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여기서 식사 중이실 줄은 몰랐네~”
하지만 이렇게 나타나서 휘브에게 득이 될 게 뭐지? 차라리 세잔이 졸업할 때까지 조용히 지내는 쪽이 낫지 않나. 아예 얼굴이 드러난 이상, 세잔을 미행하며 감시하기는 배로 힘들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휘브는 태평하기 짝이 없었다.
“이야, 여기 앉으면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네. 역시 비싼 건 다르다니까.”
맨날 멀리 숨어서 보느라 몰랐는데. 휘브가 뒷말을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아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초장부터 오해를 살 뻔했다. 말조심하라고 조용히 눈치를 주자 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이윽고 휘브는 그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인사했다.
“소개가 늦었네요. 휘브리스라고 합니다.”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하나 같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를 경계했다. 별안간 싸늘해진 분위기를 뚫고 진이 선뜻 나서서 말을 붙였다.
“태오랑 친한 사이인가 봐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셋 중에서 그나마 호의적인 태도였다. 그러자 휘브는 기다렸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태오 형님이랑은….”
“도서관에서 과제하다가 우연히 만났어요.”
괜한 말을 지어내서 의심을 살까 봐 내 쪽에서 선수를 쳤다. 활짝 웃으며 옆을 돌아보니 자못 놀란 연녹색 눈동자가 보였다. 잠시 눈을 마주치고 있던 휘브는 이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아, 맞다. 도서관이었죠. 과제를 어찌나 친절하게 도와주시던지.”
그래도 말을 맞춰 줘서 다행이었다.
이윽고 휘브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거짓인 도서관 썰을 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조용히 주변 반응을 살폈다. 경계를 푼 진과 달리 아이리스와 세잔은 여전히 가시를 잔뜩 세운 채였다. 특히나 아이리스는 본디 사람을 잘 믿지 않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대로 휘브와 가까워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태오랑 친해지셨구나. 그럼 마물학과예요?”
“아뇨. 마법학과입니다.”
역시 고삐 풀린 망아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었다.
“도…. 아니, 세잔 경이랑 같은 과에 같은 학년인데.”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삐딱하게 앉은 휘브는 세잔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모르시겠습니까?”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세잔이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건가?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 세잔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처음 뵙습니다.”
“아…. 그래요?”
탁 풀려 반쯤 감긴 눈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들키지 않는 게 임무이면서 은근히 자신을 의식해 주길 바라다니, 정말 그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휘브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뭐, 이제부터 차차 알아 가면 되는 거죠.”
뭘 이제부터야. 세잔이 휘브의 진짜 정체에 대해 알아 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다.
“휘브.”
무어라 더 떠들려는 그의 손목을 탁, 붙잡으며 말했다.
“오늘도 과제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요?”
“어제 나한테 급하다고 했잖아요. 연구실 앞에서.”
손아귀에 살며시 힘을 주며 눈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눈치를 채야지. 무언의 압박을 느낀 휘브가 뒤늦게 맞장구를 쳤다.
“아, 아아. 그랬죠.”
어색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시간만 더 끌었다가는 안전벨트 없이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을 느끼고 말 것이다. 휘브에게 일일이 휘둘리고 싶지 않아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먼저 일어나 볼게요.”
그 후로 휘브의 팔을 붙잡고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어느 정도 가다가 뿌리칠 줄 알았는데, 그는 생각보다 순순히 끌려왔다. 곧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에 도착해서야 한숨을 돌렸다. 이내 팔을 툭 놓으며 뒤를 돌아보니 휘브가 멀뚱히 서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잔 앞에 나타난 거냐구요.”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제법 순수해서, 그건 그거대로 어이가 없었다.
“나한테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어 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온 거다…?”
“나타나면 안 된단 말은 없었잖습니까?”
없었지. 감시 대상인 세잔 앞에는 당연히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이 망할 지푸라기는 상식만으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일부러 이러는 거죠.”
“뭐가요?”
“아직도 세잔 경이 친구와 있는 게 못마땅해요?”
“글쎄요. 얼마 전만 해도 못마땅했는데, 지금은 약간 달라요.”
“다르다뇨?”
“뭐라고 해야 하지….”
마땅한 표현을 찾는지, 휘브는 한참동안 연녹색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내 깨달음을 얻은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나도 그 친구 놀이 좀 해 보려고요.”
그토록 오래 생각해서 나온 말이 저거라니. 참으로 절망적인 표현력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까지도 휘브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면전에 대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요. 휘브.”
“뭘요?”
“세잔 경이 부러워요?”
순간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음의 동요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알았다. 키는 멀대같이 큰 사람이 치기 어린 질투를 품고 있다고.
그날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린 내 업보다 여기고 이만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휘브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않고 도리어 반문했다.
“부럽다고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당신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겠죠.”
“지금은 어떤데요?”
“굉장히 불편해요.”
“부럽다고 말하면요?”
“조금 불쌍하게 느껴지네요.”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 게 의외였는지,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쩌면 대놓고 불쌍하다고 말해서 충격이었나 보다. 충분히 화를 낼 상황이었으나 휘브는 천연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부럽지 않은 걸로.”
