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3 (243/305)

#243

성대한 파티가 시작되는 순간 팡파르 대신 총성이 울린다면 이런 느낌일까. 데우스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총을 빼앗았어야했다. 설마 카르사 제국력과 같은 나이를 가진 사람이 평범한 자기소개도 못할 줄은 몰랐지. 이대로 가다간 친구는 무슨 동료도 되긴 글렀다.

연구실에 감도는 분위기는 동짓날 밤만큼 어둡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열심히 잔머리를 굴렸다. 그때 쾌활한 웃음소리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졌다.

“푸핫, 제 얘기는 또 언제 했대요?”

“…네?”

“졸업 발표 때 했던 연구를 계속하고 있기는 한데, 설마 그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진은 웃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풀어진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단은 마주 웃었다. 하하, 하…. 어색한 웃음이 사그라질 즈음 뒤늦게 눈치챘다. 진이 데우스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어른스럽게 말해서 놀랐잖아요.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게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 누가 어린 소년이 제 과거와 기억을 전부 알고 있다고 의심하겠는가. 데우스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이상, 그냥 조금 특이한 소년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요. 약초 지식을 저보다 훨씬 잘 알고 있는 것 같군요.”

세잔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뭐지? 첫인상을 망쳤다는 건, 단순히 내 기우였나? 세잔과 진은 데우스를 꽤나 호의적으로 대했다. 꼭 엘리베이터에서 똘똘한 학생을 마주친 어른처럼 말이다.

진은 소파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서 상체를 아예 데우스 쪽으로 기울였다.

“데우스라고 했나요?”

“맞아요. 진.”

“하하, 예전에 우리 마을에 있던 꼬맹이가 생각나네요. 웬만한 어른보다 똑똑해서 맨날 나보고 바보라고 놀렸는데.”

농담조로 흘려 말하는 진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그냥 똑똑한 소년으로 보여서. 혹시 지금처럼 경계를 낮추기 위해서 일부러 어린 모습으로 둔갑한 건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던가. 양의 탈을 쓴 뱀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가 태오를 도왔다길래 의아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죠? 저도요. 태오 주변엔 꼭 대단한 사람들만 모인다니까요.”

세잔과 진이 평소처럼 말을 주고받으니, 가만히 있던 아이리스가 발끈했다.

“야. 어떻게 그렇게 경계를 쉽게 푸냐?”

“태오가 소개해 준 사람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이리스는 의심으로 물든 눈초리로 데우스를 흘겨보았다.

“네가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못 봐서 그래.”

아무래도 그 광경을 목격당한 게 문제였다. 말 그대로 새파랗게 젊은 애가 나를 깔고 있었으니 의심받아 마땅했다. 그런데 바로 말할 줄 알았던 아이리스는 생각 외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내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 주는 건가. 마음씀씀이가 고마운 한편, 아직도 오해가 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그 사이 세잔과 진은 점점 데우스에 대한 경계의 벽을 내렸다.

“어린아이라서… 의심하기가 좀 그래요.”

“동감입니다.”

“아니, 겉모습에 현혹되면 안 된다니까?”

아이리스가 틈틈이 트집을 잡아도 소용없었다.

“게다가 태오를 도와준다고 하잖습니까.”

“맞아요. 우리랑 똑같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더 이상 아이리스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은 데우스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곤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아기자기한 리본으로 묶인 봉지를 꺼냈다. 건너에 있는 나한테까지 달콤한 향기가 훅 퍼졌다.

“먹을래요? 교수님한테 들어온 선물이긴 한데.”

리본을 풀자 알록달록한 사탕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데우스는 미묘한 표정으로 사탕을 보고만 있었다. 음식을 먹을 수도, 먹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긴 어려웠나 보다. 선뜻 받지 않으니 진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 혹시 단 거 안 좋아하나…?”

“아니에요. 고마워요.”

그 말에 데우스는 고민을 뒤로 하고 사탕주머니를 건네받았다. 이내 데우스가 딸기 향이 나는 사탕을 입에 넣으니 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 정말로 평범해 보이긴 했다.

“그래서 약초에 대해선 어떻게 잘 아는 거예요?”

“꽤 오래 봤거든요. 약초를.”

“오. 산속 마을에서 자랐나 봐요? 나돈데!”

심지어 진과 대화를 하는 데우스가 진심으로 즐거워 보여서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정말로 친구가 필요했던 건가? 내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뭔가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고도의 연기인지, 진심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데우스를 조용히 관찰했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이리스가 내 팔을 확 잡아끌며 속삭였다.

“너, 진짜 이대로 괜찮은 거냐?”

“네? 뭐가요?”

“쟤한테 뭐 협박당한 거 없어?”

