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꿈에서 그 마물을 만났던 때가.
그늘 아래서 홀연히 빛나던 찬란한 자태를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온몸을 뒤덮은 금색 비늘은 마치 노을에 물든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아니, 이 세계 어디에서도 그와 비슷한 광경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늘 바라 왔다. 죽기 전, 단 한 번이라도 그의 본모습과 직접 마주하고 싶다고. 고요하게 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건드리는 힘이 있었다. 단숨에 숨결과 마음도 모자라 영혼마저도 빼앗아 버리는 그를 보며 확신했다.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그 미지의 마물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신이시여….”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가 자신의 신을 찾기 바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눈에 정체를 알아챈 이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에 역사에 묻힌 존재이기 때문일까. 대개 성벽을 부순 마물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듯했다. 차라리 이대로 모르는 편이 나았다.
그러던 그때, 누군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 마물’이 여기에….”
끝내 언급되어선 안 될 이름이 드러나고 말았다. 일순 이아페 섬 전체가 물속에 잠긴 듯 먹먹한 고요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마물’은 이미 죽었다. 위대한 선황 유피테르의 손에 무자비하게 토벌되었단 말이다.
그런데 망자가 버젓이 눈앞에 존재하니, 사람들은 아연질색하며 중얼거렸다.
“거짓말! 그는 예전에 죽었어.”
“그래…. 선황 폐하께서 우리를 위해 물리치셨잖아?”
“그럼 저건 뭐지?”
진짜가 아니다. 애당초 진짜일 수가 없다. 전설 속 ‘그 마물’은 지금 내 옆에 있으니까. 그럼 저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스레인이라면 가짜의 정체를 알 것 같아서 조용히 옆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마물’을 주시하는 아스레인의 옆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휘둥그레 뜬 눈은 자신과 똑같은 존재의 등장을 믿을 수 없는 듯 보였다.
“아스레인….”
조심스레 붙잡은 그의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동요하기도 잠시, 아스레인은 곧 평정을 되찾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마법을 쓰려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이아페를 샅샅이 훑어보던 그 마물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이내 세로로 날카롭게 찢어진 동공이 살의로 번뜩였다. 살벌한 시선의 끝엔 제단 앞에 선 대사제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설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마물이 대사제를 공격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피해야 했다.
그러나 끼어들 틈도 없이 그 마물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대한 날개가 태양을 가려 이아페에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윽고 그는 먹잇감을 찾은 매처럼 제단으로 돌진했다.
“꺄아아아악!!”
눈 깜짝할 새였다. 그의 날갯짓 한 번에 제단으로 향하는 계단이 와르르 무너졌다. 산산조각 난 잔해가 모래 폭풍과 함께 사람들을 덮쳐 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돌을 피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때 머리 위로 떨어지던 파편이 허공에서 우뚝 멈췄다.
“어…?”
틀림없이 깔릴 줄 알고 몸을 웅크린 이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대뜸 두 손을 모으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시, 신의 기적이야. 신께서 우릴 지켜 주신 거라고!”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성전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부리나케 도망쳤다. 하지만 그건 신의 기적이 아니라 아스레인의 마법이었다. 기분 나쁠 법한 오해에도 아스레인은 아무렇지 않게 파편을 구석으로 치웠다.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알아챈 중년이 아스레인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인사는 됐으니 서두르게.”
그를 마지막으로 계단 가까이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전부 회랑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아페 전체를 뒤덮은 모래 폭풍 사이로,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저리 비켜!”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사이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노약자를 향한 양보 따위는 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먼저 나가려고 서로를 밀치는 바람에 넘어지는 사람도 많았다. 인자한 미소로 신께 기도하는 모습 따위 전부 꾸며진 가면이었다.
쏟아지는 인파를 뒤로 하고 모래먼지로 뒤덮인 제단을 주시했다.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보니 점점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대사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만약 ‘그 마물’이 대사제를 해쳤다면, 단순한 사고로 넘어가진 못할 것이다.
“어서 가 보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서둘러 앞으로 가려는데, 아스레인이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잠깐. 아직은 위험하네.”
그 말과 동시에 정리되지 않은 파편이 굴러 떨어졌다. 사고 현장으로 뛰어드는 게 위험하긴 하다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대사제의 안위를 파악하기에 앞서 ‘그 마물’의 정체를 알아야만 했다.
