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굳어 버린 머리로 단어를 수십 번씩 쪼개고 이어 붙여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죄인 클라우스가 너와 일대일 면회를 요청했다.”
다시 들어도 저의를 읽어 낼 수 없었다. 수감된 클라우스가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만나길 원하는 거지? 눈을 빼앗아 간 나에 대한 증오 때문에? 아니면, 내가 마물을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빌미로 협박하기 위해서?
애써 초조한 기색을 숨기며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죠?”
“아무리 고문을 해도 진실을 불지 않아. 오직 너에게만 입을 열겠다는군.”
“설마 그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아니. 물론 믿지 않는다. 게다가 폐하께서도 죄인이 강도 높은 고문을 버티지 못해 죽어도 상관없다고 명령하셨다. 하지만 최소한 빼낼 수 있는 비밀은 전부 쥐어짜야 하지 않겠나.”
상당히 불쾌한 방법이었으나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기서 배후를 알아내지 못하고 클라우스가 죽어 버린다면, 또 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깊은 고민에 빠지자 그가 선심을 쓰듯 말을 덧붙였다.
“물론 선택은 네 자유다.”
자유? 황실 소속 사람이 직접 찾아와 내가 오지 않으면 죄인이 진실을 토해 내지 않는다고 전하는데… 이게 자유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입매가 저절로 비틀렸다.
그때 연구실 문이 열렸다.
“태오. 대체 무슨….”
연구실에서 나온 아스레인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내 곁에 머물렀다. 줄곧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던 남자는 아스레인을 보자마자 정중히 인사했다.
“아스레인 백작님을 뵙습니다.”
“조사대장인 자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죄인 클라우스가 이자를 만나길 요청했습니다. 물론 저희도 죄인의 말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쓸 수 있는 수단은 전부 썼기에….”
말이 길어지자 아스레인이 신경질적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짧게 숨을 들이쉰 조사대장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스레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사건으로 더 이상 이자에게 접근하지 말라 경고했을 텐데.”
“송구합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아직 안정이 필요한 상태네.”
“하지만 죄인이….”
싸늘한 금안과 마주친 조사대장은 아차 싶었는지 뒷말을 삼켰다.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노려보던 아스레인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조사대가 최우선으로 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건을 파헤치고 죄인을 심문하여 폐하께 진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의 입을 억지로라도 열지 못하는 자네가 조사대장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건….”
“주어진 임무를 똑바로 해내지도 못한 자네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아무런 서신도 없이 여기까지 무단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겐가.”
“…죄송합니다. 사안이 급해 생각이 짧아졌습니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해를….”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몰린 조사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쯧, 짧게 혀를 찬 아스레인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였지만 눈동자는 차분히 내 안색을 살폈다.
“괜찮나.”
“네. 별일 없었어요.”
“그럼 이제 어찌할 건가. 태오.”
“…제가 선택해도 될까요?”
“그들은 자네에게 부탁하고 있으니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네.”
마음 같아서는 그 추악한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진실이 묻힌다 생각하니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 결정을 조용히 기다려 주는 아스레인에게 신중하게 말했다.
“그럼… 갈게요. 저도 이게 클라우스의 수작인 줄은 알아요. 하지만 정말 그가 고문으로 인해 죽어 버린다면, 계속 후회할 것 같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조사대장이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혹여 내가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할까 봐 내심 마음을 졸인 모양이다. 이후 아스레인은 별말 없이 조사대장을 연구실 안으로 들였다.
달칵. 문을 잠그고 창문까지 빠짐없이 닫은 아스레인이 말했다.
“지금껏 저택을 조사해서 알아낸 사실을 보고하게.”
조사대장은 나를 흘끔 쳐다보며 곤란한 듯 입술을 움찔거렸다.
“여기서 말입니까?”
“그래.”
“하지만 조사대의 기밀에 평민이 접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네.”
단호한 아스레인의 태도에 조사대장은 어쩔 수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클라우스가 부인에게 쓴 편지를 토대로 온실 바닥을 파 보았습니다. 그리고 히아신스 클라우스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마력 덕분에 거의 썩지 않아 인상착의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배 속에 태아가 남아 있었나?”
“아뇨. 아이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잠시 말하길 망설이던 조사대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신 개복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후에 아이라도 빼내려고 했나.”
“저희도 그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달리 사체에서 발견된 특이점은?”
“그 외에도 양손에 심각한 마찰상과 목뼈 골절이 발견되었으며….”
조사대장은 로브 안에서 작은 마석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가 마력을 불어넣자 마석 위로 사진과 같은 장면이 떠올랐다. 마석이 비춘 여인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흙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옷차림은 클라우스 저택에 걸린 그림 속 히아신스와 같았으나, 목 위로 드러난 얼굴은 처참했다.
