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4 (244/305)

#244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활시위가 그의 손을 떠났다. 부자지간이라니. 도발도 저런 도발이 없을 것이다. 아스레인은 조용히 뒤돌아 데우스를 내려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속 서릿발 치듯 냉랭한 눈빛이 그의 속내를 드러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데우스는 흥미로운 미소로 일관했다.

무거운 긴장감이 점점 내 숨통을 조여 왔다. 이러다 둘이 싸우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내가 말릴 수 있을까? 아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려야만 한다. 없는 힘까지 끌어다가 둘 사이에 끼어들려던 그때였다.

“하아….”

깊은 한숨 소리에 얼어붙은 공기가 툭 풀렸다.

“그리 말하면 내가 너를 상대해 줄 줄 알았나?”

아스레인은 시선을 옆으로 흘기며 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살짝 찌푸린 이맛살에는 시답잖은 일을 대하듯 귀찮음이 한가득 묻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엷은 감정마저 증발되어 버렸다.

“얕은 수작 부리지 마라.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일은 없을 테니.”

무심한 눈빛이 데우스와 그 사이의 선을 선명하게 그었다. 그리하여 팽팽하게 이어지던 줄다리기가 허무하게 끝이 났다.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었다. 설마 끝까지 이성을 지킬 줄은 몰랐는지, 데우스는 피식 싱겁게 웃어 버렸다.

“정말 한결 같네요. 당신은.”

재미없게. 그리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꼭 장난감을 뺏겨 버린 아이의 투정처럼 들렸다. 이내 데우스가 아스레인에게서 등을 돌리자 곧바로 숨통이 트였다. 켈록! 볼품없이 헛기침을 하곤 속에 끌어안고 있던 말을 데우스에게 던졌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요. 당신이 직접 말했잖아요? 한 배를 탄 사이라고.”

“그냥 좀, 반응이 궁금해서 그랬어요.”

데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태연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한 번만 더 장난 쳤다간 연구실이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하자 데우스는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걱정 말아요. 유피테르가 계획한 미래를 바꾸도록 도와줄 테니까.”

“애초에 그 미래라는 게 뭐죠?”

“내가…. 아니,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올바른 미래요.”

데우스는 버릇처럼 유피테르를 ‘나’라고 칭하다가 단호히 말을 고쳤다. 자신은 유피테르와 다른 존재라고 여기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의심과는 별개로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조용히 화제를 이어나갔다.

“올바른 미래라는 게… 오직 인간을 위한 세계 말인가요?”

“맞아요. 뭐, 구실이긴 하지만.”

“그럼 왜 같은 인간끼리 죽고 죽이게 두는 거죠?”

줄곧 궁금했다. 진정 인간을 위한다면, 참혹한 전쟁을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카르사 제국은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선황이 승하하더라도 유피테르는 버젓이 살아있는데, 지워지지 않을 피가 끊임없이 대륙을 적셨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데우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가지치기 하는 걸 본 적 있어요?”

그 목소리는 마치 동화를 읽어 주듯 사근사근했다.

“아름다운 나무를 만들기 위해서 원예가는 서슴없이 가지를 쳐 내죠. 이상하지 않아요? 같은 뿌리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느 가지는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어느 가지는 무참히 잘려 바닥으로 떨어지죠.”

“그럼 유피테르는 가지를 잘라내는 수단으로 전쟁을 택했다는 건가요?”

데우스는 긍정하는 대신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떴다.

“어떻게 그런….”

이 얼마나 인명경시적인 생각인가. 유피테르가 제 수하를 도구처럼 부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데우스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중요한 건, 아무리 가지를 쳐내도 나무는 끝까지 살아남아요. 하지만 조경을 방해하는 요소는 뿌리까지 뽑아내 버리죠.”

조경을 방해하는 요소. 그 표현이 무엇을 칭하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회피하듯 고개를 돌렸지만, 데우스는 가차 없이 현실을 직면시켰다.

“혜안이 내다본 미래, 그 어디에도 마물은 존재하지 않아요.”

“대체 왜… 그렇게까지 된 거죠?”

“인간들이 바랐으니까요. 양분을 빼앗아 가는 다른 나무를, 잘라내 달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들을 때마다 숨통이 콱 막히는 기분이다. 신력이 마물의 마력을 밀어내는 힘이 된 이유- 그건 기도였다. 두 종족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시점, 신전은 건국 이래로 가장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단지 마물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이유로.

“결국 모든 일이 인간 때문이라는 건가요?”

“글쎄요. 달걀이 먼저일지, 닭이 먼저일지는 모르는 일이죠.”