참 아이리스다운 걱정이었다. 물론 나도 데우스의 진의를 의심하긴 했다만…. 정작 데우스가 내게 정체를 숨겨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지극히 평범했다.

“아뇨. 그냥… 여러분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뭐? 친구?”

“…네.”

덩달아 아리송해진 아이리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이해되지 않겠지. 데우스를 더 오랫동안 지켜본 나도 안 되는 걸.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이리스는 습,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소리하면서 너 따라다니던 장승 하나 있지 않았냐?”

누굴 말하는 거지.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다가 문득 한 명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휘브리스 말이에요?”

“아, 맞아. 그놈은 어디 갔어?”

“제가 따로 부탁한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어요.”

“흐음.”

아이리스는 못마땅한 듯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휘브리스가 그렇게 수상…했었지. 심지어 키도 훤칠한 바람에 소년의 행색을 한 데우스처럼 경계를 풀 만한 요소도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리스의 눈에는 휘브나 데우스나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아무튼, 제발 아무한테나 마음 열고 그러지 마라. 그러니까 비슷한 놈들이 계속 엮이는 거 아니야.”

내 팔을 단단히 잡고서 신신당부하는 모습이 퍽 진지했다.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습에 새삼 감동을 받다가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심각한 얼굴에 대고 웃으면 예의가 아니니 억지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인데.”

“아뇨. 그냥….”

“뭔데?”

“…아이리스도 맨 처음엔 이런 식으로 저랑 친해졌잖아요.”

비밀을 속삭이듯 은근한 어조로 말하자 아이리스의 귀 끝이 화악 붉어졌다. 옛날에도 비슷한 얘길 했던 것 같은데. 끝내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와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러자 아이리스는 어지간히 민망해졌는지, 내 손을 뿌리치듯 놓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아, 좀! 그 얘기는 이제 됐잖아.”

“아하하, 미안해요. 미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사과하자 아이리스는 됐다며 손을 휘적거렸다.

좋게 말해서 이리저리 마음을 쓰는 거지, 단지 오지랖이 넓을 뿐이다. 그래도 내가 마음을 연 덕분에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이리스도, 이카로스도, 휘브리스도… 어쩌면 데우스도 그들처럼 변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동안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존재이기에 이번만큼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아직까지 대화하고 있는 진과 데우스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진이 대뜸 내게 물었다.

“혹시 앞으로도 데우스와 여행을 같이 다니는 거예요?”

“네? 으음, 아마도요.”

“그럼 다른 사람한테는 데우스가 교수님한테 후견받고 있다고 소개하는 게 어때요? 그편이 괜한 추궁을 피하기도 좋을 것 같아서요.”

진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디어가 좋기야 하다만, 오늘 일을 보니 왠지 남들에게 데우스를 소개 안 하고 싶어졌다. 애초에 결계와 현실을 계속 오고 갈 테니 오늘처럼 소개할 일도 없을 거고.

그럼에도 진은 계속 그럴싸한 신분을 만들어 주었다.

“아니면, 가족이라고 속이는 건 좀 그런가요?”

“네? 가족이요?”

“어린 조카쯤이요. …아, 교수님이 불편하시려나.”

데우스가 아스레인과 가족이라고? 무어라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상 그들은 견원지간이다. 뿔을 잘라간 자와 뿔을 되찾으려는 자. 아무리 유피테르와 데우스가 다르다고 해도, 아스레인의 입장에선 원수와 한 배에 탄 거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세잔마저 데우스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듣고 보니 약간 교수님이랑 닮은 거 같기도 합니다.”

“그죠? 이목구비도 오목조목하고, 인물이 훤하다니까요.”

닮았…다고? 둘이? 그들이 서로의 말에 맞장구치니 나도 모르게 시선이 데우스에게 향했다. 날렵한 이목구비나 신비로운 분위기가 비슷하긴 해도 가족처럼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데우스는 그저 앉아서 제게 쏠린 시선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이리스는 대놓고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아주 그냥 교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지 그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저 밖에서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진이 질끈 눈을 감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으아아… 바인하르 교수님 오시겠네.”

잔뜩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참 대학원생의 표본이었다. 좀비 같은 뒷모습에서 왠지 옛날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힘내라고 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직 소파에 앉아있는 세잔과 아이리스를 돌아보았다.

“이만 수업가야하지 않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어서 가 봐요. 저 바로 떠나진 않으니까요.”

아직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지도 않았다. 소리 소문 없이 떠나진 않을 거라고 안심시키자 세잔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나와 데우스를 단둘이 남기고 떠나야한단 생각에 선뜻 일어나지 못했다.

“너,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그럼요. 아이리스.”

