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어느덧 스산한 겨울밤이 찾아왔다. 어둑한 정원을 지나자 길목에 우두커니 선 인영이 보였다. 균형 잡힌 몸과 한쪽 어깨로 넘긴 머리카락,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창포 향기. 하나부터 열까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존재는 그뿐이었다.
“교수님!”
한달음에 쫓아가니 아스레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려다가 그의 표정을 마주하곤 어깨를 흠칫 굳혔다. 잔뜩 찌푸린 미간과 굳게 닫힌 입은 말 못할 고통을 삼키고 있는 듯했다.
“왜 그러세요?”
걱정스레 물어봐도 대답 없이 사나운 겨울바람만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낌새를 느껴 그의 소맷자락을 덥석 쥐었다. 손끝에 빳빳한 천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신기루가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매서운 바람에 날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을까.
“…아스레인?”
“미안하네. 혼자 두고 가서….”
“왜… 그런 말을 해요…?”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는 순간이었다. 쨍강!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믿고 싶지 않았으나, 아스레인의 육체가 서서히 조각나고 있었다.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모래알 같은 황금빛 싸라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어떻게든 떨어진 조각을 주워 붙이려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산산이 부서진 몸은 손이 닿는 족족 연기처럼 흩어졌다.
끝내 아스레인이 서 있던 자리엔 한 줌의 모래만이 남았다.
“…헉!”
숨을 훅 들이쉬며 눈을 부릅떴다. 흐릿한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니 가장 먼저 청록색 커튼이 보였다. 기숙사에선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장식에 겨우 긴장의 끈을 놓았다.
“아… 저택이었지.”
시간이 너무 늦어 아스레인의 저택에서 새벽을 보냈다. 손님방이 생각보다 너무 넓어서 어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꿈자리마저 뒤숭숭했다.
“뭐 이런 꿈이 다 있어.”
쓸데없이 생생한 꿈이었다. 아스레인의 무사를 확인했는데도 여전히 불안은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체를 둥글게 말자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 괜찮으십니까?
“…응. 그냥 꿈이었어.”
- 요즘 들어 꿈을 자주 꾸시는군요.
“원래 몸이 피곤하면 악몽을 꾼다잖아.”
최악의 악몽이었다. 너무 현실감이 넘치는 바람에 가슴이 답답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부터 활짝 열었다. 탁 트인 호수를 보니 그나마 마음이 진정되어 갔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답이 없다. 설마 아스레인인가…? 기대감에 씰룩이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러자 어느새 옆자리를 차지한 시스템이 살짝 입을 가리고 웃었다.
- 높은 확률로 아니라고 봅니다.
“왜 또 찬물을 끼얹고 그래.”
- 전 가능성을 제시한 것뿐입니다.
큼!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헛기침을 하곤 문을 열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자 목 없는 조각상과 딱 마주쳤다.
“아….”
작게 탄식을 내뱉으니 뒤에서 얄밉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끼눈으로 슬쩍 시스템을 흘겨보곤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조각상을 향해 미소 지었다.
“무슨 일이세요?”
앞치마를 찬 조각상은 말없이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 안엔 빳빳한 셔츠부터 시작해 갈아입을 옷이 담겨 있었다. 부지런히 아스레인의 명령을 받고 일을 하러 온 모양이다.
“아, 감사합니다.”
선뜻 바구니를 넘겨받으려는데 조각상이 잽싸게 한걸음 물러섰다. 그대로 뒤를 돌아 걸어가더니 나를 흘끔 돌아보았다. 이번에도 따라오라는 소린가보다. 다른 손님방을 지나 복도 끝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따뜻한 공기가 훅 다가왔다.
조각상이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욕실이었다. 기숙사의 공용 샤워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대리석 욕탕을 보니 벌써부터 나른해졌다.
“고마워요. 그, 뭐라고 불러야 하지. 혹시 이름 있으세요?”
“…….”
“그럼 조각상…씨?”
“…….”
임무를 마친 조각상은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팔에 걸친 수건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 같았다. 슬쩍 조각상의 눈치를 살피며 옷을 벗어 두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좋다.”
뜨거운 물이 온몸을 감싸니 금세 노곤해졌다. 느긋하게 어깨에 물을 끼얹다가 문득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귓불 아래로 귀걸이가 짤랑 흔들렸다.
평소엔 아스레인의 선물이라 마냥 좋아했던 귀걸이가 이젠 찜찜하기만 했다.
“이걸 계속 껴도 되는 걸까….”
누구든 금빛 마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봤다면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게다가 마석이 주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되니 거부감은 더욱 커졌다.
‘대 카르사 제국이 마법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이걸 희생이라 해야 할까. 충의라고 해야 할까. 몸을 위해 주기적으로 마석을 만들어 내야 한다지만, 이유 모를 불쾌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귀걸이를 사용한다면 당연하게 마석을 취하는 태자 칼리온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아….”
