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그것은 유성이었다. 허락받지 못한 곳을 침입한 대가로 불타고 마는, 화구(火球).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은 태양의 가장자리에서 피어오른 홍염처럼 붉게 타올랐다. 투명한 얼음 속에서도 강렬한 색채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비록 잠들어 있어 볼 수 없었지만, 분명 눈꺼풀 속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두 개의 별이 박혀 있을 것이다. 앙다문 입술과 짙은 눈썹 아래 날렵한 이목구비가 퍽 완고해 보였다.
“…이카로스.”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 속에서도 유달리 신비한 것은 단연 날개였다. 어두운 붉은 빛을 띠는 여섯 날개 중 한쪽만 뼈가 드러나 있었다. 본체가 봉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력이 멈추지 않고 날개를 갉아 먹은 탓이었다.
하지만 불완전함이 도리어 그를 온전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없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처럼,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처럼.
만약 내가 화가였다면 추위를 무릅쓰고 붓을 들었을 것이고, 음유시인이었다면 당장 그를 위한 노래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학자에 불과했으니 바쁘게 움직이는 눈으로 관찰할 뿐이었다.
“살아있는 거겠죠?”
겨우 말을 꺼냈으나 그는 말이 없었다. 길게 이어지는 침묵에 옆을 돌아보니 아스레인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죄책감, 반가움, 애처로움. 얼음에 갇힌 이카로스를 향한 그의 눈동자에는 모든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스레인?”
“아.”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자 뒤늦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저 봉인되었을 뿐이네.”
“괜찮아요?”
“보다시피 육체는 온전하니….”
“아뇨. 아스레인이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잠시나마 입가에 서린 쓸쓸한 미소는 새벽이슬 사라지듯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내가 힘들 게 뭐가 있겠나. …고생은 저 아이가 했는데.”
의외였다. 아스레인이 마물을 ‘아이’라 표현하다니. 지금껏 히페리온이나 닉스, 오케아노스에게도 데면데면 대하던 그였다.
아무래도 닉스가 말한 대로 아스레인과 이카로스는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아스레인을 무척이나 잘 따랐다고 하니, 어쩌면 부자지간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서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얼음 감옥으로 향했다.
“누군가 봉인한 건가요?”
“글쎄. 그건 결계를 건드려 봐야 알 것 같군.”
결계를 분석해 보려는지, 아스레인은 얼음벽을 짚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건….”
희미하게 빛나는 얼음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숨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영 좋지 못한 예감이 스쳤다. 쯧, 작게 혀를 찬 아스레인은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피로 만들어진 결계네.”
“피라니…. 황실의 보관소처럼요?”
“음. 당장이라도 결계는 부술 수 있지만, 곧바로 마법이 시전되겠지.”
하필이면 가장 까다롭다는 결계였다. 전에 듣기론 신탁 보관소의 결계를 깨면, 그 즉시 모든 기록이 전소된다고 했다. 실로 결계를 깨트리는 자를 직접 해치는 것보다 치명적인 마법이었다. 그러니 이카로스를 묶어 놓은 결계 또한 안심할 수 없었다.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아스레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얼음에 손을 얹었다. 조금 더 강하게 마력을 불어넣자 얼음벽이 세차게 공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휘둥그레진 금안은 믿기 힘든 사실을 마주한 듯 보였다.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며 은근히 아스레인의 눈치를 살폈다.
“왜 그래요?”
“억지로 결계를 깨면, 이카로스가 죽을 걸세.”
“주, 죽는다뇨…?”
“…결계를 부수는 즉시 신력이 코어까지 퍼지도록 설계해 놨군.”
이카로스를 구하고자 결계를 깨면, 이카로스는 반드시 죽는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이란 말인가. 마치 심장을 향해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꼴이었다. 결계를 억지로 부수는 순간 화려한 날개는 새하얀 뼈가 되어 끝내 부서지고 말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죠?”
그를 추격하던 북쪽의 사제인가? 아니면, 과거 마물을 봉인하려고 한 마법사? 어느 쪽이든 결코 용서받지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그 자신….”
“네?”
