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설마 아스레인의 입에서 마물을 죽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달리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도 단호한 태도에 마치 내가 선고를 받은 것처럼 굳어 버렸다. 이내 아스레인은 책장에서 서적을 꺼내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코니툼은 본디 늪을 정화하는 마물이네. 여러 갈래로 나뉜 다리로 늪에 있는 불순물이나 물에서 부패한 사체의 독을 빨아들이지.”
“그럼 늪에 유익한 마물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지.”
조용히 책을 살펴보던 아스레인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 내 책상 위에 두었다.
“하지만 이따금 순리에 어긋나는 개체가 태어나기도 하네.”
그곳엔 얇은 펜 선으로 묘사된 아코니툼의 그림이 있었다.
고깔모자를 쓴 듯 뾰족한 머리 아래로 수십 개의 다리가 길게 이어졌다. 늪 구석구석까지 뻗어 나간 다리는 그물처럼 얽혀 나무뿌리로 보이기도 했다. 짙은 보라색이 온몸을 뒤덮은 데 반해 다리 끝으로 갈수록 연보랏빛을 띠었다. 그녀가 어쩌다 투구꽃의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알 정도로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들은 죽기 전에 열매를 매달아 번식하네. 늪이나 습지를 옮겨 다니는 동물들이 제 씨를 퍼뜨려 주길 바라면서.”
“마물이면서 식물 같네요. 평균수명은 어느 정도예요?”
“개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네.”
“네?”
물론 장수나 단명엔 개개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종마다 평균 수명이 있기 마련이다. 마물인 아코니툼도 응당 그래야 했다. 하지만 삽화 밑에 쓰인 특징 어디에도 수명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이윽고 아스레인은 아코니툼의 몸체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에 그 어떤 맹독도 해독할 기관이 있지만, 결국 노화가 찾아오기 마련이네.”
“그럼 더 이상 독을 흡수하지 못하나요?”
“상식대로라면 그래야 하지. 그런데 아코니툼에겐 달리 영양분을 얻을 방법이 없네.”
그 말은 즉, 아코니툼은 스스로 기능이 저하된 걸 알면서도 독을 빨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해독하지 못한 불순물이 체내에 쌓인 그들이 맞이할 결말은 뻔했다. 살기 위한 본능이 끝내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비극적인 운명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데, 아스레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가끔 독에 동화되어 죽지 않는 개체가 나오기도 하네.”
“동화된다는 건, 성질이 변한다는 건가요?”
“그래. 늪에 독을 풀어 다른 생명을 빨아들이지.”
그의 손이 페이지를 한 장 넘겼다. 그곳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아코니툼이 그려져 있었다. 탁한 보랏빛 표피에 진득한 액이 흘러내렸고, 촘촘한 다리는 그물이 아닌 올가미처럼 보였다. 흡사 괴물처럼 보이는 기이한 형체 아래엔 네모반듯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독에 의해 변질된 아코니툼은 세기를 넘는 세월을 산다고.
“더 이상 늪을 정화하는 게 아니라, 늪을 오염시키는 마물로 전락하고 마는 걸세.”
어쩐지 씁쓸한 기분에 휩싸였다. 한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식지를 정화했던 존재가 원치 않게 죽음을 불러오는 유해종이 되다니. 이제야 물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왜 그리도 괴로웠는지 알 수 있었다.
아코니툼의 머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진액이 꼭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끔찍한 모습을 더는 보기 힘들어 책을 덮으며 물었다.
“변이종이 발견된 사례가 꽤 자주 있나요?”
“얼마 전, …그러니까 에브게니아가 막 제국을 점령했을 때의 일이네.”
“잠시만요. 그건 얼마 전 일이 아니잖아요.”
“아.”
잠시 시간 감각을 잃은 아스레인은 짧게 탄식하며 말했다.
“아무튼 제국 서쪽에 있는 베릴 습지의 동식물이 집단 폐사한 사건이 일어났네.”
“집단 폐사라니…. 설마 아코니툼 때문이에요?”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이 긍정을 뜻했다.
“그땐 교수가 아니었기에 황제의 부탁을 받아 부대를 이끌고 갔었지. 하지만 부대 중 아무도 베릴 습지에 들어가지 못했네.”
“어째서죠?”
“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신발이 전부 녹아 버렸으니까.”
변이된 아코니툼이 풀어 놓은 독이 가죽마저 거뜬히 녹일 정도란 말인가. 늪 주변에 있는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식물까지도 전부 시들어 버릴 만했다.
