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7 (297/305)

#297

“…님.”

목소리가 들렸다.

“……사…님.”

나를 부르고 있는 건가? 눈을 움찔거리다가 뜨니 화사한 햇빛이 비친 천장이 보였다.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간에 누군가 내게 와락 달려들어 안겼다.

“천사님!”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먹거리는 소녀를 보자마자 잠이 확 깼다.  

“헤스티아?”

“흑, 얼마나 걱정… 했는데요….”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보니 정말로 헤스티아였다. 무사히 이쪽 세계로 돌아와 안심하기도 잠시, 헤스티아의 모습이 내 기억과는 사뭇 달라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아이들은 금방 큰다지만 머리카락이 자라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봤을 때 날갯죽지 정도에 와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제가 매일매일 찾아와서 기도했는데….”

“고마워. …많이 기다리게 했구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건강한 모습을 보니 한시름 놓였다.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머리를 쓸어 주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새하얀 방과 벽에 걸린 의복을 보아하니 신전 같은데…. 그러다 문득 창가에 놓인 흰색 꽃과 날개 핀 새의 조각상을 보고 깨달았다.

“여기 헤메라의 신전이니?”

“…네. 신전 안에 있는 사제님의 방이에요.”

마음이 조금은 안정됐는지 헤스티아는 훌쩍이며 내게서 떨어졌다. 씩씩하게 눈물을 닦아 내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신기하게 쳐다보고 말았다. 한 달이란 시간이 내 생각보다 긴 건가? 이상하리만치 커버린 그녀를 의아하게 여기던 그때 딸깍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일어났군.”

“유피테르…!”

침대로 성큼성큼 다가온 유피테르는 자연스럽게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몸은 좀 어떤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그를 보니 정말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현실로 다가왔다. 유피테르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나니 낯선 감촉이 등허리에 닿았다. 흘끔 고개를 돌려보니 새하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늘어져 있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외형까지도 ‘헤메라’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어색하기만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혹시 머리를 묶을 끈 같은 거 없니?”

“아, 잠시만요!”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헤스티아의 뒷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헤스티아, 정말 많이 크지 않았어요? 애들은 빨리 큰다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봐요.”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유피테르가 불쑥 믿기지 않는 이야길 했다.

“그야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까.”

“…네?”

“자네가 사라진 후로 1년이 지났네.”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1년이라고? 내가 유피테르에게 작별을 고한 후, 현대에서 지낸 시간은 고작 한 달뿐이었는데…? 쉬이 믿지 못하고 휘둥그레진 눈만 껌뻑이니 유피테르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서로 다른 차원끼리는 시간도 달리 흐르는 것 같네. 자네가 그곳에서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이미 여러 계절이 흘렀지.”

그 후 유피테르는 마치 지어낸 것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진은 무사히 학회를 마치고 제국 산하의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고, 아이리스는 잠시 졸업을 미루고 온실로 가서 마물을 돌보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태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휘브리스는 무려 헤메라의 부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신기했지만,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세잔이었다. 갑작스럽게 피아트 후작이 세상을 떠나 세잔이 가문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정말……많은 게 달라졌네요.”

그간의 소식을 전부 듣고 나니 머릿속이 멍해졌다.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이젠 섣불리 그들의 앞에 나타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가 아니라 아예 첫 만남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니까.

결심이 서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드디어 안겔루스 대학으로 향했다. 내 기억으로는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오랜만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1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학교에 나름대 안도를 느꼈다. 

“여긴 그대로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본관을 오고가는 학생이 여럿이었다.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뒤들에서 자주 모이려나? 일부러 인적이 드문 길로 돌아 뒤뜰로 향하니 그리웠던 광경이 보였다. 

“아하하! 얘 진짜 웃기다니까.”

“아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라고.”

언제나 그랬듯 진과 아이리스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후작이 되어 바쁘다던 세잔은 물론이고, 한창 신전을 오고가느라 바쁘다던 휘브까지 웬일로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지 고민하다가 큼!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그… 오랜만이죠?”

잠깐.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 뵙네요, 라고 했어야 했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건넨 인사였지만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척 봐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곤란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어…. 그러니까….”