“이 결계는 이카로스의 피로 만들어졌네.”
“설마요. 거짓말이죠…?”
원치 않은 침묵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카로스가 ‘녹지 않는 감옥’에 봉인된 건 반드시 타의에 의해서일 줄 알았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달랐다. 이카로스는 자신의 피로 결계를 만들어 스스로를 라비린토스에 묶어 두었다. 그 증거로 얼음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동자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대체 무엇이 이카로스를 고립으로 이끌었을까. 자유롭게 하늘을 만끽하던 그가 자신을- 심지어 결계를 억지로 깨면 코어가 신력에 침식되어 죽는 마법을 걸어 두었다. 만약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먼저 발견했다면, 이카로스는 진즉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무기한으로 설정된 시한폭탄이다.
“피로 만들어진 결계를 풀 수 있긴 한가요?”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지.”
“그럼….”
“하지만 결국 이론에 불과하네. 결계를 풀기 위해 소모되는 마력은 둘째 치고, 진짜 문제는 역산이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긴 아스레인은 마치 밀레니엄 난제를 마주한 수학자 같았다.
“결계는 잠금 장치와 같네. 돌파구를 쉽게 들키는 순간 제 기능을 상실하지. 그래서 결계를 풀려고 시도하는 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몇 번씩 비틀고 도의적으로 함정을 섞어 놓는 걸세. …그리고 이카로스는 빈틈을 숨기는데 능했지.”
“원체 재능이 있었나 보네요.”
“…아니.”
아스레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리 가르쳤거든.”
“설마 피로 결계를 만드는 방법도요…?”
“그래.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이카로스는 지치지 않고 문제를 만들어 왔네. 내게 풀어 보라고 말이지. …물론 하나 같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기에 별로 공을 들이지도 않고 풀어 냈다만.”
얼음에 갇힌 이카로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방금 전과 미묘하게 달랐다.
“…이번만큼은 꽤나 걸작이군.”
어느덧 장성하게 성장한 제자를 마주한 스승의 얼굴이었다. 희미한 미소를 띤 아스레인을 보니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사제로부터 도망친 이카로스가 왜 스스로를 얼음 속에 가뒀는지. 누구라도 함부로 엄두내지 못할 결계를 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 그저 아스레인의 존재 하나만으로 설명됐다.
“…믿은 거예요.”
“음?”
“이카로스는 아스레인이 죽지 않았다고 믿었어요. 그러니까… 언젠가 자신을 찾아와 봉인을 풀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재운 거예요.”
자기 자신을 해치는 일은 얼마나 많은 결심을 내려야 할 수 있는 걸까. 아스레인이 유피테르에 의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이카로스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억지로 결계를 깨려고 하면 자연스레 신력에 잠식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하지만 이카로스는 스스로 죽기로 결심한 와중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오직 아스레인만 풀 수 있는 결계를 만든 거겠죠.”
만약 오랜 잠에서 깨어난다면. 기적적으로 자신이 다시 눈을 뜰 수 있다면, 그건 아스레인이 살아있다는 의미였다.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속에서 단 한 사람만을 기다린다. 조금 질투가 날 정도로 깊은 순애였다.
“나를… 기다렸다고….”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착잡한 심정이 느껴졌다. 아스레인은 분명 이카로스도 다른 마물처럼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차가운 얼음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기다린 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듯했다. 죄책감으로 얼룩지는 눈빛을 보자마자 그의 팔을 살살 쓸어 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스레인.”
“…….”
“풀어 주실 거잖아요? 이번 문제도.”
메마른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선 방금 전과 다른 결의가 느껴졌다.
“하루. …아니, 반나절 안에 끝내지.”
“네!”
“당분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걸세. 집중에 집중을 가해야 하니까. …그러니 멀리 떨어지지 말게.”
“걱정 마세요.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게요.”
보초를 자처하니 그의 가지런한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혹시 그 사이에 시지프나 그 수하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태오.”
“걱정 마세요. 저 그리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닌 거, 이젠 아스레인도 알잖아요.”
여차하면 내게 힘을 빌려준 고마운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당당한 태도를 고수하니 아스레인은 끝내 백기를 흔들었다.