“오래 방치되어 있던 탓도 있겠지. …결국 내 손으로 직접 숨을 거두었네.”
“그래도 괜찮으셨어요?”
“애초에 그 자신이 죽길 원했네. 의도치 않게 다른 아이들을 죽여 슬퍼하고 있었지.”
스스로의 죽음을 바라는 건 어떤 기분일까. 힘겹게 결심한 이들도 결국 죽음 앞에선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베릴 습지의 아코니툼은 왠지 행복하게 눈을 감았을 것 같다. 더 이상 누구도 해치지 않아도 되니,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 죽음은 해방이 아니었을까.
“라포 늪에 갔던 이들은 별문제 없다고 했었나?”
“네. 무사히 약초만 채집하고 나온 것 같았어요.”
“다행이군. 아직 늦지 않았네.”
아스레인은 라포 늪의 아코니툼도 없애기로 결심한 듯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으나, 왠지 가시라도 삼킨 것처럼 목이 따끔거렸다. 물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도 외롭고 처연했기에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말 아코니툼을 구할 방법은 없을까요?”
“이미 성질이 변해 버린 개체를 되돌릴 수는 없네.”
“그런…. 평생을 늪을 위해 살았는데….”
그녀가 내게 전하려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싸늘한 늪 안에서 혼자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던 ‘그분’은 대체 누구인가.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엔 아직 이 세계에 미련이 남아있었다.
“태오.”
“…네.”
“자네가 직접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나.”
“들었어요.”
“기분이 어땠지?”
또다시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에 주먹을 꽉 쥐었다.
“…괴로웠어요.”
아코니툼의 몸을 감싼 보랏빛은 우울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과오를 자책하면서도 스스로를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끝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녕 그녀가 원하는 것이 죽음이라면, 기꺼이 칼을 들어야겠지.
그러나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정말 그것뿐인가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아스레인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연의 순리대로 죽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일세.”
“…….”
“그러니 자유롭게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리 말하는 아스레인은 난생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가에 떠오른 미소와는 달리 살짝 찌푸린 미간. 일그러진 얼굴에 드리운 감정은 단연 부러움이었다.
모든 것을 완벽히 타고난 그가 부러워하는 건,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자유롭게….”
우습지 않은가. 영생을 가진 이는 죽음을 바라고, 죽음을 가진 자는 영생을 바라는 것이.
**
처음으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닌, 죽이기 위해서 여행길에 올랐다.
여전히 죽음이 축복이란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태어날 때부터 죽기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퍽 의아한 이야기였다. 우리에게 죽음은 슬픔이자 이별이고, 본능적인 두려움이었으니까. 그래서 인간은 보다 길게- 급기야 영원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을 평생 지켜봐야만 하는 입장은 달랐다. 아니, 다른가 보다. 만인이 축복으로 여기는 영생은 그 자신에게는 저주였다. 참으로 ‘저주란 축복’이란 제목에 걸맞은 운명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스레인.”
“왜, 속이 울렁거리나?”
“아뇨. 그건 아닌데….”
만약 지긋한 영생의 굴레를 끊을 방법이 있다면, 당신은 어떡할래요? 하고.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아주 잠깐이나마 고민하겠지. 하지만 아스레인이라면 필시 자신의 사명 때문에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어쩌면 나를 혼자 둘 수 없다는 걱정 때문에 계속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에 오로지 죽음만이 아스레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어깨… 빌려줄 수 있어요?”
“얼마든지.”
나는 과연 그를 놔줄 수 있을까.
이제 그만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고 싶다는 그를 붙잡을 권리가 있을까.
“고마워요. 잠깐 눈만 붙일게요.”
…모르겠다. 줄곧 아스레인을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가 없는 현실만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따스한 품에 안겨있는데도 초조함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강의 없는 휴일을 내어 향한 라포 늪이 어렴풋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기에 눈을 떠보니 커다란 손이 슥 지나갔다.
“태오.”
“으음….”
“도착했네.”
“벌써요? 잠깐 눈만 감고 있으려고 했는데….”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들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스레인이 보였다. 자는 내내 나를 이런 눈빛으로 바라봤으려나. 금방이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아 부스스한 얼굴로 슬쩍 웃었다.
“아스레인의 품이 너무 편해서 진짜 자 버렸네요.”
“정작 한 침대에 있으면 긴장하지 않나.”
“그건…그거죠.”
아스레인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이마 위로 입을 맞췄다. 길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온기가 꼭 제 것임을 확인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왠지 부끄러워서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니 아스레인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럼 익숙해질 때까지 함께 있으면 되겠군.”
