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 (95/305)

#95

드디어 내일부터 방학이 시작된다. 그간 방학이 되면 지도 교수가 외부 세미나로 인해 빈번히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쉬지는 못할지언정 잠시나마 숨통이라도 트이고자 초등학생처럼 방학만 간절히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엔 정반대의 상황에 놓였다.

“시스템. 만약에 교수님이 방학 내내 연구실로 안 오시면 어떡하지?”

-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3주면 거의 한 달이라고. 얼마나 긴데.”

- 그럼 직접 만나러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너무 부담스럽진 않을까?”

- 그럼 편지를 쓰십시오.

“내 경험인데, 증거가 남는 흑역사는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게 좋더라고.”

제안하는 족족 거절하자 시스템은 조용히 나를 흘겨보았다. 가늘게 뜬 눈이 마치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고 탓하는 것 같아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알았어…. 얌전히 출근할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 없는 고민을 털고 일어났다. 본관을 가로질러 아치 다리를 지나자 멀리서 연구실이 보였다. 창문이 살짝 열린 걸 보아하니 아스레인이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언제 침울했냐는 듯 기쁜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연구실로 막 들어가려던 차, 창틈에서 낯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대로는… 가… 버티….”

누구지? 긴밀한 대화를 방해하고 싶진 않으나, 이른 시간에 찾아온 손님의 정체가 궁금했다. 조용히 걸음을 돌려 몸을 낮추고 창틀 위로 머리만 삐죽 내밀었다. 그러자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보였다. 정갈한 정장 위에 로브를 걸친 남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주변이 워낙 조용한 덕에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번 주기는 평소보다 너무 길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었네.”

엄숙한 분위기가 유리 너머로도 느껴져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하지만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종잡을 수 없었다. 아무튼 내가 감히 엿들을 내용은 아닌 것 같아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불현듯 테이블 위에 놓인 목재 상자가 눈에 띄었다. 책 한 권은 거뜬히 들어갈 크기의 상자엔 보란 듯이 독수리 문장이 찍혀 있었다.

“저건….”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에브게니아의 상징이었다. 또, 황실이다. 아멜리 백작가에서 일할 때는 황실과 단 한 번도 엮인 적이 없다. 그와 달리 아스레인은 유독 황실과 연이 깊었다. 아무리 안겔루스 대학이 황실 직속이라지만, 곁에 있는 나조차도 늘 독수리의 감시를 받는 기분이다.

심각하게 상자를 쳐다보던 아스레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2주 안으로 마치겠다고 전해 주게.”

“알겠습니다. 부디 무리는 하지 마시길….”

뭘 마치겠다는 거지…? 흐름을 모르니 어렴풋이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아쉽게도 대화는 그대로 끝났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아스레인은 상자를 들고 책상으로 향했다. 그 후 서랍을 열어 상자를 고이 넣어 두었다.

아스레인을 눈으로 좇는 사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무새를 갈무리하는 폼이 곧 연구실을 떠나려는 듯 보였다. 서둘러 창문에서 떨어져 남자가 연구실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연구실 문이 열렸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정중히 인사하는 남자의 뒤로 아스레인이 배웅하러 따라 나왔다. 이때다 싶어 마치 방금 막 도착한 사람처럼 연구실로 다가갔다. 먼발치에서 눈에 띄게 걸음을 멈추자 아스레인이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손님이 떠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다가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교수님. 손님이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늦게 왔을 텐데….”

“괜찮네. 어차피 용무가 끝나 돌아가는 길이었으니.”

다행히 아스레인은 내가 미리 도착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아치 다리 밑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이른 아침부터 오신 거래요?”

“나를 진찰하러 온 의원이네.”

예상 밖의 인물이 튀어나와 짐짓 당황했다.

“네? 의원이요?”

매번 상태를 물을 때마다 괜찮다고 하던 아스레인이 직접 의원을 부를 정도면 얼마나 상태가 악화된 걸까. 게다가 그 상자는 뭐지? 황실 소속의 의원인가? 아는 게 없으니 지금으로선 전부 속단에 불과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신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많이 안 좋으신 건가요?”

“심각한 건 아니네. 그래도 당분간 일을 쉬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

아스레인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가니 창문에서 보이지 않던 커다란 가방이 소파 옆에 놓여 있었다. 심지어 한 개가 아니었다. 마치 오래 떠나는 사람처럼….

“이 짐은 다 뭐예요?”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2주 정도 저택에서 머물며 쉬기로 했네.”

“아…. 오늘 가시는 거예요?”

