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 (273/305)

#273

프로메테우스. 그것은 이 땅에 불을 가져오는 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불로써 인간의 문명을 꽃피웠지만, 끝내 신을 배반한 죄를 저질렀다. 인간에게 선물한 꺼지지 않는 불이 신에게서 훔쳐 온 힘이었으니 형벌은 당연한 처사였다.

마물인 그가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을 받은 순간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선지자였던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지 못했듯, 마물인 그 또한 제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역사는 또 다시 비극적인 최후로 나아갔다.

“프로메테우스.”

아니, 어쩌면 조금은 희망적일지도 모르겠다.

“약속을 지키러 왔어요.”

다시 한 번 이름을 부르자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결계는 사라지고, 하늘에서 맹렬하게 쏟아지던 신력도 잠잠해졌다. 당황한 듯 굳어 있는 그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 틈을 타 검을 바로잡고 심장을 겨누었다.

내 손으로 타인의 목숨을 거둬야 한다니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데우스를 위해서라도 고통스럽지 않게 단숨에 끝내야 한다. 마침내 칼끝이 그의 가슴께에 닿은 순간, 질끈 눈을 감고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살갗을 찢고 심장을 꿰뚫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칼자루를 타고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에 절로 손이 떨렸다. 버티지 못하고 그만 놓으려는데, 그보다 먼저 내 손을 잡는 손길이 있었다. 번뜩 눈을 뜨니 파리하게 질린 얼굴이 보였다.

“와 줬군요.”

“…데우스.”

앳된 소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탄식하듯 이름을 부르니 데우스는 살며시 웃었다. 금빛 하늘 아래 드리운 그 미소는 금방 사라질 봄 서리처럼 차갑고도 아련했다.

“아아, 태오라면 반드시 해낼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심장에 검이 찔리고도 기뻐하는 표정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더는 볼 수 없어 칼자루를 놓으려 하니, 데우스는 내 손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그러곤 신의의 검을 끝까지 코어에 찔러 넣었다. 스스로에게 확인 사살을 하듯 잔인하고도 지독한 짓이었다.

검이 완전히 몸을 관통하자 데우스는 기침과 함께 피를 울컥 토해 내고 말았다. 새하얀 피가 그의 입술 새로 흘러내려 칼자루 위에 뚝, 뚝 떨어졌다. 분명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테다. 그런데도 잠시 일그러졌던 얼굴엔 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끝까지 내색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팽 돌았다.

“우는… 거예요?”

왜? 하고 입모양으로 묻기에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다. 왜 눈물이 나오는지. 프로메테우스는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끝까지 변하지 못할 거라면, 제거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년의 모습만 보면 자꾸만 마음이 약해진다. 처음 함께 지내던 밤에 내 품을 파고들던 데우스가 너무도 작고 여려서 그런 걸까. 고작 파이 한 조각 나눠 먹으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억지로 울음을 참자 데우스가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싸 쥐었다.

“울지 마요. 나 같은 걸 위해 울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다정하게 눈가를 쓸어 주는 손이 너무도 차가웠다. 벌써 온기가 식어 가는 걸까. 서둘러 신의의 검에 깃든 신력을 없애고 데우스를 품에 끌어안았다. 그러자 칼자루가 바닥에 떨어져 쩔그렁 울리는 소리와 함께 데우스가 픽 쓰러졌다.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붙잡아 바닥에 눕히고 안색부터 확인했다. 혈색 없이 창백한 얼굴은 바람 앞 등불처럼 몹시 위태로워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니 데우스는 힘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해요. 죽여 달라는 부탁 같은 걸 해서.”

“괜찮아요. 전부 대의를 위해서였잖아요.”

“그것도 있지만….”

잠시 뜸을 들이던 데우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저 내가 태오의 손에 죽고 싶었어요.”

“…네?”

“처음 태오를 만나고 느꼈어요. 신께서 내게 마지막으로 속죄할 기회를 주는구나, 하고. 그래서 언젠가 사명을 다해 죽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꼭 당신이 내 마지막을 거둬 갔으면 했어요.”

그가 눈을 깜빡일수록 초점은 점점 사라졌지만, 그 눈동자에는 여전히 총기가 반뜩였다.

“태오 덕분이에요. 내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끼게 해 줘서….”

고마워요.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동정도, 연민도 아니었다. 그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통탄스러웠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로선 꺼져 가는 등불 앞에 무기력하게 앉아 바람을 막아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어 내가 우는지도 모르는 데우스는 연신 웃고만 있었다. 그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는 꿈을 이뤄 기쁜 듯 보였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그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어 거칠게 눈가를 닦아 내고 물었다.

“데우스. 정말 이게 최선이에요?”

“네.”

“…살아가면서 속죄할 수는 없었나요?”

“태오. 난 이 세계를 위해 사라져야 해요.”

퍽 단호한 어조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가만히 입술만 움찔거리자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간 내가 저지른 일들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걸 알아요. 이대로 죽는 게 도망치는 걸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젠가 또 다시 똑같은 짓을 저지를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과 프로메테우스는 달라요.”

“아뇨. 우린 결국 하나예요.”

슬그머니 허공을 향하는 눈동자는 어느새 과거로 떠나있었다.

