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4 (254/305)

#254

젊은 사제의 얼굴은 어느새 유피테르로 변해 있었다. 예기치 못한 흐름에 당황하는 한편,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래는 계획된 선 안에서 바뀌고 있다. 타깃이 된 아스레인은 헤카테를 상대하느라 신전 밖에 있고, 조금만 더 가면 마법진의 중심에 닿을 수 있다. 이제 유피테르가 자신의 발밑에 묻힌 계획을 모르기만 하면 된다. …모르기만 하면.

집요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다.

“미래를 바꾸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지금 누구 앞에서 같잖은 연기를 하려는 건가.”

긴장한 눈으로 올려다보니 얇은 펜으로 그린 듯한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창백하게 질린 꼴이 퍽 보기 좋구나.”

그의 숨결을 따라 나드 향유 냄새가 진하게 풍겨 왔다. 신성을 상징하는 향기가 왠지 피 냄새처럼 느껴졌다면 착각일까. 가까스로 그의 손에서 벗어나 벽을 따라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거리를 두는 나를 지켜보던 유피테르는 이내 사냥감을 노리는 표범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따라왔다.

“짐이 정말로 몰랐을 것 같나?”

“…….”

“하늘 아래 내 눈은 피해 갈 수 있는 생물은 없어.”

그 말이 진실인지, 공갈인지는 몰랐다. 지금 내 신경은 온통 유피테르를 예배당에 들이는 데 쏠려있었다. 무사히 예배당의 기둥을 지나면서 침묵이 어색하지 않도록 일부러 신경을 긁었다.

“글쎄요. 당신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게 있을 텐데요.”

“그게 무슨 소리지?”

“가령 제 미래라든가.”

내 도발에 그의 입술을 쌜룩거렸다.

“그래서 저를 백합으로 만든 새장 안에 가두려고 하신 거 아니었나요? 선황 폐하.”

데우스의 말대로라면, 유피테르는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순간부터 알아챘다. 내가 계획을 망가뜨릴 변수가 되리라고. 유일하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에 섣불리 제거하지 못한다고도 했지.

당당한 태도로 예배당 중심에 서자 유피테르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가소롭다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후후, 짐이 네 미래를 볼 수 없다고? 그거 참 흥미로운 이야기구나.”

“아니라고 둘러대실 건가요?”

“무엄하구나.”

살짝 턱을 치켜든 유피테르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를 아멜리 백작가에 둔 것부터가 짐의 계획이다.”

유피테르는 한 걸음 두 걸음 나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공허한 예배당에 울리는 구둣발 소리를 따라 심장이 터질듯 뛰었다.

“비브린트 숲에서 죽을 뻔했던 네 놈을 살린 것도, 끝내 아스레인을 만나게 되어 안겔루스 대학으로 들어온 것도 전부 내 덕분이지.”

“아뇨. 제가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신이 아니라 아스레인 덕분이에요.”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그의 입가에 거만한 조소가 맺혔다.

“어찌 모르는가. 비브린트 숲에서 네게 칼을 겨눈 기사단장의 마음을 바꾼 자가 바로 짐이거늘.”

거짓말.

“레트반이란 여인을 통해 네게 아스레인이 조만간 저택에 당도하리란 점도 일러 줬지.”

거짓말이야.

“생각해 보거라. 어떻게 아스레인과 네가 같은 시간, 같은 마을에… 그것도 정확히 서점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기막히지 않나.”

귀담아 들을 필요 없다. 전부 나를 속이기 위한 말장난이다. …그런데 왜 머릿속에 각인된 듯 지워 낼 수 없는 걸까. 늘 회의감을 느꼈다. 일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고, 비밀이 하나씩 풀려 나갈 때마다 마치 미리 짜인 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유피테르와 대적하게 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우연이고 인연이라 생각하나?”

“아니야….”

“우매한 놈. 네 인생은 짐에 의해 빚어졌다.”

안광을 잃은 하늘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어느새 유피테르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계획대로 그를 마법진 중심까지 끌어들였다. 이제 아스레인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뇌가 굳어 버린 듯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구나.”

가엽기도 하지. 나지막이 중얼거린 유피테르가 내 뺨을 감싸 쥐었다.

“너는 한낱 미물에 불과해. 제 아무리 몸부림쳐도 주변을 망가뜨리기만 할 뿐….”

이윽고 그의 손이 내 눈을 가렸다. 짙게 깔린 어둠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세잔, 진, 아이리스, 휘브. 신전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테세스와 이카로스, 다른 마물들까지. 반가워하기도 잠시, 그들이 하나 같이 나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먼저 내 앞을 가로막은 이는 아이리스였다.

“왜 그랬어? 너만 아니었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원망으로 물든 눈자위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이리스가 이런 말을 할 리 없다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휘브리스가 다가와 말했다.