“그래. 자네가 오면 바로 출발할 계획이었지.”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방학 내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쉬려면 집만 한 곳이 없다는 건 알지만, 묘하게 씁쓸해진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아스레인이 2주 동안이나마 저택에서 휴식한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혼자서 괜찮겠나.”

“당연하죠! 혹시 연구실이 걱정이라면, 제가 있을 테니 더 쉬셔도 괜찮아요.”

“휴식이 길어질수록 돌아와서 처리해야 할 일만 늘어날 뿐이네.”

“그래도…”

아스레인이 오래 쉬었으면 하는 걱정과 하루라도 더 빨리 만나고 싶다는 사심이 충돌했다. 물론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에 내가 끼어들 틈은 처음부터 없었다. 아스레인이 조금이나마 내게 의지하길 바라는 건 아무래도 욕심인가 보다.

표정에 쓸쓸한 감정이 먼지 한 톨이라도 묻어나지 않도록 환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더 가져갈 물건은 없으세요?”

“거기 있는 서류를 봉투에 넣어 주게나.”

“네!”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를 모아 조심스레 종이봉투 안에 넣었다. 한 뭉치씩 정리할 때마다 그의 손길이 묻어나는 책상도 점점 비워져 갔다. 그걸 보고 있자니 거절당할 게 분명한 욕심이 피어올랐다.

“혹시… 있잖아요.”

“음?”

“…쉬는 동안 곁에서 도울 사람이 부족하진 않으세요?”

아스레인이 내게 사적인 일을 시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즉각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자네가 일부러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하네.”

“역시 그렇겠죠?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당연히 있겠지. 교수이기 전에 태자의 총애를 받는 백작인데, 실력이 출중한 의원과 전문적인 시종이 24시간 붙어 있을 것이다. 아픈 그의 곁에서 내가 기웃거리는 것보다 그들이 백배 천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스레인 곁에 있고 싶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냐고 꼬치꼬치 묻고도 싶었고, 저택에서 틈틈이 일을 하려고 하면 쉬어야 한다며 슬쩍 잔소리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과 사가 확실한 아스레인에게 나는 아직도 공(公)의 선에 서 있다. 아무리 가까워졌다 생각해도, 힘든 고비를 같이 넘어왔다 하더라도 여기까지다.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 상처를 덜 받는 유일한 길이다.

“교수님. 이것도 챙길까요?”

확인이 끝나 옆으로 치워 둔 서류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찔렀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바닥을 덮은 편지 더미 옆에 페이퍼 나이프가 떨어져 있었다. 아스레인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편지를 줍기는커녕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리하던 서류를 내팽개치고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아…. 단지 손이 미끄러진 것뿐이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무릎을 굽혀 나이프부터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주웠다. 이내 아스레인도 함께 소란을 정리했다. 그런데 편지를 줍는 그의 손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금단 현상에 휘말린 사람처럼 양손이 불규칙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교수님. 손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아스레인이 주먹을 꽉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면 괜찮아진다고 그랬네.”

“정말요?”

“내가 자네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겠나.”

그렇게 말하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편지 뭉치를 노끈으로 묶어 단단히 봉하는 와중에도 계속 아스레인을 눈으로 좇았다. 커다란 가방과 서류 봉투까지 착실하게 챙긴 아스레인은 떠날 채비를 마쳤다.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게.”

지체 없이 떠나려 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문 앞에서 멈춰선 아스레인이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숙인 채 입술만 우물거렸다.

“저….”

딱 하루만 문병을 가도 되냐는 말이 목구멍에서 턱 막혔다. 그냥 뱉으면 그만인데, 돌아올 대답이 거절임을 알기에 떨리는 숨소리만 새어 나갔다. 하고 싶은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2주 뒤에 바로 돌아오시는 거예요?”

“음. 그때까진 연구실에 굳이 출근할 필요는 없네.”

“정말요? 왠지 기분이 이상하네요.”

“괜히 눈치 볼 사람이 없어지니 좋진 않고?”

“네?! 전혀요. 애초에 눈치도 안 주셨잖아요.”

좋긴 무슨…. 바보 같은 아스레인. 당장 저택까지 쫓아가서 2주간 눌러 살고 싶은 욕망을 겨우겨우 참고 있는 사람을 뭐로 보고.

퉁명스럽게 입술을 비죽이자 아스레인이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럼 다녀오마.”

오늘도 어김없이 따스한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기분 좋게 손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녀오세요. …연구실에서 기다릴게요.”