“보시다시피 외부 충격으로 인해 얼굴이 심하게 으그러져 있었습니다.”
“…타살인가?”
“그건 아직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확실히 병사(病死)는 아닙니다. 저택에서 오랫동안 일한 시종장을 추궁한 결과… 히아신스 부인이 몸이 약하긴 해도 결코 죽을 만한 병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실이었다. 히아신스가 병으로 인해 죽지 않았다니…. 확실히 마석이 보여 준 그녀는 육안으로도 사인이 뚜렷하게 확인됐다. 저 정도면 높은 곳에서 떨어졌거나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때린 것이다.
멍하니 마석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조사대장이 충격적인 소식을 연달아 전했다.
“그리고 정원에서 시체가 한 구 더 발견됐습니다.”
시신이 하나 더 있다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자 조사대장은 또 다른 마석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온전한 시신이 아닌, 이미 백골화가 진행되어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 나타났다.
“백골뿐이라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 사체에서 보존 마법이 걸린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죄인에게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만….”
테이블에 내려놓은 물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히아신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드러나면서 퍼즐이 완전히 부서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단서가 나타나 망가진 줄 알았던 퍼즐은 다시 완성된 모습을 되찾았다.
틀림없다.
“제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건 클라우스의 입을 열게 할 열쇠다.
***
내 생애 설마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게 떨리는 숨을 내뱉자 곁에 서 있던 아스레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정말 괜찮겠나?”
“네. 위험해지면 바로 물러설게요.”
결심을 끝내자 감옥을 지키던 기사가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 무거운 자물쇠를 열고 철창 안으로 들어가니 또 다른 철문이 드러났다. 햇빛 한 줄기 새어들지 않고, 비명조차 빠져나갈 틈이 없는 완전한 감옥이었다.
끼이익- 기사가 철문을 열자 만신창이가 된 죄수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다친 눈에 붕대를 감은 클라우스는 손과 발이 쇠사슬로 묶여 벽과 연결되어 있었다. 앞서간 기사가 입마개를 풀어 주니 클라우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전을 위해 철문은 열어 둔 채로 철창만 잠가 두겠습니다. 앞에서 대기한 채로 지켜보고 있을 테지만, 부디 위험한 행동은 삼가 주십시오.”
경고를 마친 기사는 조용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철창 앞에 건장한 기사가 이쪽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열린 문으로 내 행동이 보이겠지만, 거리 때문에 대화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콜록. 쇤 기침을 토해 내는 클라우스를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진짜 왔군.”
피딱지가 진 입술이 비릿한 호선을 그렸다.
“어때. 네가 잡아넣은 내 모습은…. 불쌍한가?”
“제 연민은 그리 값싸지 않아서요.”
자신감에 찬 클라우스가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황명을 어긴 자가 들어가는 지하 감옥에선 귀족도 평민도 그저 사형을 앞둔 죄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클라우스에겐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도발하려는 듯 킥킥,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내 눈을 빼앗은 마물은 잘 있나?”
“네. 아주 건강해요. 그뿐만 아니라 구조된 마물들까지 무사히 회복하고 있죠. 점점 무너지는 당신과 다르게요.”
“내가 네 능력을 불어 버릴지 두렵지 않은가?”
“글쎄요.”
역시 그 점부터 물고 늘어지기에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설령 말한다 한들 누가 당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지는 모르겠네요.”
“…뭐?”
“충직하게 죄인을 붙잡은 평민과 황명을 어기고 미쳐 버린 귀족 중에서… 당신 같으면 누굴 더 믿겠어요?”
비죽 올라간 그의 입꼬리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파들파들 떨렸다. 어차피 여유라고 해 봤자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괜히 말려들어선 안 된다.
“쓸데없는 얘기는 이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신의 연구를 지원한 ‘그분’이 누구죠?”
“위대하신 레톤 신이지.”
“헤카테를 만드는 방법도 신의 계시로 알았다고 할 셈인가요?”
“왜. 신의 은총을 받는 내가 부럽나?”
“신탁은 미래를 내다볼지언정 결코 친절하지 않아요. 심지어 개인을 위해서 정확히 필요한 정보만을 내어 준다…. 말이 안 되는 걸 당신도 알지 않나요?”
클라우스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긍정인지 부정인지는 표정으로도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를 조금 더 몰아세웠다.
“누군가 당신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는 건,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는 거겠죠. ‘그분’은 마물의 마력을 이용한 연구가 자신의 숙원을 이뤄 주리라 확신했으니 당신을 지원한 거예요. 내 말이 틀린가요?”
자신 있게 물었으나 돌아온 건 조소가 담긴 헛소리였다.