“일단 ‘그’를 붙잡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마물이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 이상, 반드시 붙잡아서 복제품이란 증거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스레인은 자욱한 모래먼지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감정이 메마른 입술 새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사라졌네.”
“…네?”
때마침 시야를 자욱하게 메운 모래 먼지가 서서히 걷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폐허가 된 제단 위로 피어오른 불꽃이었다.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에 반해, 곳곳에 힘없이 쓰러진 사제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는 의식을 잃은 대사제도 있었다. 정작 이 참사를 만들어 낸 ‘그 마물’은 모래먼지와 함께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대사제의 생사를 확인하려는데, 건물 파편 사이로 웬 신음 소리가 들렸다.
“으윽….”
힘겹게 돌무더기를 헤집고 나온 사람은 버시스 부사제였다. 버시스는 단정한 옷차림이 거의 넝마가 되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곧장 대사제부터 찾았다. 이윽고 파편 옆에 쓰러진 대사제를 발견하자마자 사색이 되어 달려갔다.
“대사제님!!”
무릎을 꿇은 버시스는 조심스럽게 대사제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간절한 부름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이내 허리춤에 얹혀 있던 대사제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자국이 드러났다. 마치 화선지에 물을 한껏 머금은 붉은 물감이 퍼져나가는 듯했다.
“피, 피다…!”
뒤늦게 제단으로 올라온 사제가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진득한 핏자국을 발견한 눈은 빠르게 공포로 물들어 갔다. 사제는 섣불리 다가가진 못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겠죠?”
“어디서 그런 망발을 하는가!”
매몰차게 호통을 친 버시스는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중얼거렸다.
“그리 쉽게… 당하실 분이 아니다.”
그 사이 호위병 넷이 들것을 들고 왔다. 수많은 훈련을 받은 병사들마저도 대사제의 부상 앞에서 별 수 없었다. 버시스는 당황해서 굳어 버린 병사들을 향해 다급히 손짓했다.
“거서 뭐 하느냐!”
“예, 예.”
“어서 대사제님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 믿을 만한 의원을 부르거라!”
그 명령에 호위병들은 곧장 대사제를 들것에 옮겨 눕혔다. 이윽고 들것을 들자 돌무더기 위로 부상 입은 대사제의 모습이 드러났다. 순백의 옷에 퍼진 핏자국은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뚜렷했다.
역시나 그 모습을 발견한 누군가 절망에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그, 그 마물이… 대사제님을 해쳤다!”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
소문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길거리, 상점, 인파가 몰린 곳은 어디하나 빠지지 않고 같은 화제로 떠들어 댔다. 가장 신성해야 할 축도의 날에 드러난 불길한 신탁과 그 마물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탓에 벌써부터 제국을 떠날 채비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을 광장에 황실의 깃발을 단 기사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 얼굴까지 전부 철갑옷으로 가린 기사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이아페에서 들은 신탁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자는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금빛 마물’의 행방을 아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알리도록 해라.”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기사는 말의 고삐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황명이다!”
그 마지막 한마디에 웅성거림조차 단번에 묵살되었다.
그 후로 독수리 깃발이 마을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광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휩싸였다. 혹시라도 화를 입을까 봐 사람들은 곧바로 입을 다물고 제 일상을 찾아 돌아갔다. 그 덕분에 소문은 잠잠해졌으나, 사정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소란으로 인해 축제가 끝났음은 물론이고 이아페마저 폐쇄되었다. 하지만 당장 이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황명이 내려진 이상, 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모든 사건이 없었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어떡하죠?”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지.”
아스레인의 말에 순순히 광장을 빠져나와 여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짐을 챙겨 나오던 진과 마주했다. 나와 아스레인을 본 진은 짐을 던지듯 내려놓고 달려왔다.
“태오! 무사했군요!”
“…진.”
“다친 데 없어요? 괜찮아요?”
기사가 찾아오기 전, 마을에서 대강 소문을 들은 모양이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와전된 소문을 믿느니 내가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나았다. 조용히 구석진 자리로 옮겨 이아페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전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일그러졌다. 그 중 아이리스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뭐?! 그 마물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세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에 명을 달리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그건… 가짜인 것 같아요.”
“가짜…말입니까?”
상공에 나타난 그 마물이 진짜일 수는 없다. 그 사실을 남들에게 입증하기는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아스레인이 ‘그 마물’이니까. 설명할 방법이 없어 말을 멈추자 줄곧 침묵을 지키던 아스레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헤카테.”