데우스는 말했다. 인간의 기도가 유피테르를 만들어낸 것인지, 유피테르가 인간을 그리 이끈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충분히 이해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도한 이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저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막지 못한 것을 통탄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 시기에 봉인되어 있었던 아스레인이 가장 후회스럽겠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침울한 적막이 맴돌았다.

그때 데우스가 깊은 침묵을 깨고 주의를 환기했다.

“하지만 그가 진정 신이라면, 갈등을 부추길 게 아니라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올바른 길…이요?”

“균형을 이루는 거죠.”

세계의 균형. 설마 그걸 데우스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그 마물과 그의 피조물이 존재하는 의의 아니었나. 그 후로도 데우스는 제 의견을 피력했다.

“세계는 변하고 있어요. 어쩌면 정말로 공생이 가능한 미래가 올지도 모르죠. 하지만 유피테르가 있는 한, 그가 ‘신’으로 군림하는 한… 미래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전부 듣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데우스는 유피테르와 엄연히 다른 존재다. 무려 데우스는 우리와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다. 다만, 이상한 일이다. 지금은 분리되었을지언정 유피테르와 데우스는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났다. 그럼 유피테르가 예전에는 균형을 바라는 존재였다는 건가?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조용히 옆을 돌아보았다. 아스레인 또한 데우스의 말에 혼란스러운 듯했다. 이것은 우리를 속이기 위한 책략인가. 아니면, 진정한 아군의 등장인가. 내내 어느 하나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아스레인이 선뜻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네가 얻는 건 뭐지? 그 결계에서 해방되는 거?”

혹시 결계에서 벗어나면 유피테르의 육체를 차지할 수 있는 건가? 자유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를 도우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아스레인에게 꽂혀있던 데우스의 시선이 별안간 나를 향했다.

“태오. 당신이 유피테르와 싸우는 이유와 그리 다르지 않아요.”

아스레인도 아니고, 내가 싸우는 이유…? 의아한 눈길에도 데우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하늘빛 눈동자에선 평소와 달리 장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그리 말한 데우스는 내 목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탄식을 내뱉으며 아스레인을 돌아보았다. 또 무슨 이야기로 아스레인을 도발할지 두려워지던 순간, 데우스는 예상을 제대로 빗나가는 말을 했다.

“아까 일은 미안했어요.”

일부러 신경을 긁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진지했다. 갑작스러운 사과가 의아한 듯 아스레인은 미간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정작 데우스는 혼란만 남기고서 결계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나와 아스레인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이상하게도 허전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잠을 청했다. 데우스가 한 말 때문에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서 겨우 선잠에 들었다. 불현듯 인기척이 느껴져서 잠에서 깼을 때, 방 안은 온통 창백한 달빛으로 물들어있었다. 흐릿한 눈을 몇 번이고 끔뻑이고 나서야 단잠을 깨운 범인을 발견했다.

“…….”

작은 소년이 내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색깔을 빼앗긴 잿빛 머리카락은 달을 만나 더욱 검푸르게 보였다. 데우스였다.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팔과 몸 사이에 작은 공간을 데우스가 비집고 들어와 차지하고 있었다.

한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밤이었다. 봄바람이 산뜻하니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 날씨였다. 그런데도 데우스는 내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체온을 느끼려는 듯 딱 붙어서는 옷깃까지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들, 그는 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불멸자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어도 그저 눈꺼풀을 덮은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내가 잠에서 깨서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데우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 편안해 보였다.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뿌리치려다가도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데우스가 어린 모습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서,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난 후의 내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불현듯 내가 그의 반응을 떠보려고 했던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진과 세잔이랑 대화할 때도 그렇고…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어요. 설마 그것도 연기라고 할 셈인가요?’

‘아니면, 역시 절대자도 외로움은 이길 수 없나 봐요?’

어떤 말도 척척 받아치던 데우스가 처음으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우연찮게 정곡을 찔렀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데우스에게 곁을 내준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많이 피곤했었나. 긴장한 와중에도 깜빡 잠에 들었었다. 퍼뜩 눈을 뜨니 밤새 옆에 딱 붙어있던 데우스가 어느새 창가에 서있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눈빛은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제법 자애로웠다.

“…뭐 해요?”

졸린 눈을 비비며 물어보니 데우스는 창 너머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봐요.”

“네?”

“저 학생, 앞에 있는 돌부리를 못 보고 넘어질 거예요.”

수상쩍은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옆으로 다가갔다.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정말로 어떤 학생이 기숙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한지 뛰어가던 학생은 데우스가 가볍게 고갯짓을 하는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어….”

