올라타고 안면에 불꽃 파운딩을 이어갔다.

얼굴이 완전히 뭉개질 무렵 누군가 유지훈을 밀쳐냈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낯익은 얼굴이었다. 탐사 3팀장 강은영이라 했던가.

“각성자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건 검사 결과가···.”

“방금 당신이 피떡으로 만든 놈이 누군지 알기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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