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 (85/305)

#85

그곳은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마치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듯 차가운 철창 속에 마물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정육면체 큐브 모양으로 만들어진 케이지는 날개를 펴거나 몸을 누일 수조차 없을 만큼 작았다.

굳이 철창 틈새로 보지 않아도 마물의 상태는 열악했다. 상처를 자꾸만 혀로 핥아 새빨갛게 부어오른 건 물론이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염증이 터지고 생기길 반복해 단단하게 굳어 버리기도 했다. 스치듯 봐도 심각한 상처였으나 마물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오직 자유를 울부짖을 뿐이었다.

“…허, 허억….”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강한 염원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살려 달라는 외침과 죽여 달라는 부탁이 얽혀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식은땀은 비처럼 흘러내렸고, 호흡은 계속해서 가빠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져 멀쩡히 숨을 쉬고 걷는 방법마저 잊어버렸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마물들을 눈으로 훑으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픈 북.”

- 태오 님.

“당장 보여 달라니까!”

눈앞에 나타난 도감의 내용과 처참한 그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비교했다.

NO. 7 프라민.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화려한 비늘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피부염으로 비늘이 전부 벗겨져 염증과 진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NO. 19 슈타르. 나무 위에서 지내는 습성으로 인해 긴 발톱이 낚싯바늘처럼 휘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철장을 계속해서 긁은 탓에 모든 발톱이 뒤집혀 있었다.

NO. 37 지르그반. 유독 꽁지깃이 길어 창공을 가를 때면 마치 새털구름이 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깃마저 실험 재료로 사용되어 꼬리가 잘려 나간 상태였다.

NO. 40 제르니아스. 사막 지역에 서식하여 천적이 나타나면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 태오 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진정하란 거야.”

- 당신이 여기서 무너지면, 저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십시오.

냉정한 시스템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면… 그들은 평생 한 칸의 땅 안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을 마른침과 함께 삼켜 넘겼다.

- 공기 중 마력까지 전부 흡수하는 장치 때문에 마물은 물론이고, 태오 님께서도 힘을 쓸 수 없는 겁니다.

“…그 장치부터 찾아야겠네.”

일단 마물들의 숨통이라도 틔워 주고 싶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철창을 따라 걸어가다가 벽 한 면을 전부 채운 선반을 발견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놓인 유리병엔 알 수 없는 마물의 표본이 들어 있었다.

깃털, 발톱, 꼬리. 심지어 살점까지 끈적끈적한 용액에 담겨 형체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합법적으로 얻어 낸 사체일 리가 없다. 아니… 저걸 적출할 당시 사체이긴 했을까?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선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끝내 봐서는 안 될 물건과 마주쳐 버렸다.

“…저건….”

괴상한 장치에 연결된 유리병 안에 여러 개의 눈동자가 들어 있었다. 홍채 없이 새까만 눈은 어찌나 투명하던지, 창백하게 질린 내 얼굴을 비쳤다. 그건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광경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 사랑스러운 눈이 몇 번이고 내 본질을 꿰뚫어 보았으니까.

“하….”

드디어 사이누르 무리가 무참히 빼앗긴 일부분을 되찾았다.

일단 유리병에 연결된 장치를 뜯어 내고 그 정체를 살펴보았다. 복잡한 장치는 기지 한구석에 놓인 작은 정원에 닿았다. 황폐한 기지에서 괴리된 정원엔 양분을 한껏 머금은 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사이누르 일족의 목숨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추악한 욕망을 품은 데히드 꽃이었다. 정원은 어항처럼 유리가 사방으로 막혀 물을 줄 구멍이나 햇빛이 닿을 여지도 없었다. 그 덕분에 깨달았다.

이 작은 정원…. 아니, 거대한 온실 속 화초가 지금껏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또 어떻게 마력 장치도 없이 계속 꽃을 피워 냈는지 전부 알아 버렸다. 마물이 고통에 몸부림칠수록 자작의 온실은 더욱 화려해졌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 온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걸 부수면 되는 건가.”

- 이 장치는 단지 정원에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온실로 향하는 장치는 따로….

시스템의 말이 한참 이어지던 그때였다. 철컥,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마물의 목소리가 일순 쥐 죽은 듯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거기 누구 있나?”

저택의 주인이 왔다. 냄새로 그를 알아본 마물들은 잔뜩 겁을 먹어 덜덜 떨고 있었다. 혹시 마물에게 피해가 갈까 봐 순순히 커튼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촛대를 들고 서 있던 클라우스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에 초대한 기억은 없는데.”

