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그날부로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무사히 퇴원하고 랩실로 복귀해서 다시 대학원생의 삶을 시작했다. 교수는 내게 어떤 폭력도 휘두르지 않았고 시스템의 말대로 꿈에 그리던 환경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전부 괜찮아질 줄 알았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숨 쉬듯 떠올라도 언젠가 괜찮아지겠거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기는커녕 점점 어두운 늪으로 빠져가고 있었다.
귀걸이로 인해 그곳이 실재하는 세계임을 깨달은 후부터 이상한 집착이 생겼다. 어쩌면 귀걸이 말고도 그 세계와의 접점이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확신해서 되는대로 찾아봤다. 그러나 ‘저주란 축복’이란 제목을 가진 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스레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오는 책도 없었다.
결국 내게 남은 것은 기억뿐이었다.
“괜찮아. 내가 잊지 않으면 돼….”
그럼 된 거야. 그 생각에 강박처럼 끊임없이 지난날을 떠올렸다. 단순 회상이 아니라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밤만 되면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헤메라.” 하는 목소리가 나를 찾는 듯해 밤새 집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날수록 삶은 급속도로 피폐해져 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고, 기억은 갉아 먹힌 종이처럼 군데군데 지워져 가기 시작했다. 그럼 또 다시 상상하고, 잊고, 상상하고, 잊고, 또…. 지독한 굴레였다.
“……군.”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괴롭기 그지없었다.
“유 군!”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을 번쩍 뜨자 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방에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언제 연구실에 왔는지 모르겠다.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헛기침 소리에 교수를 바라보았다.
“요새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하나.”
“…죄송합니다.”
“벌써 이러길 며칠째인가.”
변명할 여지가 없어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였다.
요즘 들어 마치 내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주변 환경이 휙휙 바뀐다. 언제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뜬금없이 횡단보도에 서 있었지. 현실과 상상의 경계선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는 경고였다.
“내가 유 군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조금 더 쉬고 오는 게 어떻겠나.”
“…예?”
“아무래도 사고의 후유증인 듯싶은데…. 절대 무리할 필요 없네. 그때도 말했다시피 아직 시간은 남아있고, 이 상태면 논문 작성은커녕 수강도 불가능할 테니까.”
“아닙니다. 교수님. 전 괜찮아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해봤지만 교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러다 쓰러지면 내가 곤란해지네. 유 군.”
단호한 태도에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머릿속 어딘가가 고장 난 것처럼 자꾸만 기억이 뚝뚝 끊겨 간다. 차라리 사고의 후유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숨통이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한 마음에 도망치듯 옥상으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 오니 도시의 소음이 부쩍 작아지고,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은 더욱 선명해졌다. “태오.” 그가 나를 부른다. “태오.” 밤이고 낮이고 계속해서 나를 찾는다. 환청이란 게 원래 괴로워야 하지 않나. 저 목소리라면 이대로 기꺼이 잠겨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옥상 난간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눈부신 햇빛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휘날리는 금색 머리카락은 분명 그의 것이었다. 흠칫 놀라기도 잠시 곧바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알은척하면 안 돼. 저건 환영이니까. 눈을 질끈 감은 채로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다음 순간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옆 랩실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엥, 태오 형?”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웬일이에요? 예전엔 옥상에서 담배 냄새 난다고 싫어했잖아요.”
“그냥 날이 좋아서….”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난간을 흘겨보았다. 이미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난 후였다. 텅 빈 자리를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안도해서인지, 아쉬워서인지는 모르겠다. 그 사이 곁에 다가온 후배가 내 얼굴을 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와, 다크서클 봐. 아직도 잠 못 자요?”
“으응. 많이 심해?”
“네. 완전요. 대체 며칠을 샌 거예요?”
말없이 어깨를 으쓱이자 후배는 난간에 기대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에 제가 보내준 영상 켜 놓고 자 봤어요?”
“그 백색소음 말이지? 딱히 달라지는 건 없더라.”
“그래요? 아쉽네. 전 효과 바로 오던데.”
