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 (237/305)

#237

“혹시 느껴지는 거 없어요?”

“…아무것도.”

아스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겼다면, 닉스가 가지고 있던 힘이 아스레인에게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아스레인은 지금껏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확언했다. 다행이다. …물론 그 안도감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기우일 것이라 말한 아스레인도 점차 이상해하는 눈치였다. 끝을 모르고 커지는 불안감은 불행하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방학 때 사라졌던 아스레인,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 부모님.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은 내게는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다.

하염없이 지나가는 일분일초가 괴로워서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이대론 안 되겠어요.”

더 이상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닉스를 소환해야겠다. 평소라면 큰 힘을 써야 하는 나를 말렸을 아스레인도 이번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 히페리온을 소환할 때는 자연물의 힘을 빌렸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곧장 코어로 마력을 모으며 밤하늘 아래 환히 웃는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닉스.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여기로 와 줘요.”

닉스에게 왜 휴식을 방해했냐며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핀잔이라도 듣고 싶다. 하지만 몇 번이고 닉스를 불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어에 모인 마력은 충분했다. 그러니 그가 소환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

“의식이… 없는 건가……?”

타의에 의해 소환에 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일대의 헤카테는 전부 처리했다. 그가 인간이나 마물에게 공격당했을 리는 없고. 그럼 설마 유피테르가….

텅 빈 손을 멍하니 들여다보던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고려하고 싶지 않다. 최후의 경우 따위. 불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이, 아스레인이 단호히 말했다.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걸세.”

“…네?”

“찾아야 하지 않겠나.”

굳은 의지로 다져진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그래. 찾으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윽고 아스레인은 헤카테의 근원을 찾을 때처럼 마력을 넓게 흩뿌렸다. 대륙을 뒤덮은 유피테르의 신력이 사라진 지금, 오르커스를 지배하는 거대한 힘은 두 개다. 벤테온의 손을 중심으로 형성된 푸른 수정 숲. 그리고 잠들어 있는 닉스.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온 신경을 곤두세운 아스레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찾았다.”

마력을 머금고 일렁거리는 눈동자는 단숨에 창밖을 향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닉스를 재회한 곳- 벤테온의 손이었다. 두말할 것 없이 곧장 아스레인과 푸른 수정 숲으로 향했다.

어둑한 새벽녘에도 푸른 수정들은 대낮처럼 환하게 빛났다. 하늘로 높이 뻗은 벤테온의 손과 서로 얽히고설킨 수정은 꼭 얼음 결정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닉스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정말 여기 있는 거예요?”

다급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묻자 아스레인은 수정 사이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의 발길이 멈춘 곳은 청년이 떨어질 뻔했던 낭떠러지 앞이었다.

“이 아래에 있네.”

아스레인의 말에 일순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차마 아래를 내려다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굴러 떨어진 돌조각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높이였다. 그런데 까마득히 낮은 저 아래에 닉스가 있단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손으로 아스레인의 팔을 붙잡았다.

“…어서 가죠.”

식은땀이 날 정도로 두려워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닉스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보다 무서운 일은 없었으니까. 이윽고 아스레인은 나를 번쩍 안아 들고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 번지점프를 하면 이런 기분일까. 엄청난 속도로 훅 떨어지는 감각에 아스레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어느 순간, 귓등을 때리던 바람이 멎었다. 탁! 가볍게 착지하는 소리에 조심스레 눈을 떴다. 지붕처럼 머리 위를 덮던 하늘은 사라지고, 양옆이 바위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달과는 아득히 먼 이곳에도 부서진 수정 조각이 흩뿌려져 있어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고마워요.”

아스레인의 품에서 벗어나 두 발로 제자리에 섰다. 그 후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멎는 듯했다. 협곡 밑바닥 가장 구석진 자리에 거대한 거미가 머물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크기였으나,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닉스…?”

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어나요. 아무리 아침이 싫어도 다시 오기로 했잖아요.”

생명의 온기가 너무도 흐릿해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난치는 거죠? ……거짓말.”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거짓말, 거짓말. 마치 나를 세뇌시키듯 몇 번이고 울리다 사라졌다. 그럼에도 닉스는 깨어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니 그의 한쪽 다리에 새겨진 흉터가 눈에 띄었다.

레톤의 창에 찔려 체내로 들어온 신력이 코어까지 번질 뻔했다던가. 그래도 닉스는 방대한 마력으로 신력을 밀어낸 덕분에 침식당하지 않고 버텼다. 끝내 창을 빼내는 순간 신력도 함께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거미줄 모양으로 쳐진 흉터가 다리뿐만 아니라 그의 가슴께까지 멀리 퍼져 있었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내 예상이 틀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낮게 깔린 목소리가 잔인한 선고를 내렸다.

“코어가… 먹혔군.”

“…네? 먹혔다뇨?”