비밀을 들켜서 당황한 기색 따윈 없었다. 아마 내가 제압하기 쉬운 상대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클라우스는 느긋하게 손에 든 양초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어디까지 알면 안 되는 거죠?”

허. 짧은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이미 이곳에 들어온 순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그 하녀처럼 절 죽이기라도 하실 건가요?”

“…못할 건 없지.”

클라우스는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치밀한 그조차도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 있나? 내가 친히 전해 주도록 하지.”

내가 마물을 부릴 수 있다는 것. 마력을 흡수하는 장치는 내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데히드 꽃밭을 둘러싼 유리가 그리 단단하지 않았으니, 여차하면 꽃을 이용해 마물을 소환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자연스럽게 자작을 데히드 꽃밭이 있는 쪽으로 유인해야 한다.

일부러 겁을 먹은 척 뒷걸음질을 치면서 그의 신경을 긁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부인은 살아 돌아오지 않아요. 그 쌍둥이들도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클라우스는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걸 네가 어떻게 단정 짓지?”

“당신은 신이 아니니까요.”

“만약 신께서 날 총애하고 있다면…?”

“설령 당신이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들, 이 세상에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 방법은 없어요.”

단호하게 부정했으나 클라우스는 오히려 공감을 표했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매일 신에게 기도하는 이들을 보며 어찌 저리 멍청할까 싶었어.”

키득,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귓등을 스쳤다.

“하지만 인간은 간절해지면 어쩔 수 없이 멍청해지더군. 그녀를 잃고 나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했어. 세간에 떠도는 소문부터 잡서에 나온 전설까지 닥치는 대로. …하지만 소용없었어. 그러다 돌파구를 발견한 거야.”

“남의 낙원을 뺏어 당신의 낙원을 되찾으려는 방법 말인가요?”

“하하, 그래. 내가 너무하다 생각하나?”

아무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클라우스는 내 앞에 다가와 멈췄다. 싸늘한 그의 손끝이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내 뺨에 닿았다.

“넌 예전의 나를 닮았어. 증명되지 않은 것은 거짓이라 치부하고, 오직 입증된 사실만 따랐지. 그때 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내 모습에 취한 나머지 남의 행동에 멋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어.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볼을 감싸 쥐는 손길이 더러워서 당장이라도 팔을 쳐 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애써 태연하게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자 안광을 잃은 갈색 눈동자가 내 발끝에서부터 머리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면, 넌 어떨까.”

온몸에 다리 없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소름 끼쳤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대답했다.

“무슨 수를 써서도 살리고 싶겠죠. 가능하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예요.”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는군.”

“하지만 적어도 당신처럼 손에 남의 피를 묻히진 않아요. 평생 함께 있고 싶다는 내 욕망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신념을 지켜 주는 게 더욱 중요하니까.”

정곡이었나. 줄곧 반응 없이 평온하던 그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이내 클라우스는 내 뒷머리를 우악스럽게 움켜쥐며 속삭였다.

“…넌 아무것도 몰라.”

“좋을 대로 생각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어요.”

코앞까지 다가온 그를 조롱하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수백의 사체를 밟고 일어선 히아신스는 결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어디 감히 함부로 그 이름을….”

빠득. 살벌하게 이를 간 클라우스는 머리채를 잡은 손을 휘둘러 나를 내팽개쳤다. 아무 저항 없이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웅크리자 그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도 분명 기뻐할 거야. 어떤 방법을 써서든 상관없어. 그게 사랑이니까.”

미친 놈. 속으로 욕을 삭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선반으로 손을 뻗었다. 그때 하필이면 바구니가 손에 걸려 안에 있던 내용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데구루루…. 힘없이 굴러간 구체는 클라우스의 발치에서 멈췄다.

“이런….”

마력을 전부 빼앗기고 형태만 남은 사이누르의 마안이었다. 아래를 슬 내려다본 클라우스는 발에 부딪친 물건을 확인하곤 탄식을 내뱉었다.

“조심해야지. 내가 그 마안을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뭐…. 딱히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실패작이지만.”

클라우스는 눈동자를 굴러다니는 쓰레기 취급하며 발로 툭 찼다. 그게 내 인내심의 한계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책을 들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사이누르에게도 당신처럼 가족이 있었어요.”

“뭐?”