밤새 나를 부르는 목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할 수 없어 쓴웃음만 지었다. 후배는 뒷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 갑을 꺼내 한 대 물고 내게 권했다. 괜찮다며 손을 내젓곤 덩달아 난간에 기대어 섰다. 이내 딸각대는 라이터 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훅, 허공에 흩어지는 뿌연 연기를 보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후배의 어깨 너머로 또 다시 그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에 차마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도 선명해서 환각이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형. 혹시 소개받을 생각 없어요?”
“…….”
“전에 포차로 술 마시러 갔을 때 형 옆에 앉았던 애 기억나요? 저랑 친한 동생인데, 걔가 갑자기 형 번호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
“어차피 형 지금 만나는 사람 없지 않아요? 걔가 진짜 착하고 괜찮거든요.”
어쩌면 나를 만나러 온 건 아닐까.
“태오 형! 내 말 듣고 있어요?”
“어?”
뒤늦게 대답하자 후배가 서운하다며 입술을 비죽였다. 그 사이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를 따라 유피테르도 함께 사라졌다. 연신 유피테르가 서있던 자리를 흘겨보자 후배가 뒤를 휙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 뭐 있어요?”
“…아, 아니….”
억지로 웃으며 격하게 고개를 젓자 후배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서렸다.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이내 담배를 난간에 비벼 끄며 아예 내게 몸을 틀었다. 그러더니 퍽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형.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요.”
“으응?”
대뜸 지갑을 꺼낸 후배는 웬 명함 하나를 건넸다. 연하늘색 종이엔 ‘심리 상담 센터’라고 적혀있었다.
“상담 한 번 받아 보는 게 어때요? 저도 한창 스트레스로 힘들 때 도움 많이 받았거든요.”
명함을 받아들고 가만히 서있으니 후배가 서둘러 뒷말을 덧붙였다.
“그, 요즘 계속 잠을 못 잤다면서요. 제가 딱 그랬거든요. 머릿속은 복잡한데 몸은 무기력해지고, 그거 때문에 일상생활이 아예 안 되고…. 다른 뜻이 아니라 진짜 걱정돼서 그래요.”
“응. 고마워. …한 번 가 볼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고요.”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집에 와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내리 의식을 잃었을 때보다 몰골이 엉망이었다. 이런 추한 모습을 보면 유피테르가 걱정하겠지. 수척해진 뺨을 쓰다듬으며 씁쓸하게 자조했다.
그날 밤. 웬일로 잠에 쉽게 드나 했건만, 지독한 악몽이 찾아왔다.
‘아예 죽여 달라고 발악을 하는 구나!’
황제가 눈을 번뜩이며 칼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푹- 살갗이 찢어지는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 멀리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코끝엔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그날의 기억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헉…!”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번뜩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상체를 일으켜 앉아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끔찍한 광경과 마주했다. 옷과 이불이 온통 피로 범벅 되어 있던 것이다. 다급히 옷자락을 올려보니 황제에게 찔렸던 부분에서 끊임없이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놀라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곧바로 옆에 있던 스탠드를 켜곤 다시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핏자국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복부에 칼에 찔린 상처도 없었다. 전부 환상이었다. 일순 소름이 돋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침대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태오.”
어디에 홀린 듯이 멍하니 고개를 들자 그가 창가에 서 있었다. 구원을 바라는 어린 양처럼 손을 뻗으니 유피테르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달빛을 받아 창백한 손만이 허공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째서 나는 그가 환각임을 알면서도 기대하고, 또 실망하길 반복하는 걸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내내 생각해 봤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무너질 것 같아 명함에 적힌 센터로 갔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지금까지의 증세를 전부 말했다. 계속되는 악몽과 불면증, 그리고 환각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의사의 눈가가 살짝 움찔거렸다.
“환각이 보이신다구요?”
“네.”
“어떻게 그게 환각이란 걸 알아채셨죠?”
“…여기 존재해선 안 될 사람이 보이니까요.”
떠올리기 무섭게 곧바로 상담사의 옆에 유피테르가 보였다.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최대한 환각을 무시하려고 해도 시선이 자꾸만 그에게로 달라붙어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으니 상담사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잠은 잘 주무시나요?”
조용히 고개를 젓자 상담사는 따뜻한 차를 권하며 말했다.
“제게 털어놓으시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실 거예요.”
