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몸을 크게 부풀린 코로는 필사적으로 키코를 감쌌다. 어쩐지 경계 대상으로 인식이 된 모양이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 주려 빈손을 들고 뒤로 물러서도 소용없었다.
보다 못한 키코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말했다.
[괜찮아. 이 인간은 나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뭐가 괜찮다는 거야? 아직도 인간을 믿어?]
[코로!]
하얀 날개가 잔뜩 성이 난 뒤통수를 툭 때렸다. 냅다 찬물을 끼얹은 듯 냉랭한 기운이 맴돌았다. 저러다 정말 싸움 나는 거 아닌가. 불안한 마음에 입을 꾹 다물고 그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예상 외로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켜 주려다가 한 대 맞은 게 억울할 법도 한데, 코로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주도권을 쥔 쪽은 키코인 듯했다.
[이해해 줘. 코로가 경계심이 많은 편이거든.]
“아냐. 내가 갑자기 너희의 영역에 들어온 건 사실이니까.”
두 손을 내저으며 슬그머니 코로를 흘겨보았다. 조금 전만해도 기세등등하던 까만 날개가 왠지 풀이 죽은 것 같았다.
“…미안해. 코로.”
흥. 코로는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도 사과를 받아 주려는지, 날카롭게 날라들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들었다. 분명 처음부터 인간을 전부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보호소에 오는 마물들이 그러하듯 코로에게도 인간을 경계하는 이유가 분명 있겠지.
그리고 그 이유를… 인간이 만들어 냈음에 틀림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봐도 될까?”
[무슨 일?]
“너희가 여기로 오게 된 계기… 말이야.”
민감한 질문이라 걱정한 것과 달리 키코는 선뜻 입을 열었다.
[나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빛이 필요하고, 코로는 그림자가 필요하지. 그래서 낮과 밤을 나눠서 생활하는 거야.]
“그럼 지금 코로는 많이 힘든 거 아니야?”
[동시에 나와 있는 건 상관없어. 낮이나 밤에도 빛과 그림자는 항상 있으니까. 하지만 오랫동안 한쪽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달라. 한쪽이 죽으면 반드시 다른 한쪽도 죽거든.]
“그런….”
[신기하지?]
심각한 이야기를 쾌활한 목소리로 하니 묘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자 키코가 쿡쿡 웃음을 흘렸다. 태연한 모습 탓에 설마 뒤이어지는 과거가 그리도 절망적일 줄은 몰랐다.
[우릴 포획한 인간은 ‘키코로’가 서로 떨어지면 어찌 될지 궁금했나 봐. 아예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 우리를 가둬 놓고 실험했었어.]
“…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머리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고, 벌어진 입술 새로 허무한 탄식만 새어 나왔다. 넋이 빠진 채 서 있으니 억눌려 있던 코로의 화가 다시 내게 쏘아졌다.
[너희의 같잖은 호기심 때문에 키코가 거의 죽을 뻔했어.]
“…그런 실험을 했다고?”
[뭘 놀라? 설마 세상에 너처럼 바보 같은 인간만 많을 줄 알았어?]
“아니….”
아주 잘 알지. 이 세상엔 무수한 인간상이 있다고. 오필리아를 돌봐 준 연구원 같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서슴없이 움직이는 클라우스 같은 이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고개를 숙이자 키코가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
[코로. 이 사람이 한 게 아니잖아.]
[이 인간이나 그 인간이나 똑같아.]
[하지만 태오는 코로가 낮에 나오는 게 힘들까 봐 걱정해 줬는걸.]
[태오? 벌써 이름을 부르는 사이인 거냐?]
[뭐 어때?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거잖아.]
언성을 높여 다투는 모습을 보니, 서로가 서로를 얼마는 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력하게 방 안에 갇혀 말라 가는 반려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야 코로가 인간인 나를 보자마자 털을 부풀리고 경계한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
주먹을 세게 틀어쥐며 억눌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미안해.”
[응? 왜 네가 사과하고 그래.]
“그래도… 너희 중 누구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만 갈게.”
[태오.]
굳이 이 자리를 고집해서 키코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이유는 없었다. 휴식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트라우마를 건드렸단 생각에 마음만 무거워졌다. 나를 붙잡으려 다가오는 키코를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그때 퍼드덕 소리와 함께 새까만 무언가가 눈앞으로 휙 날아들었다.