“정말 특이한 분이네요.”
“남들이랑 똑같으면 재미없잖아요.”
또 다시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에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유치한 어린아이를 상대한다고 생각하자. 그게 낫겠다. 착잡한 내 표정에서 체념을 느꼈는지, 휘브는 답지 않게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이제 날 무시할 겁니까?”
“어차피 다 있는데서 소개했는데 무시해서 뭐해요. 세잔 경도 수업에 갈 때마다 당신이 있는 걸 알 거고….”
“음, 음.”
추임새를 넣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휘브를 흘끗 노려보았다.
“부디 사고만 치지 말아요.”
“노력해 보죠.”
“그리고 ‘형님’이라고 안 부르면 안 돼요?”
“왜요? 난 마음에 드는데.”
“…하아, 마음대로 해요.”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걸 일종의 허락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휘브는 그 어느 때보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어쩜 세잔과 동갑인데도 저렇게 성격이 정반대일 수가 있을까. 앞으로 학교에서 몇 번이고 저 얼굴을 마주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마라톤이라도 완주한 듯 피곤해져서 이만 돌아가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하마터면 가장 중요한 차례를 잊을 뻔했다.
“맞다. 아까 이아페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한 말, 사실이에요?”
“이아페에 사는 개보다 잘 알걸요.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년 시절을 보낸 신전과 이아페가 어떤 연관이 있나. 깊은 생각에 잠겨 나도 모르게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휘브는 살짝 상체를 숙이며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서 짙은 나무 향기가 풍겼다.
“이제야 좀 나한테 관심이 생기셨나.”
한껏 올라간 입꼬리에 장난기가 묻어났다. 어설프게 뻗은 마수에 걸리지 않으려 단칼에 잘라냈다.
“죄송하지만, 제가 관심이 있는 대상은 정해져 있어서요.”
마물, 아스레인, 그리고 친구. 그중에서도 하나만 단연 고른다면 아스레인이었다. 만약 우선순위를 매겨도 만난 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은 휘브리스는 당연히 논외였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제 위치를 확인하려 들었다.
“그 관심사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요?”
“대답을 알면서 물어보지 마세요.”
“거 참, 매정하시네.”
상처받은 척 눈썹 끝을 내리기에 아예 시선을 회피해 버렸다. 씨알도 안 먹히는 걸 알았는지, 휘브는 피식 웃으며 화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이아페에 대해 아는 건 뭐든 말해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뭔데요?”
“온실에 가 보고 싶습니다.”
온실? 안겔루스 대학에 있는 온실이라면, 단 한 곳뿐이었다.
“마물을 보호하고 있는 온실이요?”
“넵.”
“거기서 뭐 하게요?”
“그냥 구경하려고요. 마물은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영 수상쩍은데.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봐도 휘브는 웃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아페에 대한 정보를 얻는 조건으로 온실을 구경시켜 주기는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상대가 휘브리스여서 문제였지.
“그래요.”
설마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수상한 짓은 못하겠지. 여차하면 또 아그누스로 붙잡으면 그만이다.
“다만, 온실에서 아무것도 들고 나와선 안 돼요.”
“암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그를 데리고 온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온실에 들르지 않은 지 꽤 됐다. 누르를 쿠네 숲으로 보낸 후로 다른 마물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시간이 나면 누르에게 안부도 묻고, 키코로도 찾아가고, 프라민도 잘 있는지 보러가야겠다.
“이쪽이에요.”
여러 생각을 하는 사이, 온실에 도착했다. 그 앞을 지키던 경비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문을 열어 주었다. 하도 아스레인과 들락날락하니 이젠 따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휘브는 온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와~ 신원 확인도 안 하고 바로 들여보내 주네요? 역시 대단한 분이셨네.”
“큰소리 내지 말아요. 괜히 오해받으니까.”
“예, 예.”
유리 온실은 오늘도 훈훈한 열기로 가득했다. 바깥엔 빠르게 봄이 찾아오는데, 이곳은 매년 푸르기만 했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예전엔 듣지 못했던 마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 사이 새로운 마물이 온실로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데, 뒤에 있던 휘브가 먼저 걸음을 뗐다.
“이쪽으로 가도 되나?”
붙잡을 새도 없었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휘브는 금세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겁이 없어서 그런가. 저 너머에 어떤 마물이 있을 줄 모르는데도 걸어가는 폼이 퍽 당당했다. 불안한 마음에 다급히 수풀을 헤치고 휘브를 뒤따라갔다.
“위험하니까 너무 앞서가지 말아요.”
막 처음 보는 공터에 다다르니 자그마한 들판이 펼쳐졌다. 빨간 열매가 수북하게 열린 보리수나무가 중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 아래 선 휘브는 무언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고 있나 싶었는데, 그의 시선 끝에 붉은 장미가 있었다.
“……?”
나무 기둥에 달라붙은 장미는 난생 처음 본다. 자세히 보니 기둥을 휘감은 여섯 개의 가시 넝쿨 중 무엇도 땅에 닿아 있지 않았다. 저건 식물이 아니다. 미처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휘브는 그것을 향해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위험해요!”