스르르 물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막 사색에 잠기려던 그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예리하게 잘린 목 단면을 보자마자 잉어처럼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
“푸학, 깜짝 놀랐잖아요!”
“…….”
빽 소리를 질러도 조각상은 미동이 없었다. 괜히 놀라는 바람에 조각상이 가져온 수건에 물방울이 튀어 축축해졌다. 물 안으로 들어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아서 당황한 건가. 왠지 주눅 든 것 같은 모습에 조심스레 수건을 받으며 눈치를 살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지금 나갈게요.”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까지 말끔하게 닦아 내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이거 입으면 되죠?”
이젠 대답을 들을 생각도 않고 버릇처럼 말만 걸었다. 바구니 안에 든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섰다. 빳빳하게 펴진 셔츠와 깔끔하게 재단된 바지는 이번에도 무서울 만큼 딱 맞았다. 꼭 맞춤 제작된 옷을 입은 듯했다.
설마 아스레인의 저택에 나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손님이 또 있나…?
“에이, 아니겠지.”
괜스레 울적해져서 옷소매를 꼼지락거렸다. 그동안 거울 옆에 서 있던 조각상이 다시 삐걱삐걱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치껏 따라오라는 걸로 알아듣고 그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아스레인은 깼어요?”
“…….”
“잠은 잘 잤으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두짝문 중 한쪽만 활짝 열린 방 앞에 도착했다. 길 안내를 마친 조각상은 묵묵히 다른 일을 찾아 돌아갔다. 나를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몰라 의아해하던 차, 방 안의 광경을 보자마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아….”
무려 다섯의 조각상이 아스레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가 팔을 올리면 조각상이 알아서 셔츠를 입히고 단추를 채웠다. 다른 하나는 촘촘한 빗으로 고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수많은 단추를 채우고, 또 채워서 마침내 금욕적인 차림이 완성되었다.
그 와중에도 아스레인은 책상 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중요한 서신은 전부 내게 올려 보내고, 연회 초대장은 적당히 거절하도록. 혹 선물이 들어오거든 평소대로 처리하고. 나르키소스의 먹이는….”
사락, 사락.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나직한 음성이 섞여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고작 옷시중을 드는 광경일 뿐인데, 완전히 매료되어 말을 거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서류에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내게 날아왔다.
“태오?”
살금살금 도망치다가 걸린 좀도둑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언제부터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었지? 설마 처음…부터는 아니겠지. 자연스럽게 문 옆으로 걸어 나오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좀 더 주무시지 그랬어요.”
“줄곧 누워 있었더니 오히려 불편하더군. 그러는 자네는 간밤에 잘 지냈나.”
“그럼요. 침대가 진짜 푹신하고 넓더라고요. 계속 굴러도 안 떨어지던데요?”
솔직한 감상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귓등을 간지럽혔다. 이윽고 아스레인이 가볍게 손짓하자 조각상들이 일제히 방 밖으로 나갔다.
“그보다 왜 아까부터 계속 거기 서 있나. 들어오지 않고.”
“아, 알고 계셨어요?”
“모를 수가 없지.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그게… 일부러 훔쳐본 건 아니고요….”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넋 놓고 구경했을 것이다. 머리 없는 조각상에게 시중을 받는, 고고한 미인이라니…. 다시금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곱씹는데 아스레인이 의아한 투로 말했다.
“자네는 이따금씩 멀리서 나를 바라보더군.”
“그, 그것도 알고 계셨구나.”
“그래서 내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봤네.”
“예? 아니, 뭐 이런 걸 가지고 가설을 세우세요.”
가설이 뭐가 있어. 그냥 좋아서 쳐다보는 거지.
민망한 나머지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방심한 사이 아스레인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대체 뭘 하려는지 몰라 어깨를 움찔거리며 연신 눈치만 봤다. 그러자 아스레인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시선을 맞췄다.
“자.”
단숨에 코앞까지 다가와선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러면 잘 보이나?”
“무… 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본능에 충실한 눈은 열심히 미모를 담기 바빴다.
역시 오랫동안 누워 있어서 그런지 조금 야윈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아래 속눈썹이 생각보다 길다. 그것뿐이랴. 날렵한 콧등에서부터 떨어지는 그림자는…. 잠깐. 이게 아니지.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체격 차이 때문에 늘 멀리서 보나 싶어서 그런 건데, 아니었나?”
“그런 거 아니에요!”
한숨을 폭 내쉬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냥… 저도 모르게 시선이 머물러요. 여기 수백 명이 있어도 교수님만 보일 거예요.”
“음. 뭔지 알 것 같군.”
나름대로 부끄러운 걸 감수하고 한 소리인데, 아스레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나도 자네를 볼 때 그러거든.”
“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
…이 사람. 정말 이대로 둬도 괜찮은 걸까? 자각 없이 심장을 때리니 막지도 못하고 너덜너덜해졌다. 아니, 원래부터 예고 없이 훅 다가오긴 했지만… 어째 느낌이 다르다. 어제 일이 있어서 그런가.