“그, 글쎄요.”
벌써 스킨십이 꽤 익숙해진 것 같다. 물론 아스레인만. 나는 여전히 그를 처음 아멜리 백작의 저택에서 맞이했을 때처럼 심장이 떨린다. 마치 첫사랑을 하는 사춘기 학생처럼 말이다.
마차에서 내리자 빽빽하게 치솟은 침엽수 숲이 넓게 펼쳐졌다. 묘하게 익숙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라포 늪에 오기 전에 본 지도를 떠올렸다.
“길이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오케아노스 바다랑 꽤 가깝네요.”
“예전엔 이곳이 바닷가였네.”
“그래요?”
“흙이 쌓여 육지로 둘러싸인 늪이 된 게지.”
해안사구로 인해 배후습지가 된 건가. 신기하네. 호기심에 입을 헤 벌리고 있자 아스레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발밑을 조심하게.”
“아, 네!”
다정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나란히 숲으로 들어갔다. 늪이 가까워서 그런지, 바닷바람이 밀려와서 그런지 숲은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었다. 혹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열심히 바닥을 살피는데, 별안간 웅덩이에 익숙한 풀이 보였다.
“아스레인.”
“음?”
“이거였어요. 진이 보여 준 약초.”
“그럼 여기까진 왔었던 건가….”
해열에 좋다는 약초 외에도 이름 모를 풀들이 가득했다. 채집하러 온 무리가 여기까지만 와서 천만다행이었다. 흙바닥을 살피다 말고 허리를 펴니 습한 공기 사이로 그윽한 향기가 느껴졌다. 진이 말한 달콤한 향기가 이건가 보다.
“향기가 점점 짙어지네요.”
“거의 다 온 것 같군.”
안으로 들어갈수록 특이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늪의 눅눅한 냄새까지 전부 삼켜 버릴 만큼 강렬해서 눈앞이 아롱거렸다. 슬슬 달콤한 향기가 역하게 느껴지던 찰나였다.
“저기군.”
아스레인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고 침엽수 사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안개에 숨어 있던 늪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저걸 늪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예전에 생태 조사로 종종 늪에 다녀왔었다. 광활한 벌판에 펼쳐진 물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느 곳은 연꽃으로 가득 차 물새들이 오고 갔고, 또 다른 곳에선 투명한 수면이 하늘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저게… 라포 늪이라고요?”
저승으로 향하는 강이 현실에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물가에 부패한 동물의 사체가 너부러져 있었다. 심지어 사체를 먹으려 다가온 벌레마저 죽어 있었다. 그럼에도 사체의 지독한 냄새보다 달콤한 향기가 짙게 느껴져 괴리감을 자아냈다. 나도 모르게 코와 입을 틀어막고 늪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상태가 꽤나 심각하군.”
“그러게요. 아코니툼은 어디 있는 걸까요….”
라포 늪엔 아코니툼의 우울감이 곳곳에 번져 있었다. 독으로 오염된 물은 회색도 녹색도 아닌,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득히 깊은 늪 한가운데 자그마한 땅이 있었다. 설마 아니기를 바랐지만, 안 좋은 예감은 늘 적중했다.
“저기까지 가야겠죠?”
“그렇겠지.”
퍽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아코니툼을 만나려거든 속이 보이지 않는 물을 건너야 했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그때였다.
“자.”
아스레인이 대뜸 손을 내밀었다. 별생각 없이 그의 손을 맞잡은 순간,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우왓!”
화들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슬그머니 한쪽을 떴다. 어느새 아스레인에게 가뿐히 안겨있었다. 잠깐만. 설마 이대로 늪을 건너려는 건가?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흘겨보았으나 아스레인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아스레인. 꼭 이렇게 가야 해요?”
“이러면 굳이 자네에게도 마법을 걸지 않아도 되잖나.”
“그건 그렇지만요.”
괜히 몸을 틀었다가 떨어질까 봐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걸 수긍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아스레인은 천천히 늪으로 다가갔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랏빛 늪을 흘끔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건 좀….”
민망한데. 뒷말을 중얼거리며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때 으스스한 바람에 휘날려 마른 나뭇잎이 늪으로 떨어졌다. 파스스- 소리를 내며 나뭇잎이 늪으로 녹아 들어갔다. 가라앉은 게 아니라, 깔끔하게 분해되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보니 등줄기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만약 방금 나뭇잎이 아니라 나였다면-
“방금 뭐라고 했나? 안 들렸는데.”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스레인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꽉 주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