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서 나를 떠올리려는 듯했다. 평소라면 환하게 웃으며 반겨 줬을 텐데, 난처한 표정으로 눈만 뒤룩뒤룩 굴리는 진이 퍽 낯설었다. 충분히 각오를 했음에도 상처를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포기하고 먼저 소개하려던 그때 아이리스가 무언가 깨달은 듯 나를 검지로 가리켰다.

“전에 타르타로스에서 우리 도와줬던 사람 아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타르타로스에서 처음으로 ‘헤메라’의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제야 내 정체가 떠올랐는지 다른 친구들도 덩달아 탄성을 흘렸다.

“어, 맞네! 왠지 얼굴이 익숙하다 했어.”

그 중 가장 신이 난 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성함이…?”

“헤메라요.”

“맞다, 맞다. 헤메라였죠? 요새 영 정신이 없어서 그랬어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괜찮아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요.”

붙임성 좋은 진은 그간 잘 지냈냐며 친근하게 안부를 물었다. 비록 아이리스나 세잔은 낯을 가리는 듯했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내게 선뜻 옆자리를 권한 진은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에요?”

“이번에 아스레인 교수님의 조수가 됐거든요.”

“어? 정말요?”

화색이 도는 얼굴을 보니 처음 내가 안겔루스 대학에 편입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진이 먼저 말을 걸어 준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그의 친화력은 여전했다. 고마운 마음에 말없이 싱긋 웃으니 진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다가도 이내 마주 웃어 주었다.

그때 관심 없는 척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리스가 혼잣말하듯 물었다.

“전에 있던 원생은 그만둔 건가?”

“으음, 네. …혹시 아는 분이셨어요?”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아이리스는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며 어깨를 으쓱였다. 

‘전에 있던 원생’이라. 나를 완전히 잊었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가도 안심이 됐다. 휘브에게 듣기론 나의 장례식 날 꽤나 힘들어했던 것 같은데, 지금 그의 기억 속엔 나로 인한 슬픔도 괴로움도 없겠지. …그럼 됐다. 행복한 추억은 얼마든지 쌓을 수 있으니까.

문득 아이리스에게서 시선을 떼니 옆에 있던 세잔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리란 예상과 달리 세잔은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반가워요. …피아트 님?”

“편하게 세잔이라 불러 주세요.”

이렇게 부드럽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오래 전 약초밭에서 무작정 사라세니아를 먹으려고 했던 그의 모습과 꽤나 대비되었다. 그때 세잔은 친구를 사귀는데 서툴고 마법에 대한 자신감마저 부족했지. 지금은 그의 경직된 태도가 전부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

“소식 들었어요. …아버님의 일은 정말 안타깝게 됐어요. 제가 장례식을 갔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대답을 하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쓰였다. 섬세한 세잔이라면 지금쯤 갑자기 후작의 자리를 물려받아 걱정이 많을 것이다. 어디 가서 말 못하고 고민거리를 혼자 끌어안고 있으리란 생각에 조용히 세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아요. 분명 훌륭한 후작으로 거듭날 거예요. 세잔만큼 가문을 어떻게 하면 잘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는 사람은 또 없으니까요.”

“…예?”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보고 뒤늦게 아차 싶었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나 같아도 당황스럽겠다. 혹시 불쾌했을까봐 두 손을 내저으며 사과부터 건넸다.

“아, 주제넘은 소리를 해서 죄송해요.”

“아뇨. 실은… 줄곧 듣고 싶었던 말이어서 놀랐습니다.” 

눈을 내리뜬 채로 엷은 미소를 지은 세잔은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조금이나마 짐을 덜었을까.

“감사합니다.”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잠자코 우리를 지켜보던 세잔이 잽싸게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시간 괜찮으면 같이 식사 할래요? 저쪽 건물에 레스토랑이 있거든요.”

“끼워 주시면 저야 좋죠.”

“잘 됐네요! 어서 가요.”

한껏 신이 난 진은 안내원처럼 앞서갔고, 아이리스와 세잔이 그 뒤를 따랐다. 나도 서둘러 따라가려는데 바로 옆에서 뚫어질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흘끔 눈만 움직여보니 휘브가 부담스러우리만치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인사를 못해서 그런가…? 하지만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당겨 웃자 휘브는 내 머리카락 끝을 살짝 건드리며 물었다.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면 관리하기 힘들지 않아요?”

