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하다 (1)
돌아왔다. 50년만이었다.
전신의 피가 들끓는 격동에 이은 나른한 느낌. 깜빡 잠이 들려는 찰나에 유지훈의 눈앞엔 급격히 바뀌는 광경이 스치듯 지나갔다.
낯설었다. 허허벌판. 인적은 감지되지 않았다.
생소했지만, 코를 타고 들어오는 공기와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은 지난 50년과 확연히 달랐다.
분명 고향, 대한민국임을 유지훈은 확신했다.
으슬으슬 추웠다. 살펴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차원을 통과하면 옷이 사라지는 모양이군. 그때도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50년 전엔 의식을 잃었다.
그 녀석, 훗날 무신이라 불렸던 녀석의 집에서 깨어났다. 낯선 옷을 입은 채였다. 그 녀석이 옷을 입힌 모양이었다.
“이러고 돌아다닐 순 없을 텐데···.”
주위를 살펴봤다.
허허벌판이라기보다는 폐허였다. 과거엔 논이나 밭이었을 듯 보이는 곳 사이사이로 완전히 무너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몬스터들의 창궐에 의한 격변의 시기에 직격탄을 맞은 지역인 모양이었다. 재건을 못 한 것으로 보아 여전히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일 수도 있을 터였다.
“일단 벗어나는 게 좋겠군. 오자마자 죽을 순 없으니.”
그래도 이대로 돌아다니긴 흉물스러웠다. 뭔가 최소한으로 가릴 건 필요했다. 둘러보니 거적때기가 보였다. 아쉬운 대로 허리에 둘렀다. 인적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돌아와서도 각성의 효과는 유지되는 걸까?”
차원 이동 전 유지훈은 비각성자였다.
다른 차원에 당도한 이후 각성했다. 기를 소멸시키는 능력이었다. 무림인들이 화공대법이라 불렀던.
거기에 그 녀석에게 배운 체술 덕분에 투귀라 불리며 무림 공적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만일 각성의 효과가 유지되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상대할 수 있을 텐데.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벗어나는 게 최선이었다. 민가를 찾아 옷을 구한 뒤 서울의 집으로 가야 했다. 50년이 지났으니 집이 어찌 됐을지 모르겠지만.
10분 남짓 걸었을까. 멀찍이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이윽고 SUV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으음? 50년 전에도 봤던 차종 같은데?”
거적때기를 단단히 붙들고 손을 흔들었다.
“여기요! 나 좀 태워줘요!”
다행히 그를 알아봤다. 자동차가 그의 앞에 멈춰섰고, 사람들이 내렸다. 보호장비를 착용한 삼남일녀였다.
사나워 보이는 미녀 한 명과 투실투실 푸근한 인상의 사내 그리고 얼빵한 모습의 청년 둘이었다. 무기까지 갖춘 것으로 봐서 몬스터 퇴치 인력들인 모양이었다.
“당신 뭐야?”
사나운 인상의 미녀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유지훈이 거적때기를 단도리했다. 숙녀분을 희롱할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지며 말했다.
“혹시 서울 가는 길이면 나 좀 태워줘요. 남는 옷 있으면 좀 주고요. 이러고 다닐 순 없어서···.”
“그러니까 당신 뭐냐고?”
반응이 한층 싸늘했다.
살펴보니 표정들이 가관이었다.
아주 약간의 경계에 몹시 많은 경멸을 더한 표정. 그러니까 미친놈을 상대하는 분위기였다.
“아. 이거···.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내가 어딘가 다녀왔는데, 와보니 이런 몰골이라···.”
의심의 눈초리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나운 미녀가 뭔가 공박하려는 찰나, 푸근한 인상의 사내가 앞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던전관리국 탐사 3팀 인원입니다. 이분은 강은영 팀장님, 저는 김인구 과장입니다. 이 지역에 차원 에너지의 변동이 감지돼서 살펴보러 왔습니다. 혹시 뭔가 이상한 거 보신 적 있습니까?”
“이상한 거라면···?”
“몬스터라든지, 공간의 비틀림이라든지 뭐 그런 것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아직 못 본 것 같은데요.”
“못 본 것 같은 건 또 뭐야? 똑바로 말해. 당신 영 수상해.”
강은영이 다시금 날카로운 어조로 쏘아붙였다.