정말 저대로 보내도 되는 걸까. 서서히 멀어지는 뒷모습이 곧 꺼질 촛불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본가로 향하는 마차 행렬이 정문 앞에 길게 이어졌다. 바쁘게 오고가는 학생들 덕분에 학교는 마치 학술대회 날처럼 왁자지껄해졌다. 당연하게도 갈 곳이 없어 오늘 본가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려고 나왔다.

진을 막 떠나보내고 나니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처음 정체를 알았을 때처럼 세잔은 여러 학생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길고 긴 인사가 끝난 후에야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세잔. 이제 가는 거예요?”

“짐을 챙기는 게 조금 늦어졌습니다.”

“잊은 거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요. 중간까지 가서 다시 돌아오긴 억울하잖아요.”

세잔의 뒤로 지나가는 젊은 마부는 부지런히 짐을 마차에 실었다. 월등하게 화려하고 커다란 마차는 피아트 후작가의 위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오오- 작게 탄성을 내뱉자 세잔이 민망한지 내 시야를 가로막고 섰다.

“형은 계속 학교에 남아 있는 겁니까?”

“별일 없는 이상 연구실을 지켜야죠.”

“그럼 아스레인 교수님도 함께 계시겠군요.”

“아, 아뇨. 교수님은 사정이 있어서 저택으로 돌아가셨어요.”

뜻밖의 소식에 세잔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내가 혼자 남는 게 마음 쓰였던 걸까. 세잔은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 사이 짐을 다 실은 마부는 세잔이 마차에 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붙잡고 있다간 괜히 원망을 살 것 같았다.

“얼른 가 봐요. 세잔. 먼 길을 가야 하잖아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어린애도 아닌데요, 뭘.”

팔을 붙잡아 데려다주니 세잔은 어쩔 수 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마부가 출발하기 전, 창문 너머로 세잔에게 말했다.

“그… 혹시 심심하면 편지 써요. 연구실 주소로요.”

“기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마차가 경쾌한 발굽소리와 함께 떠났다. 언덕 너머로 내려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곤 조용히 정원으로 돌아갔다. 인파로 북적북적하던 학교는 금세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솨아-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바람이 공허하게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없네.”

돌아갈 장소와 반겨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토록 부러운 적은 없었다. 텅 빈 학교에 남아있으니 문득 조사대장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 떠올랐다.

‘출생지 불분명에 연고자 없음.’

오늘따라 왠지 그 말이 더욱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 후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괜히 연구실에 혼자 있으면 자꾸만 아스레인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보니 편지를 확인할 때 빼곤 연구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다행히 할 일은 많았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어쩌다 세잔에게 온 편지에 답장해 주고, 가끔 실습실에서 훈련하는 아이리스를 찾아가 함께 식사했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와중에도 온실에 들르는 건 잊지 않았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누르와 몰래 빠져나와 같이 눈을 맞았고, 점점 호전되는 프라민과 정신없이 모래밭에서 놀기도 했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은 어떤 짓을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항상 습관처럼 새벽에 눈을 떴다. 어느 날은 늦잠을 자 버려서 다급하게 샤워실로 튀어 들어갔다. 그러다 찬물을 머리에 끼얹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내가 지각해도 연구실에서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지금껏 혼자 시간을 보내길 좋아해서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줄 알았다. 단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기댈 곳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한 번 온기를 알아 버린 탓에 혼자가 된 쓸쓸함이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 태오 님.

“응. 오늘이잖아.”

7시부터 눈을 떠서 정갈하게 차려입고 연구실로 향했다. 밤새 소복하게 눈이 쌓여 신발이 축축해졌지만, 그것마저 행복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연구실 청소를 시작했다.

아직 출근시간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기다림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 9시에 딱 맞춰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반겨 주지 않으면 서운하잖아.”

-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을 잘 돌려 말하시는군요.

“하하, 너무 티 났나?”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창가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멍하니 연구실로 오는 길목만 바라보니 시스템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 그래서 여기 계속 계실 겁니까?

“응.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대놓고 기다렸다는 걸 알면 부담스러울까 봐 책을 골라들었다. 하필이면 아스레인이 직접 쓴 서적이어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얌전히 책을 읽으며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창밖은 조용했다.

“역시 눈이 와서 그런가….”

눈 오는 날은 위험하니까 충분히 늦을 수 있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 책을 펼쳤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혹시나 하고 창밖을 내다봤다. 새하얀 눈밭엔 자그마한 새의 발자국조차 찍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자정이 되었다.

-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무래도 내일 오시려는 것 같습니다.

연구실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시스템은 눈이 많이 쌓여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나 길목에 얇게 쌓인 눈은 전부 녹은 지 오래였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끝내 아스레인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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