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외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었다.
온실을 나서는 내내 옆에서 휘브가 무어라 말하는데도 전부 귀로 빠져나갔다. 이미 머리가 과부하 돼서 그의 말을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온실을 빠져나와 선선한 바깥 공기를 맞이하던 그때 살짝 신경질이 난 목소리가 들렸다.
“내 말 듣고 있는 겁니까?”
“…네? 뭐라고 했어요?”
뒤늦게 옆을 돌아보니 휘브가 답답한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나는 평생 마물과 친해지지 못하는 거냐고요.”
“신력이 존재하는 이상 힘들 거예요. 대신 남들에겐 없는 힘이 있잖아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휘브는 그 점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온실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눈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한테 그 목걸이가 있으면요?”
“아코니툼의 정화석은 쉽게 구할 수 없을 텐데요.”
“그 목걸이를 가진 형님이랑 함께 다니면 되잖습니까.”
“누가 같이 다닌대요?”
“물론 내가 따라다니는 거죠.”
따라다닌다고? 대놓고 싫다고 해도 순순히 물러설 사람은 아니었다. 이러다 나중에 현장실습까지 몰래 쫓아올 것만 같았다. 나 같으면 나 불편하다는 사람 억지로 쫓아다니지 않을 것 같은데. 괴롭히려는 게 아닌 이상.
“있잖아요. 휘브.”
“넵?”
“혹시 나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예요?”
슬쩍 눈치를 살피며 말하니 휘브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런 것도 있지만, 단순히 재밌어서요.”
“재밌다고요?”
“다른 사람한테 그토록 친절한 사람이 유독 나한테만 까칠하잖아요. 그게 재밌어요.”
살면서 정말 많은 유형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그 중 유독 대하기 힘든 사람을 고르자면 칼리온과 닉스였다. 그런데 슬슬 순위가 바뀔 것 같았다. 내게 무얼 기대하는지도, 무슨 생각으로 접근하는지도 모를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약간 시스템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 좀 불쾌하군요.
“……!!”
- 제 어디가 그 눈치 없는 인간을 닮았다는 겁니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러자 휘브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았다.
“왜 그래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설마 생각을 엿들은 시스템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뒤에서 욕하다가 들킨 것 같아 왠지 기분이 묘해졌다. 불쑥 튀어나오지 말라는 의미로 헛기침을 하곤 휘브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앞으로 마물은 조심해요.”
“흐음, 아쉽네요.”
“흘려듣지 말고 제대로 새겨요. 강한 마물일수록 특히나 조심하고요. 가진 마력이 많을수록 작은 신력에도 격하게 반응하거든요.”
지금껏 1급 위험 마물을 만나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호숫가에서 나르키소스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몸에 흉터 하나둘 나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 와중에도 휘브는 제 걱정하는 줄은 모르고 신이 나선 말했다.
“그 말은 강한 마물을 만난 적 있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당연히 있죠.”
“오~ 그럼 만났던 마물 중에서 가장 강한 건 뭐였습니까?”
어린 녹찻잎처럼 색이 엷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꼭 공룡 중에 누가 제일 세냐고 묻는 조카 같았다.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에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걸 알아서 뭐하게요.”
“신기하잖아요. 한 번 만나도 보고 싶고.”
“어….”
누군지는 알려줄 수는 없지만, 아마 만난 적은 있을 것이다. 그토록 궁금해 하는 최강의 마물은 다름 아닌 안겔루스 대학에 있으니까. 미묘한 미소와 함께 어물쩍 넘기려는데, 등 뒤에서 나직한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가 싸늘한 눈동자와 마주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아.”
“자넨 누구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때마침 온실에 들여가려던 아스레인과 마주쳤다. 이윽고 내 옆에 있는 휘브를 훑어보는 눈빛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긴장이 될 법도 한데, 정작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장본인은 능청스러웠다.
“아, 그 유명한 아스레인 교수님이시군요.”
휘브는 내가 소개하기도 전에 아스레인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휘브리스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스레인은 미동도 없었다. 악수를 권한 손이 무안할 정도로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히려 옆에 있는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사이로 끼어들려는 차에 휘브가 또 다시 선수쳤다.