유지훈이 언짢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야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근데 그쪽은 왜 계속 반말이요? 보아하니 나보다 한참 어린 것 같은데.”
강은영의 외모는 넉넉잡아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반면 유지훈은 다른 차원으로 갔을 때 스물다섯 살. 거기서 50년을 살았으니 현재 나이 일흔다섯이라 할 수 있었다. 강은영에겐 할아버지뻘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내가 그렇게 어려 보여?”
강은영이 피식 웃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한참 어려 보인다고 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러는 댁은 대체 몇 살이나 먹었길래. 민증이나 꺼내봐.”
“이래 가지고 내가 민증이 있을 턱이 있겠어요?”
유지훈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거적때기가 내려가려는 찰나 비호같이 낚아채 희롱의 참사는 막아냈다.
강은영의 표정이 일그러지려는 순간 김인구가 나섰다.
“약탈자들한테 털린 분 같은데, 일단 신원이나 파악하시죠. 팀장님.”
“그래. 일단 확인해. 약탈자일 수도 있으니.”
김인구가 태블릿 PC를 꺼내 들고 유지훈에게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성함이랑 생년월일 좀 말씀해주십시오.”
“유지훈. 1993년 4월 9일생이요.”
김인구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면서 중얼거렸다.
“서른 살이시군요. 팀장님보다 두 살 아래시네.”
“뭐, 뭐요? 내가 서른 살이라고? 올해가 몇 년이길래···.”
“몇 년은요. 2022년이지.”
“2022년? 그럼 50년이 아니라···. 흐흐흐하하하.”
유지훈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김인구가 어리둥절해 쳐다보다가 검색 결과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응? 이게 뭐지?”
“뭔데 그래?”
강은영의 질문에 김인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망자로 나오는데요? 2017년에 사망한 것으로···.”
“그럼 저 작자는 뭐야? 사진 확대해봐. 얼굴 확인해 보라고.”
“그게···. 맞는 것 같은데요.”
강은영이 눈매를 좁히며 유지훈을 바라봤다.
유지훈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최민수가 끼어들었다.
“행불자라 사망 처리된 거 아닐까요? 보십쇼. 행색도 완전히 행려병자 아닙니까. 어디 적당히 보호시설에 데려다 놓으시죠.”
“공직자가 돼서 그걸 말이라고 해? 죽지도 않은 사람이 사망자 처리됐으면 확인해서 바로잡아야 할 거 아냐.”
“어쨌거나 빨리 여기부터 뜨시죠. 좌표 확인해 보니까 몬스터 출몰 지역입니다. 두 달 전에도 출동했던 기록이 있다고요.”
“몬스터 겁내면서 던전관리국에는 왜 들어왔냐?”
“팀장님이야 레벨5 각성자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죠. 저랑 성우는 레벨3입니다. C급 몬스터 몇 마리만 나타나도 죽은 목숨이라고요.”
김은구가 나서 거들었다.
“일단 여기부터 뜨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지역에 A급 몬스터가 출현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강은영이 입맛을 다셨다.
차원 에너지에 관한 탐사를 제대로 못 했지만, A급 몬스터는 그녀도 감당할 수 없었다. 과거 기록이긴 해도 무시할 사안은 아니었다.
“일단 차에 타. 한 바퀴 둘러보면서 탐사하고 복귀하자.”
“사망자는 어떻게 할까요?”
“살아 있는데 사망자는 무슨 사망자야! 데리고 돌아가. 본부 의료센터에서 검진한 뒤에 조사도 해보게.”
“본부로요? 그럼 고기는요?”
“너 남아서 몬스터 고기 될래?”
***
본부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은영은 국장 호출을 받았다.
던전관리국장 고규대. 출세의 화신인 동시에 지독한 보신주의자였다.
출세에 지장을 줄 만한 요소는 철저하게 배척했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출세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로 결정했다.
강은영은 철저하게 후자였다. 윗사람 눈치 안 보고 밀어붙이는 업무 태도는 고규대와 상극이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국가안전본부 내 최고 엘리트 중 하나로 꼽혔던 강은영은 고규대에게 밉보여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레벨5 각성자인 그녀는 레벨6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3팀장이 된 뒤 허드렛일만 도맡으면서 기회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부르셨습니까?”
“왔는가? 일단 앉지.”