“그뿐 아니라 당신이 잡아넣은 저 마물들도 전부 소중한 무리가 있었죠. 그걸 망친 건 당신이에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력을 머금은 데히드 꽃밭으로 향했다. 광기에 눈이 먼 클라우스는 다행히 의도를 눈치채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두 팔을 크게 흔들며 자신의 신념을 설파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난 내 낙원만 되찾으면 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그 사람을 닮은 아이들… 그거면 돼. 당장 세상이 무너진다 한들, 내일 제국이 멸망한다 한들 상관없어!”

거친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사이 나는 무사히 유리로 가로막힌 꽃밭 앞에 다다랐다. 등 뒤로 돌린 손으로 유리벽을 더듬는 동안, 클라우스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며 중얼거렸다.

“하아, 시간을 낭비해 버렸어.”

금세 안정을 되찾은 자작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칼을 쥐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방심하는 순간 피하지도 못하고 급소를 찔리고 말 것이다.

“내가 말했지. 넌 쓸데없는 말이 많다고. 그 버릇이 명을 줄일 거라고….”

하지만 거리는 충분하다. 그가 내게 달려들기 전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히페리온을 소환할 정도로 대단한 상대도 아니었다. 책을 세게 움켜쥐자 클라우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었다.

“무모한 짓을 할 거면, 최소한 제 몸 지킬 수단은 갖고 왔어야지.”

“혹시 저한테 하는 소린가요?”

태연하게 되묻자 그의 한쪽 눈썹이 날카롭게 올라갔다. 여유를 줄 필요도 없다. 곧바로 책을 든 손을 높이 올리고 있는 힘껏 유리를 내리쳤다. 쨍그랑! 꽃밭을 감싼 유리가 산산조각 깨졌다. 그 탓에 손에 조각이 박혀 피가 흘렀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꽃밭 안으로 들어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이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렸을 이의 이름을 불렀다.

“사이누르. 여기… 네 가족이 잠들어 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폐쇄된 기지 안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순간, 데히드 꽃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시들었다. 마른 꽃잎은 빗방울처럼 바닥에 떨어졌고 메마른 대지 위에 증오를 품은 마물이 나타났다.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그르르- 흉통을 울리는 살벌한 울음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당황한 클라우스는 뒷걸음질 치며 칼을 들었으나, 바짝 선 살기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누르는 오직 내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흥분한 누르를 진정시키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죽이지만 마.”

마법도, 달리 몸을 지켜 줄 기사도 없는 클라우스를 제압하는 건 우스울 정도로 쉬웠다. 단숨에 클라우스를 향해 달려든 누르는 단검을 든 팔을 물어뜯었다.

“으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이미 마물들의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클라우스는 물어뜯긴 팔을 움켜쥐었다. 완전히 무장해제 시켰으나, 누르는 만족하지 못했다.

“사, 살려줘…!”

클라우스의 몸 위로 올라간 누르는 가차 없이 발을 휘둘렀다. 으아아악! 귀를 째는 듯한 비명이 다시금 울려 펴졌다. 클라우스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눈가를 더듬으며 말했다.

“눈이… 눈이…!”

날카로운 발톱이 정확히 그의 눈꺼풀을 우악스럽게 찢었다. 그가 비브린트 숲에서 사이누르 무리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은 꼴이었다. 아픔을 참지 못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클라우스를 뒤로하고, 누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혹여 이성을 잃은 누르가 클라우스를 죽일까 봐 걱정됐다. 제국 내에서 인간을 죽인 마물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연신 신음만 흘리던 클라우스가 소리쳤다.

“이, 인간을 해친 마물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어떤 연유에서건 척살이다!”

“…정말 끝까지….”

추락한 인간의 밑바닥을 보여 주는구나. 누르를 제자리에 세워두고 천천히 클라우스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발끝으로 확실히 차내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걱정 마요.”

허공에 손짓하니 나비가 날아올라 선반 위에 있던 유리병을 툭 건드렸다.

“이건 당신과 나 사이의 몸싸움으로 인한 사고 처리가 될 테니까.”

하늘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자작은 어깨를 움츠렸다.

“날… 죽이려는 거냐…?”

“설마요.”

흔들거리던 유리병은 그대로 클라우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눈을 다친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 떨어지는 유리병을 피하지 못했다. 퍽! 머리에 부딪친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며 그 안에 있던 마른 꽃잎이 폭죽처럼 흩어졌다.

“이렇게 쉽게는 못 보내죠.”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보라색 꽃잎이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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