[야!]
“까, 깜짝이야…. 놀랐잖아.”
[그냥 있어.]
“나?”
[그래. 너. …키코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있으라면 있어! 뭐 그리 중얼중얼 말이 많아.]
어쩐지 아이리스를 닮은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일까. 버럭 화를 내기에 냉큼 제자리로 돌아왔다.
“으응, 고마워.”
얌전히 바위산에 걸터앉자 키코는 기다렸다는 듯 어깨 위로 안착했다. 눈이나 표정이 보이진 않아도 제법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키코가 내 귀에 걸린 아스레인의 마석을 구경하는 사이, 발 앞으로 날아온 코로가 나지막이 말했다.
[뭐, 이곳에 있는 인간은 썩 나쁘지 않아. 함부로 다가오지도 않거든. 하지만 경계를 쉽게 풀어서 좋을 것 하나 없잖아? 키코를 죽이려던 인간도 처음엔 친절했으니까.]
백번 맞는 말이었다. 흔쾌히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도 같은 인간을 경계하는 판국에 무어라 변명할 수 있을까.
“…맞아. 경계하는 쪽이 나아.”
[하. 들었지? 키코.]
축 처져 있던 코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키코는 아랑곳 않고 빛나는 마석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제게 관심을 주지 않는 키코가 괘씸했는지, 코로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내 그림자를 턱하니 밟는 순간이었다.
[우왁! 이게 뭐야!]
“아그누스…!”
자신과 비슷한 그림자 마물을 보고 반가웠던 걸까. 줄곧 얌전하던 아그누스가 불쑥 땅 위로 튀어나왔다. 갑자기 등장한 늑대에 화들짝 놀란 코로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왠지 코로의 머리에 있는 깃털이 삐죽 선 것 같았다.
[너, 역시 우릴 노리려고…!]
“그런 게 아냐. 그냥 내 그림자에 사는 마물이야.”
[대체 그림자에서 뭘 키우고 있는 거야?!]
아무리 같은 마물이라 해도 수상하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쉬이 진정하지 못한 코로는 치를 떨며 아그누스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반면에 키코는 놀라기는커녕 호기심을 반짝 빛냈다. 한창 내 귀걸이에만 고정되어 있던 고개가 아그누스에게로 돌아갔다.
[태오의 친구?]
“말하자면 그렇지…?”
아그누스 또한 시선을 느꼈는지, 해맑게 웃는 것처럼 입을 벌리며 혀를 내밀었다. 이내 키코가 가벼운 날갯짓으로 아그누스에게 다가갔다.
[키코! 위험…!]
코로가 말릴 새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말릴 이유가 없었다. 원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키코는 자연스럽게 아그누스의 머리 위에 앉았다. 짹짹,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자 두툼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이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온실을 사이좋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아그누스가 마음에 드나 봐.”
[저러니까 내가 한시도 편하게 있을 수가 없지.]
흐뭇한 나와 달리 코로는 키코가 다른 마물과 노는 게 영 싫은 모양이다. 퉁명한 목소리에서부터 불만이 가득 묻어났다. 괜히 한 소리 들을까 봐 숨죽여 웃는데, 눈치 빠른 코로가 휙 고개를 돌렸다.
[너도 괜히 탐내지 마.]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다른 생물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단 하나의 짝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는 자신이 ‘키코로’임을 자랑스러워하듯 고개를 꼿꼿하게 들며 말했다.
[우린 운명이야.]
단호하게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란 뭘까. 과연 나와 아스레인이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지 그의 일생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 급급한 나와 달리, 코로는 키코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부럽네.”
나도 아스레인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쓸쓸한 미소를 속으로 삼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후로 한참 아그누스와 키코가 뛰노는 걸 지켜보는데, 뾰족한 부리가 소매를 콕콕 잡아당겼다.
[그래서 갑자기 우릴 찾아온 용건은 뭐야?]
“아, 혹시 이카로스…라고 알아?”
[이카로스?]
코로는 짧은 생각 끝에 흔쾌히 대답했다.
[이름은 들어 본 적 있어.]
“뭐? 정말?”
[하지만 만난 적은 없어.]
나도 모르게 아쉬움이 담긴 탄식을 흘렸다. 그래도 소식만 들을 수 있다면 족했다.