“…예?”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에 마석으로 힘을 불어넣은 걸세.”
헤카테.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 봤나 했더니, 예전에 아이리스가 도서관에서 만들어 냈던 뱀이 헤카테였다. 마석을 심어 시전자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인공체. 아스레인은 이아페에 나타난 ‘그 마물’이 헤카테라고 단언했다.
모두가 납득해 가던 와중에 세잔만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헤카테는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고대 마법입니다. 그걸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아는 이가 여전히 남아 있단 말입니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나도… 알고 있어.”
“예?”
갑작스러운 아이리스의 고백에 세잔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모두의 시선이 아이리스에게 닿았다. 잠시 말을 고르던 아이리스는 눈을 지르감으며 후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작 밑에서 일할 때 배웠거든. 그러니까… 아예 폐기된 건 아니야.”
전부터 궁금하긴 했다. 클라우스 자작이 어떻게 고대 마법인 헤카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인지. 답을 알기도 전에 자작이 죽어 영원한 난제로 남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 흐름을 대강 알 것 같았다. 흑막의 그림자는 그때부터 우리를 드리우고 있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하던 진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럼 누군가가 대사제님을 해칠 의도를 가지고 복제품을 만들어 냈단 거군요.”
“…일단은 그렇겠죠.”
“대사제님은 괜찮아요?”
“부상을 입긴 하셨지만, 다행히 살아계셨어요.”
물론 두 눈으로 생사를 확인하진 못했다. 하지만 살아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버시스의 말마따나 그리 쉽게 당하는 이가 아니니까. 대사제가 무사하단 소식에 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체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한 거죠?”
진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자 옆에 있던 휘브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흐음, 단순히 생각하면 대사제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다들 그리 생각하겠지. 하지만 진상은 정반대일 것이다. 이번 사건의 진범은 대사제를 돕는 사람, 혹은 마물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일을 꾸민 장본인이 대사제라고 확신한다.
헤카테를 붙잡으면 증거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헤카테는 진즉 사라졌고, 그 자리엔 피해자가 된 대사제와 마물에게 앙심을 품은 신도들만 가득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차에 아이리스가 대뜸 말을 꺼냈다.
“범인은 둘째 치고, 진짜 문제는 소문 아니냐?”
아이리스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진 것 같던데.”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창가 쪽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의 사내가 보였다. 술에 잔뜩 취해 눈이 반쯤 감긴 그들은 역시나 이아페 사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신탁 말인데.”
“여보쇼! 말조심해. 그러다 혀가 뽑힌다고.”
“혀만 뽑히면 다행이지. 마누라부터 자식까지 대대로 목이 잘릴지도 몰라.”
“크흠….”
대가 멸할지도 모른단 말에 사내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자 이번엔 옆에 있던 비쩍 마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마물이 다시 나타난 건가?”
“꽃집 아가씨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잖어. 못 믿는 거여?”
“아니, 내 말은 굳이 여기까지 쳐들어올 필요가 있나 싶은 거지.”
“이 사람아. 이유야 당연하잖나.”
맥주 통을 탁! 내려놓은 사내가 은밀하게 말했다.
“복수.”
“엉?”
“우리 인간에 대한 복수겠지.”
결국 저렇게 소문이 퍼지고 만 건가. 상상했던 경우 중 제일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어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그래도 폐하께서 그놈을 잡으려고 병사를 푸셨으니 금방 잡히겠지.”
“애꿎은 대사제님만 안타깝게 됐어. 의식 불명이라니….”
“금방 깨어나시겠지! 누구보다 신의 사랑을 받으시는 분인데.”
빼빼마른 사내는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역시~ 선황 폐하께서 그놈의 숨통을 끊으신 이유가 있었어.”
일순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쯧쯧. 난폭한 미물(微物) 같으니.”
남에게 살의를 느낀다는 것이 무슨 기분인지 똑똑히 깨달았다. 분에 못 이겨 이를 갈자 까득,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그 탓에 내게 다가오던 진의 손이 움츠러들었다. 평소라면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토록 분노가 끓어오른 적이 있었나. 심장에서부터 발끝으로 차가운 피가 감돌았다.
“…하.”
그제야 깨달았다. 이 모든 상황이 카인이 세운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