예언한 대로 정확히 이루어졌다. 데우스가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데우스는 기숙사 옆 골목으로 걸어가는 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책을 든 학생은 도서관에 펜을 두고 온 게 생각나서 돌아갈 거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 설마, 하는 순간 정말로 무언가를 잊은 사람처럼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데우스는 그 후로도 몇 번씩이나 기숙사 바깥을 오가는 학생의 근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했다.

이윽고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나무 그늘 아래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서 얘기하는 학생들 보여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데우스는 노래하듯 유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중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학생은 모레 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쓰러졌단 소식을 듣게 될 거예요.”

“…네?”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지 웃고 있네요. 저렇게 행복하게….”

일순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하하! 벽을 타고 올라오는 학생의 웃음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저 웃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울음으로 변하리란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나도 저 학생처럼 부모님을 한순간에 떠나보낼 줄 모르고 웃고만 있었지.

식은땀이 배어난 손을 꽉 쥐며 데우스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 그럼 귀띔이라도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그렇겐 못해요. 미래를 장본인에게 직접 말해서도, 내가 개입해서도 안 되거든요.”

“…왜요?”

“그게 미래를 보는 자에게 주어진 제약이니까.”

제약? 처음 듣는 이야기다.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데우스는 차분하게 물었다.

“혹시 유피테르가 내린 신탁을 읽어 본 적 있어요?”

“아, 네. 이해하지 못할 상징이나 비유가 많았어요.”

“그게 전부 제약 때문이에요. 미래를 원하는 대로 이끌고는 싶은데, 직접적으로 조언을 할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길을 알려 준 거죠. 마치 추상적인 신탁을 해석한 인간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한 것처럼.”

아. 깨달음을 얻어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처음 신탁 전문을 접했을 때, 단번에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꼬아 놓은 표현을 보고 의아했었다. 게다가 예언한 사건의 순서마저 뒤죽박죽이라 원하는 신탁을 찾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게 전부 제약 때문이었다니.

“그런 제약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예전에 유피테르가 사람들에게 미래를 예견해 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씩 미치기 시작하더니, 곳곳에서 이유 모를 역병까지 돌았죠.”

“역병…이요?”

“결국 자신의 미래를 아는 자는 전부 죽었어요.”

퍽 섬뜩한 이야기였다. 꼭 신의 영역을 넘본 자에게 천벌이 내린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끔찍한 역사치고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런 걸 사람들이 설화로 만들지 않고 지나칠 리가 없는데도.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봐요.”

“그렇겠죠. 정복 전쟁을 빌미로 그 시절의 기록을 말살시켜 버렸거든요.”

“설마 거기가….”

“고대 이아페예요.”

덤덤하게 읊조리는 목소리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신화가 시작된 고대 이아페를 왜 굳이 선황이 되자마자 정복 전쟁으로 없애 버렸는지, 그 이유가 늘 궁금했다. 그게 제약을 어긴 과오를 지우기 위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레 겁먹고 딱딱하게 굳어 있으니 데우스는 싱긋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진짜인지 궁금하면 지금 제약을 어겨 볼까요?”

짓궂은 미소가 악동을 넘어서 금기를 어기자는 악마처럼 느껴져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능력에 제약이 생긴 이유는 아마도, 미래를 함부로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럼 매번 보고만 있었던 거예요?”

“그게 최선이었어요. 전부 알고도 그 조그마한 불꽃과 그릇으로 세상을 지켜보는 게.”

바람이 새듯 피식 웃은 데우스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죠. 당장 내일 죽을 걸 모르고 오늘을 사는 게 어떤 기분인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소리에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전엔 미래가 보이는 능력을 마냥 부러워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미래를 바꾸려고 했을 테니까. 근데 제약을 알고 나니 부러움은 금세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부모님의 불행한 미래를 봤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무력감에 미쳐 버렸을 것 같다. 심지어 내가 현실과 단절된 곳에 갇혀 있다면 더더욱.

“내가 본 미래에서 내 처지는 늘 똑같았어요. 영원히 그 쓰레기통 안에 처박혀 있을 운명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바뀌지 않았죠.”

“데우스….”

“하지만 이젠 달라요.”

불쑥 나를 돌아보는 데우스의 눈동자는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보다 밝게 빛났다.

“여기 있는 모든 학생의 미래는 읽어도, 오직 당신의 미래는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 곁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미래도 점점 흐려지고 있어요.”

어쩜 이리 다를 수 있을까. 나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유피테르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를 제거하려고 온갖 수를 동원했다. 하지만 데우스는 정반대였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미래를 누구보다 반가워했다.

“사실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즐거울 것 같아요.”

순진무구한 눈빛에 담긴 것은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닌, 드디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이런 게 살아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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