어제 꾼 악몽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온몸이 서늘해졌다. 헤스티아의 절망 어린 울음소리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게다가 잠에서 깨서도 눈앞에 선명히 보이던 핏자국은 공포 그 자체였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두 손을 맞잡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선생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가 기억을 지웠어야 했을까요?”
뜬금없는 말을 내뱉자 상담사는 짐짓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물론 금세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그 찰나의 동요를 봐 버렸다.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입을 다물자 상담사는 차분하게 설득하는 어조로 말했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에요.”
“고통스럽지 않아요.”
천천히 눈을 돌려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유피테르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언제나 그랬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다정한 눈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순간만큼은 괴로움을 전부 잊고서 마주 웃었다.
“오히려 그 시절의 기억이 너무 행복해서,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했던 거예요.”
일종의 강박이었다. 모두가 잊었으니 나라도 기억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외로울 때마다 추억을 곱씹고 또 곱씹어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럼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릴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은 골짜기로 추락해 갈 뿐이었다.
“근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유피테르는 사라져 있었다.
그 후로 상담사의 질문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유피테르가 누구인지, 어느 세계에 사는 사람인지 설명해 봤자 망상이라고 치부될 테니까. 그래도 상담 덕분에 중요한 현실을 재차 깨달았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나는 그곳에 돌아갈 수 없다.
“다음에 또 올게요.”
버릇처럼 거짓말을 입에 담으며 센터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웬일로 조용했다. 피곤할 정도로 나를 부르던 목소리들이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에 묻혀 버렸다. 오랜만에 현실을 사는 것 같았다.
자취방을 향해 어두운 골목길을 걷던 그때 저 멀리 꿈틀대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뭐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지켜보니 어렴풋이 형상이 그려졌다. 네 발로 선 모습이 꼭 늑대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내밀자 이내 그림자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달려왔다.
“…헤르메스…?”
기대감에 차 이름을 부르는 순간 불청객이 나타났다.
“헉, 안 돼!”
골목에서 튀어나온 사람이 그림자를 보고 외쳤다. 이윽고 내게 반갑게 달려오던 그림자의 모습이 가로등에 비쳐 드러났다. 늑대처럼 쫑긋 선 귀가 매력적인 셰퍼드였다. 그럼 그렇지. 대체 뭘 기대한 거야. 허망한 웃음을 흘리며 내 앞에 얌전히 앉은 개를 쓰다듬어 주었다.
“착하지.”
분홍빛 혀를 내밀며 헥헥대는 게 꼭 웃는 얼굴처럼 보였다. 양옆으로 흔들리는 꼬리까지 헤르메스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사이 열심히 달려온 견주가 곧바로 셰퍼드의 목줄을 붙잡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놀라셨죠? 잠깐 신발 끈을 묶는 사이에….”
“괜찮아요. 저도 동물을 좋아하거든요.”
“그럼 다행이네요. 사실 얘가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처음 보거든요.”
그 후 견주는 멋대로 뛰어나가면 안 된다고 셰퍼드를 단단히 훈계하며 사라졌다. 조용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착각할 게 따로 있지. 어두운 곳에서 개를 보고 헤르메스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단단히 미쳐 버린 것 같다.
힘껏 두 뺨을 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만에 하나 차원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나로 인해 멸망해 가는 세계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이만 포기하자. 더 이상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거다. 그래야 유피테르도 덜 마음 아파하지 않겠나.
어렵게 결심을 다잡고 걸음을 돌리는데, 빌라 입구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태오 학생!”
종종 반찬거리를 챙겨 주시던 집주인 아주머니였다.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어서 이따금씩 마주치긴 했는데, 지금처럼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온 적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내게 특별한 용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서둘러 빌라 입구로 가니 아주머니가 호호 웃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늦게 오네? 초인종을 눌러도 조용하길래 어디 갔나 했어.”
“약속이 있어서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지금껏 집세를 밀린 적은 없었다. 그럼 혹시 다음 달부터 월세를 올리려고 그러시나? 혼자 여러 생각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누가 태오 학생네 택배 함에 이런 걸 두고 갔더라고.”
“네? 뭐를….”
이윽고 아주머니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새하얀 꽃 한 송이였다.
“이거 재스민 꽃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