“듣던 대로 엄청난 미남이시네. 꽤나 피곤하실….”
“이 시간에 강의실이 아니라 왜 여기 있나. 학생이 아닌가 보지?”
“학생은 맞지만, 수업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샐쭉 웃은 휘브가 별안간 나를 쳐다보았다.
잠깐만. 왜 나를 쳐다보는데? 괜히 오해를 살 만한 말은 하지 말라고 눈짓으로 휘브에게 눈치를 줬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져 아스레인의 발끝을 적신 후였다.
“…중요한 일?”
“예.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요.”
‘단둘’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마자 아스레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휘브는 그 찰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신 겁니까?”
“…….”
“아, 근데 이걸 어쩌나. 단둘의 비밀이라서요.”
나도 모르게 입이 툭 벌어졌다. 물론 휘브가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건 알았지만, 설마 아스레인한테까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비밀은 무슨. 휘브가 가면 곧바로 아스레인에게 보고하려고 했던 나만 이상해졌다.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일단 수습해야만 했다. 최선의 방법은 이 지경까지 온 원인을 없애는 거였다.
“오늘은 고마웠어요. 휘브.”
아무렇지 않은 척 활짝 웃으며 인사하자 휘브가 아쉬운 기색을 비쳤다.
“에이, 벌써 헤어져요?”
“벌써…는 아니죠. 꽤 오래 같이 있었는데.”
이를 꽉 깨물며 어서 가라고 눈짓했다. 정작 그 말에 반응한 건 휘브가 아니라 아스레인이었다.
“오래 같이 있었다, 라….”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정확히 박혔다.
어째서 핀트가 거기로 잡히지?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점점 내가 수습할 수 없게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만 급해졌다. 결국 휘브의 팔을 세게 잡으며 환한 미소로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우리 다음에 얘기해요. 네?”
“뭐, 형님이 곤란하다면 어쩔 수 없죠.”
이내 휘브는 목적을 달성한 듯 후련한 투로 말했다.
“다음에 봐요. 태오 형님. …그리고 교수님.”
그렇게 문제의 근원이 떠나고도 한참 동안 분위기는 싸늘했다. 살얼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것 같았다. 화났나? 아무리 봐도 화난 거 같은데. …이게 질투라기엔 너무 살벌하지. 그치.
아무 말 없이 서있는 아스레인의 소매를 슬쩍 붙잡았다.
“저…. 아스레인.”
흘끗 올려다보니 잔뜩 찌푸린 미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쳐 지나가면서 봐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나마 나와 시선이 마주치니 날이 선 눈매가 한층 누그러들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조심스럽게 반응을 떠봤다.
“화…났어요?”
그러자 아스레인은 여전히 인상을 쓴 채 되물었다.
“내가?”
“…네.”
“왜?”
“표정이 좀….”
뒷말을 흐리자 아스레인이 아, 하면서 검지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제야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이 살며시 펴졌다. 다행이다. 크게 화가 난 건 아닌가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아스레인은 내 머리 위로 부드럽게 손을 올렸다.
“자네한테 화난 게 아니라 신경 쓰여서 그런 걸세.”
무엇이 못마땅한지 아스레인은 눈가를 찡그렸다.
“왜 자꾸 자네 주변에 이상한 게 들러붙는지 모르겠군.”
역시 그게 문제였구나.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 주는 손을 붙잡아 내리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매번 여린 마음에 잘못 얽혀서 고생했던 것을.”
여태 오지랖을 부리다가 얽힌 여러 사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때마다 아스레인이 곁에 있었기에 마냥 기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방금 전의 언행으로 휘브는 이미 아스레인의 눈 밖에 났을 것이다.
그래도 아스레인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자 좋게 변호했다.
“하하, 이번엔 제가 도움을 받았어요. 마법학과 학생인데, 어릴 때 이아페에서 나고 자랐대요.”
“이아페?”
“네. 그래서 관련한 정보를 들었어요.”
“…왠지 기운이 불쾌하더라니.”
