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 (108/305)

#108

남들이 보면 퍽 이상한 광경이었다. 빈 강의실에 홀로 서서 끊임없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다니.

“다시 ‘환각’에 대해 검색해 봐.”

- 이전 검색 결과를 포함할까요?

“…아니. 일단 ‘환청’은 제외하고 보여 줘.”

실제화된 마물 도감을 살펴보던 시스템이 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우아한 손짓을 따라 둥실 떠오른 책 낱장은 이내 성벽처럼 나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 총 20건이 검색되었습니다.

“여전히 많네.”

희귀한 능력이라 생각했는데, 환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물은 꽤 많았다. 역시 ‘사람을 홀리는’이란 수식어가 붙은 존재답다. 20건에 달하는 검색 결과를 전부 훑어보았으나 단번에 느낌이 오는 마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특징은 관계 평가가 열려야 밝혀진다. 지금으로선 여느 마물 서적에나 있을 법한 내용만 이어졌다. 결국 20건이나 되는 마물을 일일이 도서관에서 대응해 봐야 한단 소리였다.

최악의 경우, 그 안에 답이 없을 수도 있다.

“만약 환각이 아니라, 환영을 만들어 내는 마물이라면…?”

-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하아, 그럼 환영까지 검색에 추가해서 한 번에 보여 줘.”

촤르륵, 펼쳐진 마물 도감에서 몇 장이 떨어져 나왔다. 하지만 추가된 정보를 봐도 이렇다 할 마물은 없었다. 몇 시간째 도감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땅한 수확이 없으니 저절로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내가 놓친 건 없을까?”

- 서식지에 대해서도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소용없을 거야. 교수님께서 정신 계열 능력을 가진 마물은 계속 떠돈다고 하셨거든.”

- 아무리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 머물기에 선호하는 장소는 있을 겁니다.

“…그런가?”

시스템의 말이 맞다. 유랑 생활을 해도 매번 비슷한 서식지를 고를 것이다. 이를테면 먹이를 구하기 쉽다든가, 몸을 숨기기에 적합하다든가, 천적으로부터 도망치기에 유리하다든가.

- 어떠십니까?

“중요한 점이긴 한데, 아직은 부족해.”

하필이면 사건이 일어난 마을 주변을 둘러싼 지형지물이 너무도 다양했다.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강이 있고, 또 강 하나만 건너가면 평지가 펼쳐진다. 드넓은 카르사 제국에서 산과 강의 조합은 흔하디흔했다.

분명 편지 안에 중요한 특징이 남아 있을 것이다. 서식지를 특정할 수 있을 법한 단서가.

“지금까지 꽤 여럿이 실종되었다가 돌아왔는데, 목격자가 너무 없지 않았어?”

- 고립되기 쉬운 것은 전형적인 산지 마을의 특징이죠.

“그건 그래. 하지만 저긴 산맥 사이에 마을이 꽤 많아. 언덕으로 둘러싸여 타지로 가기 어려우니 인접한 마을끼리 교류가 많겠지. 그래서 마을을 오고 가는 보따리상도 있는 거고.”

- 그럼 실종된 그들이 산으로 간 건 아니란 말씀입니까?

“아직은 추측이지만…. 산이 가까우니 약초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우리야 산에서 조난당하기 쉽겠지만, 마을 사람들한테는 삶의 터전이야. 계속해서 산을 오르내렸을 텐데…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이고 아무도 못 봤을 리가 없어.”

- 그럼 근처에 산보다 인적이 드문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곳이라곤 강 건너겠지.”

- 진이 보여 준 쪽지 때문입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다급히 휘갈긴 글씨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강 건너에서 어머니께서 나를 기다리신다.’

단순한 환각일지도 모르지만, 자그마한 단서라도 쉽게 넘어갈 순 없었다. 슬슬 틀이 잡혀가는 추론을 도우려 시스템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 그 강을 배를 타지 않고 건널 수 있습니까?

“수심이 얼마나 될진 모르겠어. 최소한 무릎은 넘을….”

말을 하다 말고 불현듯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그들의 외형 묘사가 떠올랐다.

‘늘 말끔하던 옷은 돌밭을 뒹군 것처럼 해져 있었고, 바지는 무릎까지 축축해진 데다가 온몸에서 눅눅한 냄새가 진동했어요.’

‘분명 나갈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며칠 만에 돌아오니 신발이 다 해져서는-’

며칠 동안 평지를 걷는다고 신발이 다 해지거나 옷이 뜯어지진 않는다. 거친 돌밭, 눅눅한 냄새, 축축해진 바짓단. 그 모든 현상에 부합하는 장소는 딱 하나 있었다.

“만약 지하에 동굴이 있다면…?”

- 예?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야?”

- 그럼 사람들도 지하 동굴의 존재를 모른다는 겁니까?

“그래야 맞아떨어지지. 물론 아직은 가설일 뿐이니 이제부터 검증해야 해.”

어째서 지상에서만 찾을 생각을 했을까. 마을을 둘러싼 산도, 그 앞을 드리운 강도 아니라면- 모든 가능성은 지하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말한 키워드를 합쳐서 찾아 줘. …햇빛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마물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에서 도감의 낱장이 차례대로 날아갔다. 하나씩 지워 나가는 시스템의 손짓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는 지휘자와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단 4개의 도감만이 남았다.

그 중 지금껏 못 보던 이름이 등장했다.

“…닉스?”

왠지 어감이 익숙한 마물이었다. 도감 내용을 보면 그나마 감이 올 것 같은데, 하필이면 분류와 외형이 공란이었다. 그나마 몇 줄 적혀 있는 특징마저도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이자 그는 생명의 끝자락에서 피어난다. 만약 밤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모든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맞이하라. 그럼 밤께서 기꺼이 꺼져 가는 불씨를 안아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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