아들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잔소리만 하는 아빠를 보는 듯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리스는 미련을 뚝뚝 남기며 걸음을 돌렸다. 그들을 배웅하러 나가는 사이, 데우스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있었다. 홀로 남은 데우스를 챙기는 건 역시 진이었다.

“다음에 또 봐요. 사탕 잘 먹고!”

진이 팔까지 붕붕 흔들며 인사하자 데우스는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러모로 의외의 연속이었다. 이후 그들이 떠나간 연구실엔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연구실 문을 닫는 순간 까득, 사탕이 깨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이내 데우스는 반쪽 난 사탕을 뱉어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이런 걸 달콤하다고 먹는 건가요? …아무 맛도 안 느껴지는데.”

“그럼 받지 말지 그랬어요?”

“제물을 거절하지 않는 건, 신이 된 자의 도리라서요.”

데우스는 테이블에 놓인 사탕 주머니를 흘겨보며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작은 손짓 한 번에 모든 사탕이 파삭 으깨어졌다. 사탕을 주며 기뻐하던 진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버렸다.

“뭐 하는 거예요?”

“필요 없어서 부쉈어요.”

산산조각 난 사탕이 차갑게 메마른 그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인간들이 왜 계속 친구를 원하는 지 궁금했는데, 전혀 모르겠네요. 그래도 어린아이 취급 받는 건 제법 흥미로웠어요.”

이유가 단지 그거였나. 유피테르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것을 찾아왔다. 아마도 그 사이엔 믿을 만한 친구도 껴 있었겠지. 데우스는 친구를 원하는 마음이 궁금했나 보다. 아니, 내게 그리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은 맛도 못 느끼는 사탕을 성의 때문에 억지로 먹진 않거든.

“제물 운운하는 것치고는 꽤 기뻐 보이던데요?”

“…네?”

“선물을 받은 당신이요. 그 후로 진과 세잔이랑 대화할 때도 그렇고…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어요. 설마 그것도 연기라고 할 셈인가요?”

데우스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지만, 하늘색 눈동자가 그리 서슬 퍼렇게 보인 건 처음이었다. 집요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바닥에 떨어진 사탕 조각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아니면, 역시 절대자도 외로움은 이길 수 없나 봐요?”

한겨울 눈보라가 치듯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게 데우스의 심경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사탕을 다 치우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니 마침 아스레인이 연구실로 돌아왔다. 태연한 얼굴로 들어오던 아스레인은 내 옆에 있는 데우스를 발견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뭐지?”

어린 소년을 쏘아보는 금빛 눈동자가 삽시간에 서리로 얼어붙었다. 옆에 있는 나조차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엄청난 살의였다. 하지만 데우스는 여유롭게 제 가슴에 손을 얹으며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네요. …그 마물이시여.”

“네가 태오가 말한 그 뱀인가.”

팽팽한 긴장감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파리하게 말라붙은 입술에선 억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단신으로 닉스와 아스레인의 다툼을 중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진심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스레인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왜 하필 인간의 모습이지? …유피테르.”

“이 편이 눈을 속이기에 좋지 않나요? 그리고 전 유피테르가 아니라 데우스예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이군.”

서로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순도 높은 마력과 신력이 부딪쳐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연구실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그와 달리 데우스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럼 새로 지어 주시나요?”

“내가 왜 너 따위에게 이름을 줘야 하나.”

“앞으로 한 배를 탄 사이인데, 나름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

“…친하게 지내?”

살의를 가득 담은 눈빛이 비수처럼 날아가 데우스의 얼굴에 꽂혔다.

“네가 한 짓을 잊은 건가?”

“그건 내가 대신 사과하죠.”

“대신이 아니라, 너는 너다. 유피테르.”

성큼성큼 다가온 아스레인은 단숨에 데우스의 하관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부릅뜬 눈에 서린 마력에 저절로 두 손 가득 식은땀이 배어났다. 어서 끼어들어서 막아야 하는데, 아득히 높은 절벽을 마주한 듯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누가 절대자의 싸움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윽고 아스레인은 소름끼칠 정도로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남의 피를 먹고 나왔으면, 부디 얌전히 있어라.”

“…그러죠.”

다행히 데우스가 그에 수긍하며 날카로운 마력이 한풀 꺾였다. 아스레인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나를 흘겨보고는 이만 화를 억눌렀다. 그런데 데우스는 아스레인의 등에 대고 웃음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뭐?”

“다시 불러 드릴까요?”

데우스는 안색 한 번 변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저 뱀이, 정말로 미쳐 버린 건가? 그에 아스레인은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듯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낼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데우스는 사르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태오의 친구들이 나와 당신이 닮았다더군요. 꼭… 부자지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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