쯧, 혀를 차는 소리에 악감정이 가득했다. 어쩌겠어. 아스레인에게 요주의자로 찍힌 이유는 순전히 휘브의 업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싶어 편하게 마음을 놓고 원래 하려던 말을 했다.
“어릴 적에 이아페에 있는 대사제가 저와 비슷한 목걸이를 찬 걸 봤대요.”
“정화석을?”
“기운이 비슷하다고 했는데, 워낙 예전이기도 하고 확실하진 않아요. 아무래도 직접 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사실이라면, 라포 늪의 아코니툼 외에도 다른 정화석을 갖고 있다는 거군.”
“그렇겠죠.”
대사제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테지만, 이번이 아니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아스레인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자못 진지해졌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려 아스레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아무튼 휘브리스에 관한 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착… 착….”
하도 당한 게 많아서 빈말로도 착하단 표현은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조금 비틀어서 말을 얼버무렸다.
“착…한 건 모르겠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아요.”
이쯤이면 최선을 다했다. 그 말에 아스레인도 납득하는 것 같았다. …아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눈을 굴리던 아스레인은 전혀 다른 곳에서 의문을 표했다.
“근데 휘브리스가 누구지?”
일순 귀를 의심했다. 심지어 진심으로 모르는 눈치라서 당황해 버렸다.
“네? 아까 그 학생이요. 아스레인한테 직접 자기 이름을 말했잖아요.”
“안 들어서 모르겠군.”
“아….”
저절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스레인은 정말로 내가 어딘가에 휩쓸릴까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휘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의 눈 밖에 난 게 아니라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아,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온실엔 무슨 일이세요?”
“프라민이라는 마물을 기억하나?”
“아, 네! 당연하죠.”
작은 도마뱀을 닮은 귀여운 마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비록 만나게 된 계기는 썩 좋지 못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워낙 밝아서 안심했었다. 지금쯤 클라우스 자작에게 당한 상처는 많이 나았으려나.
나를 향해 또랑또랑하게 빛나던 라임색 눈동자를 떠올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혹시라도 프라민이 잘못되었을까봐 불안해하니 아스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회복 속도가 빨라서 다른 보호소로 옮겨도 될 것 같다더군.”
“정말요?”
“음. 고향과 가까운 보호소에서 관리하다가 방사하기로 판단했네.”
“진짜 잘됐네요! 안 그래도 가족들 만날 날만 기다렸을 텐데….”
모래판 위에 혼자 쓸쓸이 있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런데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간다니, 기뻐 마땅한 일이었다.
“옮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상태를 확인하러 가던 길인데.”
“저도 갈래요. 아니, 가도 되죠?”
“물론이네. 프라민도 자네가 많이 보고 싶었을 테니까.”
방금 전까지 휘브를 상대하느라 긴장했던 마음이 단숨에 풀렸다. 앞서 온실로 들어가는 아스레인을 따라가다가 문득 예전에 풀지 못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근데 프라민이 어디서 왔는지 아세요?”
“코카서스 산이네.”
“역시 거기가 맞았구나….”
드디어 정답을 얻었다. 그때도 코카서스 산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마땅한 단서가 없어서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스레인에게 지도를 보여 주며 코카서스 산에 대해 물어봤던 때가 똑똑히 기억난다.
“아스레인. 혹시 기억해요?”
“음?”
“제가 ‘그 마물’이 코카서스 산에서 태어났냐고 물었을 때했던 말이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쳐다보니 아스레인이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그땐 어쩔 수 없었네.”
“하하, 저도 알아요.”
그날 아스레인은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죽은 자에 대해 이야기해서 뭘 하겠냐고. 사망 선고에 가까운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당사자 앞에서 본인의 생사를 물었으니까.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아는 지금은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그럼 프라민이랑 아스레인은 같은 곳에서 태어난 거네요?”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렇지.”
“아~ 이제야 후련해졌어요.”
장난스럽게 키득거리자 한숨을 내쉬던 아스레인도 픽, 하고 웃었다.
이윽고 습한 온실을 지나 분리된 구역으로 들어가자 단숨에 공기가 건조해졌다. 처음 약을 발라 주러 갔을 때는 환자실에 있었는데, 어느새 일반 보호실로 옮겨진 모양이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빛 아래 바짝 말라붙은 모래밭이 황량했다.