“그럼….”
얼음 앞에 홀로 선 아스레인은 품에서 조용히 단검을 꺼내었다. 그러곤 놀랄 새도 없이 칼날을 맨손으로 쥐었다. 후드득. 손목을 타고 떨어진 핏방울이 새하얀 눈을 빠르게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그마저도 모자랐는지, 아스레인은 예리한 날로 손바닥을 가차 없이 후벼 팠다. 이내 단검을 바닥에 던지는 손엔 자칫 뼈가 드러날 듯 처참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아스….”
필요한 의식인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에게로 다가가려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그의 손바닥에 있는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이후 아스레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얼음벽을 피로 범벅된 손으로 쓸었다. 차가운 결계 위로 진득한 혈액이 더해지고 마침내 이카로스를 풀어 내기 위한 마법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드높은 하늘을 관통하는 네 번째 기둥을 꽂으리라. 여섯 날개를 가진 지혜로운 자, 이카로스여. …무질서한 창천에 규칙을 세워 균형을 수호하라.”
너무도 익숙한 그 문장은 시스템이 알려준 주문의 뒷부분이었다.
아스레인은 곧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갔다. 결계에 손을 올린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그의 머릿속이 어떠한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난제를 암산으로 풀어 내고 있겠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기에 방해되지 않게 멀찍이 떨어졌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네.”
혼자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서 눈 폭풍이 치고 있었다. 이곳이 태풍의 눈 같아서 좋았건만, 오히려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당장 눈 폭풍 사이에서 뭔가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낌새가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마물을 불러내는 게 좋겠다.
버릇처럼 손목을 어루만지는데, 왠지 허전한 느낌에 소매를 걷어 보았다.
“필리스 줄기가….”
아, 맞다. 키코한테 줬었지.
오랜만에 바깥에 나와서 신난 나머지 무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걱정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마침 하늘 높이 보이는 새하얀 새가 보였다. 흡사 햇빛 같기도 한 그는 바로 키코였다. 반가운 마음에 팔을 번쩍 들고 흔드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키…코?”
일직선으로 날아오던 키코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눈 폭풍이 치지 않는 경계 지점이었다. 비록 아스레인이 있는 얼음벽에서 꽤나 떨어진 곳이었으나, 망설임 없이 키코에게 달려갔다. 다급히 그를 품에 끌어안고 우선 의식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키코! 괜찮아?”
[으응. 태오….]
“어디가 아픈 거야?”
혹시 외상이 있나 살피는데, 키코가 날개를 접고 내 품에 파고들며 웅얼거렸다.
[아니, 태오를 보니까 갑자기 힘이 풀리는 거 있지…?]
“…어?”
[하아암- 너무 신나게 날아다녔나 봐. …나 좀 잘게.]
그대로 3초 만에 잠에 빠진 키코를 보고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호흡은 정상적이고 다친 곳도 없었다. 오랜만에 바깥 산책을 나온 강아지처럼 무리하게 놀다가 지친 것 같았다. 아무리 내 품이 편하다지만, 설원에서 쉬기보단 온실로 돌아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고마워. 꼭 보답할게.”
조심스레 발에 묶은 필리스 줄기를 풀자 금세 키코의 모습이 사라졌다. 행복한 얼굴로 녹초가 되어 돌아온 키코를 보면, 코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분명 나를 호되게 혼내겠지. 혹시 자기도 외출하고 싶다고 그러려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였다.
“……?”
눈보라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셋, 넷… 아니. 그보다 더 많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꽤나 여러 개 겹쳐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라비린토스에서 마주쳤으니 결코 반가운 얼굴은 아닐 것이다.
곧장 경계 태세를 갖추려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읍!”
폭풍을 뚫고 튀어나온 손이 갑작스럽게 내 입을 틀어막았다. 저항하려 몸부림쳤으나 코끝을 찌르는 향기에 아차 싶었다. 묘하게 익숙한 풀냄새는 마취제로 흔히 쓰는 약초의 것이었다.
서서히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것은 새하얀 장갑-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