곧바로 달려들어 휘브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 순간 꽃이 활짝 벌어지며 안에 숨어 있던 입이 드러났다. 블랙홀처럼 새까만 구멍 테두리엔 자그마한 이빨들이 무성하게 나있었다.
갑자기 마물을 맞닥뜨린 휘브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이게 뭐야…?”
“식물의 모습을 한 마물이에요.”
조금만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게다가 검은 구멍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휘브는 자칫 손가락이 잘릴 상황이었는데도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하마터면 다칠 뻔 했잖아요.”
거칠게 붙잡은 손목을 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먹이를 잃어버린 마물은 다시 꽃으로 돌아갔다.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장미보다 몇 배는 탐스럽고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휘브가 무턱대고 손을 뻗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니, 이내 머릿속에서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 새로운 마물과의 교감을 확인했습니다.
매번 이 문장이 들릴 때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휘브 몰래 도감의 내용을 열람해 보았다.
이름은 갈리카. 평소 모습이 갈리카 장미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마치 식충식물처럼 생겼지만, 곤충에서부터 작은 포유류까지 먹는 육식 마물이다. 역시 방금 전에는 손가락 하나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흥미롭게 도감을 살펴보는데, 대뜸 들려오는 낮은 웃음소리가 집중을 흩뜨렸다.
“이 정도로 걱정 받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누가 걱정했다고 그래요?”
무슨 소리래.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돌아보니 휘브가 샐쭉 웃었다.
“방금 했잖아요.”
“그건 당신 말고 갈리카를 걱정한 거예요.”
“허.”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휘브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사람인 자신보다 마물을 우선할 줄은 몰랐나 보다. 뺨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갈리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서운해 하기도 잠시, 휘브는 호기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저 마물의 이름이 갈리카입니까?”
“네. 3급 위험 마물이에요. 나무 근처에 서식하면서 지금처럼 꽃인 척하고 먹이를 기다리죠. 그러니까 섣불리 만졌다간 반드시 피를 볼 거예요.”
“내 손을 먹이로 인식한 것치곤 지금은 얌전한데요?”
“원래 그래요. 갑자기 손만 안 뻗었어도 계속 저 모습으로 있었을 거예요.”
이젠 말하기도 입 아프다. 함부로 영역에 들어오지만 않으면, 일부러 건드리지만 않으면 마물은 대개 얌전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휘브는 그 말을 듣고도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아닐걸요.”
“뭐가요?”
“예전부터 마물은 유독 나를 싫어했거든요.”
의아하게 옆을 돌아보니 휘브가 제 입가를 톡톡 건드렸다.
“이 상처도 어릴 때 마물한테 당한 거예요. 내 발이 조금만 느렸어도 얼굴 반쪽이 날아갔을 걸요.”
“마물…이요?”
“넵. 참고로 난 그냥 시냇가에 앉아 있었는데, 그쪽이 갑자기 달려든 거예요. 아, 그리고 손목에 난 흉터랑~ 팔꿈치에 있는 것도요.”
그리 말한 휘브는 소매를 걷어 이곳저곳에 남은 흉터를 보여 주었다. 심지어 등과 다리에도 비슷한 흉터가 여럿 있다고 증언했다. 이런 말하면 미안하지만, 다양한 마물에게 위협당하고도 멀쩡히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알았죠. 난 마물한테도 미움받는다고.”
마물한테‘도’…라.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도 목소리엔 씁쓸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 한 마디에 여러모로 험난한 시절을 지내 왔음이 느껴졌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오해는 풀어 주고 싶었다.
“아마도 마물은 당신한테 신력이 느껴져서 공격하는 걸 거예요.”
“신력…?”
“신력은 마물의 마력을 밀어내거든요. 그래서 마물은 신력을 위협으로 인식해요.”
“…아.”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휘브는 짧게 탄식했다. 멍하니 입을 벌린 표정은 뒤통수라도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자신에게 신력이 있는 것도 모르는 채로 마물에게 공격당했으니 충분히 오해할 만도 했다.
“마물은 당신을 특별히 미워하는 게 아니에요.”
“하, 난 또…. 가족한테 버려진 놈이라고 따돌리는 줄 알았네.”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처음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휘브는 눈을 빠르게 끔뻑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시선이 슬슬 부담스럽게 느껴져 인상을 찌푸리자 휘브가 재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럼 신력은 어떻게 없앱니까?”
“글쎄요. 굳이 신력을 없애려는 사람을 본 적이 없….”
아니, 있다.
아직 정확한 의도는 모른다. 하지만 신력을 억누르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사람은 봤었다. 아코니툼의 정화석을 가져간 사제. 기억에서만 만나 본 그가 문득 뇌리를 스쳤다.
“근데 휘브.”
셔츠 안으로 넣어 둔 정화석을 꺼내며 말했다.
“이 목걸이가 익숙하다고 그랬잖아요.”
“그랬죠.”
“혹시 어디서 비슷한 걸 본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