“프라민?”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자 건조한 엉겅퀴와 바위 사이로 반가운 모습이 드러났다.
[어라, 아저씨!]
사사샥- 빠르게 기어온 프라민이 내 앞에 멈춰 섰다. 상체를 든 모습이 영락없는 도마뱀이었다. 비늘이 벗겨져 붉은 맨살이 드러난 전과 달리 화려한 비늘이 온몸을 감싼 채였다.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손을 뻗으니 프라민이 기다렸다는 듯 팔을 타고 올라왔다.
“오랜만이야. 프라민. 그새 비늘이 많이 돋아났네?”
[네! 하얀 인간이 제 몸에 끈적끈적한 걸 매일 발랐거든요. 전에 아저씨가 발라 준 거랑 똑같은 거요.]
“따갑지 않았어?”
[조금 아팠는데, 꾹 참았어요.]
“씩씩하네~”
검지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니 프라민은 얇은 눈꺼풀을 지그시 내려덮었다. 그 후로 어깨에 떡하니 자리 잡고서 한동안 손길을 만끽했다. 그러다 뒤늦게 문 앞에 선 아스레인을 발견하고선 꼬리를 바짝 말았다.
[근데… 저 분은 누구예요?]
“아, 이쪽은….”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사실대로 설명하자면 너무 길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절대 거짓말이 될 수 없는 문장을 찾았다. 뒤에 있는 아스레인을 몰래 흘겨보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임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으엥?]
“쉿. 우리끼리 비밀이야.”
일부러 긴장감을 조성하자 프라민은 혀를 날름거리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리하여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비밀이 생겨 버렸다. 이내 프라민은 혼자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스레인을 향해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당연히 아스레인도 나처럼 마물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헤하고 벌린 입이 꼭 웃는 것만 같았다. 귀여운 모습에 아스레인마저 무심한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황야의 여명’다운 자태로 돌아왔군.”
자연스럽게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자그마한 머리가 살짝 기울어졌다.
[어라, 저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야 나도 자네와 같은 존재니까.”
[같은…어? 진짜요?! 인간의 모습인데요?]
“잠시 변해 있는 걸세.”
[우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마물은 난생 처음이었겠지. 입을 떡하니 벌린 프라민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스레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동경으로 가득 찬 눈이었다.
[근데 제가 ‘황야의 여명’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자네의 조상과 아는 사이니까.”
[그럼 제 고향도 아시는 거예요?]
“음. 그곳은 나와도 연이 깊지.”
[우와-!]
프라민은 또 다시 입을 크게 벌린 채로 굳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프라민 종족은 대대로 코카서스 산에 있는 위대한 존재를 섬긴다고 했나. 그가 바로 눈앞에 있는 아스레인이라고 말하면, 저대로 굳어질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도 프라민은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아스레인에게 매료되어있었다.
힘겹게 웃음을 억누르며 벌어진 입을 톡톡 건드렸다.
“프라민.”
[아, 네!]
“이제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네가 살던 황야 근처에 있는 보호소로 가게 될 거야.”
[그러면 아저씨는 더 이상 못 만나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있던 프라민이 금세 풀죽었다. 떠나지 말라는 듯 두툼한 꼬리가 팔뚝을 감쌌다. 그 마음이 안쓰럽고도 고마워서 까슬까슬한 비늘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만날 수 있어.”
[진짜요…?]
“응. 우린 이어져 있잖아.”
부드럽게 미소 짓자 프라민은 대답 대신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러니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그럼 아저씨는 이제 뭐 해요? 또 나 같은 마물을 구하러 가요?]
“글쎄….”
더 이상 고통받는 마물이 없었으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세계에서 두 종족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 끊임없이 부딪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아니,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려고.”
[그럼 제가 필요하면 말해요. 꼭 도와줄게요!]
“고마워. 프라민.”
희망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마주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제 곧 건국 기념일 축제가 시작된다. 신성도시 안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내가 지금 나아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는 안개가 걷히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순간까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꼭 건강하게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