“아버지의 뿔을 돌려주러 가던 길에 다른 마물들이 하는 얘길 듣고 솔직히 무서웠어요. 내가 배신자라니, 아버지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 겁이 났죠. 그래서 도망쳤어요. 마물로서의 나를 버리고 스스로 결계에 가둬 버린 거죠.”

마치 고해성사하듯 차분히 말을 잇던 데우스는 이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니 나나 프로메테우스나 똑같아요.”

이윽고 데우스가 쿨럭거리며 기침했다. 그의 몸이 힘없이 들썩일 때마다 메마른 입술에서 피가 울걱 쏟아져 나왔다. 검에 관통당한 가슴에선 신력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흘러가기 시작한 모래시계를 다시 뒤집을 방법 따윈 없었다. 그저 마지막 모래알이 떨어지기까지 겸허히 기다릴 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저 멀리 서 있는 유피테르가 떠올랐다. 마지막이 다가오는 만큼 후회를 남겨선 안 된다. 선지자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마물인 데우스로서 유피테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만큼 쌓여 있을 것이다.

“이럴 게 아니라 유피테르와 대화해 봐요.”

몸을 일으키려하자 데우스가 다급하게 내 손을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의 눈동자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 돼요.”

단호히 고개를 젓는 데우스는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버지는 나를 미워하실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아까 하는 말 들었잖아요. 데우스를 만든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유피테르의 말을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의심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 세기동안 이어진 갈등과 쌓인 앙금이, 단 한순간에 풀리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유피테르가 진심으로 데우스를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데우스의 손을 맞잡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진심으로 미워했다면, 애초에 뿔을 내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게 무슨….”

“사랑했으니까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를 준 거죠.”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데우스가 찾아와 부탁한다고 한들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하다면 단숨에 목숨을 빼앗아 무로 되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피테르는 그러지 않았다.

“생각해봐요. 어느 누가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심장과도 같은 걸 선뜻 주겠어요?”

그 말에 하늘색 눈동자에 동요하는 빛이 서렸다. 유피테르가 진정 자신을 사랑했을 리 없다는, 그 확신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틈을 놓치지 않고 데우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린지 알겠어요? 유피테르는 당신을 믿었어요.”

“…….”

“데우스. 당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고요.”

“그건….”

“그게 사랑이 아니고 뭐겠어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자 웃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게 왜 우냐고 묻던 이는 사라지고, 죽음이 두려운 소년만이 남아 있었다. 금세 눈물이 차오른 그의 눈동자는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어두워졌다.

이윽고 데우스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사실 나,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손을 놓고 일어나 유피테르에게 달려갔다. 가만히 데우스를 바라보고 있는 금색 눈동자엔 깊은 고민이 묻어났다. 오랜 숙적이자, 자유를 빼앗아 간 원수이자,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떨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래도 이것이 유피테르에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되리라 확신했다.

“유피테르.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피테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떤 부탁을 할지 진즉 알아챈 눈치였다. 데우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재빨리 뒤를 돌았다. 그런데 이미 모래시계의 모래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부서진 코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발부터 서서히 빛이 되어 사라져갔다.

“…아버지.”

데우스는 반쯤 감긴 눈으로 유피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로 저를… 사랑하셨었나요?”

허공에 떠오르는 하얀 불빛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았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이미 죽은 별의 빛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도.

“데우스!”

급하게 달려갔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데우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털썩 주저앉자 그가 누워 있던 자리에 고인 새하얀 피가 출렁거렸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멍하니 피 웅덩이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순백의 액체가 모여 자그마한 유리조각을 만들어 냈다. 그게 데우스의 기억을 담은 마지막 판도라 파편임을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판도라를 들어 올리자 황폐한 공터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버지!]

한없이 어리고 순수한 소년의 음성이었다.

[저 있죠, 언젠가 아버지 같은 마물이 될 거예요. 다른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어린 마물들도 돌보고, 또 인간들과도 잘 지내려고요.]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들려와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언제까지나 절 지켜봐 주셔야 해요. 아셨죠?]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유피테르도, 오케아노스나 닉스도 조용히 그가 남긴 기억을 듣고만 있었다. 그 침묵이 추모인지, 무관심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무거운 적막 속에서 데우스의 목소리만 퍼져나갈 뿐이었다.

[아버지. 듣고 계세요?]

이윽고 일대를 뒤덮은 푸른 불꽃이 꺼져 갔다. 하나둘씩, 사그라졌다. 어느새 유피테르가 만들어낸 빛기둥도 사라져 코카서스 산엔 짙은 어둠이 깔렸다. 맑은 달빛이 내리쬐는 곳에 마지막 불꽃이 남아있었다.

그건 데우스가 간직하고 있던 기억-

[그래.]

유피테르의 목소리였다.

[난 언제나 네 곁에 있다. 데우스.]

이내 판도라의 불빛마저도 사라진 자리엔 자그마한 뱀이 누워 있었다. 길쭉한 허리에서 뻗어 나간 핏자국이 묘하게 날개 같았다. 그래서일까. 데우스가 하늘을 나는 듯 보였다. 그래. 마치 커다란 날개로 창공을 누비는 그 마물처럼.

“…잘 자요. 데우스.”

회양목에 숨겨 신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줄 알았던 불은 사라졌고, 혜안은 더 이상 제국의 앞날을 비추지 못했다.

한때 신이 되고 싶었던 자는 그렇게 조용한 끝을 맞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