“코어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던 마력이 사라지니, 남아 있던 신력이 곧장 파고든 모양이네.”

잊고 있었다.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오랜 기간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다가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인간으로 치면 생사를 오가는 중병을 앓다가 이제 겨우 퇴원한 셈이었다. 그런 마물에게 내가, 괜찮다는 말에 의심도 안하고 그저….

‘헤메라. 말했지? 나는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아.’

기억을 스치는 목소리에 일순 감정이 북받쳐 입을 틀어막았다. 볼품없이 떨리는 숨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죽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코어가 부서지면 텅 빈 육체만 남을 뿐. 그래 봤자 껍데기만 남은 닉스는 더 이상 닉스가 아니다.

심심하다며 내게 장난을 치고, 별 일 아니라며 웃고, 인간은 싫다면서도 매번 나를 도와주고, 나를 태오가 아닌 헤메라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존재. 나의 친구.

“아스레인. 어떻게… 어떻게 안 될까요?”

“일단 해 보겠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아스레인이 즉시 닉스에게로 다가갔다. 마력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은데,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혹시라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돌아올까 봐. 다신 닉스를 볼 수 없다는 이야길 들을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에 나는 속절없이 당하고 있었다.

‘그런 너를 미워하려야 미워지지가 않아. 그저 흔하디흔한 인간 중에 하나일 뿐인데….’

‘아무래도 나는 계속, 빛이 그리웠었나 봐.’

이별은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언제나 그랬다. 부모님의 죽음도, 심지어 나의 죽음조차도 미리 예견하지 못했다. 다녀올게, 그 흔한 한마디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불과 하루 전 웃으며 인사했던 사람이 하얀 국화 속에 둘러싸인 사진으로 남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누구도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기꺼이 대비하지 않는다. 애써 모르는 척 눈을 돌리고, 심지어 코앞까지 다가오면 아예 눈을 감아 버린다. 영생을 사는 신도 아닌데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죽음을 잊은 채 살아간다. …지금의 나처럼.

‘헤메라. 정말로 낮과 밤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이제는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데, 들어줄 이가 없다. 곤란한 듯 찌푸린 아스레인의 옆얼굴을 보며 서서히 저물어 가는 희망을 느낀다. 겨우 아침이 되어서야 아스레인이 닉스에게서 손을 뗐다. 새벽 내내 돌처럼 굳어 있던 입을 슬그머니 뗐다.

“어때요?”

애써 기대하지 않는 척 말을 꺼내자 아스레인은 어깨 너머로 대답했다.

“아직 완전히 코어가 당한 건 아니네.”

“그럼…!”

“하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 않네.”

넌지시 나를 돌아보는 금색 눈동자는 체념의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평소라면 닉스에게 그 정도 마력 소모쯤은 문제도 아니었네. 쉴 필요도 없었지. 다만, 헤카테를 상대하느라 마력을 계속해서 소모한 게 문제였지.”

헤카테가 닉스를 상대로 소모전을 한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 아니었나. 유피테르는 알고 있던 것이다. 닉스가 계속해서 마력을 쓰면 코어 주변을 감싸고 있던 힘이 사라질 테고… 결국 몸 안에 남은 레톤의 신력이 코어로 침투할 수 있게 되리라고.

이상할 정도로 많은 양의 헤카테는 처음부터 우리가 아니라 닉스를 노린 짓이었다.

“그는 죽지 않네. 다만, 서서히 의식이 사라져 육체만 남게 되겠지.”

“그럼… 이대로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닉스에게 도와 달라고만 안 했더라면…. 아스레인과 나, 둘이서도 충분하다고 강경하게 말했더라면 미래가 조금 달라졌을까. 닉스를 제거할 것이란 선견을 듣고도 무시한 나를 향한 천벌인가?

머리에서부터 피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차디찬 손끝과 파리해진 입술이 꼭 설원에 맨몸으로 내놓인 듯했다. 혹시 나라면 그의 코어에 깃든 신력을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기대를 품고 발을 움직여 닉스에게 다가갔다. 나보다 따뜻한 육체에 손을 얹고 신의 불을 흡수하듯 기운을 빨아들이려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아스레인. 저….”

어째서 할 수 없는 게 아무것도 없죠? 쓰디쓴 말은 채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멍하니 벌어진 입술 사이로 검은 절망만 흘러나갔다. 눈앞에 꺼져가는 불씨를 발견하고도 다 타 버리기만을 그냥 기다려야 한다니.

무한한 절망으로 빠져들던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방법이 있긴 하다만.”

“그게 뭔데요?”

눈을 한껏 빛내자 아스레인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코어를 새로 만드는 걸세.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지금으로선 유일한 길이네.”

신력에 잠식된 코어를 새로 만든다. 오직 닉스를 창조한 아스레인만 가능한 방법이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닉스를 살릴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아스레인만 괜찮다면 그렇게 해 주세요.”