“어째서 나는 당신 같은 걸 믿었을까요?”

“…휘브.”

“당신을 따르는 게 아니었는데.”

잔뜩 일그러진 얼굴엔 짙은 좌절만이 남아있었다. 휘브의 뒤로 하나둘씩 내게 원망을 퍼붓기 시작했다. 널 저주해. 저주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이 벌처럼 윙윙 귓가를 맴돌았다.

그만! 괴로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자 저 멀리 둥그런 뒷모습이 보였다. 누르였다.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손을 뻗은 순간, 누르의 곁에 무덤처럼 쌓인 시체가 나타났다. 무참히 죽어 나간 누르의 일가족이었다. 코를 찌르는 사체 썩는 냄새에 주춤거리는 순간 누르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누르….”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

피로 얼룩진 회색 털을 따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윽고 피눈물이 맺힌 그의 눈동자는 녹아 버리고, 마안이 있던 자리엔 시커먼 눈구멍만 남아있었다. 마치 클라우스에게 눈을 뽑힌 그의 동족처럼.

끔직한 광경에 더는 참지 못하고 허공에 팔을 세게 휘둘렀다. 그 반동에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지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차가운 예배당 바닥을 짚은 손이 여전히 환각을 두려워하며 파들파들 떨렸다. 그때 머리 위로 냉랭한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어떤가. 미래를 본 기분은.”

“…미래?”

증오에 찬 눈을 치켜들자 유피테르가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정녕 내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창문으로 흘러 들어와 그의 뒤로 퍼지는 광채가 꼭 신의 광휘처럼 보였다. 이내 유피테르는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짐을 따른다면, 네 소중한 것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조하마.”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숨이 막힐 듯 옥죄어 오는 신력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본능적으로 예배당 뒤에 있는 문을 흘겨보았다. 그러자 유피테르는 긴 옷자락으로 내 시야를 가리며 픽 웃었다.

“소용없어. 무한히 생성되는 헤카테에 이쪽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을 테니.”

여기서 손을 잡거나 무의미하게 죽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란 건가. 그때 정화석이 밝게 빛나며 유피테르와 나 사이에 인간의 형체가 나타났다. 하나로 내려 묶은 긴 머리카락이 뱀의 꼬리를 닮은 그는, 데우스였다.

“오랜만이야. 나.”

데우스는 유피테르가 내민 손을 퍽 능청스럽게 맞잡았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유피테르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뜻밖에 나타난 자신의 분신을 마주쳐 얼마나 놀라려나. 유피테르가 데우스에게 한눈 팔린 사이 조용히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순간, 돌처럼 굳어있던 유피테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수고했어.”

…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마치 데우스를 반기는 것 같은 반응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아니겠지. 짧은 침묵의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데우스가 우리를 배신했을 리 없어. 그렇잖아?

열심히 스스로를 세뇌하는데, 데우스가 한숨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대단한 수고였지. 시답잖은 연기하느라 얼마나 귀찮았는데.”

거짓말. 믿지 못할 광경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홀로 떨어진 나를 두고, 그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꽤 적성에 맞아 보이던데?”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지 마.”

“후후, 아무튼 어서와. 둘도 없는 나의 분신.”

유피테르는 데우스의 손을 소중하게 그러쥐고 제 옆에 세웠다. 위험한 순간 지켜 준다던 데우스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곳엔 두 명의 유피테르만 서 있을 뿐.

“미안해. 태오.”

데우스는 완전히 넋이 나간 나를 향해 냉소를 흘렸다.

“그리고 끝까지 속아 줘서 고마워.”

듣고 싶지 않다. 그딴 인사 따위. 나란히 선 그들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는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지그시 나를 바라보던 데우스는 이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전부 연극이었어.”

“무슨….”

“네게 신뢰를 사려고 접근했는데, 아예 곁을 내주더라. …마음이 너무 약하다니까.”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듯 정신이 아득했다. 그 언젠가, 남에게 베푸는 호의가 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게 설마 지금일 줄은 몰랐지. 여전히 멍하게 있으니 데우스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못 믿는 눈치네.”

데우스는 심드렁한 낯빛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유피테르가 미래가 바뀐 걸 알아챘을까?”

“…당신이었어?”

곱게 휘어지는 눈매가 정답이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네가 미래라고 생각한 꿈은 내가 보여 준 거야. 일부러 네 머릿속에 흘려 넣은 거라고.”

“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는데?”

“그래야 필요한 인물이 전부 한 자리에 모이니까.”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벌레처럼 뇌 속을 갉아먹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조금씩 좀 먹어 가고 있었다. 이내 데우스는 유피테르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선 말했다.

“내가 어떻게 ‘나’를 배신하겠어?”