“태오?”
이름은 왜 부르는 거야. 게다가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거고. 물론 나야 좋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하니 고문이나 다름없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식은땀이 밴 손을 꾹 쥐었다. 문득 환하게 열린 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긴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흩날렸다.
진한 창포 향기가 코끝을 스쳐 마치 꽃밭을 뒹구는 착각이 일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금빛 머리카락은 들판을 비추는 따스한 햇볕과도 같았다. 그림 같은 풍경에 단단히 홀려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아스레인을 바라보았다.
“…….”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허공을 수놓은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똑똑- 짧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고 돌아보니 조각상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분명 노크를 나만 들은 건 아닐 텐데, 아스레인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며 문을 눈짓으로 열심히 가리켰다.
“아, 하하. 용건이 있나 본데요?”
“하….”
그러자 아스레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돌렸다. 조각상이 가져온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는 손이 왠지 신경질적이었다. 어색하다 못해 갑갑한 분위기를 환기하려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다들 머리만 없는 거예요?”
“저택을 지키고 관리하는데 필요한 부위만 남겨놓은 것뿐이네.”
간결한 대답에 저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어차피 명령을 내리는 건 아스레인이고, 원동력은 마석이니 확실히 머리는 없어도 됐다.
“그럼 저택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음.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네.”
“왠지 호숫가도 엄청 조용하더라구요.”
아침이 되었는데도 저택 주변에선 시끄러운 소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전부 삼켜버린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스레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호수를 어떻게 건넜나.”
“실은 나르키소스의 도움을 받았어요.”
“나르키소스?”
“네! 엄청 빠르던데요? 순간 어질어질할 정도였어요.”
“그 아이가 인간의 손을 타다니….”
혼잣말을 중얼거린 아스레인은 창밖으로 호수를 내다보았다.
“신기한 일이군.”
그 말을 끝으로 방 안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연구실이나 저택이나 조용한 건 똑같은데, 이상하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초조하게 눈을 굴리다가 대뜸 말했다.
“바로 연구실로 돌아가시는 건 아니죠?”
“아무래도 방학이 끝날 때까진 저택에 머무를 것 같네.”
바로 일하지 않고 더 쉰다니, 오히려 반가운 소리였다.
“응. 좋은 생각이에요. 이럴수록 느긋하게 쉬셔야죠.”
불현듯 아스레인 걱정으로 뒷전이 된 연구실이 신경 쓰였다. 혹 방학이 끝나 아스레인을 찾는 손님이 오면 어떡하지. 게다가 아이리스는 내가 저택으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텅 빈 연구실과 기숙사를 보면 분명 걱정할 것이다.
아무래도 오전에 연구실에 출근했다가 다시 저택으로 돌아와야겠다.
“그럼 저는 잠깐 연구실에 다녀올게요.”
대답이 없다. 순간 방금 소리 내어 말한 게 맞나 의심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잔뜩 찌푸린 미간이 보였다. 분명 눈길은 호수를 향하고 있는데, 왜 나를 노려보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교, 교수님?”
재차 부르니 앙다문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왜지?”
“네? 그야 연구실에 손님이 올 수도 있고~”
“있고?”
“자리를 비운 사이 중요한 서신이 왔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계속 말꼬리를 잡히니 점점 궁지로 몰리는 기분이다. 흘끔, 눈치를 살피며 본론을 말했다.
“아이리스한테 말을 못 하고 왔거든요. 매번 저랑 같이 점심을 먹어 줬는데, 갑자기 사라졌으니 많이 걱정할 거예요. 그러니까….”
“하아아….”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이 뒷말을 삼켜 버렸다. 왠지 더 말했다간 안 될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아스레인이 조용히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또 아이리스인가….”
“네?”
뭐지? 혹시 아스레인이 아이리스를 싫어하나? 전에 연구실에서 봤을 땐 되게 친해 보여서 부럽기까지 했는데…. 심지어 계약에 관해 걱정까지 해 주지 않았었나.
도무지 이유를 알 길이 없어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 후, 낮은 목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소식은 내가 보낼 테니 걱정 말게.”
“아, 그래도 제가 직접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쪽이 더 빠르지 않겠나.”
“으음… 그건 그렇죠.”
여전히 아이리스가 마음에 걸려 고민하듯 눈을 굴렸다. 그러자 아스레인이 창문에 고개를 툭 기대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곁에 있겠다면서.”
“예?”
“벌써 말을 바꾸는 건가.”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요….”
“난 자네가 계속 여기 있었으면 하네.”
순간 말문이 막혀 입술만 뻐끔거렸다. 느릿하게 깜빡이는 금안은 서글픈 빛을 띠었고, 항상 날렵하기만 하던 눈썹 끝은 슬쩍 내려갔다. 난생 처음 보는 표정에 다른 말이 나올 새가 없었다.
“꼭… 가야겠나?”
아이리스.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