“정말 괜찮겠나?”

“당연하죠! 닉스가 깨어난다는데….”

고민할 것도 없었다. 두 눈을 환하게 빛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런데 아스레인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지, 한동안 말하기를 망설이던 아스레인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간의 기억이 사라진대도?”

“…네?”

“코어를 만들려거든 처음부터 새로 구축해야 하네. 물론 외형이나 목소리, 성격은 똑같이 만들어낼 순 있지만, 지금껏 축적된 기억과 감정까진 담아내지 못할 걸세.”

“그건….”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말문이 막혔다. 제아무리 외형이 같아도 기억이 없으면….

“닉스가 아니잖아요.”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겠나.”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목숨보다야 기억이 소중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선뜻 좋다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닉스가 태어난다면, 내 기억 속의 닉스는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나를 믿어보겠다며 웃는 닉스는, 작은 인간 아이에게 돌멩이라는 애칭을 붙여 주는 다정한 마물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러니까….”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 같다. 먹먹한 가슴을 아무리 두드려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스레인도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레인은 나보다 훨씬 닉스와 지내 온 시간이 많았다.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한다지만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함께한 기억을 흘려 버리기엔 아쉽겠지.

결국 아무 대답도 못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처음으로 선택을 포기한 순간이었다. 모든 방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도 전부 유피테르의 계획이었나. 지독하다. 누구보다 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기에, 어떻게 하면 고통 받는 지도 잘 알고 있었다.

“…미안하네.”

아스레인이 무거운 손으로 내 어깨를 그러쥐었다. 그 후 걸음을 돌려 닉스에게 다가가는 그는 선택을 내린 것 같았다. 새로이 코어를 만드는 길을. 왠지 모르게 슬픈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끝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닉스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로, 신력에 잠식당한 코어를 살릴 길이. 머리가 터져라 고민하던 그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당신에겐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까진 계획에 큰 차질 없이 흘러가고 있어요. 하지만 ‘나’도 딱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점이 있어요.’

상황을 바꾸긴 위해선 단 하나의 변수가 필요하다. 비록 유피테르는 내 미래를 보지 못하지만, 내 주변을 조종해 어떻게든 하나의 결말로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아직 그가 모르는 변수가 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거.’

결계에서 만난 뱀. 그와의 인연이 아직 유피테르가 모르는 변수였다.

“아그누스.”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림자에서 검은 새가 날개를 펼치며 튀어나왔다. 어서 벤테온의 신전으로 가야 한다는 집념에 아그누스가 응해 준 것이다. 서둘러 등에 올라타니 아그누스는 절벽 위로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벤테온의 신전에 도착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도실로 들어갔다. 쾅! 거칠게 열린 문 너머로 칼자루가 보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끝내 주인의 목숨을 앗아 간 검. 그리고 벤테온의 신력을 머금어 끝내 성물이 된 물건. 조심스럽게 다가가 칼자루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닦아 냈다. 그러자 날렵하게 새겨진 문장이 자태를 드러냈다.

“지키고자 검을 휘두르는 자에겐 축복이 깃들 것이오, 의심에 지배당한 자는 그 칼날이 스스로에게 향할 것이다.”

신뢰와 의심의 검. 마치 뱀을 믿지 못하는 나를 뜻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막 칼자루를 집어 들려는 순간, 기도실로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당황한 듯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어디로 가나 했더니….”

성큼성큼 다가온 아스레인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곧장 나를 구석구석 살피는 눈빛에 걱정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짜고짜 아그누스를 불러내 사라졌으니 심히 놀랐겠지. 어깨에 올라온 손을 겹쳐 잡으며 순순히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요.”

“괜찮으니 말해 주게. 왜 갑자기 여기로 온 건가.”

대답 대신 칼자루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한차례 먼지를 걷어내자 칼자루 중심에 박힌 푸른 수정이 더욱 영롱하게 빛났다. 신의의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해성사하듯 천천히 읊조렸다.

“아스레인. 저는 닉스를 살리고 싶어요. 제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닉스를요.”

“…….”

“그건 아스레인도 마찬가지겠죠.”

무거운 침묵이 기도실에 내려앉았다. 그러니 머릿속에 맴도는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믿을 수밖에 없을 걸요. 곧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물음에 뱀은 그리 말했다. 퍽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제는 그 자신감의 원천을 알겠다.

‘도움이 필요해지거든 이 검으로 서슴없이 찔러요.’

뱀은 알고 있었다. 유피테르의 계획을.

‘잊지 마요. 당신은 나한테 빚을 진 거예요.’

그래서 그 점을 나와의 거래수단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닉스를 살리기 위해 끝내 자신이 알려준 대로 움직이게 되리란 것도 예상했겠지. 이제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뱀의 말마따나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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