“…이름은 어떻게 들었는데?”
[할머니께서 말씀해 주셨거든. 우리의 선조격인 전설 같은 존재라고. 예전엔 몇 번 봤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어.]
“그게 어디야?”
[북쪽의 높은 산과 남쪽의 바다. 그리고 서쪽의 설원에서. …아, 동쪽에 있는 숲에서도.]
결국 대륙 전체였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일이긴 했다. 자그마한 새도 마음을 먹으면 바다를 건너는데, 이카로스라면 온 대륙을 떠돌아다니고도 남았다. 창공을 뒤덮는 날개의 깃조차도 붙잡을 수 없다니…. 어째 힘이 주욱 빠졌다.
[우리 세대엔 본 적 없어. 목격담이 끊긴 지 꽤 됐거든.]
“그렇구나….”
[아마 죽었을 걸?]
“잠깐. …뭐?”
죽어? 이카로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니 코로는 퍽 심드렁하게 말했다.
[영원히 제자리에 머무는 새는 없어. 날개를 허락받은 이상 창공을 누리는 게 권리이자 의무니까. 그런데 소식이 들리지 않잖아? 그럼 죽은 거지.]
“일부러 날지 않는 걸 수도 있잖아.”
[왜?]
“그야 날개를… 잃어서?”
[야생에서 날개 없는 새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 마물도 마찬가지고.]
확실히 험난한 야생에서 날개 없이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아스레인의 힘을 물려받은 이카로스라 할지라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누군가에게 붙잡히지 않아도 인간들 사이에서 응당 목격담이 돌아야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카로스와 관련된 기록은 없었다.
미궁에 사로잡혀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던 그때, 코로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면 봉인된 거겠지.]
***
닉스는 말했다. 신전에서 날뛴 후로 날개 한 짝을 다쳤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디에도 봉인되었단 이야기는 없었다. 지하도, 바다도, 하늘도- 어디에도 없다. 이카로스는 공중 분해되듯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정말 코로의 말대로 어딘가에 봉인이라도 됐단 말인가.
“…다시 처음부터 찾아보자….”
온실에서 나오자마자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무렴 자료는 많을수록 좋다. 지금은 불필요해 보여도 언젠가 두 단서를 연결하는 끈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카로스가 사라지기 전의 사료(史料)부터 차근차근 훑어봐야만 했다.
“이건 아니고, 그 이전 기록이 있나…?”
하도 오래되어 낱장이 겨우 엮여 있는 고서적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러다 마침 어제는 발견하지 못한 기록을 찾았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책장 구석에 있는 책을 꺼내는 그때, 웬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 책엔 별 중요한 정보는 없어요.”
“…네?”
“이미 읽어 봤거든요.”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애초에 내가 뭘 찾는 지 어떻게 알고?
저절로 찌푸려진 얼굴을 애써 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정복을 갖춰 입은 사내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갓 서른을 넘겼으려나. 가르마를 타서 가지런히 넘긴 검은 머리카락과 묘하게 푸른빛을 띠는 눈동자가 차분한 인상을 주었다.
“아스레인 교수님의 제자… 맞죠?”
부드러운 말투에 잠시 마음을 놓았다가, 그의 재킷 칼라에 꽂힌 독수리 모양 핀을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황실의 표식인가. 아니면, 카르사 제국 산하 연구소의 문장인가.
“…무슨 용건이시죠?”
“이야,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사내는 능청스럽게 새하얀 장갑을 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바쁘지 않다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끼리 차라도 한잔하죠.”
“같은… 목표요?”
“저도 이카로스를 찾고 있거든요.”
그의 시선이 내 옆에 있는 책을 넌지시 향했다. 관심 없는 사람에겐 책이 무작위로 쌓여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같은 목적을 가졌다면 필시 눈치챘을 것이다. 비슷한 생각의 흐름으로 기록을 찾았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범상치 않은 눈썰미에 저절로 경계심이 생겼다.
“괜찮으신가요?”
무엇보다 사내가 나타난 후로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무거워졌다. 바람만 불어도 사라질 만큼 흐릿한 기운이지만- 한 번 몸으로 받아 낸 적이 있어서 그런가. 내게는 뚜렷하게 느껴졌다.
“네. …저야 좋죠.”
그의 몸을 둘러싼 희미한 신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