고규대는 대인관계에 능했다. 항상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좀처럼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다. 누구한테건 부드럽고 인자한 태도를 견지했다. 미워하는 사람에겐 더 친절했다.
대신 뒤끝 작렬이 장기였다. 업무 배정에서 배제하거나 중요 임무에서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방해하는 방식이었다.
한때 번듯했던 탐사 3팀이 퇴출 대기 인력 집합소로 전락한 것도 고규대의 작품이었다.
“행려병자를 본부로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 사망자로 분류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됐습니다.”
“그건 우리 던전관리국 일도 아니지 않은가. 과거 주소지 확인해서 주민센터로 넘기면 될 일을.”
“차원 에너지 변동이 감지된 곳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차원 에너지 관련해선 특이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받았네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몬스터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저희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규대가 피식 웃더니 탁자에 놓은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검진 결과를 보니 비각성자로군. 몬스터를 만났으면 살아돌아다닐 수 없었겠지. 그것도 홀랑 벗은 채로.”
“파악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보상 문제도 신경 써줘야 하고.”
“행색도 그렇고 헛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면서. 그냥 행려병자야. 보호시설로 보내고 보상 문제는 주민센터에 넘기도록 하게.”
“아무리 그래도 국장님.”
“요즘 탐사 3팀 업무 처리가 영 마뜩잖다고들 하더군. 다른 팀에서 불만이 많은 모양이야. 자네가 잘 관리해야지. 안 그래도 팀원들 오갈 데 없는데, 팀이 해체되면 곤란하지 않은가.”
대응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팀 해체는 팀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안이었다. 강은영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럼 나가보게. 고생하고.”
국장실을 나선 강은영은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왜 하필 비각성자인 거야? 레벨 1이라도 각성자여야 도와줄 여지라도 있을 거 아냐.”
강은영은 공직자로서 사명감이 투철했다.
몬스터에 의한 피해자라면 국가안전본부에서 보상 절차를 밟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국장의 지시를 무시할 순 없었다.
성질 같아선 들이받겠지만, 피해는 팀원들에게 돌아갈 터였다. 끓는 속을 다스리고 지시에 따라야 했다.
“주소지 확인해서 주민센터에 넘기자. 신경 써서 처리해달라고 당부하는 것까지만 해야지.”
PC 행정정보 공동이용 시스템에 접속해 유지훈의 신상을 조회했다.
주소지와 해당 주민센터를 확인해 메모한 뒤 PC를 끄려는 찰나 ‘사망내역’ 항목에 눈길이 갔다. 괜히 궁금해져서 클릭했다.
화면에 떠오른 내용에 미간이 좁아졌다.
[17호 던전 폭발 사고 당시 사망 추정(유해 미발견)]
“17호 던전 폭발 사고 피해자였다고?”
던전에서 벌어진 의문의 폭발 사고.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사건이었다.
17호 던전은 B급 이상 상급 몬스터 소탕이 완료된 상태였기에 중요도가 낮았고, 폭발 당시 던전 내에 헌터들은 없었던 것으로 보고됐다.
훗날 17호 던전에 빼돌려진 고가의 몬스터 부산물들이 보관돼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 의혹에 따르면 빼돌려진 몬스터 부산물의 가치는 적게는 백억 원에서 많게는 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던전 공략에 나선 길드의 횡령 문제가 대두됐고, 국가안전본부의 결탁 이슈까지 부각됐다.
특별감찰이 결정됐고, 검경합수부까지 나섰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유야무야된 사건이었다.
대신 조사 과정에서 폭발 당시 던전 안에 잡역부 셋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시신의 잔해 둘은 발견됐지만, 나머지 하나는 찾지 못했다. 그 나머지 하나가 유지훈이라는 의미였다.
“국장이 굳이 나서서 만류했다? 이거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그때 연루됐던 길드가 어디였더라.”
강은영이 국가정보시스템에 접속해 17호 던전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없음]
“뭐야? 결과가 없다고?”
이번엔 녹색창을 띄워 검색어를 입력했다.
폭발 사고와 관련된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유튜버들의 폐던전 탐험 영상 따위의 쓸데없는 정보만 수두룩했다.
“누군가 정보를 관리한 모양인데.”
이제는 의심을 넘어 확신의 단계였다.
PC를 끄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야. 당사자 유지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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