“…데우스.“

“이제 그 이름으론 그만 불러. 내겐 유피테르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당신이 어떻게….”

“내가 불쌍하다며 동정하는 네게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 그 점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왜일까. 아직도 데우스를 향한 신뢰가 깨지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그가 유피테르를 속이기 위해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태오. 넌 사람을 의심할 방법을 배워야 해.”

아니,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내게 사람을 보는 눈 하나만큼은 정확했으니까. 아스레인을 동경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행복해하는 데우스는 내내 진심이었다. 여기서 내가 흔들리는 순간 모든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그간의 당신이 전부 연기였다고요?”

“그래. 난 단 한 번도 네 편이었던 적 없어.”

“데우스.”

차분하게 이름을 부르자 데우스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그러나 한순간의 동요는 유피테르가 알아채기도 전에 금방 사라져 버렸다.

“시끄러워. 넌 닥치고 내가 시킨 대로만 하면 돼.”

싸늘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왔지만,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전보다 견고해진 내게서 무언가를 본 걸까. 데우스가 조용히 눈짓으로 내 가슴께를 가리켰다. 그 순간 옷 안으로 넣어 둔 정화석이 따스한 온기를 내뿜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제 존재감을 뿜어냈다.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고 표정을 굳히자 데우스는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우린 대의를 따라 움직일 뿐이야.”

그 말에 뇌리에 퍼뜩 떠올랐다.

‘부디 대의를 잊지 마요.’

하필이면 지금 그때와 같은 말을 하다니. 단지 우연일까. 아니면, 이게 전부 꾸며 낸 연기라는 걸 알려 주기 위한 신호일까.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지만, 유피테르는 더 이상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하나가 되어야겠구나.”

유피테르가 데우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데우스는 일망의 저항도 없이 유피테르에게 제 몸을 내어주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빛의 조각이 되어 부서지는 데우스를 조용히 응시했다.

제자리에 뻣뻣하게 굳어 버린 내 모습이 부디 유피테르의 눈엔 겁에 질린 것으로 보이길 바랐다. 그를 막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 순간만을 기다렸기에 가만히 있는 거니까. 이대로 유피테르가 데우스를 흡수하고 현신해야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된다.

“드디어….”

유피테르는 환희의 찬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 와중에도 데우스는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목까지 사라지던 순간 하늘빛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스치듯 지나간 것은 회심의 미소였다. 마지막 모습만큼은 내가 기억하는 데우스였다.

끝내 데우스가 하나의 빛이 되어 허공에 떠오르자 유피테르의 숙주인 젊은 사제가 힘없이 쓰러졌다. 이내 예배당 바닥에 새겨진 음각의 문양이 마치 소환 진처럼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윽…!”

엄청난 신력에 압도되어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태양을 마주한 듯 사방으로 퍼지는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천지가 우르릉대며 요동쳤고, 신전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겨우 기둥을 붙잡고 중심을 잡고 있길 얼마간 지났을까. 갑자기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뜨자 예배당 한 가운데 누군가 서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 순백의 상징이자 완벽한 존재. 마침내 유피테르가 현세에 강림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유피테르가 못마땅한 듯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 세상의 주인 앞에 머리를 조아려라.

신전을 울리는 장엄한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순간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머리 위에서 짓눌러오는 신력에 원치 않게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딱딱한 바닥에 이마를 대고서 내 힘을 훌쩍 웃도는 신력에 두려워할 뿐이었다.

- 힘의 차이를 여실히 느껴라. 인간.

그때였다.

쾅! 신전 벽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무참히 잘린 헤카테의 머리가 날아왔다. 갑자기 숨통이 트여 고개를 들자 시원하게 뚫린 벽에 서있는 인영이 보였다. 아스레인이었다. 번개가 치듯 번쩍거리는 마력을 몸에 두르고 나타난 그의 등 뒤로 돌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부 헤카테의 시신이었다.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자 유피테르는 답지 않게 주춤거렸다.

- 어떻게…!

“어떻게? 그딴 장난에 발이 붙잡혔다는 것도 짜증이 나는군.”

아스레인은 겨우 화를 억누르며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윽고 그가 손짓하자 내 주변으로 견고한 보호막이 생겨났다. 그 덕분에 온몸을 짓누르던 신력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걸 유피테르가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곧바로 찬란하게 빛나는 창을 꺼내어 나를 향해 던지려고 들었다.

그 순간 신전 바닥을 꿰뚫고 금색 사슬이 올라와 유피테르의 양 팔에 족쇄를 채웠다. 유피테르가 사슬을 깨뜨리려 팔을 움직여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윽고 아스레인은 천천히 예배당을 가로질러 들어오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상대는 나다. 유피테르.”

파직, 마력과 신력이 부딪치자 그의 머리 위로 선명한 뿔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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