“…넌 정말 어릴 때의 날 닮았어.”
말리지 말자. 말려들어선 안 된다. 사형을 피할 수 없는 클라우스가 아직도 자신만만한 이유가 분명히 남아 있다. 정말 그가 미쳐서든, 믿음직스러운 배후가 있어서든 이유를 알아내야만 한다.
“향낭에 있는 사자 문장은 뭐죠?”
“뭘 말하는 거지?”
“사이누르 일족이 몰살된 비브린트 숲에서 데히드 꽃이 담긴 향낭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 주머니 안엔 사자 문장이 그려져 있었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편지에서 똑똑히 봤거든요.”
편지 내용을 회상하려 지그시 눈을 감고 읊조렸다.
“…걱정 마. 들키지 않도록 손을 써 놨어. 그분께서 보호해 주실 거야.”
다시 눈을 뜨자 클라우스는 한쪽 입꼬리를 씰룩였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감정적 동요를 읽어 내기가 한층 어려웠다.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일부러 시오 왕조를 나타내는 사자 문장을 써서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했나요? 반역자의 모함처럼 보이게 꾸미려고?”
차가운 감옥에 날이 선 긴장감이 맴돌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밧줄이 힘겨루기를 하듯 팽팽했다. 그때 클라우스가 먼저 밧줄을 힘주어 당겼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좋은 점이 여럿 있더군. 하나는 내 표정을 읽기 어렵다는 거고.”
“…….”
“또 다른 하나는 내 아내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상상된다는 거야.”
그의 입매가 길게 찢어졌다. 잇새로 끌끌 흘러나오는 웃음소리가 불쾌하게도 귓등을 긁었다. 이대론 안 된다. 진실을 파헤치려고 왔다가 괜히 손아귀에서 실컷 놀아나고 말 것이다. 아무리 클라우스라고 한들 고된 고문으로 지쳤을 터. 반드시 그를 동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죄인에게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클라우스의 코앞까지 다가가자 대기하던 기사가 소리쳤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앞에 몸을 낮췄다.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클라우스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음?”
“당신은 애초에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할 생각이 없다는 걸.”
“그래. 맞아. 그걸 안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나를 부른 목적은 분명하죠.”
환하게 웃고 있던 클라우스가 표정을 살짝 굳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슬그머니 파고들었다.
“단순히 날 여기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일부러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여기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정곡이 찔린 걸까.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던 클라우스가 드디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속절없이 클라우스 쪽으로 끌려가던 밧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더는 밀고 당길 필요가 없었다. 우위를 점한 건 나니까.
“그런데 어쩌죠. 전 그깟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이 없어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자 클라우스가 급하게 나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
철컹. 클라우스가 몸을 움직이자 쇠사슬이 바쁘게 흔들렸다. 발걸음을 죽인 채 그의 곁에 서서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붕대로 눈이 가려진 클라우스는 불안하게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정말 간 건가? 어이. 거기 누구 있어?”
순식간에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짧은 1분이 클라우스에게는 1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호흡이 서서히 가빠질 즈음, 다시 그의 곁에 무릎을 굽히고 말을 걸었다.
“어때요?”
“헉…!”
“깊은 우물 아래서 목이 쉬어라 소리쳐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기분은.”
소스라치게 놀란 클라우스는 숨을 들이쉰 채로 멈췄다. 공포심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클라우스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정면만 향했다. 이윽고 이를 빠득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지금… 날 농락한 건가?”
“아뇨. 당신이 가둬 둔 마물들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려 주고 싶었어요.”
클라우스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만을 반복했다. 분명히 불안을 느끼고 있는데도 굳게 닫힌 입은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이래서야 클라우스가 원하는 대로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좋아요. 당신이 말하지 않겠다면, 내가 아는 정보부터 말할게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해야겠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클라우스에게도 유일한 약점이 남아 있었다. 양심상 건드리고 싶진 않았으나 여기까지 와서 수단을 가릴 순 없었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클라우스. 당신의 소중한 가족을 흙 속에서 찾았어요.”
“…….”
“꽤 깊게 묻은 탓에 전부 파헤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여전히 클라우스는 말이 없었다. 시신을 찾았으리란 건 이미 예상한 모양이다. 수많은 조사대가 저택을 샅샅이 뒤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대로 다음 수를 두려던 그때, 클라우스가 예상치 못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어디 있지…?”
그 말을 듣자마자 저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겨서가 아니었다. 철두철미한 클라우스가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아직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지 못한 클라우스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물었다.
“왜 웃는 건지?”
“무의식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뭐?”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메마른 입술을 잘근거렸다.
“전 아직… 시신이 여럿이라고는 말 안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