“하하…. 괜찮아요.”

능청스러운 태도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그래서인지 휘브는 꼭 어제 만났다가 헤어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도 장난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전 헤메라라고 하는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이유에선지 휘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통 속내를 읽을 수 없는 눈빛이 내 손과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계속 반응이 없으니 민망해져서 슬쩍 손을 내리는데, 갑자기 휘브가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치곤 은밀히 속삭였다.

“진짜 몰라요?”

“…네?”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휘브가 소리 없이 씩 웃었다. 이윽고 휘브는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 끝을 잡고선 그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물리자 휘브는 짓궂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형님은 긴 머리도 잘 어울리네요. 뭐, 짧을 때도 좋았지만.”

뭐…라고? 방금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나. 일순 심장이 내려앉은 듯했다.

“…어, 어떻게…….”

말까지 더듬으며 물으니 휘브는 한쪽 눈을 찡긋 윙크했다.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휘브는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헤메라’란 사실을 진즉 알고 있던 거다. 언제부터지? 아니, 이제와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행이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멀리서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훌쩍거리며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진과 세잔, 아이리스가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뭐야. 왜 그래요? 휘브가 뭐라 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었기에 입술만 움찔거리자 진이 단단히 오해한 듯했다. “신경 쓰지 마요.”라며 위로해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아이리스는 벌레 보듯 휘브를 흘겨보았고, 세잔까지 나와 휘브 사이를 가로막으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휘브리스. 그를 곤란하게 하지 마시죠.”

“내가 뭘요? 인사만 했는데.”

휘브는 퍽 어이없다는 얼굴로 억울하다며 코웃음을 쳤다. 여기서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옛 친구랑 너무 닮아서 그랬어요.”

“아…. 별 일 아니라 다행이네요.”

진은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어서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이끌었다. 일주일 내내 그들 사이에 전처럼 끼지 못하고 겉돌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기분 좋게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내내 등 뒤에서 억울함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나한테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없어요?”

“그러게 평소 행실을 좀 잘 하지 그랬냐.”

도리어 아이리스에게 한소리 들을 뿐이었다. 진은 이런 상황이 아주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무시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스레인 교수님과는 그날부로 계속 연락을 하고 계시던 거예요?”

“아, 네. 저도… 마물을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오!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요새 아이리스도 마물에 관심이 많거든요.”

아이리스라면 내가 사라진 후부터 온실에 있는 마물을 돌봐주고 있다고 들었다. 졸업까지 미룬 걸 봐서는 마법이 아니라 마물 쪽으로 진로를 바꾸려는 걸까. 혼자 가만 생각하는 사이, 진이 뒤를 돌아보며 아이리스에게 물었다.

“그렇지? 아이리스.”

덩달아 뒤를 돌아보았다가 아이리스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미간까지 찌푸리고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하고 물어도 답이 없었다. 결국 진이 나서서 아이리스의 코앞에 손을 붕붕 흔들며 시선을 끌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좀…….”

그제야 입을 연 아이리스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뭐가?”

아이리스가 조용히 눈짓으로 나를 가리키자 진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까 네가 네 입으로 타르타로스에서 만났었다고 말했잖아.”

“아니, 그거 말고. 뭔가… 더 있던 것 같은데….”

물건을 오랫동안 놔두면 자국이 생기듯, 기억에도 흔적이 남는 걸까? 기대를 하면 안 되는데. 어차피 떠올려봤자 좋을 건 없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여전히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에 아리송해하는 아이리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들어보니 마물에 관심이 많다고 그러던데요.”

“아, 뭐. 많은 건 아니고… 그냥.”

멋쩍은지 시선을 피하며 뒷목을 만지작거리는 모습마저 반갑게 느껴졌다. 

왜 그리도 불안했던 걸까. 함께했던 기억이 모두 사라져도 아이리스는 아이리스다. 진도, 세잔도, 휘브도 그랬다. 언제나 나를 걱정해주고 위험한 일에도 서슴없이 나서주는 소중한 내 친구들.

“관심사도 비슷한데,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우리.”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자 아이리스는 나를 흘끗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던가.”

아, 정말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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